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 로드리고의 ‘GUTS’가 어떤 앨범인지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GUTS’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보다 반대로 어디에 속하지 않는지 살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앨범은 음악적 외형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선입견으로 쉽고 빠르게 분류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팝 펑크가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GUTS’는 코로나19 이후 유행한 Z세대 팝 펑크 리바이벌 혹은 그 연장선에 있지 않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대표적인 정서가 분노이고, ‘SOUR’의 접근이 10대의 유행 안에서 소비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사운드가 그를 머신 건 켈리나 윌로우와 같은 세상에 두지는 않는다. 최근 팝 펑크의 인기는 팬데믹으로 일상을 박탈당한 10대, 특히 팬데믹의 광범위한 충격 안에서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혹은 간과되었던 세대의 고독과 좌절에 공감하는 목소리에 대한 호응으로 해석되곤 한다. 동시에 빠르게 패션화되었고, 아티스트의 외모와 스타일 뒤로 음악이 사라졌다는 비판도 따른다.
대신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GUTS’에서 자신이 듣고 자란 취향으로 한발 더 들어간다. ‘SOUR’가 어떤 유행의 일부로 취급되는 것이 자신의 노선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로드리고는 부모님을 따라 록, 구체적으로는 그런지, 얼터너티브, 라이엇 걸 등 1990년대의 유산을 들으며 자랐다. ‘보그’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가 처음으로 본 콘서트는 위저였고, 최근에는 아버지와 큐어와 디페쉬 모드를 보았다. ‘롤링스톤’ 인터뷰에서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지금 가장 좋아하는 밴드로 꼽았고, 올가을 록 명예의 전당 헌액 행사에 가고 싶지만, 일정상 불가능한 것을 슬퍼했다.
취향의 진정성을 따져보는 일 자체가 우스꽝스럽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pretty isn’t pretty’에서 큐어를, ‘bad idea right?’에서 웨트 레그를, ‘all-american bitch’에서 마일리 사이러스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SOUR’의 ‘brutal’이 엘비스 코스텔로의 ‘Pump It Up’과 비교될 때, 엘비스 코스텔로가 직접 답한 바와 같이, “그것이 로큰롤이 작동하는 방식이다(엘비스 코스텔로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Pump It Up’이 밥 딜런과 척 베리에게 빚을 지고 있음을 밝혔다.).” 여기에 다른 트랙에서 종종 언급되는 스매싱 펌킨스, 벡, 라이엇 걸 밴드의 영향력을 모두 합쳐보면, 모든 것은 ‘GUTS’가 얼마나 넓은 범위의, 하지만 일관된 취향을 배경으로 하는지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따라서 ‘GUTS’는 1990년대 사운드의 재현이라는 좀 더 일반적인 현상의 일부, 그중 주류 시장의 가장 성공적인 버전이 된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웨트 레그는 물론 러네이 랩, 에타 마커스, 클라우드와 같은 일련의 아티스트와 함께 구분된다. 특히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음악이란 분노와 불만족을 표현하는 방식(‘가디언’ 인터뷰)”이며, “송라이팅이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거나 누군가에게 직접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방법(‘틴 보그’ 인터뷰)”이라고 말할 때, 아티스트로서의 그녀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에게는 펑크 가정교사가 필요없다.
