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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CL이라는 이름으로
CL의 첫 솔로 정규 앨범 ‘ALPHA’의 이야기
2021.11.22
Credit
글.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사진 출처. Very Cherry
데뷔 12년, 솔로 활동 8년, 미국 데뷔 5년, 홀로서기 2년 만에 나오는 팝스타의 첫 음반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애초에 CL의 첫 솔로 정규 음반이 이제 발매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지금까지 뚫고 온 과정들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ALPHA’는 그렇게 모여든 시간들로 미래를 그려보는 청사진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팝스타’이자 ‘세계적인 한국어권 솔로 가수’로서의 꽤나 드문 위치에서, CL의 팝은 음악 평론가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가 얘기하듯 “스스로 모든 걸 해내는 음악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제작되고 포장되는”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보았을 때, ‘ALPHA’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제각기 다른 힘들이 잔뜩 긴장한 채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음반은 과거를 갈무리하면서도 미래를 그려보(아야 하)고, 다양한 인물들이 곳곳에 참여하면서도 결국 단일한 이름 하에 완성된다. 팝스타의 음반으로서, ‘ALPHA’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바로 그렇게 작용하는 힘들이 결합되어 만든 음악에서 CL이 찾아낸 균형점이다.
‘ALPHA’는 CL이라는 이름에 따라올 만한 다양한 사운드들로 꾸며졌다. 한쪽에는 ‘나쁜 기집애’와 ‘Hello Bitches’의 연장에서 작곡됐다는 ‘SPICY’로 대표되는 트랙들이 있다. 극도로 짧게 나눈 구간을 반복하며 공격적인 베이스 음을 단발적으로 쏘아대는 비트는 단순 명쾌한 훅의 단단한 밑받침이 되어준다. 이 위로는 (YG 시절의 그 모든 훅들을 종종 연상시키는) 익숙한 ‘한국 멜로디’ 중에서도 공교롭게도 가장 유명해진 선율과 어구를 골라잡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꼭꼭 숨어 머리카락 보일라 (‘H₩A’)’나, 이런 뻔뻔한 차용의 당위를 당당히 드러내는 ‘Imma do it my way (‘My Way’)’ 같은 구절들이 올라간다. 물론 그러한 ‘내가 걸어온 대로 그대로 나답게 (‘My Way’)'에는 다수의 제작진들을 동원해 ‘나’다운 사운드를 조절하는 손길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서 가장 익숙한 뱅어(banger)에 가까울 ‘ALPHA’의 트랙들은 솔로 활동 초창기처럼 육중한 저음부를 직격으로 때리거나 팝스타적인 브래거도시오(braggadocio)를 과장하지 않은 채 CL의 보컬 톤과 어울리도록 능숙하게 다듬어졌다. 그러한 마감은 요리 위에 핫소스를 고루 뿌려 ‘매운맛’의 감각을 통일시키는 것처럼 기능하는데, CL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이제는 굳이 다른 치장이 필요치 않기 때문(‘나는 척하지 않아 그냥 척하면 척 (‘CHUCK’)’)이 아닐까. 그렇게 ‘ALPHA’ 속의 매운맛은 음반을 여는 ‘SPICY’부터 음반 전체에서 기대할 수 있는 풍미를 효율적으로 제시하고, 물론 거기에는 매운맛만 있는 것도 아니다.
