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5일, KBS ‘1박 2일’이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당시 ‘1박 2일’의 연출자인 나영석 PD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박 2일’과 tvN ‘꽃보다 할배’, ‘신서유기’, ‘윤식당’을 거쳐 최근의 ‘뿅뿅 지구오락실’에 이르기까지 그의 역사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역사와 겹친다. 그리고 2023년 5월 26일, 그는 자신이 속한 에그이즈커밍의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에서 오랜 동료 김대주 작가와 함께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유튜버 침착맨에게 유튜브에 대해 배워왔다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최고의 TV 예능 프로그램 연출자가 유튜버가 된 이유를. 그리고 과거에도 최고였고 현재에도 최고인 사람이 꿈꾸는 미래를.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 출연해서 유튜브 노하우를 배우겠다고 하더니 바로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직접 라이브 방송을 했어요.
나영석: 침착맨님 하고 ‘그림형제’를 하면서 물어봤어요. “유튜브 어떻게 하는 거예요?” 침착맨님 방송에서 어떻게 하는지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안 보면 납득 못할 것 같아서. 유튜브 개인 방송에 대해 ‘저걸 왜 봐? 연예인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저걸 대체 왜 보지?’ 했는데 침착맨이라는 사람이 자기 방송을 통해 성장하는 게 보인 거죠. 그래서 ‘침착맨’에 나가 생각만 했던 것들을 보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걸 확인했어요. 방송하고 오자마자 침착맨님한테 라이브 룸 세팅하는 분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받았죠. 어떤 라이브를 할지도 모르고 그분한테 부탁했어요. “이틀 안에 세팅해주세요. 저희 사흘 후에 라이브해야 돼요.” 하고요.
라이브 방송을 변화의 중심에 둔 이유가 뭐였을까요?
나영석: 유튜브를, ‘채널 십오야’ 채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바꾸지 않으면 답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유튜브를 해도 ‘곽튜브’처럼 못하는 거예요. 그분들은 본인이 출연자이자 제작자인데 우리는 직접 나서지 않잖아요. ‘채널 십오야’도 처음에는 ‘신서유기’ 멤버들을 데리고 한 명씩 가벼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시작한 건데, 아무리 가볍게 하자고 해도 연예인이 출연하면 가볍게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왜 이런지 생각하다 어느 순간 느낀 거죠. 지금 우리가 유튜브에서 하는 게 사실 TV에서 하는 거랑 크게 다를 바 없다.
생각해보면 유튜브적인 연출은 ‘신서유기’ 때부터 했고, 지금은 유튜버의 특성을 파악하려는 것 같아요.
나영석: 맞아요. 그걸 유튜브한 지 몇 년 만에 깨닫게 된 거예요. 어느 유튜버가 다른 사람을 출연시켜서 해요? 자기가 직접 하지. 말로만 “이거 유튜브야. TV랑 다르게 해.”라고 했지, 사실은 안 변한 거예요.
왜 그래야 할까요?
나영석: 지금까지는 출연자라는 태양이 있고 우리는 지구 옆의 달 같은 존재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태양이 돼야 하는 것 같아요. 이 관계를 역전하지 않으면 유튜브를 할 이유가 없겠다 싶었어요. 유튜브를 통해 우리의 이 회사, 에그이즈커밍이 어떤 곳이고, 이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업계에서는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집단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였죠. 그런데 구성원 하나하나는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저희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유튜브에) 나왔던 인간이 이런 걸 해냈어요.’ 이렇게 연결되기를 바라요.
에그이즈커밍 직원들 체육 대회를 밀어붙여서 콘텐츠로 만든 이유일까요? 시청자 눈에 띌 가능성을 뿌려놔야 하니까.
나영석: 그렇죠. 침착맨님하고 방송할 때 체육 대회를 촬영 안 한다고 했어요. 촬영하면 다들 칠색 팔색하거든요. 그런데 ‘침착맨’에 나가고, ‘채널 십오야’ 라이브를 해보니까 반응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진지하게 이야기한 거죠. 이거 찍어야 되겠다.
