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규가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동시에 치열하게 싸우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몇 달 전 MBTI 재검사를 하고 I(내향형)로 바뀌었다고 전했어요.

범규: 멤버들이랑 있을 때는 전과 비슷하긴 한데, 데뷔하고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엔 휴가를 받으면 무조건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서 쇼핑을 하더라도 밖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데뷔하고 나선 친구를 만나러 나간 적이 손에 꼽혀요. 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그 자리가 너무 기대됐거든요. 이제는 그런 상황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늘 외부에 노출되는 직업이다 보니까 개인적인 시간은 조용히 혼자 보내는 게 좋아졌어요. 그 무의 상태를 즐기는 것 같아요.(웃음)

 

상반되는 에너지가 공존하는 것 같아요. 예능 촬영처럼 활력이 필요한 순간에는 즐거운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조성하잖아요.

범규: 만약에 세 시간 동안 예능 촬영이 있다고 치면, ‘그 시간 동안은 미친 척하면서 제대로 하고 와야겠다.’라고 혼자 마인드 세팅을 해요. 요즘은 촬영을 하면서도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예능을 좋아했고 예능에 욕심이 있기 때문에 몸을 사리지 않으려고 해요. ‘1박 2일’을 진짜 재밌게 봤었는데 거기선 출연자들이 아예 몸을 안 사려요. 없던 미션도 본인들끼리 “이거 해서 지면 얼음물에 입수하자.” 하면서 콘텐츠를 중간중간 계속 만들거든요. ‘진짜 예능은 몸을 안 사릴수록 재밌는 거구나.’라는 걸 그때부터 터득했던 것 같아요.

 

예능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만큼, 외부 예능을 할 때 책임감을 더 느끼기도 하나요?

범규: 그건 좀 있는 것 같아요. 멤버들이 낯가림이 심한 편이기도 하고 예능에 대한 부담감을 어느 정도 갖고 있거든요. 언젠가 태현이가 “저는 형이 늘 예능에서 캐리해주니까 너무 고맙다. 형만 믿고 따라가겠다.”는 말을 계속 해줬던 때가 있었어요. 그게 어느 순간 책임감으로 다가와서, ‘이거 내가 무조건 캐리해야된다.’(웃음) 이런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멤버들 에너지도 끌어올리고, 나도 즐기면서 재밌게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고 있어요. 어떤 분야든 노력 없이는 안 되는 걸 아니까 예능 하나 찍을 때마다 구성안을 계속 보면서 ‘음, 이런 분위기구나.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것들을 항상 고민하고 있고요.

연말 무대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2022 MMA Behind’에서는 사녹 무대 재촬영을 자진해서 요청할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어요.

범규: 매 시상식 때마다 저희는 진짜, 진짜 모든 걸 갈아 넣어서 준비해요. 이번에는 특히 투어 중에 전쟁같이 준비했기 때문에 무조건 무대가 잘나와야 했어요. 그런데 시상식은 항상 변수가 많아서 저희가 200만큼 준비를 해도 어떻게 나오게 될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기회가 있는 상황이면 생각했던 무대 이미지와 다르게 나왔다거나, 우리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을 땐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멤버들 모두 무대에 대한 욕심이 크기 때문에 본인은 만족스러워도 다른 멤버가 아쉬워하면 군말 없이 “그래, 한 번 더 하자.” 하면서 따라줘요. 모두가 문제 없어야 완벽한 무대가 나오는 걸 아니까요.

 

당시 장미에 라이터를 붙여 뒤로 던지는 퍼포먼스를 현장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이 컸겠어요.

범규: 사실 그 부분이 킬링 파트라고 생각했거든요. 한 5초 안에 장미랑 라이터를 꺼내서 연기까지 해야 하는데 옷 안에서 장미가 다 부서져서 안 꺼내지는 거예요.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임기응변으로 라이터만 쳐다보다 뒤로 던지는 척만 했어요. 멘탈이 반쯤 나간 상태였는데(웃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마인드로 하긴 했죠. 너무 아쉬웠지만 유독 이번에 주변에서 무대 잘했다고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요. ‘그래도 우리가 독기를 품고 준비한 만큼 무대 퀄리티가 괜찮았구나.’라는 생각에 위안이 됐어요.

 

‘2022 SBS 가요대전’에서 선보인 방탄소년단의 ‘DNA’ 커버 무대에서는 평소 뷔 씨의 무대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온 게 드러나면서도 범규 씨에게 굉장히 어울리게끔 소화했다는 반응이었어요.

