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진이 르세라핌의 멤버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미국 뉴욕에서 10대 시절을 보내다 한국에 와서 아이돌이 되기 위한 연습생 생활을 했고, Mnet ‘프로듀스 48’에 출연했지만 데뷔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다시 미국에서 생활하던 중 한 번 더 제안이 와서 한국에 왔고, 르세라핌의 멤버가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이지만, 뉴욕에서 서울로 오기까지 윤진의 삶은 정말 청춘물의 주인공처럼 흥미진진하고, 어떤 고비에도 포기하지 않는 에너지가 있다. 다재다능하던 뉴욕에서의 학창 시절부터 르세라핌 멤버로 데뷔, 그리고 직접 만든 곡 ‘I ≠ DOLL’에 이르기까지 윤진의 현재를 만들어온 것들에 관한 이야기.
제니퍼 허(Jennifer Huh)의 학창 시절
제니퍼 허라는 이름으로 뉴욕에서 자랐던 윤진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예나 지금이나 욕심이 많은 야망 걸”이다.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프랑스어를 배우고 합창단 활동을 하는 사이 육상 종목인 허들을 배우는 한편 드라마 클럽에서 연극과 뮤지컬을 배울 만큼 매년 새로운 동아리 활동을 했다. 게다가 필드하키 팀 캡틴까지 할 정도였다. 특히 뮤지컬은 성악을 했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오페라와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다 고등학교 진학 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첫 작품인 ‘오페라의 유령’에서 맡은 카를로타 역으로 2017년 뉴욕주 고등학교 대상으로 개최한 대회 ‘HSMTA’에서 여우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까지 했다. 하이틴 소설 주인공 설정이나 다름없는 윤진의 이런 다재다능하고 에너지 넘치는 학창 생활은 르세라핌 활동에까지 영향을 주는데, 2022년 ‘SBS 가요대전’에서는 오페라 ‘카르멘’의 ‘Habanera’를 열창했고 같은 해 ‘멜론뮤직어워드’의 ‘THE HYDRA+TRAILER’에서는 자신의 운동 능력을 살려 무대에서 텀블링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저의 생각과 성격과 목표들에 어릴 때 경험한 것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서 그때의 윤진이가 너무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다. 또한 윤진은 ‘FIM-LOG’에서 읽고 있는 책들을 자신의 생각과 함께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일부 구절을 낭독하는 등 꾸준히 독서를 하고 있고 그림 그리기, 운동, 패션, 사진 촬영 등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으며, 르세라핌 멤버들 중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쿠라와 말이 통할 만큼 애니메이션에도 관심이 많다. 정말 관심 있는 모든 분야를 배우고 즐기는 “야망 걸”이다. 그리고 하나 더. ‘I ≠ DOLL’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캐릭터는 허윤진이 직접 그린 것이다.
K-팝 아이돌
다재다능한 “야망 걸”의 꿈이 다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윤진은 한때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도 했고, 필드하키 프로 선수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무대에 서는 것과 창작하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프로 뮤지션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르세라핌의 다큐멘터리 ‘The World Is My Oyster’에서도 말한 것처럼 미국에서 아시아계 아티스트가 활동할 수 있는 폭이 얼마나 넓을지에 대해 고민했고, 이로 인해 좌절감을 느끼던 중 방탄소년단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출연한 모습에 용기를 얻어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멋진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K-팝에 도전했다. 이후 그의 데뷔 과정은 ‘The World Is My Oyster’에서 말한 그대로다. “내가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잠깐이나마 경험해보고 나서 그걸 포기하는 게 사실 정말 힘들었어.” 연습생 시절을 거쳐 ‘프로듀스 48’ 출연으로 데뷔를 꿈꿨지만 실패했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진로를 고민했다가 결국 다시 한국에 와서 르세라핌의 멤버가 됐다. 그리고 그 시간 사이에는 ‘The World Is My Oyster’에서 잠깐 볼 수 있듯 춤을 어색하게 추던 그가 어느덧 고난이도의 동작들이 이어지는 르세라핌의 안무를 무리 없이 소화하기까지 쏟아부었던 노력이 있다. 르세라핌은 지난해 ‘멜론뮤직어워드’에서 베스트 퍼포먼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윤진은 ‘The World Is My Oyster’에서 “저를 딱 봤을 때 ‘얘 자신감이 왜 이렇게 많아? 왜 이렇게 당당해? 장난 아니다.’ 이런 반응이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는데, 이 자신감은 타고난 재능에 노력을 더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좌절과 노력의 역사가 함께 있다. 정말 ‘성장 서사 제대로인 주인공’ 같지 않은가.