‘ALPHA’는 CL이라는 이름에 따라올 만한 다양한 사운드들로 꾸며졌다. 한쪽에는 ‘나쁜 기집애’와 ‘Hello Bitches’의 연장에서 작곡됐다는 ‘SPICY’로 대표되는 트랙들이 있다. 극도로 짧게 나눈 구간을 반복하며 공격적인 베이스 음을 단발적으로 쏘아대는 비트는 단순 명쾌한 훅의 단단한 밑받침이 되어준다. 이 위로는 (YG 시절의 그 모든 훅들을 종종 연상시키는) 익숙한 ‘한국 멜로디’ 중에서도 공교롭게도 가장 유명해진 선율과 어구를 골라잡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꼭꼭 숨어 머리카락 보일라 (‘H₩A’)’나, 이런 뻔뻔한 차용의 당위를 당당히 드러내는 ‘Imma do it my way (‘My Way’)’ 같은 구절들이 올라간다. 물론 그러한 ‘내가 걸어온 대로 그대로 나답게 (‘My Way’)'에는 다수의 제작진들을 동원해 ‘나’다운 사운드를 조절하는 손길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서 가장 익숙한 뱅어(banger)에 가까울 ‘ALPHA’의 트랙들은 솔로 활동 초창기처럼 육중한 저음부를 직격으로 때리거나 팝스타적인 브래거도시오(braggadocio)를 과장하지 않은 채 CL의 보컬 톤과 어울리도록 능숙하게 다듬어졌다. 그러한 마감은 요리 위에 핫소스를 고루 뿌려 ‘매운맛’의 감각을 통일시키는 것처럼 기능하는데, CL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이제는 굳이 다른 치장이 필요치 않기 때문(‘나는 척하지 않아 그냥 척하면 척 (‘CHUCK’)’)이 아닐까. 그렇게 ‘ALPHA’ 속의 매운맛은 음반을 여는 ‘SPICY’부터 음반 전체에서 기대할 수 있는 풍미를 효율적으로 제시하고, 물론 거기에는 매운맛만 있는 것도 아니다.
기존의 팝적 지향을 유지한 채로 내밀한 정서와 보컬 라인에 초점을 함께 두었던 ‘+투덜거려본다17115+’나 ‘+안해180327+’ 등의 영향력이 연장되는 트랙들도 ‘ALPHA’를 맞춰내는 또 다른 힘이다. 이는 뭉글거리는 신스 음과 밀도 있는 리듬 구간으로 조성한 분위기를 후렴구 멜로디로 차근차근 고조시키는 ‘Xai’나, 훨씬 더 극적으로 사운드를 넣고 빼면서 음반의 후반부를 꾸미는 ‘Siren’과 ‘5 STAR’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만 ‘사랑의 이름으로’를 채웠던 감정적인 하이라이트들은 ‘ALPHA’에서 앞서 등장한 트랙들의 훨씬 더 묵직한 트랩풍의 팝 사운드를 통과해, ‘Lover Like Me’와 ‘Tie a Cherry’에서 절충되는 듯 보인다. 그 덕에 이 두 트랙은 스타일과 감정의 측면에서 음반의 주축을 맡기도 한다. CL의 고유한 목소리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 능숙히 미끄러져 내리는 후렴 멜로디와 드롭을 향해 착실히 빌드업을 쌓는 구조를 따르거나(‘Tie a Cherry’) 비트의 번쩍거리는 음색에 맞춰 랩 구간을 삽입하는 터치(‘Lover Like Me’)가 적절히 섞여 있다. ‘ALPHA’에서의 균형점은 이렇게, CL의 솔로 경력에서 찾아볼 수 있던 여러 맛들을 조금씩 다른 성질과 스타일, 사운드로 이뤄진 트랙과 각 부분들에 골고루 버무리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특히나 2NE1의 완전체를 상정하고 작업됐다는 ‘Let It’과 어쩌면 CL의 자장에서는 거리가 가장 멀 것이며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과 같은 레퍼런스가 연상되기도 하는 ‘Paradise’가 처리된 방식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전기기타를 앞세운 ‘Let It’에서는 상대적으로 느린 박자와 비트의 리듬감으로 ‘살아 봤으면 해’나 ‘아파’, 어쩌면 ‘Come Back Home’의 도입부 등이 충분히 떠오를 만하다. 한편 울렁이는 멜로디를 따라 오토튠을 미묘하게 걸어놓은 랩이 흥얼거리면서 들어간 ‘Paradise’에서도 2010년대 중후반의 주류 힙합과 팝 랩을 쉽사리 지시할 수 있을 만하다. CL이 과거 활동의 잔재와 동시기에 가장 유행하는 사운드를 접목시켰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스타일을 가져오는 것에 따라 사운드가 동떨어지거나 튀지 않고, 대신에 ‘ALPHA’의 전체적인 모습에 훨씬 더 어울리게 짜여 들어갔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오토튠의 운용이나 추임새 삽입에서 ‘Paradise’는 멜로디 라인을 적절히 감쌀 정도로만 이를 꾸렸으며, 이런 접근은 당대의 트렌드를 가져올 때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CL의 자장에 해당 스타일들을 포함시켰던 2010년대 중반의 트랙에서도 동일했으니 말이다. 