정말 유튜브적인 전개잖아요. 위버스에 있는 아이돌들이 팬들하고 대화하다 화제가 되면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는 것과 비슷해 보여요. 체육 대회에서 배드민턴 잘 치는 걸로 주목받은 분처럼 시청자의 시선을 받는 사람도 생기고요.
나영석: 지금 말씀하신 딱 그 루트를 바라고 있어요. 체육 대회를 하니까 요즘 분들은 알아서 찾아내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나와도 누가 눈이 간다는 게 분명히 있고, 그걸 친절하게 댓글로 알려주세요. 그 말인즉슨, ‘다음에는 이 사람 보여줘.’ 또는 ‘다음에 그 얘기 진짜로 해줘.’라는 거죠.
그러기 위해 라이브 방송에도 직접 나오고, 체육 대회를 밀어붙이기도 해요. 침착맨의 말처럼 대중 앞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건데.
나영석: 저 같은 사람은 소위 말해 이미 얼굴을 판 상태라 그걸 가장 유용한 방식으로 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를 레버리지 삼아 다른 후배 스타 플레이어들을 띄워주는 거죠. 그들이 잘하면 당연히 저한테도 어떤 식으로든 돌아와요. ‘역시 나영석이 키운 애들이라 다르네.’, ‘그때 라이브 나와서 농담하던 게 진짜 프로그램이 됐네? 저 집단은 진짜 다르다.’ 이런 이미지를 저도 같이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하이리스크인 건 맞지만 저는 그게 꽤 괜찮은 리턴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다른 제작진들은 뒤에서 만드는 데 익숙하고, 본인이 출연한다고 잘될 거라는 확신도 없을 수밖에 없죠. 저라도 강렬한 확신이 있었으면 다 스톱시키고 갈아엎자고 했을 텐데 저한테도 그 정도의 강한 확신은 없었으니까 계속 애매하게 왔던 거예요.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바꿨나요?
나영석: ‘그림형제’하고 ‘출장 채널 십오야’ 세븐틴 편을 마지막으로 다음 시기로 넘어갔어요. ‘출장 십오야’ 팀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켰어요. 세븐틴 편도 반응도 참 좋았고 현장에서도 세븐틴 멤버들이 너무 재밌고 서로 정말 아끼는 게 보여서 참 좋았지만 여기까지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 ‘서진이네’를 끝내고 조금 쉬는 제작진이 있었는데 “유튜브 채널 잠깐 하자. 조회 수 신경 안 쓰고 그냥 슬렁슬렁할 거니까 너희들도 그렇게 해.” 해서 시작한 거죠.
인기 콘텐츠를 중단하고 스태프들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를 만드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나영석: 연예인은 자기 작품도 있고 팬도 있는데 만드는 사람들은 우리의 콘텐츠가 없어요. 늘 뒤에 있던 사람이니까. 우리 같은 사람에게 콘텐츠는 방송을 만들면서 겪는 일들, 그때 추억들이 제일 큰 게 아닐까 생각해서 첫 라이브를 이런 추억이 많이 쌓인 김대주 작가하고 같이 했어요. 그런데 자막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방송이 조회 수 100만 넘는 걸 보면서 이 길이 다 틀리지는 않았다는 확신을 했고, 다른 PD들도 “이런 걸 사람들이 궁금해하네?” 하게 되면서 후배 PD들을 불러서 해보게 됐어요. 다른 콘텐츠도 제작진이 확실히 중심을 가져갈 수 있는 사람들, 서진이 형처럼 “형 출연료는 없어, 그냥 우리 편하니까 나와서 얘기해.” 이럴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해보려고요.
넷플릭스의 화제작 ‘사이렌 : 불의 섬’ 이은경 PD님과 채진아 작가님 그리고 에그이즈커밍의 조연출 두 분이 이어 출연했어요. 김대주 작가님과 반대로 연차가 많이 차이나는 여성 스태프들을 초대한 이유가 있을까요?
