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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연, 김겨울(작가),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뜬뜬 유튜브

‘실비집’ (뜬뜬)

이지연: ‘실제 (요리 재료) 비용만 받고 한다.’는 ‘실비집’은 남창희가 게스트를 위한 한 끼를 대접하는 웹 예능이다. “소소하고 슴슴한 기획 의도”를 가진 프로그램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실비집’에는 왁자지껄한 수다나 리액션, 자극적인 연출이나 편집도 없다. “얘기도 조곤조곤하게 수다를 ASMR처럼 하려고요.”라는 제작진의 말처럼 도란도란 주고받는 담소와 게스트를 위한 정성이 담긴 음식만 있을 뿐이다. ‘남창희의 리틀 포레스트’라고도 불릴 만큼 그는 게스트의 취향을 사전에 파악하여 전날부터 메뉴를 고르고 재료를 손질하며 음식을 준비한다. 요리를 하는 도중에도 평소 게스트가 짜게 먹는지, 싱겁게 먹는지 세심하게 확인하며 작은 부분에도 정성을 더한다. “사실 음식도 그냥 흉내내고 이러는 거지 뭐. 내가 진짜 셰프들처럼 잘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모자라지만 서로 채워가는 그런 느낌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해요.”라는 남창희의 말과 달리 수준급 요리 실력, 뛰어난 플레이팅과 데커레이션 센스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조곤조곤하게 설명하는 각종 요리 팁(파스타 면을 삶을 때에 치킨스톡을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든가 조개를 해감할 때 쇠숟가락을 넣으면 더욱 잘된다는 등)은 덤이다. 

 

‘실비집’ 요리의 맛을 더하는 건 주인인 남창희와 게스트가 주고받는 다정한 대화다. EP.1에서는 프로그램의 PD와 작가를 초청하여 업무적인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전하고, EP.2에서는 평소 재판으로 바빠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 변호사 손님을 위하여 위로가 되어줄 한 상 차림을 대접한다. 요리 과정 내내 담겨 있는 세심함과 배려, 다정함이 가득 담긴 그의 태도로 인해 ‘실비집’은 ‘남창희의 재발견 프로그램’이라고도 불릴 정도다. 따뜻하고도 정성스러운 한 사람만을 위한 요리와 이야기는 출연하는 게스트에게는 물론 시청자들에게 역시 보는 것만으로도 편히 쉬어가며 대접받는 기분을 선사한다. 조미료와 양념으로 가득한 유튜브 웹 예능 속 다소 슴슴하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프로그램의 등장이다. 남창희가 선보인 요리 레시피는 막내 PD의 내레이션과 함께 쇼츠로도 제작되어 시청자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게끔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김겨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펴낸 6년 만의 신작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독자들의 이목을 끌 만한데, 이번 소설에는 더 흥미로운 비하인드가 숨어 있다. 1980년 문학 잡지에 발표했지만 한 번도 책에 싣지 않은 단편을 무려 40여 년만에 장편으로 다시 쓴 작품이라는 점이다. 당시 발표했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하루키 스스로가 느끼기에 불충분한 것이었고, 2020년 코로나19의 등장과 함께 그는 외출도 하지 않고 이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 소설의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30대의 하루키와 70대의 하루키가 만난 것처럼 주인공 소년의 두 모습이 교차되는 소설이라는 점,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며 고립의 시대를 만들었던 것처럼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등장한다는 점. 그밖에도 소설은 그림자, 도서관, 꿈과 같은 여러 소재들로 삶의 근본적인 물음을 넘나든다. 언제나처럼 소설은 잔잔하지만 미스터리를 품고 있고, 혼란을 따라 나아가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그림자를 돌아보게 만든다.

‘Sugarcoat (NATTY Solo)’ - KISS OF LIFE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화면은 누가 봐도 거리의 삶을 살고 있는 여자아이를 비춘다.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몸을 소파에서 겨우 일으킨 그는, 아마도 전 재산일 게 틀림없는 커다란 백 팩 하나와 휴대용 미니 오디오, 헤드폰을 들고 열차 선로를 따라 목적 없이 걷기 시작한다. 춤을 춰 번 돈으로 패스트푸드를 입에 욱여넣는 모습이나 헐렁한 힙합 패션, 배경이 되는 장소까지 무엇 하나 쉽게 시대를 추측하기 어려운 영상을 온몸을 휘감는 비단처럼 온통 감미로운 1990년대 R&B 사운드가 감싸 안는다. “Just move, 내 맘대로 / 날 위한 춤을 추지 / 투명한 저 달빛이 / 쏟아져 더 자유로이”. 지난 7월 데뷔한 여성 신인 그룹 KISS OF LIFE(키스오브라이프)의 수록 곡, ‘Sugarcoat (NATTY Solo)’다.

 

‘Sugarcoat (NATTY Solo)’는 이례적으로 멤버 각자의 솔로 곡이 하나씩 담긴 그룹 키스오브라이프의 데뷔 앨범 가운데 멤버 나띠의 솔로 곡이다. K-팝을 꾸준히 지켜봐온 이라면 나띠를 모를 수는 없다. 만 11세이던 2013년부터 아이돌 연습생을 시작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SIXTEEN’(2015), ‘아이돌학교’(2017)에 연이어 출연하며 주목받은 인물이니 말이다. 노래 ‘Sugarcoat (NATTY Solo)’는 K-팝과 나띠 사이 긴 시간 닿을 듯 말 듯 이어지던 밀고 당기기가 드디어 결실을 본 곡이다. 우리가 깊이 즐겨온 대중문화 황금기의 어느 한 부분을 똑 떼어낸 듯한 음악과 영상이 진부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그 안에 하나의 길을 향해 10년 동안 달려온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우라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끄러질 것처럼 부드럽게 퍼져 나가는 멜로디를 한 음도 놓치지 않고 똑 부러지게 주워 담는 베테랑 작사가 조윤경과 나띠의 보컬 실력이 만드는 조화가 무엇보다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