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배지안,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MHTL
사진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솔로지옥 시즌3’ (넷플릭스)

배지안: ‘한 번에 여러 명을 좋아하게 되면 어떡하지?’ ‘여러 명이 나한테 동시에 고백하면 어떻게 될까?’ 드라마를 보면서 한 번쯤 해봤던 상상들이 넷플릭스 ‘솔로지옥’ 시즌3 참가자 이관희에게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마음의 크기가 100이라면, 제일 처음 천국도(참가자들이 생활하는 척박한 환경의 ‘지옥도’와 대비되는 곳. 커플이 돼야 좋은 식사와 수영장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천국도에 갈 수 있다.)에 같이 갔던 최혜선에게 33, 두 번째로 천국도에 같이 갔던 윤하정에게 33, 아직 대화는 많이 못해봤지만, 궁금한 김규리에게 33을 주고 마지막 1은 또 새로운 가능성에 열어두겠다고 말한다. 10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호감 가는 세 명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할 텐데, 이관희는 새로운 만남까지 기대하고 꿈꾼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참가자로 등장한 조민지와의 첫 대화 직후 이관희는 제작진에게 조민지가 자신의 이상형이 될 것 같다고 인터뷰한다. “(33에서) 25 됐다.” 대화 한 번에 또 마음 한구석을 내어준 이관희를 보며 패널들은 폭소한다.

 

한해는 ‘솔로지옥’이 “무조건 한 사람에게 올인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참가자 안민영은 3일 만에 이진석과 커플이 확실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나 인기 없을 거 같아.”라고 푸념하고, 이진석에게 다른 사람도 알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솔직함은 자신에게 향한 이진석의 ‘직진’을 멈추게 하고, 이진석이 다른 여자와 천국도에 간 뒤에야 안민영은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이관희는 ‘첫’ 천국도 데이트라서 최혜선이 계속 신경 쓰인다고, 안민영은 ‘3일 만에’ 마음을 정하기엔 자신의 마음이 확실하지 않았던 거라고 말한다. 반면 타이밍이 엇갈려 대화 한 번 제대로 못해도 서로에게 확신을 주는 커플도 있다. 사랑은 정말 타이밍일까? 아니면 결국 내가 쌓아온 말과 행동의 결과일까? 누구든 쟁취할 자신이 있다며 당당하게 ‘솔로지옥’에 입성한 참가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필살 ‘플러팅 스킬’은 알지만 정작 본인의 마음은 모르는, 혼란의 ‘솔로지옥’으로 초대한다.

‘노 베어스’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카메라는 격발한다. 여자의 탯줄이 잘리는 순간 결혼 상대가 정해지는, 여자가 쓴 히잡이 낯선 남자에 의해 잡아당겨질 때 약혼이 성사되는, 이란 국경 마을의 전통을 조준한다. 그는 출국 금지 상태에서 원격으로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으로 ‘노 베어스’에 출연한다. 프랑스 망명을 계획하는 튀르키예 연인 자라(미나 카바니)와 박티아르(박티아르 판제이)의 “진짜 삶을 소재” 삼아 이야기를 만드는 중이다. 현실의 자파르 파나히 역시 시위를 하다 총에 맞아 사망한 학생의 추모식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징역형과 영화 제작 금지를 선고받은, 이란이 공인한 반정부 인사다. 영화 안의 감독과 영화 안의 영화에서 커플이 “자유도 미래도 없는 갇힌” 곳을 거부하기 위해선, 밀수꾼에게 영합하거나 무고한 타인의 여권을 훔치는 도둑이 되어야 한다. 창작으로 부조리에 대항하는 감독의 집념이, “투옥과 고문”까지 견딘 자라의 인내가, 정체를 위장하는 귀결뿐이라 해도 감독은 카메라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고통의 과정을 낱낱이 적시함으로써 다르게 타파하고자 하는 맹렬한 고발인이다. 그러다 윤리를 저버린 자신을 발견하며 끝나는 이 영화는 자파르 파나히 스스로 단두대 위에 올라가 양보 없이 맺는 작품이다. 곰은 존재한 적 없다. “두려움을 만들면 겁주기 쉽다.”라는 마을 사람의 말을 제목으로 내걸고 이 감독은 무엇이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지 분명히 전한다. 위반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그는 반대로 자문하는 듯하다. 영화가 무엇일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일 수나 있는지. 도망이 최선의 희망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 베어스”. 묵음이 아니다.

강아솔 -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첫 음만 들어도 마음이 쿵 내려앉는 음악이 있다. 귀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것일 터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이 5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작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가 그런 앨범이다. 앨범은 2분 남짓한 짧은 연주 곡 ‘어떤 겨울은’으로 문을 연다. 연주 곡이니 당연히 아무런 말도 없다. 바짝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기조차 힘든 미세한 한숨처럼 첫 음을 울린 노래는 그렇게 여린 호흡으로 시작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단숨에 우리를 저 먼 곳까지 데려다 놓는다. 눈을 뜬 곳은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일본의 홋카이도다. 허공을 채운 대기는 물론 어떤 고독과 외로움마저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지독하고 긴 겨울로 유명한 바로 그 도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는 2019년, 커다란 허무와 상실을 안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쳐 혼자가 되었던 이가 그 모든 상념과 시간을 뒤로하고 모두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앨범이다. 사랑과 겨울을 탁월하게 다뤄온 강아솔이 처음으로 만난 감정의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묵직한 노래들이 가득하다. 그 어둡고 추운 계절의 끝이 결국 ‘사랑을 하고 있어 (2023 ver.)’에 닿는다는 것에 위안한다. 긴 어둠 끝에 맛보는 ‘기어코 사랑’의 온도가 그 어느 때보다 진하고 포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