범규: 헤헤.(웃음) 저는 항상 형들 커버는 되게 욕심이 나요. 잘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이번에도 무대 영상을 진짜 진짜 많이 찾아보면서 준비했거든요. 원곡만큼 할 수는 없어도 최대한 똑같이 하려고 형의 표정 연기부터 시작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애티튜드, ‘이 곡에서 어떤 걸 표현하고 싶어 하셨을까?’를 계속 계속 생각하면서 연구를 했어요. 끝나고 좋은 반응들이 많아서 내심 뿌듯했죠.

무대에서의 표현력에 특히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인데, 경험이 쌓이면서 터득한 범규 씨의 연구 방식이 생겼을까요?

범규: 저는 어떤 곡이든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을 안 잊으려고 노력하거든요.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안무 시안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면서 ‘여기선 이런 표현을 해봐야겠다. 여기는 진짜 잘 살리고 싶다.’ 떠올랐던 생각들을 베이스에 두고 연습을 해요. 그러다 보통은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물을 찍을 때 제일 많이 늘고요. 카메라에 잡혔을 때 어떤 모습이 나오는지를 확인하고, ‘어, 이건 이렇게 하면 더 괜찮을 것 같은데?’ 하면서 스스로 수정을 진짜 많이 해요.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 ‘Sugar Rush Ride’를 대입해 설명하자면요?

범규: 이번 곡은 진짜로 애티튜드가 중요한데, 약간 ‘섹시한 미친놈’ 같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예를 들어 “이리 와서 더 업고 놀자 더” 파트에서 원래는 되게 진지한 분위기를 가져갔거든요. 근데 촬영을 할 때 거기서 조금 더 미친놈처럼 해봤단 말이에요.(웃음) 막 웃다가 마지막에 딱 손을 튕길 때만 정색을 하면서 ‘단짠단짠’한 느낌이 나게끔 하는 요소를 추가해봤는데, 그렇게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훨씬 더 좋아서 수정을 하기도 했어요. 이런 식으로 다르게 시도해보면서 더 괜찮은 결과물을 찾아나가는 중이에요. 보컬의 경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도입부에 “생각은”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뭔가 편할 만큼 낮지도 않고, 가슴을 쓸 만큼 높지도 않아서 저한텐 되게 애매한 음이에요. ‘생’이랑 ‘각’이 발음도 애매해서 이어서 부르면 막히는 느낌이 들거든요. 거기서 조금 애를 먹기도 했고, “Gimme gimme more”도 세 단어뿐이지만 그 안에서 목소리는 낮추면서 섹시하게 긁어야 되고, 끝처리할 땐 퍼지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디테일하게 감정을 살리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어요.

 

작사를 한 ‘Happy Fools (feat. Coi Leray)’에서는 무엇을 표현했나요?

범규: 프리코러스 1절, 2절의 “난 마치 butterfly / 일만 하는 꿀벌은” 파트를 제가 썼는데요. 저도 그 버터플라이가 된 적이 있거든요.(웃음) 데뷔하고 나서 한동안 매일 똑같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것 같은 생활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딱 그때의 기분을 썼어요. 매일 아침에 출근하고, 퇴근하면 이미 해가 져 있을 때 나도 노을 지는 풍경을 보고 싶었던 그 마음이요. 개미나 꿀벌은 쉼 없이 일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지금 지고 있는 노을이 얼마나 예쁜지도, 바람이 얼마나 선선하고 기분 좋게 부는지도 모르고 놓치고 사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매년 행복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범규 씨에게 지금 시점에서는 행복이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범규: 사실 이게 요즘 다시 어려워졌어요. 전에는 주변에서 쉬운 것들을 통해 행복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요즘엔 막연한 행복을 좇기보다는 지금 당장 마주한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요즘 같이 바쁜 시기엔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한계가 있으니까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올 수 있잖아요. 그런 감정에 휩쓸리고 나면 나중에 늘 후회하게 되고요. 그런데 잠깐의 감정을 다스리고 이겨내면 어쨌든 시간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고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져요. 그런 연습을 최근에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껴요.

 

환경이 나를 좌지우지하게 두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거네요.

범규: 맞아요. 허허.(웃음) 그래서 요즘은 약간 득도한 것 같은 상태예요.(웃음) 감정들을 많이 내려놨고, 당장 어떤 고민이나 생각을 갖고 있기보다는 멤버들과 이번 앨범 활동을 잘해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남 신경 안 쓰고,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건강하고 재밌게. 그렇게 활동하고 싶어요.

 

최근에 수빈 씨가 범규 씨로 살면 인생이 재밌을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어요.

