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의 역사를 기록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이름은 당연히 DJ 쿨 허크(DJ Kool Herc)다. 그는 1973년 뉴욕 남부 브롱크스의 한 지하에서 파티를 열었다. 그게 힙합의 기원이다. 레코드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해 음악을 트는 DJ 쿨 허크 옆에서 코크 라 록(Coke La Rock)이 마이크를 잡고 랩을 했다. 그는 최초의 MC로 기록됐다. 이후 그랜드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는 ‘퀵 믹스 띠어리(Quick Mix Theory/*같은 바이닐 두 장을 이용하여 드럼 브레이크 부분을 더욱 늘이는 기술)’로 래퍼들에게 더 좋은 비트를 제공했고,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는 힙합의 4요소(래핑, 비보잉, 디제잉, 그래피티)를 정의하여 힙합을 문화로서 전파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흑인이고, 남성이다.
그 뒤로도 힙합은 수많은 남성과 함께 발전했고 성장했다. 힙합의 역사는 그렇게 기록됐다. 그렇다면 힙합은 남성의 전유물인가? 아니다. 랩 시대 이전부터 비보잉을 추며 여성 최초의 MC로서 힙합을 즐겼던 샤록(Sha-Rock), 힙합 최초의 히트 곡을 제작한 실비아 로빈슨(Sylvia Robinson), 거침없이 배틀 랩을 뱉던 록샌 샨테(Roxanne Shanté) 등등 힙합의 씨앗이 발아하고 성장하던 그 시대의 중심엔 여성도 당연히 함께였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기록은 늘 변두리에 있다. 따로 묶여 부록처럼 존재한다. 여성들의 행적은 언제나 남성의 영역을 개척한 듯 기록된다. 힙합의 성장을 처음부터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힙합계 여성이 남성과 어우러져 기록된 명확한 사례도 존재한다. 이른바 “록샌 전쟁(The Roxanne War)” 발발의 순간, 유티에프오(U.T.F.O)의 곡 ‘Roxanne Roxanne’ 가사 속에서다.
“I thought I had it in the palm of my hand But man oh man, if I was grand I’d bang Roxanne
(그녀가 거의 내 손안에 있는 줄 알았어 세상에, 내가 부자라면 록샌과 잘 텐데)”
그들은 자신과 섹스하지 않으려는 가상의 여성을 록샌이라는 이름으로 상정했다. 이 단어의 맥락은 지금도 계속된다. ‘Bitch’라는 단어를 통해서다.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스 퍼스트: 힙합계의 여성들’은 이 ‘Bitch’라는 껍질을 벗겨 그 안을 조명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그들은 정녕 ‘Bitch(잡년)’(*필자 주: 시리즈에서 ‘bitch’라는 단어를 다루고 있고 ‘잡년’으로 번역하여 표기하였기에 이 단어를 불가피하게 사용한다.)로 불릴 만한 사람들인가?’
록샌 샨테는 ‘Roxanne Roxanne’에 맞서 ‘Roxanne’s Revenge’를 발표해 응수했다. 이 곡은 힙합 역사상 최초의 디스 트랙이 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힙합에 발을 들이기 이전엔, 실비아 로빈슨이 슈거힐 갱(The Sugarhill Gang)의 ‘Rapper’s Delight’를 제작해 힙합 최초로 상업적 히트를 기록했고, 샤록은 1977년 오디션을 통해 정식 MC가 됐다. 이후, MC 라이트(MC Lyte)는 여성 최초로 힙합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퀸 라티파(Queen Latifah)는 비트 위에 ‘여성’을 노래하며 활동 반경을 넓혔다. 독보적인 스타일의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은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했다.
‘레이디스 퍼스트: 힙합계의 여성들’은 힙합의 역사를 오직 여성으로만 다시 쓴다. 샤록, 실비아 로빈슨, 록샌 샨테를 시작으로 여성들이 초기 힙합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통시적으로 훑는 것부터 시작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과거의 여성 아티스트들은 현재의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유대 관계를 먼저 살피는 것이다. 니키 미나즈(Nicki Minaj)에게서 미시 엘리엇을 투영해볼 수 있고, 퀸 라티파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감없이 이야기했기에 카디 비(Cardi B) 같은 아티스트가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카디 비는 흑인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과 성성향(Sexuality)을 기반으로 한 페미니즘을 주창하며 힙합을 뛰어넘어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가 됐다.
