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이하 TXT)의 앨범 <꿈의 장 : ETERNITY>는 제목과 달리 영원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앨범에서 집중하는 것은 영원할 수 없는 현실이 일으키는 균열이다. ‘Drama’의 티저 영상은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수빈의 감정을 점점 간격이 넓어지는 식탁을 통해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타이틀곡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Can’t You See Me?)’의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은 선악과를 상징하는 듯한 빨간 과일을 먹은 후 친구들과의 관계가 틀어진 현실을 직면한다. 아름다운 과거와 어긋난 현실의 경계선에 선 청춘. <꿈의 장 : ETERNITY>의 앨범 재킷이 원래는 하나였던 것처럼 보이는 다섯 개의 조각으로 디자인됐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에서는 독립된 자아로 거듭나는 욕망이 묘사되는 한편, TXT 멤버들이 참여한 자작곡 ‘거울 속의 미로’에서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 빛과 소금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샴푸의 요정’에서는 ‘그녀’로 상징되는 이상이 TV 안에만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하는 화자의 시선이 드러나고, ‘Eternally’에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헤매는 내면의 혼란이 표현되기도 한다. 이처럼 한 앨범 안에 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그리움, 자아에 대한 욕망과 고민처럼 다양한 결의 감정이 교차한다. 요컨대 <꿈의 장 : ETERNITY>의 수록곡들은 청춘의 내면이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의 파편을 따라간 결과물이다.

 

균열은 예정되어 있었다. TXT의 데뷔 앨범 <꿈의 장 : STAR>의 타이틀곡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CROWN)’는 비주얼적으로 10대 소년들의 천진난만한 순수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곡의 가사는 기성세대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사춘기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뿔’과 ‘괴물’에 비유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다음 앨범 <꿈의 장 : MAGIC>에서 ‘던전 속 여행’(‘그냥 괴물을 살려두면 안 되는 걸까’)이나 ‘9와 4분의 3 승강장’(‘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Run Away)’처럼 기성 세계와 다른 규칙을 가진 가상으로의 도피로 이어졌다. 이처럼 앞서 암시됐던 균열의 상징들은 세 번째 앨범인 <꿈의 장 : ETERNITY>에서 다루는 갈등에 개연성을 더한다. ‘괴물’처럼 독특한 내면을 가진 자아들의 만남은 갈등으로 이어지고, 가상의 도피로 가릴 수 없는 현실의 단면이 드러난다. <꿈의 장> 시리즈는 10대가 성장 과정에서 겪는 자아 갈등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요소를 각 앨범마다 배치하면서 서사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그 결과, <꿈의 장 : ETERNITY>에서 나타난 파편적인 감정의 균열은 순수하거나 동화적이었던 앞의 앨범들과 대비될 뿐만 아니라, 이런 변화가 왜 등장하는지에 대한 개연성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TXT의 데뷔 후 첫 세 장의 앨범은 독립적으로도 10대의 여러 단면들을 다루지만, 연결된 서사로 보면 10대가 자신에 대해 자각하고, 자신과 세상의 경계를 인지하고 회피할 곳을 찾으며, ‘불타버린 세계’에 놓인 유약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춘기를 지나며 생겨난 자아와 세상의 경계가 뚜렷해지는 과정에서, 그저 해맑게만 보였던 10대의 복잡한 내면이 여러 갈래로 표현된다.