나영석: 김대주 작가가 출연한 게 조회 수 100만이 나왔어요. 그러면 예전에는 다음에 김대주, 나영석 나오고, 중간에 다른 누구가 나와서 150만 나오게 하려고 했을 거예요. 그 다음엔 전 분명히 연예인을 출연시켰을 거고요. 우리는 그렇게 늘 시청자한테 끌려가곤 해요. 그런데 침착맨님이 말하길 재밌고 잘되는 게 있으면 일부러라도 재미없는 걸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자기가 무너지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그게 진짜 와닿았어요. 김대주 같은 베테랑 작가가 나오면 저랑 추억이 많으니까 할 말도 많죠. 그러면 화제는 되는데, 그것만 하면 후에 떨어질 절벽이 너무 높아요. 경력 차이가 많은 친구들하고도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회 수가 적게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걸 당연히 받아들여야 이 채널이 더 길게 갈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젊은 스태프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던데요? 나영석 PD님이 조연출들한테 “종편을 하루 미룰까?” 한마디 하면 PD님이 나가고 나서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라는 걸 직접 말하는 건 새로운 모습이었어요.
나영석: 큰 도움이 됐어요. 관할하는 팀이 많아지다 보니까 막내 연출자나 막내 작가들은 잘 알기 어려워요. 그래서 실제로 들으면 더 탁! 꽂혀요. 종편이 그들에게 부담된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지만 사실 그동안 모른 척한 거죠.(웃음) 직접 말로 들으니까 이 친구들한테는 꽤나 스트레스겠다라는 걸 새삼스레 강하게 다시 느껴요. 요즘 많이 반성해요.
조연출들이 출연한 방송에서 프로그램 제작 중에 “(현장) 상황 봐서 (촬영 내용을) 결정한다.”는 걸 없애겠다고 했어요. 제작하면서 현장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데, 본인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변수에 대한 판단력을 포기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은 안 드나요?
나영석: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거예요. 유튜브니까 재미를 생각해서 “그런 것 이제 안 해.” 한 것도 있는데, 정말로 그 마음이 없진 않아요. 그게 스태프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알고요. 저는 이런 판단을 할 때 유유히 흘러오는 장강의 물결을 이미지로 떠올리거든요. 이건 막을 수 없는 물결이에요. 우리 다음 세대는 현장에서 상황 봐서 결정하는 것 같은, 그런 불확정성을 굉장히 두려워하더라고요. 조금 더 체계화돼 있고, 그 안에서 내 역할이 명확하고, 내가 ‘이만큼 편집하고 이때는 일상을 살아야지.’를 할 수 있는 삶을 원해요.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로 거기 가서 결정해야 하는 부분까지는 그들도 당연히 이해해요. 하지만 유튜브에서 한 말이 그냥 100% 농담은 아니에요. 가능하면 정해주고 가야 하고, 정 안 되는 부분은 이게 왜 연출적으로 필요한지 공유하고, 모두 이게 어쩔 수 없단 걸 아는 상태여야 하는 거죠.
체육 대회를 다룬 콘텐츠 제목이 ‘소통의 신’이었는데, 정말 스태프들과의 소통이 중요하겠어요.
나영석: 예전에는 PD하고 작가가 “여기서 우리가 출연진 몰래 갑자기 도망가면 웃기겠다!” 하는 걸 즉흥적으로 결정했단 말이에요. 그럼 다른 스태프들은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면서 끌려가는 거예요. 그게 저에게는 나중에 “그때 너무 웃겼어.” 할 수 있는 에피소드지만 누군가는 그 결정에서 소외됐다고 생각할 수 있죠. 지금은 인원도 더 많아지고 각자 맡은 역할도 헬리캠만 보는 사람, 오디오만 체크하는 사람처럼 더 분화됐어요. 그래서 중요한 결정이 조직의 모세혈관까지 닿는 데 시간이 걸리거든요. 현장 상황에 따른 빠른 판단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요즘 스태프들한테는 이렇게 일하는 게 맞아.’인 건 사실이에요.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문제를 줄이려고 하는 거죠.
20년 동안 많은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사람 입장에서 라이브 방송 중 본인이 잘못한 부분들을 인정하거나, 변화를 시도하는 건 어렵지 않았나요?