힙합은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업계다. 이 시리즈 또한 그 부분을 면밀히 살핀다. 이를테면, 여성 아티스트가 힙합을 하기 위해 남성 무리에 들어가야만 했던 상황들을 증언한다. 같이 일할 남성이 “A Bitch is a bitch(N.W.A의 ‘A Bitch Iz A Bitch’)”라는 가사를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불렀어도 말이다. 당시 힙합계는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힙합 크루에서 여성 일원은 ‘퍼스트 레이디’, 단 한 명이었다. 여성의 모든 행동거지가 남성의 눈에 의해 검열된 것은 당연했다. 만약 남성 아티스트가 협업을 제안했을 때, 여성이 곧장 수락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잡년(Bitch)’이 된다. 이 어이없고 얄팍한 판단이 용인되던 사회였다.
시리즈 중반까지 여성이 힙합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분투에도 불구하고 업계 분위기는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힙합의 역사는 남성에 의해 쓰이고 있었다. 여성이 만든 결과물은 폄하되기 쉬웠다.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것을 고수했다.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하고 취향을 당당히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됐다. 노출 의상을 입은 채 성적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낸 여성 아티스트는 ‘창녀(Ho)’라며 손가락질 받았다. 이 프레임은 심각한 문제로 다뤄졌다. 남성 아티스트가 일으킨 문제들보다 더.
그 대표적 예시가 2화(‘그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은?’)에 담긴 캐시 돌(Kash Doll)의 인터뷰다. 스트리퍼 출신인 캐시 돌은 한 고등학교에서 공연을 거절 당했다. 교문 앞에서 받은 통보였다. 과거 스트리퍼였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허머(*필자 주: 전기 트럭 브랜드 중 하나)를 학교 앞에 세우고 그 위에 올라 공연을 했다. 그 학교에 입장할 수 있었던 남성 아티스트 중에는 마약을 하고, 누군가에게 총을 쏜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시리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확히 쓰자면 이 시리즈가 나온 경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성만의 이야기를 묶어 힙합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는 건, 힙합이 50주년이나 됐는데도 여성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여성이 모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2023년인 지금에도 여전히.
2020년, 메건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이하 ‘메건’)이 토리 레인즈(Tory Lanez)(이하 ‘레인즈’)에게 총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레인즈는 메건과 음악 문제로 길거리에서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다 “춤을 추라.”는 요구에 메건이 응하지 않자, 그의 발을 총으로 쏘았다. CCTV에 찍힌 영상 증거물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레인즈는 범행을 부인했다. 사람들은 이를 메건의 자작극이라 불렀다. 여성의 발언은 홀로 설 힘이 없다. 언제나 또 다른 증인이 필요하다.
힙합 최초로 힙합에 만연한 여성 혐오, 흑인 커뮤니티의 여성 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퀸 라티파의 ‘U.N.I.T.Y’가 발표된 게 1993년이다. 30년이 흘렀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여성을 향한 이중 잣대, 검열, 성적 대상화.... 힙합계의 여성 혐오는 여전히 ‘냄새 없는 유독 가스’처럼 존재한다. 이는 사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힙합계엔 수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등장했다. 재능을 맘껏 펼치며 제 이야기를 쓰고 노래한다.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전 세대 아티스트에게 리스펙트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후 세대를 위한 다양성의 기반을 닦는다. 힙합을 발판 삼아 댄서가 되든 정치가가 되든 봉사자가 되든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도록.
“Roxanne Shante is only good for steady fuckin’
(록샌 샨테는 오래 섹스할 때만 좋아)”
/ Boogie Down Productions의 “The Bridge Is Over”
‘Roxanne’s Revenge’를 발표한 후, 록샌 샨테는 이런 가사를 또 마주해야만 했다. 그의 나이 16세 때다. 16세의 록샌 샨테는 다시 랩으로 응수했다. “And Roxanne Shante is only good for steady serving(록샌 샨테는 책임을 다할 때만 좋아)”. 여성들은 능력과 가치를 내보일 때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자신을 스스로 정의할 줄 안다. 쓰고 부르는 노랫말의 중심엔 언제나 ‘나’가 있다.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퀸 라티파의 가사를 빌려 이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Who you callin’ a bitch?(누구를 감히 잡년이라 부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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