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투어 with 세븐틴’ (tvN, 위버스)
송후령: 지난 5월 ‘출장십오야2 x 세븐틴’에서 원우와 디노가 쓰고, 도겸이 뽑은 ‘세븐틴 꽃청춘(꽃보다 청춘) 출연’ 소원권으로부터 시작된 ‘나나투어 with 세븐틴’. 드디어 첫 에피소드가 오늘 밤 저녁 8시 40분(KST) tvN에서, 120분 분량의 풀 버전은 밤 10시(KST) 위버스에서 공개된다. 나영석 PD에게 납치를 당하며 여행이 시작되는 ‘꽃보다 청춘’ 시리즈의 핵심 포맷은 유지하되, 고단함은 덜어내고 맞춤형 서비스를 더한 패키지 투어를 표방하는 이 프로그램은 세븐틴의, 세븐틴에 의한, 세븐틴을 위한 여행기다. ‘나나투어 with 세븐틴’에서 나영석 PD는 단체 여행 인솔 20년 경력의 ‘NA이드’가 되어 세븐틴 멤버들과 6박 7일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기뻐하는 멤버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콘서트를 마치고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첫 단체 유럽 여행은 숨가쁜 아이돌의 삶을 사는 세븐틴에게 주어진 ‘Holiday’처럼 보인다.
거리를 걷다 원우가 문득 “나 이거 먹으면서 걷고 있는데 행복하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나나투어 with 세븐틴’은 이들이 함께하는 순간의 즐거움을 포착한다. 대단히 새롭거나 특별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여행지에서 멤버들이 나누는 대화와 공유하는 감정들이 화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예컨대 “저 뽀로로가 될래요.”라는 민규의 말에서는 여행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행자의 아쉬움이, 디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을 위하여, 살루테(건배)!”라고 건배사를 외치는 모습에서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담뿍한 기쁨이 느껴진다. 재활로 인해 오지 못한 에스쿱스에게 영상 통화를 건 채로 함께 단체 사진을 찍는다거나, 총무를 맡은 디노가 ‘권력자’가 되는 모습은 절친한 친구들끼리 떠난 여행에서 경험할 법한 소소한 순간들이기도 하다. 촬영을 마친 후 한국에서 제작진과 재회한 자리(‘음악의신이랑와글’)에서 도겸이 “살루테!”를 외치며 인사하는 것처럼, 이 모든 여행의 크고 작은 순간들은 일상으로 돌아와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된다. “우리끼리만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 함께하는 것만으로 들뜨고 평범한 순간도 특별해지는 유쾌한 청춘들의 여행기다.
‘클레오의 세계’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나‘만’ 사랑할 수 없을까? 첫걸음마의 관객. 놀다가 다친 손바닥을 후 불어주는 주치의. 욕조에 있든 바다에 있든 눈 떼지 않는 파수꾼. 여섯 살 클레오(루이스)는 유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를 독점하고 싶다.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은 경제 활동을 하러 카보베르데에서 프랑스까지 온 글로리아가 ‘어머니’의 대리인 혹은 급여에 예속된 자로 취급받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천둥 치는 하늘 아래, 검고 높은 파도 위, 노 하나로 배를 저어 폭풍과 맞서는 여성을 애니메이션으로 삽입하며, 삶을 온몸으로 직면해왔을 뿐인 인간에게 박수를 보낸다. 감독의 이 항변 같은 시선이, 애정을 애정으로 감각할 줄 아는 클레오를 그려냈다. 어머니의 장례를 계기 삼아 섬으로 돌아간 글로리아와의 이별이 분한 클레오는 여름방학을 벼르다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곳에서 제 생의 전부인 글로리아의 전사(前史)를 확인하고 그의 손자 산티아고의 탄생을 목도한다. 클레오에게 글로리아는 침이라도 뱉게 하여 영원의 맹세를 받아내고픈 소유욕의 대상이자, 단잠을 깨우지 않도록 속삭이게 만드는 보호 본능의 자극점이다. 그러나 어린 클레오를 재웠던 자장가는 이제 더 “연약”한 산티아고의 울음을 멎게 하기 위해 불린다. 들끓는 질투를 냉각이라도 하듯 거침없이 물속으로 다이빙. 클레오는 어떤 실연의 추락을 체험한다. 절대적 존재와 “서로를 떠나서 행복”하자는 안녕을 나눈 클레오가 ‘나’만 사랑할 수 있을까. ‘클레오의 세계’는 넓어진다. 다른 모양들의 공존을 어렴풋이 이해하면서. 당장은 수습되지 않는 슬픔을 추스르면서.
피아노 슈게이저 - ‘Sisyphus Happy’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구원을 기다리고 있니? 그런 건 없지.” 황폐한 행성 뒤편 어둠의 바다에서 모래 공을 만드는 사람을 생각해본다. 단단한 바위가 시간과 바람에 깎여 형성된 거친 입자의 사막 한가운데, 따가운 잡음과 소음을 견디며 커다란 공을 언덕 위로 굴려 올린다. 가까스로 완성한 구체를 뾰족한 언덕의 꼭대기까지 밀어놓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OST에 참여하고 장명선의 ‘천사의 몫’을 프로듀싱한 피아노 슈게이저가 자신의 첫 정규 앨범 제목을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가져온 이유를 추측해봤다. 한국 인디 음악의 팬으로 사운드클라우드에 본인의 피아노 커버를 업로드해온 그는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고독을 강력하고 혼란스러운 소음으로 정제하는 작법을 확립했다. 대안과 안식처로의 인디 씬과 인터넷 문화, 포스트록과 슈게이징 장르가 잘게 부서져 바람에 날리는 디스토피아적 대중음악 세계에서 피아노 슈게이저는 분주하게 기억을 모아 공을 굴린다. 모래 덩이를 굴릴 때마다 소수로 외면당했던, 자꾸만 잊히던,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던 것들의 흔적이 달라붙는다. 비하의 뜻으로 이름 붙여진 슈게이징이 2010년대 말 고립된 세대의 의식을 대변하며 현재 가장 주목할 대중음악 장르로 존재감을 형성하는 가운데, 이 행복한 시지프의 이야기에 자꾸만 손이 간다.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우주 너머로 날아가고 있는 우주선의 전파처럼 지직거리며 도착한 소리는 텁텁하지만, 분명한 온기가 있다. ‘마름’의 노랫말을 곱씹어본다. “말라버린 화분 기나긴 아침 / 끝없는 노이즈 / 더러운 세상에 너가 울지 않기를 더는 아프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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