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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해인,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김겨울(작가), 임수연(‘씨네21’ 기자)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채널 십오야

‘아는형이랑또나불’ (채널 십오야)

윤해인: “한 5분 안 봐도 크게 아깝지 않은 느낌.” 수많은 예능 히트작을 배출한 나영석 PD가 (웹툰 작가였으나 이제는) 인기 스트리머로 자리 잡은 침착맨으로부터 컨설팅받은, 요즘 유튜브 영상의 핵심 가치다. 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입해 매 분, 매 초, 정교하게 가공한 TV 시대의 예능과 달리, 설거지를 하다 잠깐 놓쳐도 괜찮은 슴슴한 재미의 유튜브 세계가 있다. 

 

나영석 PD는 그가 “산업 스파이”처럼 얻어온 이 원리를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 적용하는 중이다. ‘🤐나영석의 나불나불’, 라이브 스트리밍으로도 진행하는 ‘스탭입니다’는 최소한의 카메라만 사용하며, 어떠한 연출이나 시각 효과, 화려한 편집도 없다. 예컨대 ‘🤐나영석의 나불나불’에서는 오랜 시간 예능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이서진을 등장시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눌 뿐이다. 이서진은 전기세를 심하게 아끼는 생활 습관, 놀이공원에는 옷을 맞춰 입는 게 ‘예의’라는 그만의 철학(?) 또는 신체적 노화나 어느 정도 알려진 개인사를 무덤덤하게 털어놓는데, 그 과정에서 배우라는 그의 직업이 가진 정제된 이미지와 비틀리며 기묘한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이 웃음의 기반에는 출연자와의 친분을 적절히 활용하여 에피소드를 끌어내고, 침착맨의 요즘 유튜브 컨설팅을 적용한 나영석 PD의 진행 감각이 있다. ‘스탭입니다’ 역시 예능 PD나 방송 작가라는 출연자들의 직업적 특성에 기반해, 키워드만 들어도 흥미로운 ‘재벌 인턴 썰’, ‘주지스님 썰’ 같은 방송 종사자들 특유의 ‘웃픈’ 일화가 터져나온다. 아이러니하지만, 라이브 스트리밍과 편집본 모두 5분도 놓치기 아까운 재미를 보장한다는 얘기다. 

프로미스나인 - ‘Attitude’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프로미스나인의 음악은 ‘잘 만든 팝’이다.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이기보다는 듣기 좋은 멜로디로 팝의 정수에 다가서는, 삭막한 도시를 한순간 영화처럼 만들어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긴 기다림 끝에 발매된 첫 정규 앨범 ‘Unlock My World’의 타이틀 곡은 예의 기조를 이어가는 ‘#menow’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컴백 때 함께 선보인 수록 곡 ‘Attitude’를 훨씬 좋아했다. 지난 몇 년간 프로미스나인은 컴백 때마다 ‘Escape Room’이나 ‘Rewind’처럼 일명 “다크한” 수록 곡 무대들을 함께 올려왔다. ‘Attitude’는 이 노선의 완성이자 프로미스나인이 나아갈 미래의 한 지표라 보아도 될 듯하다. 밀라 요보비치의 표정 연기를 연상시키는 채영의 강렬한 도입부부터 진득한 그루브로 차가운 분위기를 휘저어주는 서연의 프리코러스 그리고 마이너9 코드로 서늘하게 내려앉는 후렴에 멤버들의 보컬이 무심하고도 스타일리시하게 어우러진다. 도시의 일상을 아름답게 칠하던 예쁜 아이돌이었던 그들은 이제 ‘Attitude’를 통해 세기말의 도회적이고 우아한 여성 아티스트의 아우라를 보여준다. 현 세대 K-팝 팀 중에 프로미스나인만큼 이 정서를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는 팀은 없을 것이다.

‘연결된 고통’ - 이기병

김겨울(작가):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다. 누구나 질병을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러므로 이 ‘누구나’가 모든 사람, 우리가 사회에서 주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닌 이들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난하거나 소외되어 있다고 해서 그들의 질병을 방치할 순 없는 것이다. 그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한 국가 내에 사는 사람들의 질병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럴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 ‘외노병원’이 있다. 내과 의사 이기병이 공중보건의로 외국인 노동자를 진료하는 가리봉동의 무료 의원에서 일한 경험을 풀어 썼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저자가 의료인류학 연구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짧은 시간 동안 환자를 몸으로 환원시켜서 바라보는 의사의 눈과 한 사람으로서 문화와 사회의 영향 하에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인류학자의 눈은 서로를 보충하는 관계에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두 가지의 관점에서 쓰였다. 의사의 글에서 아네마리 몰, 브뤼노 라투르, 어빙 고프먼과 같은 철학자, 인류학자, 사회학자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저자는 그렇게 자신의 진료 경험을 되돌아보며 의사로서의 선택을 반성하기도 하고, 질병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비판하기도 하며, 환자가 처한 상황을 재구성해보기도 한다. 책은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몸과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재점검하게 한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임수연(‘씨네21’ 기자): 전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로부터 1여 년 후, 브루클린 시민들의 친절한 이웃이 된 고등학생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는 다른 스파이더맨이 그러했듯 슈퍼 히어로의 정체성과 평범한 삶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그런 그의 앞에 다른 평행 세계의 스파이더우먼 그웬이 다시 나타난다. 각기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이 자유자재로 멀티버스를 오갈 수 있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를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한 마일스는 멀티버스의 질서를 위협하는 빌런 ‘스팟’을 만난다. 이 시리즈가 다루는 멀티버스는 비주얼과 주제의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80명이 넘는 스파이더맨이 속한 세계는 고전적인 코믹북에서 비디오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 포진돼 있고, 차원의 이동은 대중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감각적인 에너지를 창출하는 매체 실험이 된다. 또한 다양한 겉모습을 가진 스파이더맨들 사이의 갈등을 통해 스파이더맨을 스파이더맨이게 만드는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질문하는 영민한 작품이기도 하다. 역대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통틀어서도 손꼽을 만한 역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