나영석: 많은 사람들이 제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부분이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건 시간으로만 따지면 한 30%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나머지는 ‘누구 옆에 이런 친구가 있어야 하니까 얘를 여기서 데려와서 조직을 만들면 프로젝트 만들기 좋은 팀이 나올 것 같다.’ 같은 일에 훨씬 많은 신경을 써요. 이 일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예상외로 끊임없이 이 조직을 더 좋은 조직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나 자신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요. 이런 과정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다 이슈가 돼서 아까 말한 외줄에서 떨어질까 그런 건 좀 무섭죠. ‘나영석, 이제 보니까 완전 개꼰대네?’ 이런 반응. 하하.
체육 대회를 밀어붙이면서 “저의 꿈은 참된 리더입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나영석: 크리에이터는 욕심쟁이에요. A부터 Z까지 다 자기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짜증이 나는 사람. 저는 그런 성향이 그나마 좀 덜한데도 일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래서 예전에 1년에 프로그램 하나 준비할 때 가장 행복했어요. ‘1박 2일’을 하면 출연자들하고 스태프만 챙기면 내 몸이 바스러질지언정 행복의 나래를 향해 날아가는 거죠. 그런데 저는 ‘1박 2일’할 때도 리더였고 앞으로도 리더일 거란 말이에요. 그럼 나하고 같이 있는 조연출이 계속 조연출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 친구가 PD를 하는 목적이 그건 아닐 거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후배들이랑 공동 연출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프로그램을 하긴 했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들어주는 척하면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더 이상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시점이 된 것 같아요. 저의 꿈은, 독립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페셔널 팀들이 몇 개가 생기고, 제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거죠. 비교하자면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같은 거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웃음)
그러려면 어떻게 운영을 해야 하는 걸까요?
나영석: 옛날처럼 A부터 Z까지 관리하는 건 못하니까 핵심적인 부분에 관한 컨설팅만 제공하고, 그 외 부분에 대해서는 저 친구들의 판단에 맡기는 걸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 팀으로 조직을 나누고 저희는 통제력을 줄여 나가도 그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은데 어려운 부분들이 많겠죠. 그들도 이 일을 하는 목적이나 의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자기가 이 업계에 들어왔으면 자신이 중심이 되고 싶죠. 그래서 에그이즈커밍 안의 예능 팀에 있는 여러 팀들이 지금보다 좀 더 독립적으로 굴러가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요즘 그런 걸 뒷단에서 지원하는 구조가 유튜브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요.
라이브 방송 중에 ‘꽃보다 할배’ 이후로는 편집을 안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럼 지금 “참된 리더”로서 (웃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뭘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나영석: 제가 지금 ‘뿅뿅 지구오락실’을 하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크게 신경 안 써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 빼면 거의 박현용 PD랑 배경숙 작가가 알아서 하는 거죠. 그런데 박현용 PD랑 배경숙 작가를 ‘뿅뿅 지구오락실’ 팀으로 발령내서, 같이 기획하고 만들 때까지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거죠. 두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서포트해줄 수 있는 PD와 작가가 또 있어야 되고요. 그러고 나서 프로그램이 잘되면 뿌듯하고, 제가 원하는 ‘아 나둬도 되겠구나.’가 되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이 요즘 제일 신경 쓰는 건 신규 프로젝트예요. 기획 단계에서 뭘 하는 게 맞을지, 귀찮을 정도로 관여해요.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누가 해낼 수 있을지, 메인 PD와 작가를 정했으면 그 밑에 다른 성향의 사람을 더 붙이고, 팀을 짜주고, 출연자를 붙여서 ‘뿅뿅 지구오락실’처럼 굴러가게 해야 하는 거죠.
‘누구하고 누구하고 붙여야지.’, ‘이 사람이 잘할 수 있을까?’ ‘여기에 누구를 더 붙이지?’ 모두 사람에 관한 일이잖아요. 함께 일을 함께할 만한 사람에 대한 기준이 있을까요?
