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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Taylor Swift 인스타그램

10월 14일 토요일 밤, 미국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이하 SNL)’의 49번째 시즌의 첫 에피소드가 방송되었다. 지난 5월 미국작가조합의 파업으로 48번째 시즌의 막바지 에피소드 3개가 취소된 이후, 9월 말 파업 종료와 함께 6개월 만에 재개된 방송이다. 수년간 ‘SNL’의 캐스트 멤버였던 피트 데이비슨이 호스트였지만, 이날 가장 큰 화제는 깜짝 카메오로 아주 잠시 등장한 두 스타에게 집중되었다. 프로 미식축구(NFL) 관련 스케치에 나온 트래비스 켈시 그리고 음악 게스트 아이스 스파이스를 소개한 테일러 스위프트다. 두 사람은 생방송 전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방송 이후 축하 파트에도 참석하면서 완전한 데이트를 선보였다. 두 사람의 연애는 이제 기정사실에 가깝다. 이 토요일 밤에 이르기까지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일을 돌이켜보자. 

  • ©️ Saturday Night Live Youtube

먼저 트래비스 켈시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하다. 그는 캔자스시티 치프스 소속의 미식축구 선수다. 미국 프로 스포츠 시장에서 미식축구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2022년 TV 시청률 상위 프로그램 100개 중 82개가 NFL 경기 생중계였다. 나머지 18개 중 5개는 대학 미식축구 경기다. 캔자스시티 치프스는 2019 및 2022 시즌에 슈퍼볼 우승을 기록한 현재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다. 트래비스 캘시는 2013 시즌 프로 데뷔 이후 치프스에서만 활동한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타이트 엔드라는 공격수 포지션에서 리그 역사상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뽑힌다. 운동선수만이 아니라 유명 인사로서의 위상도 확고해서, 2016년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애 리얼리티 TV 쇼에 출연하고, 올해 3월에는 ‘SNL’의 호스트도 맡은 바 있다.

 

9월 7일, NFL 2023 시즌의 1주 차 시즌 개막전에서 켈시는 부상으로 결장했고, 팀은 패배했다. 치프스 같은 강팀이 개막전을 패배하는 일은 드물다. 9월 12일, 켈시와 스위프트가 비밀스럽게 데이트 중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지난 7월, 스위프트가 에라스 투어 중 캔자스시티 공연을 치프스의 홈 구장에서 가졌을 때, 켈시가 스위프트에게 자신의 번호를 전달하려다 실패했다는 소식이 나온지 두 달 후의 일이다. 9월 17일, 2주 차 경기에서 켈시가 부상에서 회복하고 출전한다. 그는 이 경기에서 패스를 받아 터치다운을 기록한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CBS의 아나운서 이언 이글이 “켈시가 빈 공간(blank space)을 찾아 득점했다.”는 코멘트를 남긴다. 켈시의 플레이가 그 말에 걸맞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위프트의 히트 곡 ‘Blank Space’를 의식한 발언으로 화제가 된다. 이때까지는 모두에게 흥미로운 농담이었다.

 

9월 24일, 3주 차 치프스의 홈 경기에 스위프트가 참석해서 켈시와 다른 선수의 가족과 함께 응원했다. 경기를 중계하던 폭스는 켈시의 터치다운은 물론 눈에 띄는 플레이마다 스위프트의 반응을 내보냈다. 이 경기는 같은 주간에 열린 모든 경기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켈시의 유니폼 판매량은 4배로 급증했다. 경기가 끝나고 켈시는 스위프트와 함께 경기장을 떠났고, 둘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갈수록 커졌다. 10월 1일, 시즌 4주 차에 치프스는 뉴욕 제츠와 원정 경기를 가졌다. 이 경기는 저녁 프라임 시간대에 단독으로 진행하고 미 전역에 생중계하는 ‘선데이 나이트 풋볼’로 열렸다. 스위프트가 이 경기에도 참석한다는 소문과 함께 경기 입장권 판매량이 급증했다. 원정 경기에서 스위프트는 켈시의 가족 대신 블레이크 라이블리, 라이언 레이놀즈, 소피 터너, 휴 잭맨 등 유명 인사 친구들과 경기를 관람했다. 이 경기의 시청률은 지난 슈퍼볼 게임 이후로 가장 높았다.

