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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후령,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tvN

‘알쓸별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 (tvN)

송후령: tvN 토크쇼 ‘알쓸’ 시리즈가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 (이하 ‘알쓸별잡’)’으로 돌아왔다. 올해 1월까지 방영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사전’에 이은 ‘알쓸별잡’은 ‘지구별 수다여행’이라는 콘셉트에 따라 MC 역할을 하는 영화감독 장항준과 배우 김민하를 비롯해 천문학자 심채경, 물리학자 김상욱, 건축가 유현준,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세계 여러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첫 여행지 뉴욕에서 “브루클린 브리지 현판의 숨겨진 비밀은?”, “월 스트리트에 있던 담장의 정체는?”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역사, 전쟁, 환경, 인물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첫 회부터 녹화 시간이 다 되도록 할 말을 다 끝내지 못했던 이 전문가들의 ‘수다 빅뱅’은 영화 ‘오펜하이머’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출연한 2회에서 ‘알쓸’ 시리즈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이들은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김상욱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김민하는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배우의 역할을, 심채경은 복잡하고 모호한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묻는다. 이러한 질문들은 일반적인 인터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순간들이다. 첫 회에 ‘오펜하이머’를 소재로 원자폭탄의 원리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2회에 영화를 통해 오펜하이머와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사람에게 다가서는 과정은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사람과 세상에 대해 생각할 거리들을 던진다. 이 토크쇼가 스스로 ‘알아두면 쓸데없는’을 자처하는 것은 알아두면 어렵고 복잡할 수도 있는 주제들에 대해 부담감을 덜어주는 방식이고, 전문성을 가진 다양한 관점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관점에 관해 생각할 계기를 가질 수 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식일 수도 있지만 의미 있는 사유의 시간을 줄 수 있는 것. ‘알쓸’ 시리즈가 2017년 이후 7번째 작품까지 내놓을 수 있는 이유 아닐까.

R.I.P ‘서칭 포 슈가맨’ 로드리게스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대한민국 가요계에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를 찾아 나서는’ 예능으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JTBC에서 방영했다. 여기서 슈가맨은 2012년에 공개되어 화제를 모은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에서 따온 것이다. 예능에서는 한때 인기 있었던, 주로 원 히트 원더 스타들을 슈가맨이라 칭했지만, 원래의 슈가맨 로드리게스(Rodriguez)는 훨씬 놀랍고 신비로운 아티스트였다. 멕시코 이민자 노동 계급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미국에서 음악 경력을 시작했지만,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1970년과 1971년 2년에 걸쳐 발표한 두 장의 앨범 ‘Cold Fact’와 ‘Coming from Reality’는 충격적인 판매량을 기록하며, 레이블의 창고로 직행했다. 미국에서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런데 반대편 남아공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유명한 슈퍼스타였다. 

 

1970년대 남아공은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 탓에 암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흘러 들어온 로드리게스의 앨범 ‘Cold Fact’가 반정부 투쟁을 이어가던 젊은 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의 별명이 된 곡 ‘Sugar Man’은 투쟁 현장의 송가처럼 불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로드리게스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남아공에서도 그의 음악 외에는 존재를 아는 이가 없었다.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드리게스가 자살했다는 소문까지 무성한 가운데, 두 명의 열성 팬이 진실을 밝히고자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서칭 포 슈가맨’은 바로 이 믿기지 않는 현실과 진실 찾기의 과정 및 결과를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다. 막노동도 불사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로드리게스가 드디어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 그리고 1998년이 되어서야 인기를 확인하고 나선 첫 남아공 공연에서 생전 처음으로 수많은 관객의 호응을 마주하며 로드리게스와 그의 가족이 감회에 젖은 순간은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었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8일에 사망했다. 향년 81세였다. 적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의 딸에 의하면, 최근 몇 년 동안 두 번의 뇌졸중을 앓았다고 한다. 완전히 묻힌 무명의 포크 록 싱어에서 남아공 음악계의 전설이 된 비운의 아티스트, ‘슈가맨’ 로드리게스는 웬만한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인 삶과 이야기 그리고 감동적인 음악을 남기고 떠났다. 부디 그가 하늘에서 편히 쉬길 바라며. 

 

Sixto Diaz Rodriguez

1942.07.10~2023.08.08

Rest In Peace

‘너무나 많은 여름이’ - 김연수

김겨울(작가): 소설가에 대한 가장 흔한 인상은 이것이다. 방구석에서 외로이 종이나 타자기나 노트북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 글을 쓰다가 머리를 쥐어뜯고, 어느 날엔 큰 가방을 챙겨 홀연히 취재를 나가는 사람. 그렇게 고치고 고쳐서 한 편을 완성해 발표하고 나면 몇 개의 북 토크에 나가는 사람. 하지만 김연수의 이번 소설집은 이런 인상과는 거리가 있다. 낭독하기 위한 소설을 썼고, 북 토크 제안을 받으면 반대로 낭독회를 제안했다. 그렇게 준비된 자리에서 30분 동안 소설을 읽어 내려갔고, 쉬는 시간에 미리 골라둔 음악을 틀었고, 순간순간 드러나는 독자의 반응을 느꼈다. 어떤 독자는 첫 문장을 낭독한 순간부터 울었고, 독자들은 어렵지 않을까 예상했던 소설에 누구보다 집중했다. 그렇게 그려낸 삶의 순간들은 짧고 강렬하다.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나’ 주어진 삶으로부터 벗어난 사람과, 오로지 꿈에서만 빌릴 수 있는 새로운 소설과, 이곳에 있다 사라진 사랑하는 개가 있다.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으로’ 써야 한다는 정신은 속절없이 흘러가버리는 삶을 단단히 붙잡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