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비’
오민지: 영화 ‘바비’의 도입부에서 아기 인형을 가지고 놀며 엄마가 되는 것만을 꿈꿀 수밖에 없던 여자아이들은 새로운 인형, 바비가 등장하면서 스스로 아기 인형을 깨부수고 엄마 역할에서 벗어난다. 다양한 바비들이 여자아이들에게 재력도, 차도, 직업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바비’에서 바비는 세상 모든 여성들이 곧 바비고, “바비는 뭐든 될 수 있으니 여성도 뭐든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바비들이 살고 있는 ‘바비랜드’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바비랜드’의 바비 중에서도 전형적인 바비의 이미지를 구현한 바비(마고 로비)에게는 죽음도 셀룰라이트도 없다.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도 편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발도 가졌다. 하지만 ‘현실 세계’로 바비를 불러낸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는 양육과 일을 양립하며 생긴 스트레스로 ‘우울한 바비’와 ‘셀룰라이트 바비’를 디자인하기에 이른다. 그로 인해 생긴 두 세계 사이를 잇는 포털의 균열을 해결하기 위해 바비는 켄(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현실 세계’로의 여정을 떠난다.
‘현실 세계’에 온 바비는 “남자들은 자신을 물건 취급하고 여자들은 자신을 싫어하는” 일들을 겪고, 여자아이들을 위한 바비를 만드는 마텔 사의 임원들이 전부 남성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좌절한 바비가 자신이 더 이상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재밌지도 않고, 제대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하자 글로리아가 바비에게 하는 질문은 바비뿐만 아니라 관객에게까지 닿는다. “여자란 이유로 인형도 그런 일을 겪는다면 대체 어떡해야 돼?” 도입부에서 바비가 그 시절 여자아이의 현실에 대한 반영이었음을 보여준 것처럼, ‘바비’는 다시 바비를 통해 ‘현실 세계’의 여성들에게 질문한다. 글로리아의 말처럼 “여자로 살기 진짜 힘들다.”는 사회의 여성들은 “어떡해야” 하는가. ‘바비’는 선언적인 답은 하지 않는다. 대신 첫 등장 당시 바비 인형이 그랬던 것처럼 바비를 통해 ‘현실 세계’에 메시지를 보낸다. ‘바비랜드’의 다양한 바비들은 서로 “나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란 말에 “나도.”라고, “넌 우리 시대의 대변자야.”란 칭찬에 “알아.”라고 답한다. 서로 자존감을 고양시키는 바비들의 대화는 ‘현실 세계’에서 “정말 아름다우세요.”라는 바비의 말에 “알아요.”라고 화답하는 노년 여성의 대화와 겹친다. 아름답고, 걱정 없고, 평생을 젊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바비랜드’의 바비와 달리 ‘현실 세계’의 여성들은 글로리아의 대사처럼 “여자란 이유로” 여러 모순에 시달려야 할 때도 있고, 매 순간 걱정하고, 점차 늙어간다. ‘바비’는 바비가 ‘현실 세계’의 여성과 가진 차이를 인정하고 드러내면서 그럼에도 “바비는 뭐든 될 수 있으니 여성도 뭐든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여전히 의미있음을 설득한다. ‘바비랜드’의 바비를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바비(그리고 ‘그냥 켄’)’들에게 응원과 헌사를 보내는 존재로 만들다니, 바비 역사의 흥미진진한 터닝포인트다.
유라(youra) - ‘허무한 허무함의 패턴’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유라의 정규 1집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로 진입하는 ‘꽤 많은 수의 타이틀 곡들’ 중에서 이 트랙을 고른 이유는 “나는 피상적인 동굴이야 / 부스러기 이끼 같아”라는 구절 때문이다. 온갖 동식물과 인간의 일부가 기괴한 무늬로 뒤엉킨 고대 로마 유적이 15세기 이탈리아의 자그마한 동굴에서 발견된 데서 어원을 따온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만큼 이 음반과 그 단초가 되어준 재즈 밴드 만동과의 EP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The Vibe is a Chance)(칼레드 샤마(Khaled Chamma)의 음반 커버)’에 어울리는 표현도 없으니까. 그 뜻대로 ‘꽉 찬 움직임’이 가득한 만동의 연주는 끊임없이 꿈틀대며 형체를 바꿔간다. 베이시스트 송남현이 프로듀싱에 참여해 그 꼴을 연장한 소리는 이질적인 단어 조합과 흐릿하게 꼬인 발음이 뒤섞인 유라의 노랫말에 엉겨 붙어 낯섦을 선사한다. 그러나 “형체가 없고” “불완전하다”고 할 만한 사운드가 너무 생경하게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유라가 선보이는 익숙잖은 패턴이 불가해할 정도로 현실과 무관하기보다 꽤 많은 수의 규칙들을 꼬아 만든 편에 가깝기 때문이다. 질척한 촉수와 불룩한 돌기 같은 사운드에 익숙해지면, 보컬 멜로디와 기타 리프가 반복되며 이뤄진 팝송의 구조는 물론, 베이스·드럼의 박자가 짜낸 미끄러운 그루브를 찾아낼 수 있으므로. 그렇지만 ‘허무한 허무함의 패턴’이 “넌 속은 거야”라며 웃어대는 것만 같은 이유는, 결국 곡을 구성하는 이상스러운 덩굴들이 부스러진 미끼들로 이뤄진 탓이다. 즉흥적으로 흐름을 끊는 연주 구간, 속삭이며 산란하게 울려 퍼지는 코러스, 역동적으로 들끓는 리듬 등은 일정한 규칙성을 다잡으려는 청취 시도를 허무하게 단념시킨다. 곡마저 스스로의 불안정한 상태를 아는 듯 “내 안에는 뭐가 있지”라 묻는 마당에 이 허무함은 더욱 허무해질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안정화된 의미들이 비워지자 바짝 휘감겨오는 이런 분위기는, 청자가 받아들일 준비만 되었다면 기묘하게 들러붙은 촉수 돌기들과 부쩍 친해지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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