범규: 근데 저는 멤버들 덕분에 재밌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한 시기를 보낼 때도 항상 멤버들 덕분에 즐겁고, 힘이 나거든요. 제가 팀이 아니라 개인으로 활동했다면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멤버들에게 의지를 많이 해요. 이제는 멤버들이 진짜로 가족 같아요.

 

범규 씨가 늘 어린 시절 대구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추억이 지금의 행복을 유지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범규: 추억이라는 걸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음악이기도 하잖아요. 아무리 힘든 상황에 있어도 추억과 관련된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기억이 나면서 잠시나마 행복해져요. 제 커버 곡 ‘Wonder’를 다시 들을 때조차도 그 시기에 생각했던 것들, 고민했던 것들, 감정들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저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신나는 노래보다는 오히려 잔잔하거나 슬픈 노래를 들으면 공감받는 기분이 들고, 위로가 필요한 감정에서 천천히나마 헤어나올 수 있게 되고요.

 

아버지께서 그걸 아셔서 범규 씨에게 플레이리스트 ‘WHEN COOKEY SLEEP’를 만들어주셨나 봐요.

범규: 아버지랑 음악 플랫폼을 같이 쓰는데, 예전부터 종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주시곤 했어요. 잘 때 들으면 좋을 음악이나,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음악들, 이런 섹션들을 나눠 만든 플레이리스트에 계속해서 곡을 추가해주셨고요. 따로 말씀은 없으셨지만 보면서 ‘아빠가 말은 안 해도 늘 나를 지켜보고 있구나.’를 느꼈고, 의지가 많이 됐어요.

커버 곡 ‘Wonder’와 ‘you!’에도 범규 씨의 취향과 감성을 정성스럽게 담는 이유가 있나요?

범규: 오롯이 한 곡을 내 목소리로 가득 채우고 영상을 통해 온전히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게 아직은 커버 곡밖에 없어서, 그렇게라도 전달하고 싶었어요. ‘난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다.’를 보여주면서도 저의 목소리를 제일 잘 들려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고요. 앨범에서는 단체로 하나의 곡을 완성하기 때문에 곡의 콘셉트나 멤버들의 합에 맞춰서 목소리를 내야 하잖아요. 아쉬우니까 커버 곡으로 소심한 반항을 하는 거죠.(웃음) ‘Wonder’를 할 때는 ‘당신들이 보는 밝은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이런 모습도 있다.’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you!’는 ‘당신들은 나한테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다.’를 표현하고 싶었던 노래예요. 일본에서 찍으면 모아분들이 되게 좋아하시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때마침 도쿄를 가게 돼서 촬영할 수 있었어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에 대해 잘 파악하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범규: 제 자신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하거든요.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이고, 만약 내가 앨범에 대해 스스로 아쉬움이 있다면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지까지. 그런 사소한 감정과 생각들을 지나치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보게 되니까 그럴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월드 투어 중에 스스로 ‘정말 모아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범규: 투어를 할 때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무대를 다 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약한 모습을 모아분들께 많이 보여줬어요. 그런데 제가 다시 무대에 돌아와도 똑같이 응원해주시고, 저희가 기쁜 노래를 하면 함께 웃고, 슬픈 노래를 하면 같이 눈물 흘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힘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모아는 내가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구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구나.’를 느꼈거든요. 그래서 중간에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여기 계신 분들은 이날만을 기다리셨을 텐데, 못 버티고 다시 내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무대를 끝까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올라갔어요. 무엇보다 나 자신한테 지고 싶지 않았어요.

 

그 시간을 통해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더욱 굳힐 수 있고, 이 일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됐다고요.

범규: 사실은 팬데믹 기간이 오래 지속되면서 모아분들이 없는 게 조금 더 익숙했는데요. 같이 웃고 울고 시간을 보내면서 ‘지난 3년간 모아분들을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에는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콘서트 때 제가 종이비행기를 하나 받았거든요. 거기에 ‘힘들고 아팠는데 너희 덕분에 괜찮아졌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제가 느꼈던 감정과 똑같아서 너무너무 큰 위로가 됐어요. 나는 사실 뭣도 아닌 남들과 똑같은 사람인데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한테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게 가수와 팬의 존재의 의미라는 걸 느꼈어요. 그때 생각을 완전히 굳혔죠.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노래하고, 무대를 해야겠다.

Credit
글. 이예진
인터뷰. 이예진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윤해인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정수정, 허지인, 최윤석(빅히트뮤직)
사진. 박성배 / Assist. 최미진, 양준형, 구혜경
헤어. 김승원
메이크업. 노슬기
스타일리스트. 이아란
세트 디자인. 하이이화
아티스트 의전팀. 김대영 김지수 신승찬 유제경 고영욱 구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