비슷하게, ‘Let It’ 또한 2NE1의 여러 ‘블링블링’한 특징적인 사운드를 걷어낸 대신 절제된 비트를 가져와 멜로디에 강조점을 두었으며, 이런 예시들은 CL이 ‘ALPHA’라는 레시피에 이 재료들을 성공적으로 포함시킨 듯 들린다. 작사진에 타블로, 소코도모, 나플라가 이름을 올렸다고 하지만, 랩 자체에서는 CL의 익숙한 플로우에 참여진들의 스타일이 소급된 것도 비슷할 것이다. 어떤 스타일이나 제작진을 그 재료로 사용하더라도, ‘ALPHA’에서 이는 분명하게 CL의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나 2NE1의 완전체를 상정하고 작업됐다는 ‘Let It’과 어쩌면 CL의 자장에서는 거리가 가장 멀 것이며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과 같은 레퍼런스가 연상되기도 하는 ‘Paradise’가 처리된 방식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전기기타를 앞세운 ‘Let It’에서는 상대적으로 느린 박자와 비트의 리듬감으로 ‘살아 봤으면 해’나 ‘아파’, 어쩌면 ‘Come Back Home’의 도입부 등이 충분히 떠오를 만하다. 한편 울렁이는 멜로디를 따라 오토튠을 미묘하게 걸어놓은 랩이 흥얼거리면서 들어간 ‘Paradise’에서도 2010년대 중후반의 주류 힙합과 팝 랩을 쉽사리 지시할 수 있을 만하다. CL이 과거 활동의 잔재와 동시기에 가장 유행하는 사운드를 접목시켰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스타일을 가져오는 것에 따라 사운드가 동떨어지거나 튀지 않고, 대신에 ‘ALPHA’의 전체적인 모습에 훨씬 더 어울리게 짜여 들어갔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오토튠의 운용이나 추임새 삽입에서 ‘Paradise’는 멜로디 라인을 적절히 감쌀 정도로만 이를 꾸렸으며, 이런 접근은 당대의 트렌드를 가져올 때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CL의 자장에 해당 스타일들을 포함시켰던 2010년대 중반의 트랙에서도 동일했으니 말이다. 비슷하게, ‘Let It’ 또한 2NE1의 여러 ‘블링블링’한 특징적인 사운드를 걷어낸 대신 절제된 비트를 가져와 멜로디에 강조점을 두었으며, 이런 예시들은 CL이 ‘ALPHA’라는 레시피에 이 재료들을 성공적으로 포함시킨 듯 들린다. 작사진에 타블로, 소코도모, 나플라가 이름을 올렸다고 하지만, 랩 자체에서는 CL의 익숙한 플로우에 참여진들의 스타일이 소급된 것도 비슷할 것이다. 어떤 스타일이나 제작진을 그 재료로 사용하더라도, ‘ALPHA’에서 이는 분명하게 CL의 것처럼 느껴진다.
다양한 조각들이 맞춰져 하나의 이름과 그 형상을 구성하는 팝 음반의 성질은 ‘ALPHA’에서는 CL 특유의 음색과 이를 돋보이게 하는 멜로디에 집중해 12년 차의 이미지를 분명히 고정시키며 성취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반복적인 비트에 들어간 ‘리프’와 같은 음 연속이든, 트랙 전체를 풀어내는 보컬의 진행 과정이든 간에 말이다. 물론 이러한 멜로디라는 균형점에서 다시 한 번 무게중심을 찾아가면, CL의 목소리가 있다. ‘사랑의 이름으로’보다는 조금 덜 강조되긴 하지만, 그의 음악에서 가장 확연한 특징인 목소리는 짧고 굵은 구간들을 효과음처럼 반복적으로 이어붙인 묵직한 트랩 댄스 곡부터 잘 짜인 감정선을 수려하게 타고 오르내리는 발라드적인 곡까지 ‘ALPHA’의 모든 순간에서 중심이 된다. 그를 위해 이미 다양하게 드러나 온 그의 형상을 세심하게 다듬어 합친 미세 조정의 방식은 ‘SPICY’의 도입부이자 ‘ALPHA’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자그맣지만 확실히 드러난다.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가 음성 녹음을 보낸 5분짜리 독백에서 아이코닉한 ‘Energy, Power, Chemistry’만을 빼와 저음의 베이스를 따라 흩뿌리고, 녹음상 발생한 묘한 음질 차이를 강한 비트로 잡아 CL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한 인트로는, CL의 내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재료들의 맛을 균형 있게 섞어 하나로 만들어낸 제작법의 제법 좋은 상징이 될 것이다.