너가 햇빛이니까
르세라핌의 멤버 은채가 셀카를 찍으려는 순간 햇빛이 사라지자 윤진이 “너가 햇빛이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은 르세라핌의 팬덤 피어나에게는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또한 채원이 자신의 부은 얼굴을 보고 “어떡하냐?”며 걱정하자 고민도 없이 “어떡하긴, 사랑해줘야지.”라는 말을 건네는 그의 모습은 로맨스 소설에서 툭 튀어나온 주인공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만큼 윤진은 르세라핌 멤버들에게 마치 부스터처럼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의 크레이프 가게에서 ‘FEARLESS’가 나오자 흥에 못 이겨 크레이프를 쥐고 혼자서 미니 콘서트까지 펼칠 수 있는 윤진의 성격은 ‘쾌녀’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카즈하는 윤진의 가장 큰 장점을 “쏟아지는 에너지”로 꼽았고, 대학 축제에서 우렁찬 성량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윤진의 모습에 채원은 “윤진이 덕분에 저희도 텐션이 막 올라가요.”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유쾌, 당당, 쾌활한 윤진의 멋진 캐릭터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서 완성된다. 이를테면 르세라핌의 앨범 활동 종료 후 떠나는 단체 여행을 담은 ‘LE SSERAFIM’s DAY OFF Season2 in JEJU’에서 카즈하가 방에서 혼자 운 적이 있다는 말에 귀 기울이거나, 자기 몸에 기댄 채원이 편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의자 높이를 조절하기도 할 때 말이다. 스스로 밝게 빛나면서 동료들도 “햇빛”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니, 픽션이라면 ‘설정 과다’라 할 만하지 않을까.
윤진의 음악
윤진은 ‘리무진서비스’에서 고등학교 재학 시절 뮤지컬에서 불렀던 노래를 짧게 재연했고, 성악 발성으로 ‘Think Of Me’를 부르기도 했다. 또한 그는 피아노, 기타, 우쿨렐레를 사용해 작곡을 한다고 밝히기도 하는 등 자신이 르세라핌의 멤버가 되기까지 음악적 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악에 대한 그의 많은 관심 중에서도 작사와 작곡은 특히 중요한 비중을 갖는다. 윤진은 열 살 때 테일러 스위프트의 영향을 받아 처음으로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인종으로 인해 미국에서 아티스트 활동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작사와 작곡을 시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음악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에서 큰 감동을 받았고, 자신이 표현하는 멜로디와 가사, 감정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주는 역할을 했다. 이는 르세라핌에도 그대로 이어져 윤진은 데뷔 앨범 ‘FEARLESS’의 수록 곡 ‘Blue Flame’, 미니 2집 ‘ANTIFRAGILE’의 수록 곡 ‘Impurities’, ‘No Celestial’, ‘Good Parts (when the quality is bad but i am)’의 작업에 참여했고, 르세라핌 데뷔 100일을 기념해 첫 자작곡 ‘Raise y_our glass’를 공개했다.
‘Raise y_our glass’는 같은 꿈을 향해 모인 르세라핌 멤버들, 응원해주는 팬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않은 자신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감사한 마음으로 쓴 곡으로, 데뷔 전 어느 날 윤진이 회사의 보컬 룸에서 즉석으로 솔직한 생각과 모든 감정을 끌어올려 완성시켰다. “제가 생각도 많고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은데, 음악으로 풀어낼 때가 제일 진솔하게 느껴진단 말이에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음악 말고는 딱히 없거든요. 그래서 음악으로 풀어내다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이 술술 나오더라고요.” 윤진의 일상을 담은 영상 콘텐츠 ‘[FIM-LOG] 윤진 브이로그 #3 l 윤진이의 꾸밈없는 일상, 100일 비하인드🎵’에서 그가 한 말은 음악이 그에게 갖는 의미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리무진서비스’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잘 소화해낼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자신이 쓴 곡을 원하는 대로 부르고 싶어 하는 보컬리스트가 되는 것 또한 원한다. 자기 생각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르세라핌의 멤버. 자신의 다재다능함 중 윤진이 선택한 그의 길이다.
‘I ≠ DOLL’
지난 9일 허윤진이 ‘Raise y_our glass’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한 자작곡 ‘I ≠ DOLL’은 윤진이 직접 설명한 것처럼 데뷔 후 몇 달간 직접 겪거나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본 일들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인 시선들을 “어제는 인형 같고 오늘은 이년이라 해”, “쪘네”, “안 빼고 뭐 해?” 같은 가사로 옮기고, “무시마 my voice”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윤진은 “가사를 쓸 때 솔직함이 최우선이에요.”라고 말했을 만큼 곡을 쓸 때 솔직한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르세라핌 멤버로 소개된 첫 영상 ‘LESSERAFIM HUH YUNJIN’에서 “I wanna change the idol industry.”라고 말한 자신의 포부와 연결되는 부분일 것이다. 그가 음악계를 바꾸고 싶다는 건 세속적인 성공 이전에 자신과 같은 아이돌이 원하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그렇다고 노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크고, 진지하고, 섬세한 야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뜨거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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