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김채윤, 강일권(음악평론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우하머그 유튜브

‘재친구’ (우하머그)

김채윤: 친구를 만나러 나왔다. 그런데 그 친구가 누구인지 모른다. 진행자가 게스트를 소개하며 시작하는 여느 토크쇼들과는 달리 ‘재친구’는 김재중이 ‘친구 소개서’를 보고 게스트(친구)를 추측해야 친구가 등장한다(못해도 등장하기는 한다). 오늘 처음 보는 ‘친구’에게 김재중은 ‘반말 모드’인 ‘재친구’의 룰을 활용해 금세 ‘친구’가 된다. 자신의 신인 시절 이야기를 비롯해 팬 사랑, 유행하는 포즈, ‘부캐’ 비하인드, 누나를 둔 남동생 등 친구가 잘 받을 수 있는 주제를 던지고, ‘프로 공감러’라고 해도 좋을 아낌없는 공감과 리액션 그리고 진솔한 토크는 김재중이 ‘반말 모드’ 없이도 누구와도 친해질 만한 친화력을 가졌다는 인상을 준다. 타블로나 FT아일랜드처럼 원래 친했던 사이는 아예 의식의 흐름처럼 대화 주제가 툭툭 튀어나올 때마다 숨길 수 없는 장난기로 ‘찐친 바이브’를 자아낸다. 배달 음식이나 밀키트가 다양한 요즘 김재중이 육수부터 양념장까지 다 직접 만드는 음식과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는 김재중이 들인 정성만큼이나 그와 친구 사이를 가깝게 하고, 제작진이 “우리 이제 마무리해야 해요. 안녕.”이라며 앞에서 “SOS를 날리고 있어”도 녹화를 마치지 않으려고 할 만큼 김재중은 대화에 진심이다. 친구들에게 자신의 데뷔 20주년 앨범 참여를 부탁하며 ‘기브 앤 테이크’를 제안하는 것을 보면 ‘김재중 친구 만들기’라는 ‘재친구’의 목표는 콘텐츠의 포맷을 넘어 이 콘텐츠의 전부인 것 같다. 

 

김재중이 “신비주의 느낌”이 있는 “차가운 재질”의 “연예인”이자 “스타”였다는 출연자들은 ‘재친구’를 통해 김재중과 친구가 되고 나면 하나같이 “털털하고 솔직”하며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게 느껴지는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15번째로 출연한 작사가 김이나의 출연 소감은 구독자 ‘내 친구’와 시청자들이 ‘재친구’를 좋아하는 그리고 앞으로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이유와 같다. “인간의 온도가 많이 느껴지는 사람”.

탐쓴 (TOMSSON) - ‘MOVIE THEORY’

강일권(음악평론가): 한국 힙합에서 래퍼 탐쓴의 위치는 남다르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랩 스타는 아니지만, 한국에선 불가능할 거로 여겨진 ‘로컬 래퍼’란 정체성을 확립한 유일무이한 래퍼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대구를 근거지로 활동하며, 가사에 지역색을 입히고 사투리로 짠 랩을 구사한다. 뿐만 아니라 정규와 EP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앨범을 발표 중이다. 새 EP ‘MOVIE THEORY’도 정규작 ‘KOREAN CHEF II’로부터 겨우 6개월 만에 나왔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음악 못지않게 영화광이기도 한 그는 공포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SKIT 포함) 8곡으로 앨범을 채웠다. 자연스레 호러코어(Horrorcore) 힙합으로 귀결된다.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로 분하여 공포의 문을 연 탐쓴은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먼, ‘텍사스 전기톱 학살’의 레더페이스 등등 곡마다 전설적인 호러영화 캐릭터에 빙의되어 살벌한 심리와 현장이 담긴 랩 음악을 선사한다. 특히 ‘Ch Ch Ch Ha Ha’에서 장기인 사투리 랩이 등장하는 순간은 하이라이트다. 한편 ‘앤디의 일기’에선 처키가 아닌 그와 악연을 맺은 인간 앤디의 시점으로 뒤틀어 재미를 주기도 한다(물론, 이 또한 일기를 보는 처키의 시점일 수 있다). 단지 영화의 무드나 캐릭터의 성향을 담는 데에 그친 것이 아니다. 로컬 래퍼이자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로서의 현재와 신념 그리고 씬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은유적으로 녹아 있다. 베테랑 제이에이(JA)가 총괄한 프로덕션이 탐쓴의 야심 찬 계획을 더할 나위 없이 뒷받침했다. 미국 멤피스로부터 유래한 호러코어 사운드의 현 시대 버전이 건조한 랩과 어우러져 시종일관 서늘한 기운을 형성한다. 명확한 의도를 잘 살린 콘셉트 앨범을 듣는 건 언제나 즐겁다. ‘MOVIE THEORY’처럼 말이다. 한국 힙합의 다양성에 굶주렸던 이들에게 추천한다.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단요

김겨울(작가): 우리는 얼마만큼 나쁘고 얼마만큼 선할까? 카페에 가면서 텀블러를 챙겨가지만 해외여행을 즐긴다면, 노동자의 노동 환경에 대한 권리에 목소리를 보태면서 제3세계 노동자의 착취로 생산된 패스트 패션 제품을 입고 있다면, 이 행위들은 서로를 어떻게 상쇄하고 있을까? 인간이 살면서 행하는 행위의 도덕성을 숫자로 나타내는 게 가능할까? 여기서는 가능하다. 단요가 만들어낸 세계에서 모든 사람은 머리 위 수레바퀴를 띄우고 있다. 수레바퀴는 그 사람의 정의와 부덕의 비율을 파이 차트로 보여준다.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이 비율은 바뀌지만,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으로 바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비율은 천국에 갈 확률과 지옥에 갈 확률을 나타낸다. 정의를 나타내는 청색의 비율이 높을수록 죽는 순간에 천사의 손에 이끌려 하늘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부덕을 나타내는 적색의 비율이 높을수록 지옥의 손길에 끌려 내려갈 가능성은 높아진다. 사람들은 누군가 죽는 순간에 그의 청색과 적색의 비율을 보고, 그가 이 주사위 굴리기에서 어떤 결과를 얻는지 지켜본다. 그들은 이제 서로를 수레바퀴로 판단한다. 수레바퀴를 관리할 방법을 제공한다는 서비스가 등장하고 아이돌의 인성이 폭로되며 누군가는 완전한 적색을 향해 내달린다. 이 단요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그리고 당신은 수레바퀴를 원하는가? 당신의 수레바퀴는 어떨까? 책장이 숨가쁘게 넘어가지만 결코 편하지는 않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