그렇게 ‘ALPHA’는 다면적이거나 분절적이었던 CL의 지난 시공들을 ‘2021년의 첫 솔로 정규 음반’이라는 단위에 맞춰 세밀하게 가공하고 균질하게 통합하기에, 그의 음악과 CL이라는 인물 자체에 하나의 ‘청사진’이 될 수 있다. 돌이켜보면, CL만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그 에고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 무게에 이끌려 허물어지지 않고, 가장 확실한 겉표면에 자아의 화려하거나 내밀한 부분을 동등하게 드리우면서도 하나의 고정된 형상을 꽤나 성공적으로 정립한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자아상에 작용하는 수많은 힘들을 효율적으로 관장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팝스타로서 가질 더욱 중요한 자질이라고 할 때, CL이 ‘ALPHA’를 통해 자신을 재구성하는 방식은 그가 무엇에 능한지를 들려준다. 결국에 스스로를 처음 소개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내린 정의, ‘I go by the name of CL’는, 언제나 동일했다. 12년 만에 나온 첫 음반에서도 CL은 거대한 힘이나 규모, 이미지 없이 효율적으로 자신의 많은 부분들을 담아낸다. ‘나를 채린이라고 부른 마지막 때를 기억해? / 당신이 나를 그 이름으로 불렀던 마지막 때를 기억 못해 (Remember the last time you called me Chae Lin / Can’t remember the last time you called me that name) (‘Lover Like Me’)’라고 자문자답하면서도, 또박또박 ‘C H A E L I N THAT’S ME (‘Chuck’)’를 읊으면서, 또 능청맞은 말장난 혹은 ‘버려진 재미 (‘Siren’)처럼’ ‘체리’를 따와 여기저기에 장식하는 그는, 여전히 CL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렇게 ‘ALPHA’는 다면적이거나 분절적이었던 CL의 지난 시공들을 ‘2021년의 첫 솔로 정규 음반’이라는 단위에 맞춰 세밀하게 가공하고 균질하게 통합하기에, 그의 음악과 CL이라는 인물 자체에 하나의 ‘청사진’이 될 수 있다. 돌이켜보면, CL만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그 에고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 무게에 이끌려 허물어지지 않고, 가장 확실한 겉표면에 자아의 화려하거나 내밀한 부분을 동등하게 드리우면서도 하나의 고정된 형상을 꽤나 성공적으로 정립한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자아상에 작용하는 수많은 힘들을 효율적으로 관장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팝스타로서 가질 더욱 중요한 자질이라고 할 때, CL이 ‘ALPHA’를 통해 자신을 재구성하는 방식은 그가 무엇에 능한지를 들려준다. 결국에 스스로를 처음 소개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내린 정의, ‘I go by the name of CL’는, 언제나 동일했다. 12년 만에 나온 첫 음반에서도 CL은 거대한 힘이나 규모, 이미지 없이 효율적으로 자신의 많은 부분들을 담아낸다. ‘나를 채린이라고 부른 마지막 때를 기억해? / 당신이 나를 그 이름으로 불렀던 마지막 때를 기억 못해 (Remember the last time you called me Chae Lin / Can’t remember the last time you called me that name) (‘Lover Like Me’)’라고 자문자답하면서도, 또박또박 ‘C H A E L I N THAT’S ME (‘Chuck’)’를 읊으면서, 또 능청맞은 말장난 혹은 ‘버려진 재미 (‘Siren’)처럼’ ‘체리’를 따와 여기저기에 장식하는 그는, 여전히 CL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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