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제이홉: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 해 내내 롤러코스터 같았어요. 첫 단추는 그래미 공연부터 시작해서 너무너무 좋았고, ‘MAP OF THE SOUL: 7’이 나왔고, 그렇게 좋았다가 확 내려간 거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되고, 또 공부하게 되고, 그러면서 ‘Dynamite’라는 멋진 곡을 만나서 좋은 성과도 이뤘고. 이런 과정들의 반복이었어요. 롤러코스터가 무섭기도 한데, 끝나고 나면 자꾸 생각나기도 하잖아요. 올 한 해가 딱 그랬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무서웠지만 기억에 남을.
‘Dynamite’로 빌보드 HOT 100 1위를 하는데, 정작 미국은 가지 못한 것도 기억에 남겠어요.
제이홉: 그래서 처음 1위할 땐 차트 확인도 못 했어요. 자고 있었거든요. 일어나서 확인해보니까 정말 1위를 한 거예요. 그런데 바로 스케줄 갔어요.(웃음) 한국에서 녹화를 해야 하니까. 상황이 상황이라 기쁨을 다 만끽하진 못했지만, 다 같이 좋아하던 순간이 있어서 만족해요.
그런 한 해를 겪으면서 ‘BE’를 만들었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겠어요.
제이홉: 저는 방탄소년단의 앨범을 만들 때는 온전히 팀의 앨범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방탄소년단의 앨범이면서도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내 음악으로 해본다고 생각하면서 제 자신을 녹였어요.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색깔과도 잘 어울렸고, 팀의 에너지가 들어오면서 더 큰 시너지도 있었어요.
그런 방향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제이홉: “우리가 모여서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냐?” 라는 게 이번 앨범의 시작이었어요. 이야기 끝에 결국 나온 건, “그래도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하고 포기할 수는 없는 거잖아.”였어요. 그러면서 ‘Life Goes On’이 나왔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작업했어요. 팬데믹을 겪으면서 저희가 느꼈던 감정들을 그대로 담아서 더 날것의 느낌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이홉: 따로 무슨 계획을 세우지 않았어요. 트랙을 듣고 “이거 해보고 싶은 사람 있어?” 하고 물어보면 “나! 나 해보고 싶어.” 이런 식으로 결정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이 부딪히기도 했죠. 각자 목소리가 커질수록 교집합을 찾기 힘드니까요. 그런데 저희가 워낙 소통이 잘돼서, 서로 포기할 줄도, 감사할 줄도 알아서 유닛 곡들까지 순조롭게 정해졌어요.
각자의 곡은 어떻게 선택했나요? 제이홉 씨의 ‘병’도 실렸는데.
제이홉: 연습실에서 작업하다 “그 트랙 별로이지 않았어? 그때 정국이 트랙 좋던데.” 이러면서 즉흥적으로 바뀐 곡도 있어요. 녹음까지 했다가 저희가 회사에 말해서 바꾸기도 했고요. 모두 모여서 곡을 듣고 “야 이 곡 어때?” 하면서 결정했고요. 그러면서 ‘Life Goes On’이 나왔고, ‘병’은 앨범에 들어갈지 몰랐어요. 7명 각자 작업했던 곡들을 PM(프로젝트 매니저)인 지민이한테 보냈는데, 멤버들이 듣고 회사 내부 모니터링도 거쳐서 해보자고 제안받았어요. 멤버들이 느낄 수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병’이란 테마는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가요?
제이홉: 일단 ‘아, 이 곡은 병이다.’라고 생각하고 싶었어요. 작업할 때 후렴구를 먼저 작업하고, 앞부분의 벌스를 작업해요. 그런데 후렴구를 쓸 때 곡은 경쾌하지만 주제가 너무 가벼우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제 감정도 그런 감정이 아니었고. 그런데 ‘병’ 자체가, 주제는 가볍지만은 않은데, 비트에 녹였을 때 너무 우울하지 않게 그 병을 이겨내려고 하는 느낌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후렴구 작업을 하면서 스크래치도 넣고, 입으로 “뱝뱝뱝!” 하다 보니까 이 곡은 제목으로 ‘병’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일에 대한 애증을 병으로 표현한 곡을 쓴 건 의외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름처럼 홉, 희망을 떠올리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걸로 생각하잖아요.
