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로 예정됐던 2021년 그래미 시상식이 3월 14일로 연기됐다. 그래미 시상식을 개최하는 LA 카운티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내내 계속된 사상 유례없는 재난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봄에 그래미가 열리기까지 그 많은 상처들이 조금이나마 나을 수 있을까. 봄에는 모든 것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2021년 그래미 시상식에 관해 알아두면 좋을 여러 이야기들을 담았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이 위버스에 새해 첫날 지난해를 돌이켜보며 쓴 글에 인용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문장을 곱씹으며.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그래미가 뭐길래?
그래미는 미국의 레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s, 이하 ‘레코딩 아카데미’)가 매년 주최하는 음악 산업 전 분야에 걸친 시상식이다. 뮤지션뿐만 아니라, 작곡가, 프로듀서,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앨범 패키지 디자인과 음반 해설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영화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주최하는 종합 시상식인 것과 같다. 레코딩 아카데미의 회원은 그래미 시상식의 후보 자격과 그에 투표할 권리를 동시에 갖는다. 레코딩 아카데미의 대표, 하비 메이슨 주니어가 빌보드의 그래미 특집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모든 후보자와 수상자는 자신들의 동료로부터 인정받는 더할 나위 없는 명예를 누린다.

언제 어떻게?
2021년 그래미는 2019년 9월 1일부터 2020년 8월 31일까지 발표된 음악을 대상으로 한다. 레코딩 아카데미에 등록된 회사나 개별 회원이 직접 후보로 등록해야 한다. 올해 그래미에는 2만3,000개 이상의 작품이 제출되었다. 레코딩 아카데미의 전문가들은 이 모든 작품을 84개의 시상 부문으로 정리한다. 2020년 10월 12일까지 후보작 선정을 위한 1차 투표를 했고, 후보 검토 위원회를 거쳐 11월 24일 후보 명단을 발표했다. 그리고 12월 7일부터 1월 4일까지 최종 투표를 진행했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회원에게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투표할 것을 권장한다. 또한 음악 자체에만 판단 근거를 두고 상업적 성과, 개인적 친분 등을 배제할 것을 요구한다. 투표 결과는 외부 회계법인이 비밀리에 관리하고, 시상식에서 공개한다.

위켄드는 왜?
“이 노래, 이 앨범은 왜 후보에 없나요?”라는 질문의 상당수는 답이 같다. 2020년 9월 1일 이후 공개된 음악은 올해 그래미 후보가 될 수 없고, 2022년 그래미 후보 자격이 된다. 여기서 위켄드는 뜨겁고 거대한 예외다. 2021년 그래미 후보 명단에서 위켄드는 아예 배제되었다. 위켄드가 그래미 시상식 이틀 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출연하는 문제로 갈등을 겪은 것은 아닌가라는 해석이 있었지만, 이는 레코딩 아카데미가 가장 적극적으로 해명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위켄드의 슈퍼볼 하프타임 쇼 출연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이미 모든 투표와 후보 검토 위원회가 끝났다. 또한 레코딩 아카데미와 위켄드 측이 시상식 퍼포먼스에 대한 협의를 후보 발표 이전까지 몇 주에 걸쳐 진행 중이었다는 것도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것이 온전히 투표의 결과인지, 아니면 후보 검토 위원회의 판단인지도 알기 어렵다. 레코드 오브 더 이어 등 주요 4개 분야는 후보 검토 위원회를 거치며, 위원회의 검토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회원 투표에서 20위 이내에 들어야 한다. 위켄드가 이 조건을 만족했는지는 비밀이다. 다만, 올해 위켄드는 팝 장르로 분류되었는데, 팝 장르 후보는 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100% 투표 결과를 따른다. 위켄드와 같은 유력 후보가 투표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는 있다. 올해 위켄드 없는 시상식은 그래미 입장에서도 좋아 보이는 그림이 아니다. 하지만 레코딩 아카데미는 이 이상의 해명이나 설명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주목할 부문과 아마 당신이 궁금할 것들

1. 레코드 오브 더 이어 
빌리 아일리시가 수상하면,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이다. 이는 로베타 플랙과 U2에 이어 3번째 기록이다. 도자 캣의 ‘Say So’는 니키 미나즈가 참여한 리믹스가 아니라 오리지널 버전이 후보고, 메건 더 스탤리언의 ‘Savage’는 비욘세가 참여한 리믹스가 후보다. 왜냐하면 각 아티스트가 레코딩 아카데미에 그 버전을 후보로 제출했기 때문이다.
2. 앨범 오브 더 이어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하면, 동 부문에서 3번째다. 역대 4번째 기록이고, 여성 아티스트 최초다. 앞선 세 아티스트는 프랭크 시나트라, 스티비 원더, 폴 사이먼이다.
3. 송 오브 더 이어
빌리 아일리시의 ‘Everything I Wanted’가 수상하면,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이다. 송 오브 더 이어는 작사/작곡가에게 주어지는 상이므로, 빌리 아일리시와 피니어스는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수상자가 된다.
4. 베스트 뉴 아티스트
메건 더 스탤리언 또는 치카가 받으면, 로린 힐 이후 22년 만에 여성 힙합 아티스트 수상이다. 메건 더 스탤리언은 2019년에 이미 빌보드 핫 100 11위까지 올랐는데, 왜 (굳이 번역하자면) 신인상 후보인가? 그래미의 ‘뉴 아티스트’는 지난 1년간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아티스트를 뜻한다. 싱글이나 믹스테이프 정도가 아니라 정규 앨범을 몇 장 냈어도, 그래미가 ‘뉴 아티스트’라고 하면 후보가 될 수 있다.

