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전, 범규는 자기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또다시 담담하게 말한다. 이겨내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두 번째 투어를 굉장히 행복하고 건강하게 했다고 말했어요.
범규: 한 번 겪은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이겨내야겠다는 각오가 컸어요.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충분한 준비를 많이 하고 가서 대처가 잘됐고요. 저번 투어 중에 멤버들을 보면서 부러웠고 또 스스로 아쉬웠던 게, 컨디션 때문에 콘서트를 100% 못 즐기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번에는 복잡한 생각 다 내려놓고 오로지 무대에 집중하고 즐긴 덕분에, 거기에서 행복을 많이 느꼈어요.
한계를 마주할 때 스스로 감당하고 극복하는 법을 터득한 걸까요?
범규: 아무리 힘들었어도 결국 잘해낸 결과가 늘 있었다 보니 “괜찮아. 어차피 안 죽어.”(웃음) 이런 생각으로 했어요. 내가 뭘 어떻게 했을 때 최상의 컨디션이 되는지 일종의 실험도 계속 해봤어요. 콘서트 전에 밥을 안 먹어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에너지 음료를, 어떤 날은 아르기닌을 먹어보기도 하고요. 결과적으로 저는 밥은 무조건 먹는 게 낫고, 멀티비타민 하나만 먹는 게 그나마 몸에 무리가 안 가면서 힘이 나는 방법인 것 같더라고요. 뭔가 나만의 승리 공식 같은 게 생긴 느낌이에요.(웃음)
투어에서 느낀 긍정적인 감정들이 요즘 일상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지난 인터뷰 때는 약간은 득도한 것 같은 ‘무’의 상태였다고 말했는데.(웃음)
범규: 뭐, 행복합니다.(웃음) 크게 다르진 않은데, 그때는 약간 해탈의 상태였다면 지금은 진짜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내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흘러가는 대로. 요즘 이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게, ‘아무리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어도 가만히 있으면 어쨌든 잘 마무리가 되더라. 결국엔 숙소 가서 잘 자고 있더라. 다 지나갈 거야~’라고 생각하니 다 괜찮더라고요.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이유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범규 씨가 투어 중에 밀고 있다던 “이 또한 지나가리.”의 의미군요.
범규: 맞아요. 근데 그때는 제가 그걸 믿으려고 하고, 제 자신한테 밀고 있던 거라면 이제는 그 말이 진짜 내 게 된 거죠.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는 부분도 극복하면서 아티스트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범규: 무대는 완전 제 체질이거든요. 아무리 긴장해도 무대에 올라가면 그 순간이 너무 재밌어요. 근데 월드 투어를 처음 시작하고 제가 심적으로 힘들었던 게, 지역마다 가진 정서가 다르고 거기에 빠르게 적응을 해야 되잖아요. 그 과정이 어려웠던 거예요. 특히나 데뷔하고 내향적으로 많이 바뀌어서 외국에서 프로모션할 때 많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온 부담이 이후에 투어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영향을 준 거였어요. 근데 이번에는 비슷한 프로모션할 때 일부러 사람들한테 더 다가가고, 되도 않는 영어하면서 막 미친 듯이 리액션해봤거든요?(웃음) 그러니까 좀 괜찮더라고요. 이겨내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아요.
다양한 환경을 접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분배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을까요?
범규: 충전은 똑같아요. 들어가서 ‘보리차’ 한 잔 하고(웃음), 누워서 넷플릭스 보다가 자고. 에너지 소모의 경우엔 저는 어떤 걸 해도 100%를 쏟아붓는 스타일이거든요. 예능을 해도 무대를 해도, 할 수 있는 최대의 에너지를 다 뿜어내려고 하는 스타일이어서 항상 100, 0, 100, 0, 이런 식으로 사는 것 같아요.(웃음)
무대 환경도 계속해서 바뀌잖아요. 새롭게 숙지하고 맞춰야 할 부분들이 매번 생기다 보니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겠더라고요.
범규: 신기한 게, 무대를 서른 번 하면 서른 번째는 더 쉬워져야 될 것 같잖아요. 근데 똑같은 걸 반복하잖아요? 오히려 더 헷갈려요. 안일해져서 그런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초반보다 실수가 잦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뒤로 갈수록 무대 하나하나에 엄청 집중을 해야 돼요. 바뀌거나 여태까지 한 번이라도 틀렸던 부분들을 하나라도 틀리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으로요.
‘Back for More’ 안무에선 춤의 완성도를 넘어 포인트 동작들을 범규 씨만의 느낌으로 해석한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범규: 곡을 처음 듣고 안무 시안을 볼 때 ‘무대에서 이런 모습을 좀 보여줘야겠다. 이때는 시선을 이렇게 빼면 멋있겠는데?’라고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진다고 했잖아요. 이게 제 머릿속에 있는 거라서 말로 설명하긴 좀 애매하긴 해요. 특히 2절 후렴구의 점프하면서 손 동작으로 ‘후리는’ 부분이 킬링 파트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해야 더 시원시원하게 보일지 연구를 좀 많이 했죠.
