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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리은,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M드로메다 스튜디오 유튜브

‘청소광브라이언’ (M드로메다 스튜디오)

김리은: 웹예능 ‘청소광브라이언’은 유튜브 시대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예능 콘텐츠와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설서처럼 보인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소재는 실제로도 ‘청소광’으로 알려진 브라이언의 성격 그 자체다. 극단적인 위생을 추구하는 브라이언과 극단적으로 비위생적인 ‘더티존’ 게스트들의 만남이라는 포맷은 사실상 관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장면들을 낳는다. 4~5년 동안 이불 빨래를 하지 않았고 속옷마저 함께 입는다고 밝힌 조준호, 조준현 형제에게 브라이언이 “That’s nasty!”라고 소리치거나, 하우스 파티가 끝난 후 혼자 집을 청소하며 출연진들이 더럽힌 곳을 발견할 때마다 고음을 지르는 모습은 소위 ‘밈’이 되기 좋은 순간들이다. “이 지구에 있는 인간들이 제일 더러워. I hate people.” ‘인간헤이터’를 자처하면서도 브라이언이 ‘더티존’ 게스트들을 위해 정성껏 청소하며 자신의 정리 비법을 전파하고, 그의 솔루션을 경험한 게스트들이 이후 청결을 유지하며 생활하는 변화는 극단과 극단이 만나 만들어내는 평화지대이기도 하다.

 

과거 브라이언은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나와 남들보다 발달한 후각과 엄격한 위생 관념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한편 현대인 중 일부는 우울증 등 정신적인 이유로 청소에 어려움을 겪고, 이런 이들을 위해 청소 전문가들이 이들의 공간을 대신 청소해주는 콘텐츠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시대다. 그간 자신의 고충을 표현하지 못했던 브라이언은 ‘청소광’이라는 예능 캐릭터를 바탕으로 비위생적인 상태에 대한 ‘앞담화’와 ‘뒷담화’를 마음껏 표현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더러우면 싸가지 없는 거예요.”라는 브라이언의 말에서 애칭을 얻은 구독자 ‘싸가지’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며 청소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는 댓글들을 다수 올리는 것처럼, 누군가는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의도되지는 않았을지라도, 당사자성이 반영된 캐릭터와 삶과 밀착된 소재가 알고리즘과 만나 일으킨 화학작용일 것이다. 어쩌면 ‘진정성’이라는 진부한 말이 콘텐츠 시장에서 여전히 유효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SUMIN (수민) - ‘옷장 (feat. 엄정화)’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팝으로 구현할 수 있을 감각적인 인공미를 ‘너네 집’의 매끈한 광택으로 지어 올리고 ‘미니시리즈’를 기획·연출·주연한 후의 수민은, 원색 네온빛이 과감히 번쩍이는 폴리곤 덩어리 같은 ‘네오 K-팝’에서 ‘시치미’를 떼는 듯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시치미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뿐이니, ‘시치미’에는 기존의 전자적인 사운드와 다른 서랍에 넣어두고 없는 체하는 과잉된 질감을 찾아 옷장을 뒤적거리는 재미가 있다. 이 곡에서는 특히 최근의 피처링으로도 몰고 오는 수민 특유의 음색이 그렇다. 톱라인에서 정확한 음정으로 미끄러지고 짜릿한 가성을 음향 효과처럼 뱉어내는 목소리는 신시사이저 같은 기계장치로 만들어진 듯 움직인다. ‘옷장 (feat. 엄정화)’에서 이는 마지막 후렴 직전에 상행하는 멜로디로 가장 짜릿하게 솟아오르는 한편, 원정대와 유랑단의 장롱에 귀하게 모셔둔 엄정화가 문을 열어젖히고 나와 ‘구운몽’의 속삭임을 겹친다. 이 역사적인 만남은 가히 절묘한데, 엄정화 또한 가요로 구현할 수 있을 전자적인 통속성을 ‘Self Control’의 첫 CD와 뒤이은 ‘Prestige’에서 성취했다는 걸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오래된 옷장에는 “왜 너는 내 마음에 드는가?”라 자문할 만큼 잘빠진 기성복이 빼곡하며, 그 안에서 2000년대 초‧중반과 2010년대 후반의 15년 시차는 같은 방향제를 맞아 스러지고, 지역적이었던 댄스 가요와 국제적으로 될 아이돌 팝은 ‘눈 맞추고 손 맞대고’ 같은 방향을 멀리 바라본다. 한국 디바들 사이에서도 드물게 흐를 글램(glam)이 가장과 과장으로 분출하기보다 은근한 “향수를 칙칙 뿌려둔” 채 듀엣에 내장됐다는 건, 인공성보다도 자연스러움에 충실해져가는 팝과 가요의 ‘눈치’를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옷장에는 분명, 충만한 매혹과 유혹을 두른 ‘기분 좋아지는 노래’가 고이 들어앉아 있다. 훑을 때마다 “니가 예뻐서도 아니고, 니가 비싸서도 아니야. / 그저 오래된 것뿐인데, 너는 왜 입고 싶은 맛이 나?”라는 질문을 되뇌게 하는 매력을 맞춤복으로 갖춰 입고, 그 화려한 꼬리표는 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