디즈니가 아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10대 후반과 갓 20세가 된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동시에 팬데믹이라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과 무관한 보편적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삶에서 출발하여 구체성을 담는 가사는 올리비아가 로드리고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송라이팅의 롤 모델로 삼을 때 가장 먼저 배운 미덕일 것이다. 컨트리 장르에서 일종의 규칙에 가까운 이 미덕은 팝 음악의 가사가 모호할수록 좋다는 인식과 정면으로 대치하며 성공의 규칙을 바꿨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처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것을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2021년의 또 다른 ‘가디언’ 인터뷰를 보자. ‘SOUR’를 두고 말하길, “나는 이 음반(‘SOUR’)이 특히 소녀들이 말하기 어렵거나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나는 분노, 질투, 악의, 슬픔, 못된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투덜대고 불평하는 등 모든 감정이 충분히 정당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GUTS’가 그 주제와 표현 측면에서 한층 더 성인에 가까워진 것도 그만큼 자연스러운 결과에 불과하다. 디즈니 출신이 노래에서 욕을 했으니, 틀을 깨기 위한 노력일까? 올리비아 로드리고에 따르면, 단지 그가 정말로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노래 안에서 파티에 가고, (아직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음주 가능한 연령이 아니지만) 술을 마시고, 성적 함의를 담아내는 것을 망설인 이유가 있다면, 아직 어린 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이지만, 그조차 당당하게(unapologetically) 내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는 그에 앞서 등장했던 디즈니 아역 출신이 10대 시절에 혹은 성인 아티스트가 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을 볼 때, 음악적으로 즉시 독립성을 이룬 드문 사례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디즈니 아역 출신이 음악으로 커리어를 확장할 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디즈니 산하의 할리우드 레코드가 아니라 자신을 송라이터로 인식하는 레이블과 계약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셀레나 고메즈, 데미 로바토, 마일리 사이러스에 이르는 목록의 끝에 놓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출발은 니켈로디언 출신의 아리아나 그란데에 가깝고, ‘GUTS’에 이르러서는 주제의 확대 측면에서 빌리 아일리시에 비교하는 것이 더 쉽다. 어린 나이에 얻은 명성에 대한 고민, 연예계의 외모에 대한 평가, 연상 연인에게 받은 상처, 두 아티스트는 서로의 일기장을 보며 놀랄 것이다.
대담한 것이 아니다
‘GUTS’의 일부가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한 노래라는 소문은 오래되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deja vu’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Cruel Summer’가 유사하다는 주장 이후 ‘deja vu’ 저작권의 50%를 테일러 스위프트 측에 넘겼다. 이 합의가 악명 높은 ‘Blurred Line’ 사례의 영향 아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모두가 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GUTS’에 수록된 ‘vampire’, ‘lacy’, ‘the grudge’ 같은 트랙이 모두 이와 연관된 것이 아닌지 의심을 샀다. 하지만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이를 부인한다. 동시에 다른 몇몇 트랙이 그의 과거 연애사와 결부되는 것도 거부한다.
솔직함은 중요한 덕목이고, 창작물에 영감을 준 원천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자신을 포함하여 노래 속 인물과 실제 사람을 구분해야 함을 배웠다. 달리 말하면 이스터 에그는 노래가 아니다. 자신의 노래가 특히 소중하다면 더욱 그렇다. ‘get him back!’ 같은 좋은 트랙을 쓰면, 가사 속에서 만나고 헤어진 계절을 토대로 누구에 대한 노래인지 따지는 가십에 휘말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는 ‘all-american bitch’나 ‘pretty isn’t pretty’에서 젊은 여성 아티스트에게 요구되는 외모와 행동의 전형성에 대한 냉소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노래가 디즈니에서 활동하던 10대 시절로 연결되고, 디즈니 아역 출신에게 부과되는 이중잣대를 연상시키는 것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디즈니 시절, 자신의 음악적 경력, 대중의 호기심 사이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중이다. 처음 디즈니가 준 기회와 ‘하이스쿨 뮤지컬’ 시리즈에서 무사히 하차하도록 해준 것에 감사하고, 노래가 제기하는 문제가 자신의 특수한 상황에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확실히 한다. 그녀의 감사도, 청자의 공감도 모두 사실이다.
요컨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앨범과 노래 제목처럼 대담한 것이 아니라 세심하다. 그 세심함은 작품 내면과 그것을 세상에 내놓은 방식 모두에 적용된다. 이 모든 것이 진심이고 진짜다. 그러니 당신은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싫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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