연구 결과는 만족스러웠나요?
범규: 네! 근데 저는 제가 한 건 항상 마음에 들어 해요.(웃음) 진짜로 자부심이 있거든요.(웃음)
투어 준비를 위해 옛날 안무 영상을 보면서 부족한 점이 많이 보였다고 언급했는데, 타이틀 곡 ‘Chasing That Feeling’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개선된 부분이 있을까요?
범규: 예전에는 춤출 때 힘만 100%를 주고 파워에 집착했었죠. 그래서 연말 시상식 무대를 하고 나면 친구들이 “너는 힘이 진짜 세더라. 힘 좀 빼라.”라고 메시지가 오기도 했어요. 그런 큰 무대에서는 파워가 있는 게 훨씬 더 잘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타이틀 곡은 안무의 난이도가 높지는 않아서 되게 빨리 배웠지만 어떻게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는 연습을 더 해봐야 알 것 같아요. 항상 느끼는 게 무대를 한 번 하고 오면 감이 잡히면서 연습 때와 달라지는 것들이 엄청 많이 생기거든요. 무대를 하고 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앨범 타이틀 곡을 부를 땐 발음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잖아요. 이번에도 그런 돌파가 있었나요?
범규: 벌스에 “천국을 등진 난”의 ‘등’이 ‘으’ 발음이라 입을 좁게 쓰잖아요. 열 번 불렀는데 열 번이 다 안 올라가는 거예요. 근데 제가 또 득도했잖아요.(웃음) 이제 부를 때 절대 음이탈 안 나요. 발음에 맞는 입의 공간을 찾아내서 이겨냈죠. 원래 제 파트가 아니었는데 딱 음악 듣고 “이건 무조건! 제가 해야겠는데요? 저 믿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 제가 잘 살려보겠다.” 해서 얻어낸 거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해 갔어요.
‘Deep Down’이나 ‘물수제비’처럼 범규 씨 감성에 부합하는 곡들에서 목소리의 매력이 부각되기도 했어요.
범규: ‘물수제비’를 특히 좋아하기도 하고, 앨범 수록 곡들이 대체로 제가 좋아하는 장르와 분위기라 녹음할 때 정말 재밌었어요. 전에는 ‘내 목소리의 매력은 이게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진짜 제 목소리의 근사치까지 간 것 같아요.
작사를 할 때도 범규 씨의 스타일에 맞춰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곡들이 따로 있을까요?
범규: 현실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제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곡들이요. 예를 들어 누군가를 좋아해보기도 하고, 힘든 감정을 느껴봤으니까 그런 주제에 대해서는 내 방식대로 풀어낼 수 있잖아요. 근데 저희의 ‘별을 쫓는 소년들’ 같은 콘셉트의 곡들은 정말 철~저히, 테마에 맞춰서 쓰죠. 방금 너무 ‘T’ 같았나요?(웃음) 사실 저희가 지금까지 별을 좇고 시련을 겪고, 성장을 반복하면서(웃음) 제가 할 수 있는 말을 이미 다 해버린 느낌이에요. 그래도 ‘Blue Spring’은 진짜 제 이야기라 재밌게 썼어요.
프로듀싱을 한 곡인데, 어떻게 진행했나요?
범규: 애초에 ‘떼창’을 상상하면서 만든 곡이라 일부러 단순한 코드를 잡고 시작했어요. 집에서 편안하게 기타를 치면서 만든 트랙이 세 개 정도 있었고, PD님 작업실에서 몇 시간 동안 코드를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만들기도 했는데 결국 집에서 작업한 게 채택됐어요. ‘거울 속의 미로’도, ‘Blue Spring’도 모아분들을 만나기 전과 후의 감정을 담은 음악이거든요. 힘든 시기를 지나 이렇게 많은 모아분들 앞에서 음악을 하고 있잖아요. 그 시리던 파란 날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마음을 울리는 곡이에요. 콘서트를 할 때도 “아무도 몰라 그 겨울” 파트에서 항상 눈물을 삼켜요.
전부터 모아들을 ‘베스트 프렌드’로 여겨왔는데, 최근 ‘위버스 라이브’를 할 때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모습에서 심리적으로 더욱 가까운 관계를 원한다고 느꼈어요.
범규: 개인 라이브를 할 때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투바투 범규’보다도 진짜 꾸며지지 않은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뭐 핸드폰을 옆에 두고 라디오 듣는 것처럼 음악을 틀기도, 누워서 대화를 하기도 하고요. 모아분들과의 관계에서 제가 딱 하나 바라는 거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고 싶어요. 아티스트 대 팬의 대화 말고, 일상적이고 편안한 대화들이요.
