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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리은,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넷플릭스

‘하트스토퍼 시즌 2’(넷플릭스)

김리은: 모든 사랑에는 선택이 따른다. 10대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교내에서 가장 마초적인 럭비 팀의 주장 니콜라스(킷 코너)는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찰리(조 로크)와 사랑에 빠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원치 않게 게이로서의 성 정체성이 알려지면서 심각한 교내 괴롭힘을 당했던 찰리와 가까워질수록 니콜라스는 오랜 기간 몸담았던 또래 집단인 럭비 팀의 동성애 혐오를 마주하게 되고, 양성애자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일수록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은 깊어진다. ‘하트스토퍼’는 발랄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활용한 연출 속에서 10대들의 다양한 사랑을 보편적인 설렘으로 묘사하지만, 이와 맞물린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그들을 어두운 구석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시즌 2에서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10대 커플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은 보다 안전한 곳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 LGBTQ 청춘들의 현실에 대한 메타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스로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대해 늘 당당해 보였던 다르시(키지 에절)의 집에는 절대 딸을 이해하지 않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고, MTF 트랜스젠더인 엘(야스민 피니)은 오랜 친구인 타오(윌리엄 가오)와 점점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면서도 자신의 지향점이 트랜스젠더 아티스트들이 모인 예술학교에 있음을 알고 있다. 친구들이 연인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달려나갈 때, 누구에게도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무성애자 아이작(토비 도노반)은 책 속에 파묻히거나 어두운 도서관으로 걸어가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하트스토퍼’ 시즌 2는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소외되거나 갈등하던 10대들이 결국 견고한 연대로 형성한 또래 집단으로 세상에 맞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니콜라스의 커밍아웃과 다르시의 가출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졸업 파티가 끝난 후, 찰리와 친구들은 어딘가로 달려가는 대신 니콜라스의 집에 모여 엘의 작품 이름 그대로 서로가 서로의 ‘안전지대’가 되어주는 파티를 벌인다. 여전히 현실은 ‘트루햄 남자학교’와 ‘힉스 여자학교’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뉘고, 그 분류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 겪는 일들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트스토퍼’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 이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어두운 복도 끝이나 고립된 방이 아닌 견고한 연대와 사랑, 우정에 있다는 결론까지 제시한다. 조금은 판타지적이지만, 어쩌면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가 현실에 외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판타지인 것이다.

스포티파이 - 50 Rappers, 50 Stories: The Playlist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힙합은 태어난 장소와 시점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존재한다. 1973년 8월 11일, 뉴욕 브롱스의 한 블록 파티에서 DJ 쿨 허크는 두 대의 턴테이블로 끊임없이 비트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2023년 8월 11일은 그날로부터 50주년을 맞는다. 이미 지난 2월 그래미 어워드는 퀘스트러브가 구성한 50주년 기념 공연을 선보인 바 있다. 그 후로 ‘빌보드’가 위대한 래퍼 50선, 위대한 랩 그룹 50선을, ‘롤링스톤’이 웨스트코스트 힙합 100선, 이스트코스트 힙합 100선을 발표하는 등 장르의 탄생을 기념하는 각종 미디어의 특집이 이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뉴욕타임스’가 온라인 특별 기사로 ‘50명의 래퍼, 50개의 이야기(50 Rappers, 50 Stories)’를 공개했다. 기사를 작성한 존 커라마니카(Jon Caramanica)는 힙합의 역사가 하나의 응집된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는 불협화음과 다양성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대로 ‘50명의 래퍼, 50개의 이야기’는 래퍼 50명과의 인터뷰를 매번 다른 순서로 뒤섞어 보여주고, 그 사이에 연결된 링크를 제공한다. 여기서 래퍼 50명은 영향력이나 위대함 같은 순위를 뜻하지 않는다. 대신 힙합이 음악적 혁신과 대중적 지지를 동시에 구축한 수십 년에 걸친 과정을 엿볼 기회를 마련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래퍼 50명의 곡을 모아 스포티파이 재생목록을 함께 만들었다. 모든 위대한 항로는 일직선으로 달리지 않는다. 그 방향과 속도를 무수히 바꾸며 결국 모두가 역사라고 부르는 길을 만든다. 이 재생목록은 DJ 할리우드부터 아이스 스파이스까지 이르는 강과 같다. 침식과 퇴적의 흔적이자,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