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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채윤,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 MHTL
사진 출처. 웃음 최고가 매입 유튜브

‘학원 전생’ (웃음 최고가 매입) 

김채윤: ‘아이돌이었던 내가 전생했더니 학생이 된 건에 대하여 - 학원 전생’. 웹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을 가진 이 유튜브 콘텐츠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태현이 ‘이세계(異世界)’에 학생으로 전생하여 다양하고 특이한 학원을 체험한다는 설정이다. 맛집, 핫 플레이스, 직업, 학과 등 저마다 특정 소재를 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리뷰하는 포맷의 웹예능들 사이에서 태현과 유튜브 채널 ‘웃음 최고가 매입(제작: SK브로드밴드)’은 ‘학원 리뷰’라는 영역을 개척한다. 교복을 입은 채로 뜬금없는 곳에서 눈을 뜨는 태현에게 ‘오늘의 학원’이 제시되고, 학원에 찾아간 태현은 여느 학생처럼 상담과 레벨 테스트를 거친 후 수업에 들어간다. 영재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는 그들의 접근법과 사고력에 “벽”이 느껴진다고 말하면서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함께 토론하고, 쉬는 시간에는 꿈이 뭔지, 최근에 어떤 아이돌의 ‘직캠’을 봤는지 얘기하며 학생들과 어울린다. 마술 학원에서는 마술 7년 차 선배 학생과 수업을 들으며 마술 트릭을 열심히 배우고 성공적으로 해낸다. 어느 학원에 가든 빠르게 적응하고 배우는 태현의 학습력은 학원을 단 하루 동안 리뷰하는 ‘학원 전생’에 제격이고, “여기서는 몇 살인지”, “지금이 몇 년도인”지 모른다며 ‘학원 전생’의 설정을 태연하게 소화하는 모습은 어이없지만 웃게 되는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배울 것은 너무나 많고 시간은 없다. 그렇다면 태현이 매번 다시 태어나 나 대신 먼저 배울 것들을 경험해주는 ‘학원 전생’으로 하루짜리 체험 코스를 경험해보면 어떨까. 

‘나의 올드 오크’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에두를 시간이 없다. 켄 로치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자 “마지막 장편 영화”라 칭한 ‘나의 올드 오크’는 직설로 가득하다. 2016년의 영국 북동부 폐광촌에 시리아 난민이 당도하고, 어제까지 생면부지였던 관계는 갑자기 공동체가 된다. 석탄 산업 민영화 정책으로 인해 생업을 잃은 광부들과 전쟁을 피해 조국을 떠나온 사람들은 각기 삶의 양식이 무너진 채 쇠락의 기운 안에서 섞인다. 마을의 오래된 펍 ‘올드 오크’의 주인 TJ(데이브 터너)만이 사진작가가 꿈인 이주민 야라(에블라 마리)를 처음부터 반긴다. TJ는 켄 로치 감독과 폴 래버티 각본가의 정언 명령(행위 자체가 선(善)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 수행이 요구되는 도덕적 명령)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광부 노동조합의 주요 일원이었던 그가, 여럿이 활기 넘치게 투쟁했던 시절을 아직도 액자로 간직하는 그가 연대의 가치를 깊이 체화했음은 당연하다. 인종주의에 절은 동료이자 단골의 눈초리 틈에서 TJ는 ‘올드 오크’를 토박이와 이방인이 모이는 보루로 만든다. 이를 제안한 야라가 렌즈로 포착한 이들은 모두 난데없이 어울리게 되었으나 어느새 함께 음식을 먹으며 속을 데우고 있다. 감독은 야라의 사진을 예술적 기교의 산물이기보다 현장 증언자의 기록으로써 채집한다. 그렇게 ‘나의 올드 오크’는 부수는 것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뭉치는 약자들의 행위가 재건의 시작이라고 선언한다. 켄 로치는 촘촘히 쌓은 품위마저 쓰러뜨리는 헐거운 복지 시스템을(‘나, 다니엘 블레이크’), 안정된 생활의 영위에 불합리한 ‘근로’계약이 선행되는 사회의 모순을(‘미안해요, 리키’) 비판했다. 이미 충분히 기다렸다는 이 거장은 끝까지 쉬운 낙담 대신 어렵게 호소한다.

키라라(KIRARA), 시와(Siwa), PPS - ‘소라에게’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올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찡하게 채운 곡은 눈발을 뚫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송년회를 오가며 들은 ‘소라에게’다. 이 트랙은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 만남의 우연들이 벅차게 겹쳐 쌓여 만들어졌다. 1970년대에 파독 간호사로 이주한 공순향이 당시 남긴 사진과 다른 도시로 발령 난 친구 소라(순희)에게 보낸 편지가 어느덧 칠순을 맞은 순향의 딸인 포크 싱어송라이터 시와에게 또 그의 의뢰를 받아 반세기 만에 이 자취를 직접 따라간 인디 팝 음악가이자 시각예술가 김소라(PPS)로, 그렇게 모여든 이야기와 소리의 조각들을 12분으로 기워낸 전자음악가 키라라까지 전해지는 과정은 김윤하의 음반 소개문과 김솔지의 전시 서문 그리고 브릭스 매거진에 실린 김소라의 여행기에 꼼꼼히 쓰인 사려 깊은 문장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선 이 모두가 담긴 편지를 나중에 꺼내 읽어 들은 시점에서 짧게나마 그 음악을 이야기하고 싶다. 편지를 낭독하고 마음을 노래하며 녹음한 음성, 독일에서 직접 채집한 거리의 앰비언스, 랩톱으로 제작한 건반과 퍼커션 그리고 전자음과 같이 각 소리는 저마다 다른 곳과 때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 고유하게 존재한다. 1970년대의 독일과 2020년대의 한국만큼의 시차를 억지로 좁히거나 뭉개지 않으면서도 이를 함께 담아내는 방식은 긴 호흡으로 여유를 둬가며 소리끼리 알맞게 엮는 중첩이다. 과거와 현재의 사진을 자그마한 사각형 단위로 깍둑썰어 교차하는 김소라의 시각적 복원술을 반영하듯, ‘소라에게’는 주어진 재료 중에서 무얼 언제 빼고 넣으며 지금 배치된 소리의 격차가 어떤 효과를 낼지 가늠해 시공을 꾸민다. 편지의 문장에 훅 빠져들며 웅성거리는 주변 잡음이 싹 가시거나, 목소리가 끊긴 대신 툭 떨어지는 손뼉 소리가 울컥한 잔향을 남기고, 울렁이며 고조되는 신스 음이 문득 눈물을 삼키고 사라지면서. 과거를 불러들일 때 필연적으로 일어날 소실을 인지하며 향수를 세세히 성찰하고, 그 빈칸을 “하나의 서사를 따르지 않으며 그보다는 한꺼번에 다양한 장소에 거주하는 채 다른 시간대를 상상(스베틀라나 보임)”해 채우는 과정은 이렇게 소리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면밀하게 탐구해 편지와 얽힌 감정의 행로를 모의한다. 쓰는 이와 읽는 이 또 짓는 이와 듣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편지를 보내고 받는 사이 모두에게 진실하게 생겨날 이 맘을 타고 저 빈틈을 건너 “와락 애착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