격 없는 관계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지는 게, 라이브 방송 중에 진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모아들에게 통화 내용을 공유하기도 하잖아요.(웃음)
범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은 거죠.(웃음) 나와의 ‘케미’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근데 저는 평소에도 멤버들이 저한테 ‘탈룰라’ 시전하면 바로 엄마한테 전화 걸어요. 제 편을 안 들어주는 게 문제긴 한데, 엄마가 재밌어 하시더라고요.(웃음)
태현 씨가 범규 씨에 대해 “뭐든 밉지 않게 이야기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표현한 것처럼, 아무리 짓궂게 장난을 치더라도 멤버들이 귀엽게 봐줄 거라는 걸 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범규: 제가 외줄타기를 좀 잘해요.(웃음) 타고난 거죠.(웃음) 수빈이 형한테도 맨날 까불다가 어, 이 형 지금 조금 진심이 들어간 것 같은데? 하면 바로 꼬리 내리거든요. 눈빛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감정인지 알아채는 편이라, 그렇게 직감적으로 선을 지키면서 외줄타기를 합니다.(웃음)
가족과 함께할 때는 어떤 모습이에요? “하루만 다른 사람으로 산다면”이라는 질문에 “우리 아빠”라고 답할 만큼, 아버지의 존재가 범규 씨에게 생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았어요.
범규: 집에서는 좀 점잖게 있는 편이고, 엄마 아빠랑 수다 떠는 걸 좋아해요. 부모님이 나한테 궁금했던 것들, 내가 부모님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들,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가더라고요. 항상 말하지만 저는 아빠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자상하고, 엄마 아빠의 관계도 여전히 연애하는 것 같고, 보면서 너무 멋있다고 느껴요. 얼마 전에도 이런 얘기를 아빠한테 했는데, 아빠도 “네가 내 아들이 되어줘서, 예쁘게 커줘서 너무 고맙다.”라는 말을 해줬어요. 저는 아빠랑 아직도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거든요. 사랑이 넘치는 가족입니다.(웃음)
콘서트를 함께 관람하는 모아분들의 아버지를 볼 때 마음이 더 쓰인다고요.
범규: 아버지들이 그분들의 딸이나 아들이 저희를 좋아해서 같이 와줬을 확률이 더 높잖아요. 옆에서 같이 즐겨주시는 걸 보면서 그분들도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어렸을 때 아빠랑 시간을 많이 보냈잖아요.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빠랑 태백까지 가서 레이싱하는 거 구경하고, 등교 전에 같이 축구랑 야구도 하고. 그런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아는 거죠. 저 어린 모아가 나중에 시간이 흘렀을 때 이 순간을 돌아보면 얼마나 좋은 추억이 될지.
범규 씨에게는 멤버들이 또 다른 가족이라고도 했죠. 무대에 오르기 전 떨릴 때 “멤버들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라고 한 말이 특히 와닿았어요.
범규: 이번에 ‘2023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이하 ‘VMAs’)’ 무대를 할 때 사실 웬만한 콘서트 때보다 세 배 정도 더 긴장을 했거든요. 심장 비트가 ‘탁,탁,탁’이 아니라 ‘탁탁탁탁’ 이렇게 뛸 정도였는데 무대 올라가기 직전 멤버들이랑 손 모아 파이팅하고 끌어안고 나니까 의지가 엄청되더라고요. 항상 그렇게 낯설고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 기댈 수 있는 건 멤버들뿐이에요. 다른 멤버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 내가 힘든 것도 순간적으로 잊고 이 멤버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는 것 같아요.
‘슈취타’에서 연준 씨와 태현 씨가 말한 정상을 향한 목표까지 함께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래서일까요?
범규: 사실 당시에 저는 생각이 확고했어요. 첫 투어를 거치고 너무 힘들었던 시기라,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의미가 없겠구나.’라는 걸 너무 많이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내심 연준이 형과 태현이의 바람이 부담됐어요. 나는 그저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이 더 간절한 사람이지만, 멤버들은 정상으로 올라가야 행복을 느낄 것 같다는 거예요. 어떡하겠어요. 우린 팀이잖아요.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달리는 거잖아요. 받아들이고 말했죠. 팀이니까, 나도 함께 이루고 싶다고. “멤버들이 원한다면 같이 노력할게. 열심히 해서 올라가자.”
새삼 영화 결말은 무조건 해피엔딩을 원한다고 강조하던 게 떠올라요.
범규: 열린 결말 싫고, 슬픈 엔딩도 너무 싫어요. 영화를 볼 때 그 상황과 감정에 완전히 몰입하기 때문에, 제가 그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제가 진심을 다해 응원하는 주인공이 영원히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범규 씨도 바라던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중이겠죠?
범규: 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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