나영석: 어느 팀을 믿고 맡길 때는 헤드급 3~4명의 구조에 대해 굉장히 깊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메인 PD, 메인 작가, 그 밑에 세컨드 PD, 세컨드 작가. 그들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아랫단은 정해지거든요. 그리고 수치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같이 작업해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라는 게 나와요. 이렇게 분류해요. 저 사람은 ‘신서유기’형 인간인가, ‘삼시세끼’형 인간인가. 그 두 개가 좀 다른 결이잖아요. 한쪽은 막 게임하고 깔깔거리고, 다른 쪽은 관조적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니까. 그 두 개가 갈리고, 인간 자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일에 보다 집중하는 타입인지, 주변 돌아가는 상황을 보는 타입인지 살펴요.
간단한 것 같지만 사람의 성격과 일하는 방식을 다 파악하시네요.
나영석: 자기 일에 집중하면 그 일은 잘할 수 있지만 주변을 돌아보지 못할 수 있어요. 반면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자기 일에서 아주 두각을 내지는 못할 수 있는데, 그 사람 때문에 팀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저희는 그 둘을 섞는 거죠. 특히나 ‘뿅뿅 지구오락실’은 여러 상황상 무조건 성공해야 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당시에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센 사람을 넣은 거죠. 박현용 PD 같은. 요즘 연출자로서 감도 좋고 능력도 좋은 사람. 그러면 이 친구를 능력으로 보좌할 수 있는 팀, 정서적으로 보좌하는 팀을 같이 넣는 거죠. 물론 그들은 그런 미션 때문에 거기에 들어간 건 아니에요. 자기가 그런 역할인지 모르죠.(웃음)
그 점에서 ‘뿅뿅 지구오락실’ 출연자 구성이 재밌었어요. 나영석 PD님 작품들은 기존에 인연이 있던 출연자에 새로운 출연자가 겹쳐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서진이네’도 그렇고요. ‘뿅뿅 지구오락실’은 네 명 전부 처음 만나는 출연자들이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PD님의 반대편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에요.
나영석: 맞아요. ‘뿅뿅 지구오락실’은 말로만 MZ, MZ 떠들지 말고 진짜 요즘 세대로, 여성 출연자들로 가자고 결정했어요. 그런 다음 벽에 캐스팅 후보들의 이름을 한 50명 붙였어요. 캐스팅 회의할 때 늘 하는 얘기가 있는데, 여기 있는 이름 중 하나는 정답이 무조건 있어요. 우리가 못 걸러내는 것뿐이지.(웃음) 그런데 ‘뿅뿅 지구오락실’은 진짜 잘 고른 거죠. 솔직히 절반은 운이었어요. ‘뿅뿅 지구오락실’ 첫 촬영이 끝나고 10년치 운을 다 썼다고 말했을 정도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하고 가장 거리가 먼 출연진이거든요. 아예 모르는 세대라, 중심에 영지 씨밖에 없었어요. 영지 씨는 진짜 유별난 사람이고 다른 세대인데, 아예 영지 씨의 톤으로 가면 여기서는 축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제일 예상 못할 캐스팅이 미미 씨였어요.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나영석: 영지 씨는 MZ의 핵심, 요즘 대세 아이돌인 유진 씨, 이런 사람들을 아우르는 코미디언 은지 씨도 예상할 수 있는 구성이에요. 반면에 미미 씨는 사람들에게 드러난 특징이 아직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희는 캐스팅을 할 때 자료 조사를 되게 깊고 오래 해요. 그 과정에서 이 미미란 친구가 유튜브를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걸 보고 나니까 아이돌이면서도 현실에 발 붙이고 살면서 내 길을 개척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 사람의 마음가짐이 되게 좋았어요. 그런데 박현용 PD가 “저는 미미 씨가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하고, 그 뒤로도 다른 사람 입에서 미미 씨 얘기가 두세 번 더 나온 거예요. 저는 서로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 두세 번 같은 얘기를 하면 마음이 확 가요. 누구하고 밥 먹다 “미미 웃기잖아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때는 그냥 웃고 말지만 집에 돌아오면 ‘벌써 2포인트야!’(웃음)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한 번 더 나오면 ‘이건 그냥 운명이야.’ 하는 건데 미미 씨 캐스팅할 때 그랬어요.