보통 위의 4개 시상을 ‘주요 부문’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제너럴 필드(General Field)’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장르와 무관하게 수여하는 상이라는 뜻이다. 

 

5.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
위의 주요 시상보다 뜨거운 올해의 격전지. 저스틴 비버, 도자 캣, 빌리 아일리시, 두아 리파, 해리 스타일스, 테일러 스위프트 중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고, 누가 받아도 첫 수상이다.
6.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방탄소년단이 수상하면, 케이팝 아티스트 최초의 기록이다. 후보를 보면 알겠지만, 이 부문의 듀오/그룹이 꼭 애초에 ‘그룹’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방탄소년단 말고는 전부 피처링을 포함한 공동 작업이다. 실제로 동 부문이 2012년 시작된 이후 트웬티 원 파일럿츠와 포르투갈. 더 맨의 2회를 제외하면 모두 공동 작업이 수상했다. 한편, 레이디 가가가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받으면, 2년 전 브래들리 쿠퍼와 받은 것을 포함하여, 동 부문에서 각기 다른 사람과 듀오를 이뤄 수상한 최초의 기록이다.
7. 베스트 얼터너티브 뮤직 앨범
피오나 애플, 피비 브리저스 또는 브리타니 하워드가 수상하면, 여성 솔로의 3번째 기록이다. 벡이 수상하면 혼자서만 4번째다. 브리타니 하워드가 수상하면, 동 부문에서 그룹과 솔로로 2회 수상한 최초의 아티스트가 된다.
8. 베스트 랩 퍼포먼스
메건 더 스탤리언과 비욘세가 수상하면, 여성 아티스트 최초다.

공연
시상식은 곧 그해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의 공연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은 시상식 공연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팬데믹 초기, 많은 아티스트가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없는 무대를 어색하게 여겼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비대면은 무대를 만드는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회가 되었다. 이미 2020년에 열린 각종 시상식에서 다양한 실험이 펼쳐졌다.

가장 전통적인 예로는,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무대처럼, 관객이 없는 정도에서 촬영의 자유로움을 더한 수준이 있다. 도자 캣은 LED 무대(빌보드 뮤직 어워드), CG 가상 무대(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등으로 비대면 공연 연출의 모범을 보인 바 있다.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 선보인 ‘Say So’의 밴드 버전도 놓치면 아깝다. 더 나아가 포스트 말론(빌보드 뮤직 어워드), 위켄드(MTV 뮤직 어워드), 메건 더 스탤리언(BET 어워드)의 사례처럼, 아예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찍다시피 한 물량전도 있다.

그래미는 이 모든 사례를 충분히 지켜보았다. 그래미가 자신들의 권위와 명성에 걸맞은, 비대면 시대의 시상식 퍼포먼스에서 어떤 정점을 보여줄 것인가?

투명성과 다양성
올해 미국 사회, 음악 산업 그리고 그래미의 가장 큰 이슈는 투명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음악 산업은 #BlackLivesMatter 운동에 민감할 의무가 있다. 흑인 아티스트가 대중 음악에 기여한 지분을 봐도 그렇고, 그에 비하여 업계에 만연한 차별의 흔적 또한 그렇다. 이미 그래미 시상식의 인종 편향 문제로 관심을 받던 레코딩 아카데미가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은 당연하다. 지난 10월, 레코딩 아카데미는 인권 단체, 컬러 오브 체인지와 함께 #ChangeMusic이라 이름 붙인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의 핵심은 당연히 투명성과 다양성을 중심에 두는 공정함이다.

이미 그래미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역사적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왔다. 단적으로 레코딩 아카데미의 그래미 투표 회원 1만1,000명 중 1,345명, 약 12%는 올해 새롭게 투표 자격을 얻었다. 아카데미는 올해 약 2,300명에게 회원 자격을 새로이 권유했고, 그 중 1,700여 명이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신규 회원 중 40%는 여성이다. 47%가 백인 외의 인종이다. 55%는 40세 미만이다. 이 모든 숫자가 2019년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올해 몇몇 부문의 명칭을 변경한 것도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베스트 어반 컨템퍼러리 앨범은 베스트 프로그레시브 R&B 앨범으로 이름을 바꿨다. ‘어반’이라는 용어가 흑인 음악가를 소외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음악 업계에서 퇴출되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베스트 월드 뮤직 앨범은 베스트 글로벌 뮤직 앨범으로 바뀌었다.

투표 집단의 다양성 증대는 올해 후보만 봐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컨트리 같은 백인 중심의 장르에서도 어느 때보다 많은 흑인 아티스트가 후보에 올랐다. 모든 장르에서 여성 아티스트의 약진은 훨씬 선명하다. 베스트 록 퍼포먼스는 여섯 팀의 후보가 모두 여성이거나, 여성이 리드하는 밴드다. 물론 이 모든 아티스트는 음악적으로 자격이 있다. 베스트 얼터너티브 뮤직 앨범이 올해 가장 뛰어난 인디 록 앨범에 제대로 초점을 맞춘 것도 눈에 띈다. 브리타니 하워드, 치카, 아르카 등 록, 힙합, 댄스 전 분야에 걸쳐 LGBTQ 아티스트의 비중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결국 역사는 수상 결과를 기억할 것이다. 제이-Z가 그래미 후보에 80회 올라 퀸시 존스와 함께 역대 1위고, 비욘세가 79회로 폴 매카트니와 공동 2위지만, 많은 이들이 카터 부부가 그래미에서 더 좋은 결과를 거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투표에 의한 최종 결과를 온전히 통제할 방법은 없다. 올해 그래미의 결과를 유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종, 성별, 지역, 장르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