  • © BIGHIT MUSIC
<꿈의 장 : ETERNITY>의 콘셉트 포토가 관계의 균열 속에서 10대가 경험하는 개별적인 감정에 집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스타그램 피드 형식으로 구성된 콘셉트 포토 ‘Port’에서 멤버들은 버스 안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저마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또한 각 멤버들의 개인 피드마다 달린 ‘우리 사이를 깨트린 누군가가 있어’, '그땐 모두 함께였는데 그치?' 같은 문구들은 균열에 따른 개인의 감정에 집중한다. 갈등으로 인해 10대가 겪는 다양한 감정을 각각의 수록곡으로 표현하는 것은 곧 <꿈의 장 : ETERNITY>를 관통하는 콘셉트다. 10대가 관계에서 느낀 소외감과 회의를 ‘드라마’와 ‘주연’, ‘조연’의 관계에 비유한 곡 ‘Drama’의 기본 비트는 경쾌하게 보이지만, 멜로디는 카타르시스를 형성하는 대신 점점 하강하면서 관계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화자의 불안을 집중적으로 표현한다.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는 기성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은 10대의 욕망을 동물에 직관적으로 비유하는 콘셉트를 내세우지만, 이 역시 동화적인 세계를 벗어나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한 청춘의 원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요컨대 <꿈의 장 : ETERNITY>는 현실로 넘어가는 통과의례에 놓인 청춘이 경험하는 다양한 내면을 각각의 수록곡에 담고 이에 맞춰 각 곡의 콘셉트를 선택한 결과물이다. ‘세계가 불타버린 밤, 우린...(Can’t You See Me?)’의 멜로디는 클라이맥스를 만들어 내는 대신 하강을 반복하고, ‘무너진 모래성 Who’s a liar’에서 바탕에 깔리는 코러스나 후렴에서 등장하는 파열음에 가까운 전자음들처럼 다양한 소리는 보컬을 감싸면서 어둡고 불안한 공간을 형상화한다. 그 결과, 휘파람을 중심으로 한 박진감 넘치는 비트의 정서는 자신을 주목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바뀐다. <꿈의 장 : ETERNITY>는 10대의 내면을 통해 바라본 나와 세계의 모습을 비주얼 콘셉트부터 사운드 디자인까지 모든 요소에 걸쳐 일관성 있게 구현한다. 1996년, 10대가 경험하는 학교 폭력을 콘셉트로 삼았던 H.O.T의 데뷔 앨범 제목은 <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였다. 반면 <꿈의 장 : ETERNITY>는 거대 담론으로서 10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대신 청춘의 가장 개인적인 감정을 콘텐츠의 중심에 놓는다. 결국 미시적인 개인의 이야기가 현재 10대가 경험하는 시대상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된다. K-팝에서 청춘의 미시사가 중심에 놓이는 순간이다.
방탄소년단(이하 BTS)은 언더독의 위치에서 출발해 전 세계의 소수와 다양성을 대변하는 스타로 올라섰다. 반면 BTS의 성공 이후 같은 소속사에서 데뷔한 TXT의 세계는 출발처럼 이미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월드 스타가 된 선배 아이돌 그룹과 그만큼 거대해진 소속사의 존재. 그들의 서사에서 결핍을 찾기 어려울 것처럼 보였던 이유다. 그러나 범규는 지난 5월 12일(EST)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TXT 멤버 전원이 참여한 자작곡 ‘거울 속의 미로’에 대해 “노래와 춤을 연습할 때,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을 보기 시작”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곡이라고 말한 바 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다섯 청년으로 구성된 TXT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정체성을 고민하는 여정에 놓여 있다. 이는 그들이 팬들의 응원을 받는 스타라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TXT는 세 장의 앨범을 통해 BTS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현재 지금의 10대가 처한 세계를 드러내고, <꿈의 장 : ETERNITY>는 세 장의 앨범 중에서도 모든 청춘의 내면을 가장 다양하게 내보이는 동시에 가장 깊은 곳까지 미시적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꿈의 장 : ETERNITY>는 거대 자본의 기획물이라는 비판을 받는 아이돌 산업이 지금 10대의 정신을 구현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실마리다. 모든 것이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새로운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은 저성장 시대의 청춘이 갖는 내면의 방황을 이야기하는 것. 미디어에 의해 ‘금수저 기획사’ 출신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던 TXT 멤버들이 ‘거울 속의 미로’라는 자작곡을 통해 자아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듯, 이 시대의 청춘에 기성세대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어둠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작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청춘의 미시사가 K-팝 산업에 등장했다.
글. 김리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