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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KBS Kpop 유튜브

‘은채의 스타일기’

이예진: 르세라핌의 막내 홍은채는 지난해 5월 데뷔 이후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오랜 시간 꿈꿔왔던 아이돌 생활을 한껏 즐기는 중이다. 원했던 무대에 서고, 자체 콘텐츠에서 추억을 만들고, 음악 방송 MC로서 방송 진행까지 척척 하는 등 맡은 일을 똑부러지게 해내는 동시에 마냥 행복해하는 은채의 모습을 보다 보면 아이돌 은채의 성장 일기를 실시간으로 엿보고 있는 듯하다. KBS2 ‘뮤직뱅크’의 최연소 MC, 일명 ‘아기 은행장’ 은채가 대기실에서 출연자들과 만나 돗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하는 웹 예능 ‘은채의 스타일기’는 그가 프로 아이돌을 넘어선 “아이돌계의 국민 MC”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기 위한 또 하나의 성장 기록이다. 

 

은채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복도를 지나 게스트의 대기실로 마중을 나가는 길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긴장하는 모습은 매 에피소드마다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게스트와 첫 인사를 나누고 함께 인터뷰 장소로 이동할 때 시청자에게까지 전해지는 민망하고 어색한 공기는 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 낯가리고, 종종 게스트가 진행을 하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 등 조금은 서툰 ‘아기 MC’지만, 점차 자기만의 방식과 매력으로 분위기를 풀며 은채만이 끌어낼 수 있는 대화를 진행시킨다. 귀여운 스타일링보다는 무대에서 멋있게 보이고 싶은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막내가 가지는 고충에서 비롯된 은채의 ‘양갈래 싫어단’ 모집, 상대방이 ‘T’인 것 자체가 서운할 정도로 감성적인 사람으로서 필수로 건네야 하는 ‘MBTI’ 질문 등 은채의 성향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게스트와 소소하게 공감대를 쌓으며 이뤄지는 대화는 예상치 못한 은채와 게스트의 케미스트리를 형성하는 재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은채와 게스트가 서로 “이제 좀 편해질 때쯤”되면 마무리가 되는 것이 ‘은채의 스타일기’의 묘미다. 그간 ‘은채의 스타일기’를 다녀간 게스트들 중에서도 은채와 ‘찐친’의 대화가 궁금하다면 NMIXX 규진과 케플러 휴닝바히에 편, 은채의 “연예인 친구 사귀기” 그 과정이 보고 싶다면 에스파 편, 대선배 앞에서 유독 긴장해 더 귀엽게 느껴지는 모습을 원한다면 EXO 편을, 무엇보다 보기 드문 은채의 ‘선배미'를 접하고 싶다면 &TEAM과 보이넥스트도어 편을 추천한다.

‘Plastik’ - 옷옷(OTOT)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21st century electronic duo’라는 소개 문구와 동명의 음반과 달리, 일렉트로닉 듀오로서 옷옷의 전자음악은 언뜻 이번 세기보다 지난 세기에 가깝게 들린다. 매 박에 맞춰 정직하게 찍히는 쿵과 짝, 사운드의 각진 파형을 또렷하게 맞춘 음색, 귀여운 유령이 되어 주위를 통통 떠다니는 목소리 샘플, 명쾌한 선율의 착실한 반복으로 움직이는 전개, 심지어 랩톱 대신 자리 잡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까지. 이것이 무척이나 소중한 이유는 한국 대중음악에는 “지난 세기 일렉트로닉”이 너무 늦게 찾아와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이번 세기로 넘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이선규와 고범준의 쌍은 옷옷으로 첫 싱글을 발매한 2016년에도 마치 지난 세기 한참 전부터 늘 이래왔다는 듯 무르익은 솜씨로 강력한 전기작용을 일으켰다. 이 자연스러운 연결은 15년 전쯤의 뜨거운 감자 4집이나 페퍼민트 클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협업과 고범준의 ‘Thin_Go’나 이선규의 프로듀싱 같은 개인 작업이 받쳐주는 덕이다. 그렇게 두자면 옷옷은 1990년대 중후반에 인디 록으로 출발해 2000년대에 다양한 전자음악을 들려준 동년배 음악인들의 조합(이를테면 에프톤사운드나 모조소년)을 뒤늦지만 원숙하게 구현하는 셈이다. 최근 광고음악으로 사용되며 인지도를 올린 ‘OO’의 조각이 숨겨진 ‘Plastik’은 종알대는 기계 목소리와 여러 모양새의 신스 음을 번갈아 배치하되, 킥 드럼과 스네어의 일정한 네 박자 위의 하이햇을 구간마다 달리 쪼개 나가며 속도감을 조절한다. 그에 따라 쨍하고 밝은 사운드는 문득 급박하게 일그러졌다 다시 반짝이기를 반복하며, 이런 운동이 깔아주는 긴장감은 음반 내내 (꿈틀거리는 거미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모사하는 ‘Spider’처럼)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 행로는 문득문득 이디오테잎부터 안마루까지 걸친 동시대 한국 일렉트로니카의 주요한 단면들과 참 어울려 가며, 이렇게 베테랑들의 기묘한 시대착오는 이중삼중으로 돌고 돌아 다시 “21세기 전자음악 2인조”에 걸맞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