그렇게 거리가 멀었던 출연자들과 이젠 좀 이해가 되는 것 같나요?
나영석: 이해는 가까워지지 않았어요.(웃음) 첫 촬영을 하고 왔을 때 더 알기 어려운 거예요. 출연자들이 뭔가 재밌게 잘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 근데 어떤 메커니즘으로 흘러가는지는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첫 촬영 후 좀 혼란스러웠는데, 조연출이 ‘가편’한 걸 시사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되게 많이 살아있는 거예요. 아빠랑 딸내미가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은(웃음) 부분들이 되게 많이 살아서 약간 당황했어요. 그런데 스태프들은 그게 너무 웃기다는 거예요. 촬영 중에 내가 뭔가 던졌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계세요? 그건 딴 거지.” 이런 반응이 오는 건 내가 기획한 대로 안 간 거니까 편집 포인트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다 살아있는 거예요. “그래? 그러면 하자!”라고 하는 거죠. ‘신서유기’였으면 내 판단에 좀 더 무게를 실었을 텐데, 이건 좀 많이 다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젊은 친구들에게 판단을 의탁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하자.
반대로 ‘서진이네’는 호흡을 맞췄던 출연진에 뷔 씨가 합류했어요. 그러면서 노동 조건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이서진 씨가 사장이 되면서 출연자 간 구도도 바뀌었어요. 같은 설정이나 겹치는 출연자가 있어도 새로운 상황이 나오더라고요.
나영석: 저는 그게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태형 씨도 예능을 ‘자컨(자체 콘텐츠)’ 말고는 고정으로 나온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정말 똑똑해요. 촬영 2~3일이 지나니까 금방 흐름을 잡고 어떻게 하면 재밌을지 생각하고 동시에 너무 열심히 하고. 그래서 말씀하신 포인트도 되게 많이 살아서 이거면 충분히 색다르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반응도 좋았고요. 요즘 그 정도 시청률이 나오기 어렵거든요. 다만 개인적으로 기존 포맷을 반복한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그 반응들에 대해 수긍되는 부분도 있어서 살짝 풀이 죽어 있기도 했어요.
음식이나 여행 같은 보편적인 주제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임을 하면서 그 안의 사람들이 달라지면서 새로운 상황을 만드는 걸 보여주는데, 그걸 반복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나영석: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는 딱 그 정도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같은 식당 프로그램을 하지만 윤여정 선생님이 있는 프로그램은 그분의 컬러가 지배하거든요. 이서진이 중심에 있는 프로그램은 이서진 컬러가 지배하니까 거기서 오는 차이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태형 씨나 우식 씨는 외국으로 같이 나간 게 처음이라 친구들끼리 케미스트리도 있을 거고. 그런데 제 오판은, 이 식당류 프로그램이 몇 년 동안 원 앤 온리여서 경쟁자가 없었어요. 게다가 태형 씨만 해도 빅 카드니까 이런 캐스팅에 검증된 프로그램을 하니까 될 수밖에 없는(웃음)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작년부터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왔어요. 시청자 입장에서는 원 앤 온리일 때는 오랫만에 한 번씩 하니까 재밌게 봐주셨는데 이젠 그렇지 않은 거죠. 기획을 조금 바꿔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우리가 기존 브랜드에 집착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좀 어긋나는 게 있었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살짝 풀이 죽어 있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다시 ‘이게 우리가 원조인데 더 레노베이션해서 더 재밌게 해야 되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말씀하신 고민이 지금 콘텐츠 시장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나영석 PD님의 프로그램들은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설정과 게임 안에서 출연자의 캐릭터나 관계를 보여주는 만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넷플릭스 같은 OTT 예능은 ‘사이렌 : 불의 섬’처럼 특정 시청자에게 강한 몰입을 일으켜서 “너 그거 봤냐?”는 얘기가 나오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퍼지는 콘텐츠들이 나오잖아요. 