제이홉: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까 일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죠. 근데 갑자기 많은 일을 할 수 없게 된 거죠. 일할 때는 ‘아 쉬고 싶다.' 했는데, 쉬어보니까 제 입에서 “아 일하고 싶다.”라고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해본 거죠. ‘이게 왜 불편하지? 그냥 쉴 땐 쉬면 되는 건데, 왜 이 상황에 계속 일을 해야 될 것 같지? 직업병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지금 이 순간에만 표현할 수 있는 나의 한 부분 같았어요.
제이홉: 활동하면서 입버릇처럼 “난 괜찮아, 희망적이니까.”라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일에서 생기는 문제를 이겨내기보다는 회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음악이 좋은 게 제가 하고 싶은 말들, 어쩌면 우울하고 슬픈 감정들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제가 그걸 늘 표현을 안 하다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거죠.
일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드나 봐요.
제이홉: 일이요? 하... 사실 모르겠어요. 일이라는 게 미운 오리 새끼 같기도 해요. 일이 주는 좋은 에너지도 있는 반면에 쉬어야 받는 에너지도 있고, 그런데 저란 사람 자체는 일을 하면 살아 있음을 많이 느끼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움직이고 싶고, 하고 싶고, 안 하면 불안하고, 하면 보람이 있고. 정말 가끔 일을 안 하고 싶지만 또 안 할 수는 없고.
‘일하고 같이 가는 거지’라는 거군요.
제이홉: 맞아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워지더라고요. 너무 깊이 생각해도 어렵고. 저라고 마냥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최대한 그렇게 노력하려고 해요.
단순한 생각을 유지하는 게 이미 단순한 일이 아니겠어요.
제이홉: 그렇죠. 저에게 큰 시련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그에 대한 불안감도 항상 있어요. 진짜 큰 시련이 왔을 때, 어떤 식으로 내 자아가 형성될까 하는 불안.
제이홉: 그것도 맞아요.(웃음) 근데 팀의 일은 저만 힘내자고 하면 잘 안 됐을 거예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이 발동하는 거니까요. 저만 “가자!” 이랬으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6명한테 진짜 더 고마운 거고.
그런 감정의 변화들이 음악에는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제이홉: 이번에는 너무 밝은 곡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좀 부드러우면서 이 시기의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병’ 말고도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을 선택했어요. 멤버들도 “그래, 밝은 곡을 많이 했으니까 이런 스타일도 해보면 괜찮겠다.”고 조율을 해줬죠. ‘Blue & Grey’도 그렇고요. 그 곡 너무 좋아요.
‘Blue & Grey’에서의 랩에서 목소리가 새롭더라고요. 감정이 바뀌면서 하고 싶은 랩 스타일도 달라진 걸까요?
제이홉: ‘Blue & Grey’는 진짜 말하듯이 하고 싶었어요. 제 목소리를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이번 작업으로 그걸 많이 느끼게 됐고, 남준이 도움도 많이 받았죠. 제 파트 다음이 남준이라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해서 시도하면 남준이가 의견을 주면서 만들었어요.
기존 스타일을 벗어나 보니까 어때요?
제이홉: 되게 신선해요.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어울리는 것 같고. ‘아, 나도 이런 느낌을 한 번 내보면 좋겠다.’고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BE’가 다른 길의 첫 발걸음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도전한 부분도, 신선한 부분도 있어요.
제이홉: 이번에는 뭘 과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있는 그대로, 내가 내 입에서, 이 리듬에 맞춰서 나오는 그대로 해보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일단 ‘병’처럼 긴 벌스를 오랜만에 해서 신선했고요. 저희 곡에서 랩을 할 때 네 마디, 여덟 마디 정도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하고 싶은 대로 ‘열여섯 마디 벌스를 채워보겠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것보다 가사가 먼저 많이 나왔고요.
‘병’의 비트는 경쾌하잖아요. ‘난 사실 좀 이런 문제가 있어.’라고 말하는 걸 신나게 푼 건데, 그 균형이 재밌었어요. 뭔가 선을 지키는 건가 싶어서.
제이홉: 그런 게 있었어요. ‘뭔가 선을 지켜야 될 것 같은데?’ 이것도 병인 것 같아요.(웃음) 제이홉이란 사람이 너무 한쪽으로만 빠져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름의 기준에 맞춰서 작업한 건데, 저도 사람이다 보니 말 못 했던 감정들을 음악으로 표현한 거죠.
선을 넘어보고 싶진 않아요?
