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윤희성,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Mnet) 

윤희성: 2화의 한 장면. 리더 계급 안무 채택 투표가 끝난 뒤, 울플러의 리더 할로는 말했다. “난 멋이 없는건 안 해.” 하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2(이하 ‘스우파2’)’는 그런 출연자들의 욕망에 끝없이 훼방을 놓는 것을 주특기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시간과 주제에 제약을 두고, 출연자들에게 끝없이 약점을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파이터’라는 이름값을 증명하려는 듯 묻어 놓은 갈등에 풀무질을 하고, 새로운 대립은 한 방울의 눈물까지 포착해낸다. 프로그램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겠다. 다채로운 수상 내역과 화려한 작업 목록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대중에게 낯이 선 댄서들의 캐릭터를 빠르게 각인시키는 데에 드라마만큼 확실한 부스터는 없으니 말이다. 악역을 자처하더라도 제작진이 선택한 것은 ‘지금’ 누구든 이 싸움을 주목하게 만드는 소음과 소동이고, 그것은 방송사가 유구하게 추구해온 흥행의 비법이다. 

 

첫 시즌의 출연자인 모니카가 ‘스우파2’의 파이트 저지라는 점은 그래서 프로그램이 출연자들에게 보장하고 있는 중요한 배려로 보인다. 방송이 쉼 없이 댄서들에게 당장 영웅과 포식자가 되라고 다그칠 때, 모니카는 이들이 ‘미래’로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지 살핀다. 홈그라운드가 아니라거나 경력의 차이가 너무 큰 상황을 새삼 짚어주며 참전의 용기를 북돋우고 비판도 칭찬도 날카롭게 벼려진 날을 들이댄다. 그저 댄서로서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이라는 거대한 바람에 휩쓸려 본 경험자로서 모니카의 심사평은 차라리 급변하는 관심의 무게에 대응할 수 있는 팁에 가깝다. 장르에 오랫동안 천착한 베이비슬릭의 동작에서 “만번의 연습”이라는 역사를 읽어내고, 장신의 여성 댄서로서 지금의 영역을 개척해낸 바다리의 투쟁을 공표할 때, 모니카의 심사평은 프로그램 바깥의 시간을 소환하며 댄서들의 진짜 캐릭터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니 첫 시즌에 모니카와 허니제이의 배틀에서 등장한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라는 멘트는 여전히 이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이야기다. 원석을 찾아 우열을 가리는 오디션의 경쟁이 아니라, 미션이라는 형태의 이벤트를 빌려 모두의 면면을 가능한 한 넓게 펼쳐 보이기 위한 마당이라면 ‘스우파2’에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의 자리였을 테다. 그리고 온갖 훼방에도 불구하고 언니들은 기어이 멋진 싸움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도파민을 저당 잡힐 이유는 여전히 충분한 셈이다.

scarf season (Spotify Playlist)

서성덕(대중음악평론가): 끝이 없을 것 같던 여름 노래 시즌이 끝나간다. 늘 그렇듯 가을은 짧고, 추운 겨울은 빠르게 돌아올 것이다. 스포티파이의 ‘scarf season’ 재생목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포티파이의 대표적인 가을 재생목록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august’로 시작하는 것은 당분간 바뀌기 어려울 듯하다(‘All Too Well’도 당연히 있다. 10분 버전으로.). 좀 더 신흥 세력으로는 재생목록의 커버 이미지를 빼닮은 걸 인 레드의 ‘we fell in love in october’와 ‘October Passed Me By’가 있다. 나일 호란, 에드 시런 같은 예측 가능한 이름도 있지만 제이크, 코난 그레이 같은 지금 세대에 맞아떨어지는 남성 아티스트도 찾을 수 있다. 재생목록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오랜만에 듣는 옛 노래를 약간의 낯 뜨거움 없이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혹은 X세대 취향을 Z세대에게 소개하는 기회이거나.). 식스펜스 넌 더 리처의 ‘Kiss Me’와 나탈리 임브룰리아의 ‘Torn’으로 실험해보자. 칼리 사이먼의 ‘You’re So Vain’이나 카펜터스의 ‘Rainy Days And Mondays’ 같은 고전도 있다. 당신의 기억 속에 이 노래들이 한 조각씩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기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즐길 시간이 많지 않다. 요즘 캐럴 시즌이 점점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