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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후령, 임수연(‘씨네21’ 기자), 김겨울(작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tvN

‘뿅뿅 지구오락실2’ (tvN)

송후령: “친정이다!” 변함없이 남다른 데시벨을 자랑하는 이영지의 목소리와 함께, 우리의 지구 용사들이 돌아왔다. 일단 시끌벅적하고, 도통 가만히 앉아 있지를 않고, ‘뿅뿅 지구오락실’의 시그너처인 랜덤 플레이 댄스가 시작되자 눈빛부터 돌변하는 여전한 모습들. 이은지, 미미, 이영지, 안유진. 이 네 명이 모였을 때 발현되는 유쾌한 시너지에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무 걱정 없이 깔깔 웃게 만드는 고유의 파장이 있다. 나영석 PD가 안유진을 보며 “이 친구는 저희 프로를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해요.”라고 말하고, 이은지는 미미에게 이전 시즌부터 줄곧 “딱히 방송하는 애 같진 않았”다고 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상황이 아닌 플레이어들이 진심으로 마음껏 즐기는 모습에서만 비롯될 수 있는 순도 높은 웃음을 선사한다. 그간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출연진들이 여행을 떠나 음식을 걸고 게임을 하는 모습을 숱하게 많이 접해왔을 시청자들에게 ‘뿅뿅 지구오락실’이 만드는 장면들이 신선하게 가닿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줄줄이 말해요’ 게임 중에 미미가 섞박지를 두 번 답하는 바람에 실패하자, 안유진은 이렇게 말한다. “언니, 섞박지 앰배서더예요?” 종잡을 수 없이 ‘뿅뿅’ 튀는 멤버들의 리액션이 익숙한 포맷의 게임에서도 의외의 재미를 이끌어낸다. 지난 시즌에서 ‘예능 블랙홀’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미미는 ‘당으로 끝나는 말 3가지’를 대라는 문제에 “적당히 치우치지 않아 다행인” 누구도 감히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내놓으며 모두를 자지러지게 만들기도 했다. 동전을 넣고 하는 오락실 게임만의 쏠쏠한 재미가 있듯, ‘뿅뿅 지구오락실2’도 네 명의 지구 용사들만이 줄 수 있는 웃음을 선사하며 첫 화부터 많은 사람들을 다시 발걸음하게 만들었다.

‘인어공주’

임수연(‘씨네21’ 기자): 7대양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인어 자매들이 모이는 날, 호기심 많은 막내딸 에리얼만이 바다 깊이 추락한 난파선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틀란티카 바다를 지배하는 왕 트라이튼은 육지의 삶을 동경하는 딸을 걱정하며 야단치지만, 에리얼은 인간을 직접 조우하기도 전에 배척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어느 날, 에리얼은 폭풍우를 만나 조난당한 에릭 왕자의 목숨을 구하면서 덜컥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인간의 모습으로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나기 위해 에리얼은 바다 마녀 울슐라를 찾아가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꾸는 위험한 거래를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동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전반적인 플롯 구성과 O.S.T., 주요 캐릭터까지 흡사하게 각색한 실사판이다. 여기에 에릭 왕자가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자였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인어와 인간의 로맨스가 품은 정치적 의미를 강조했다. 인간과 인어, 흑인과 백인 등 서로 다른 그룹이 서로 마음을 여는 과정을 동화 같은 필치로 그려낸 ‘인어공주’는 이 텍스트가 현대에 한 번 더 각색되어야 할 필요성을 증명한다. 

‘형사 박미옥’ - 박미옥

김겨울(작가): 전설의 형사. 탈옥수 신창원 검거에 큰 역할을 했고, 숭례문 방화 사건 현장의 화재 감식을 총괄 지휘했으며, 만삭 의사 부인 살인 사건과 한강변 여중생 살인 사건 등의 굵직한 사건을 해결한 강력계 형사이자,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형사 역할에 대한 자문을 맡은 사람. 머릿속에 어떤 인물을 떠올렸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 인물은 여자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박미옥이다. 2000년에 최초로 여성 강력반장을 달고 이후로 행동과학팀장과 강력계장, 형사과장을 거친 뒤 은퇴하고 제주에 자리를 잡았다. 30여 년의 경찰 생활 동안 무수한 ‘최초 여성’ 타이틀을 거머쥔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강남경찰서 강력계장이라는 파격적 인사로 “립스틱 정책이냐?”는 비꼼을 들었던 그녀가 시간이 흘러 ‘박사방’의 주범을 잡은 후배 여성 형사를 위로하기까지,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함을 지켜온 역사는 읽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준다. 이것은 삶을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의 생생한 증언이자 자랑스러운 회고다. 더해서 삶의 현장감 못지않게 느껴지는, 삶에서 길어낸 단단한 생각과 글은 그녀가 지금 제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사는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누구보다 잔인한 현장을 봐왔을 것임에도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흉흉한 시대에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Sun Gin, 격, 덥덥이(dubdubee) - ‘Arkestra’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재즈계의 진보적인 실험주의자였던 선 라(Sun Ra)는 밴드 이름에 오케스트라(orchestra)대신 ‘아케스트라(arkestra)’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왜 이같이 표기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일각에서는 ‘방주(ark)’란 단어가 붙은 것에서 남다른 의미를 유추했다. 맹목적인 상업적 가치 추구나 왜곡에 훼손되지 않은 예술의 피난처. 프로듀서 선진과 두 래퍼 격, 덥덥이가 주조한 ‘Arkestra’에 담긴 메시지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들의 ‘Arkestra’는 오염되지 않은 예술, 혹은 힙합일 수도, 그런 예술이 유일하게 보존되는 이상향일 수도, 그러한 예술에 위협이 되는 것들을 제거해주는 절대적 존재일 수도 있다. 한국 힙합 씬에서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진중하고 ‘돈이 아닌 것에 대한’ 열망이 느껴지는 앨범이다. 선진은 힙합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드럼을 배제한 채 샘플 프레이즈 중심으로 구성한 이른바 ‘드럼리스(drumless) 힙합’을 제대로 만들어냈으며, 덥덥이와 격은 랩 하기에 쉽지 않은 비트 위에서 주제를 함축하고 라임 구조를 견고히 하며 타이트한 플로우를 선보인다. 이찬혁의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란 가사에 일부 동감하면서도 주류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여전히 멋진 힙합 또한 존재한다. 이 앨범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