유튜브는 더 극단적으로 각자의 세계이고요. 그만큼 예능 프로그램이 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프로그램 기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영석: 큰일 났다고 생각해요. 답이 없다고도 생각하고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를 전 보지 못했지만 그 제목을 보고 작금의 콘텐츠 세상을 말해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다 있어요. 모든 곳에. 지금, 이 순간에. 플랫폼도 너무 많고 콘텐츠가 너무 많고. 뭐든 이미 다 존재하고 있고, 옛날처럼 천만 명씩 뭘 보지는 않고 5만 명, 10만 명씩 다 쪼개져서 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 같아요. 저희처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던 사람들은 마인드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긴 한 거죠. ‘서진이네’는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는 프로그램이거든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출연자들과 모두가 공감할 범용한 주제 안에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하나도 없는 이야기가 돌아가는 건데, ‘앞으로는 이런 게 점점 힘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파이가 작아지다 보니 넷플릭스 같은 대형 OTT의 투자 말고는 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나영석: 저희도 찾아나가는 과정인데, ‘서진이네’는 앞으로도 하겠지만 좀 더 니치 마켓을 생각해야 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은 해요. 예전에는 콘텐츠 서너 개 중에 하나를 골랐다면 30개, 40개, 몇백 개 중에서 고르는 거죠. 자동차로 치면 한 기종으로 100만 대를 파는 게 아니라 여러 기종으로 10만 대씩 파는 거죠. 100만 대 팔 때가 훨씬 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만, 그래도 10만 대 팔리는 쪽이 그 차에 대한 충성도는 크지 않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할까? 그들만이 좋아할 숨겨진 코드를 넣어야 될 텐데, 그게 뭘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에그이즈커밍 제작진 팬 미팅을 대만에서 했다고 했을 때 흥미로웠어요. 팬 미팅을 해외에서 할 정도면 뭔가 있다는 것 아닐까 하고요.
나영석: 처음에는 저랑 김대주 작가랑 최재영 작가랑 가서 “저 프로그램 만들 때 어땠어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이번 팬 미팅에 딱 1,000명이 오셨거든요. 그런데 현장에 가서 보면 진짜 많아 보여요. 이게 씨앗이 돼서 5,000명으로 늘거나 하면 그때부터는 진짜 뭔가 되겠더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까 한국에서 팬 미팅해볼까?
찬성합니다. (웃음) 사람들이 안 와도 재밌을 거고요.
나영석: 맞아요. (웃음)
예전에 ‘사이렌 : 불의 섬’ PD님, 작가님과 새벽에 벚꽃 보러 가셨다고 했었잖아요. 그때 “너희들 잘돼봤자 나야.”라고 했다면서요. (웃음) 그런데 ‘잘돼봤자 나’의 그 ‘나’가 너무 엄청나게 잘됐어요.(웃음)
나영석: 나중에 더 잘됐죠. 감사합니다.(웃음)
그렇게 지난 20년 동안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살았는데, 오늘까지도 오늘 말한 고민들을 하며 사는 원동력이 뭘까요?
나영석: 첫째로는 개인적인 욕심이겠죠. 영지 씨한테도 얼마 전 그런 얘기를 했어요. 버릇이 돼서 그렇다고. 이 작은 성공이 가져다주는 쾌감이 한번 중독되면, 깊은 고민 없이 계속 그걸 찾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늘 어느 시기에나 동기가 되는 목표들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들 특징이 5년은커녕 1년 후도 계획을 잘 안 해요. 지금 당장의 일을 봐요. 그렇게 20년을 살았던 것 같아요. 저한테 지금 제일 큰 고민은, 신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저게 잘돼야 하는데... 계속 그 생각만 하는 거고, 그 이면에는 거기에 연결된 사람들이 있잖아요. PD와 작가들. 그 친구들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들도 이걸 통해서 인생이 한 단계 점프할 수 있으면 좋잖아요. 그런 것들이 요즘 저한테는 좀 큰 의미예요. 제가 너무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점프가 나의 점프라는 생각을 분명하게 하고 있어요. 일하면서 점점 그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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