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장: FREEFALL’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곡은 단연 ‘물수제비’였다. 크게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음악에서 내가 주목하고 있는 록 음악의 색채가 옅어지지 않았다는 안도, 현재 인디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와의 협업에 대한 기대였다. 조나스 브라더스와 함께한 펑키(Funky)한 팝 싱글 ‘Do It Like That’, 신스 웨이브풍의 댄스 곡을 예고한 ‘Chasing That Feeling’과는 다른 방향의 노래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우린 잔잔한 강물에 모난 돌 던지기를 사랑해”라는 노랫말처럼, 이 노래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음악에 새로운 물줄기를 내어놓고 있다. 멤버들이 가장 아끼는 곡이라는 입소문과 함께 약간의 예고만으로도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를 부른 ‘물수제비’는 대대적인 홍보 없이도 10월 30일 기준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핫 100(HOT 100) 차트 45위에 올라 있으며, 스포티파이 글로벌 스트리밍 수는 340만 회를 넘는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세계가 록으로 한층 더 넓어졌다는 사실은 이제 K-팝 팬들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익숙한 사실이다. 일렉 기타의 디스토션과 심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베이스 소리, 거친 드럼 연주는 자유 낙하를 천명하는 ‘이름의 장: FREEFALL’ 이전에 다섯 소년들이 경험한 ‘혼돈의 장’에서의 성장을 도왔다. 아름다운 마법의 청소년기를 노래하던 ‘꿈의 장’을 과격하게 닫아버리고,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만든 ‘혼돈의 장’으로의 순간 이동 과정에 이보다 적합한 소리는 없었다.
그런데 그룹이 성장 서사만을 고려하여 록을 채택한 건 아니다. 환상적인 10대를 마무리한 ‘꿈의 장: ETERNITY’ 이전부터 세계의 Z세대들은 거친 악기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잿빛의 팬데믹 시기 10대들은 모든 게 엉망진창이라 푸념하지만 묘하게 긍정적이었던 2000년대의 유행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Y2K 리바이벌의 최전선에 나선 음악이 록, 정확히 말하자면 이모(EMO)로 통칭하는 음울한 팝 펑크였다. 스케이트보드 패션,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머리에 짙은 스모키 화장, 펑크 록 티셔츠를 동경하는 이들은 사춘기의 음울한 감정마저 다시 가져왔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K-팝에 이와 같은 록 흐름을 제일 먼저 그리고 본격적으로 도입한 그룹이다. 팝 펑크 로커 모드 선(Mod Sun)이 참여한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과 처연하고 애절한 일탈의 감정을 노래한 ‘LO$ER=LO♡ER’, ‘디어 스푸트니크’가 ‘혼돈의 장’을 장식했다. ‘minisode 2: Thursday’s Child’의 타이틀 곡 ‘Good Boy Gone Bad’는 2000년대 록의 정서를 체화하여 콘셉트를 강화한 K-팝이었다. 만약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장르 그룹이라면 Y2K 록 음악에 좀 더 몸을 맡기고 유사한 음반을 더 내놓으며 이미지를 확실히 가져가는 선택도 나쁘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록은 형식에 머무르는 대신 정서와의 연결로 듣는 이들을 설득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에게 록 음악은 자아실현을 위한 투쟁의 과정 중 각성의 장치로 기능한다. 유혹의 네버랜드 ‘Sugar Rush Ride’를 떠난 이들은 대기권으로 진입하며 뜨거운 열기와 현실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메탈 기반의 하드 록 ‘Growing Pain’은 ‘이름의 장: FREEFALL’의 포문을 여는 곡이다. “끝없는 낙하 성장의 증거”는 온몸을 할퀴며 “피가 흐르고 뼈가 부러진대도” 도달해야 하는 아무것도 약속해주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추락한 세계 위에서 소년은 단단히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한 꺼풀 껍질을 뚫고 날개를 펼치기 위한 아픔의 시간을 공격적인 소리가 대신 포효한다.
덕분에 소년은 미련 없이 떠나온 과거의 흔적을 밤하늘에서 더듬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다짐하고 (‘Dreamer’),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CROWN)’의 낯선 이질감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정하며 성장한다(‘Deep Down’). “정답은 없는 현실 / 수없는 선택지 나의 몫이지”를 깨달은 이들의 미소는 ‘Happily Ever After’가 아니라도 아름답다. 유한한 세속의 즐거움이다.
깨달음의 끝에서 마주한 ‘물수제비’는 다르다. 수면 위로 통, 통,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나아가는 돌멩이를 바라보며 다섯 청년은 “우린 잔잔한 강물에 모난 돌 던지기를 사랑해 / 아픈 시간일 걸 알아 / 그럼에도 다른 돌을 쥐네”라 웃어 보인다. 상처 입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 타인과 부딪칠 일 없는 진공의 시간에서도 행복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부유하는 시간과 방황 끝에 도달한 넓은 세상이 더 근사한 나를 만들 수 있다. 이 노래에서 록은 성숙과 치유의 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작가는 2000년생 싱어송라이터 한로로다. 대학 재학 중인 한로로는 포스트 팬데믹 시기로 향하는 첫 문턱 앞 불안한 새 세대의 정서를 봄맞이에 빗댄 노래 ‘입춘’으로 순식간에 인디 록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로로의 세계 속 노래하는 이는 어둡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힘겹게 삶을 이어 나가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거울’, 사랑의 감동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지 갈등하는 ‘당신의 밤은 나의 밤과 같습니까’, 지독한 후회로 가득한 ‘자처’가 연약한 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진다. 표현 방식은 다르더라도 한로로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동일한 20대를 살고 있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고독했다.
이제 그들은 치열한 자기 의심과 갈등 끝 이상향에 도달한 듯하다. ‘물수제비’가 공개되기 전 한로로가 처음으로 내놓은 EP ‘이상비행’은 마침내 발견한 젊음의 낙원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주인공을 그렸다. ‘이름의 장: FREEFALL’에서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역시 현실에의 강림에 일말의 주저함이 없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들의 확신에 찬 목소리 사이 코러스로 참여한 한로로의 목소리가 어색하지 않고, 한로로가 커버한 ‘물수제비’ 영상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들과 어깨동무하고 합창하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수빈이 앨범 인터뷰에서 “제가 그분 노래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본인 노래를 주신 건가 싶을 정도로 한로로 같은 음악을 주셔서 들었을 때부터 너무 좋았어요. 제가 자주 듣고 부르는 장르를 녹음할 수 있다는 게 재밌고 편했던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돌멩이도 난 뭐 좋은 것 같아. 그저 굴러가는 게 나만의 Rock ‘n’ Roll”. ‘이름의 장: TEMPTATION’의 ‘Tinnitus (돌멩이가 되고 싶어)’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있었다. 끝없는 비교와 갈등, 반목과 혐오의 세상에서는 쾌락과 중독이 일시적인 탈출구처럼 보인다. 다행히 록은 그들을 그저 굴러다니게 가만 놔두지 않는다. 강렬한 소음으로 영혼을 씻고, 유한한 청춘에 무한한 활기를 공급한다. 목이 쉴 정도로 힘차게 소리치며 가슴속 울분을 모두 토하게 만든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한로로가 물위로 던진 젊음의 미련이 수면 위를 통통 튀기며 저 멀리 끝까지 날아간다. 잔잔히, 얇고도 멀리 퍼지는 청춘의 아름다운 물결을 만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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