 

이 관계를 둘러싸고 홍보용 스턴트(publicity stunt) 혹은 가짜라는 음모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켈시조차 “여러분, 이거 우리가 다 짰어요.”라고 농담을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과거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한 사례에 비해 최근의 공개적인 행보가 명백히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모든 음모론이 아마 그렇겠지만, 몇 가지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는 8월 LA를 마지막으로 미국 일정을 마무리하고 ‘1989 (Taylor’s Version)’을 공개하면서 휴식에 들어갔다. 11월 브라질 공연을 제외하면, 내년 2월 이후 아시아‧유럽 투어까지는 공연이 없다. 대신 극장에서 상영하는 투어 필름이 10월 13일 개봉 예정이었다. 치프스의 홈 게임과 뉴욕에서의 ‘선데이 나이트 풋볼’로 이어지는 집중도 높은 일정, 심지어 NFL이라는 거대 리그조차 테일러 스위프트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는 상황이 스위프트의 화제성을 재확인시켜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켈시의 입장도 비슷하다. 여전히 눈부신 활약을 펼치지만, 1989년생 타이트 엔드라면 선수 생활 이후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다. 때마침 켈시는 역시 미식축구 선수인 형 제이슨과 함께하는 팟캐스트 ‘뉴 하이츠(New Heights)’의 시즌 2를 시작했고, 루머가 한창일 때 ‘뉴 하이츠’는 애플 팟캐스트 1위, 스포티파이 팟캐스트 2위를 기록했다. 개인 소셜 미디어 팔로워가 급증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음모론보다 최악은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왔다. ‘바스툴 스포츠’ 팟캐스트는 둘의 관계에 대한 성적인 농담을 했다.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지적한 것처럼, “미디어가 스위프트를 유독 부당하게 다루는 잔인함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남성이 여성, 여성의 신체, 성생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방식은 진지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모든 유명 인사가 자신을 노출하는 것으로 가치를 높이고, 스위프트는 특히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팬들에게 각종 힌트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다른 하이틴 여성 유명 인사에게 가해졌던 실수를 반복해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이 커플은 이 논란을 우아하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건너뛰는 중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다룬 것처럼, “미디어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녀가 더 많은 앨범을 팔거나, 더 유명해지거나, 더 성공하거나, 지금보다 더 사랑받게 할 수 없다(There really is nothing I can offer her, that we the media can offer her, that would help her sell more albums or become better known or more successful or more beloved than she already is).” 에라스 투어 필름은 개봉 주말에 9,600만 달러를 벌어 들여, 역대 가장 성공한 콘서트 필름이 되었다. 에라스 투어는 내년까지 모든 일정을 마치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어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는 스포티파이의 아티스트 스트리밍 일간, 주간, 월간, 연간 최고 기록을 모두 기록했다. 켈시는 어떤가. 그는 이미 NFL 마케팅의 중심에 있는 선수였다. 작년 슈퍼볼은 형 제이슨이 소속된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치프스의 대결이었다. 사람들은 슈퍼볼을 ‘형제볼(Bro Bowl)’이라고 불렀다.

 

10월 14일 ‘SNL’의 NFL 스케치는, 미식축구 업계가 스위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스포츠를 등한시하는 상황을 풍자했다. 스케치의 중심 역할을 한 케넌 톰슨이 광고 후에 돌아올 때는 진짜로 미식축구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대화하겠다고 하자, 켈시가 깜짝 등장해 외친다. “Yes, please!”. 그리고 그날 현실 세계의 공개 데이트에서 켈시는 스위프트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 확실히 했다. 미식축구의 공적인 세계에 최선을 다하고, 동시에 사적 영역에서 좋은 사람이 된다. 지금 치프스는 6승 2패를 기록 중이다. 거대한 성공이 그것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팝스타 스캔들을 본 적이 있는가? 팝 역사에서 미처 본 적이 없는 사례가 지금 벌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