제이홉: 한 번쯤은 생각해보죠. 해보고도 싶은데, 사실 제 인생, 마인드 자체가 ‘그래도 선은 넘지 말자. 그게 어떤 부분이 됐든.’ 이런 게 있어요. 그래도 음악적으로는 선을 넘는 것에 많이 관대해지고 있어요.
아직 선을 넘지는 않았는데, 본인은 ‘나도 다른 게 있는데.’ 하고 넘어서고 싶어 하는 순간이네요.
제이홉: 맞아요. 그게 되게 필요한 시점이에요. 너무나 운 좋게도, 사람들을 잘 만나서 좋은 성과도 얻고, 이 자리에 온 만큼 더 많은 것들을 스스로 시도하고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그래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고,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제이홉: 생각하기 나름이잖아요. 음식이 하나 있는데, 혼자 먹으면 외로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잠시 잊고 이 음식이 밖에서 먹는 음식이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 또 그런 음식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 안에 있는 게 외롭지만 하나의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이입했어요. ‘이 방은 내 세상이다.’라고 생각해서 배달 음식을 먹어도 호텔 스리스타 음식이라고 표현하는 거죠. 말 그대로 ‘내 방을 여행하는 방법’이니까, ‘나는 어떤 식으로 이 시기를 견뎌왔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어요.
‘생각은 생각이 바꾸는’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제이홉: 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 내가 이 자리에 있으니까, 이 위치에 있으니까 짊어져야 하고, 내 그릇에 다 담는 행동과 생각들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생각이 많이 정리됐어요. 그래서 힘들었던 시기에도 할 수 있는 게 뭔지, 팀에서 이 친구들한테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뭔지 생각했어요. 아직도 그 과정 중이라는 생각도 들고, 계속해서 ‘ing’여야 하고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알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많이 사랑받는다는 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제이홉: 한 사람한테만 사랑받아도 너무 좋잖아요. 단 하나의 사랑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데, 그 사랑을 전 세계에서 받는 거니까요.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 거죠. ‘와, 이 사랑을 내가 어떤 식으로 다시 표현해야 하지?’ 하면서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을 만큼 감사해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매 순간 표현하고 싶은 것 같아요. 어떤 방식이 됐든.
얼마 전에 ‘롤링스톤 인디아’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는 데뷔가 성공의 의미라고 생각했다고 했어요. 상업적으로 성공에 성공에 성공을 거듭한 지금은 성공의 의미가 뭘까요?
제이홉: 성공…. 단순한 말이기도 하고, 묵직한 말이기도 해요. 모든 생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만족하면서 사는 게 지금의 성공인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되고 힘들어지는 순간, 너무 우울하기 마련이거든요.
즐길 수만은 없을 때도 있잖아요?
제이홉: 그냥, 되게 단순해요. 지금 못하면 나중에 하면 되지. 그러면 생각이 가벼워지더라고요. 그게 오래 재밌게 보낼 수 있는 인생 계획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20대에 못 했던 걸 40대에 해볼 수도 있고. 물론 팔팔한 지금(웃음) 해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겠죠. 그런데 지금 이 위치에 있다면 감수해야 할 부분이에요. 지금 즐기지 못하면 나중에 해보고. 그때 가서 느끼는 건 또 다를 거니까. 네, 그런 식으로 좀 버틴 것 같아요.
제이홉: 팀으로서는 당연히, 이건 너무 명확하죠. 그냥 팬이에요. 아미. 팬 여러분 때문에 우리는 이겨내야 된다는 게 있었어요. 어떤 순간에도 팬 여러분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우리가 뭔가 놓치거나 힘들다고 안 하고 싶을 때 그분들이 받게 되는 상처를 하나하나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제가 스무 살에 데뷔를 했어요. 사회생활도 잘 몰랐을 때죠. 그런데 팬분들이 저희에게 주는 메시지가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됐어요. 보내주시는 편지를 보면 ‘아, 이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하면서 많이 배운 게 있었어요. 팬이라는 건 정말 아티스트와 하나인 거예요.
‘Life Goes on’에서 ‘세상이 다 변했대 다행히도 우리 사이는 아직 여태 안 변했네’라는 가사가 생각나네요.
제이홉: 네 맞아요. 윤기 형이 쓴 건데, 그걸 보고 ‘어? 되게 표현 잘했다.’ 싶었어요. 윤기 형 정말 잘해요.(웃음) 그게 저희와 팬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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