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뮤지션이라 불렸던 남자.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을 차지하고 동생 수현과 함께 대중음악 시장에 신선한 새바람을 몰고 온 남자. 세 장의 정규 앨범과 다수의 싱글, 미니 앨범을 발표하며 독특하고 진솔한 음악을 선보이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개성을 확보한 남자. 그 남자가 캄캄한 한밤중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누워 있다.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고, 군중이 몰려들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다. 그리고 그 광경을 말없이 멀찍이서 바라보는 남자의 영혼이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르는 도로 위, 노란 머리에 날렵한 셰이프의 선글라스를 쓴 채로 슈퍼맨이 되어 날아오르는 남자의 표정은 웃는지 우는지 미묘하게 일그러져 있다.
이찬혁의 솔로 데뷔 앨범 [ERROR]는 자기 파괴의 현장이다. 기존의 AKMU, 이찬혁의 이름과 이미지를 모조리 집어던지고 평범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작품이다. 앨범 발표 전부터 이찬혁은 유튜브 채널을 열어 삶의 평범한 모습을 비디오아트로 가공하여 업로드하고, 독특한 패션 센스를 뽐내며 ‘전국노래자랑’ 등 기상천외한 공간에 등장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등 앨범 발매 전부터 범상치 않은 행보를 보였다. 타이틀 곡 ‘파노라마’ 무대에서 보여준 여러 퍼포먼스도 탈피와 분출의 욕구 분출이다. 인터뷰어의 질문에 침묵하고, 무대 위에서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뒤통수만 보여주다가 노래를 부르며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린다. 다양한 형태의 죽음과 부활을 마주하며 우리는 과거의 이찬혁을 잊게 된다. ‘목격담’ 속 “파란불에 횡단도 잘”하던 과거의 “악동 걔”를 차로 들이받은 이는 이찬혁 자신이다.
그룹 활동기에도 이찬혁은 자주 삶의 끝자락과 위태로운 순간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하며 치열한 창작의 바탕을 마련해왔다. AKMU의 정규 3집 ‘항해’를 관통하는 소설 ‘물 만난 물고기’의 주제 의식과 이번 앨범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노래 ‘BENCH (NEXT EPISODE)’ 모두 죽음을 다룬 노래였다. [ERROR]는 좀 더 본격적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의식을 잃고, 숨이 끊어지며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과정을 앨범에 열한 곡을 순서대로 눌러 담았다. 어지러운 ‘Siren’ 소리와 함께 도착한 병원에서 “쥐뿔도 없는” 인생을 반추하는 ‘파노라마’가 펼쳐지며 친구, 연인, 가족의 얼굴이 떠오르고 절망, 후회, 회한과 눈물 어린 작별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장치는 역시 탄탄한 음악이다. 검증된 파트너 밀레니엄(MILLENNIUM), 시황(SIHWANG)과 함께 작업한 앨범은 곡의 각 상황과 주제 의식, 작품의 서사에 맞춰 적재적소 음악 세트를 짓고 부수며 드라마틱한 21세기 신곡(神曲)의 주제가를 만들어 나간다. 크게 나눠보자. 강렬한 기타 연주의 인트로 곡 ‘목격담’과 빠른 톤의 ‘Siren’부터 1980년대 뉴웨이브의 흐름을 담은 역설적인 ‘파노라마’와 ‘Time! Stop!’까지가 1부,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부터 ‘내 꿈의 성’으로 잔잔히 마무리되는 2부, ‘A DAY’와 ‘장례희망’의 장엄한 3부로 구분할 수 있다. 긴박하게 출발하여 점점 긴장을 완화하고 차분히 인생을 돌아보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구성이다.
간결한 코드 진행과 대중적인 멜로디 바탕에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이찬혁의 작곡 능력은 모든 곡에서 고루 빛난다. 눈에 띄는 퍼포먼스와 달리 [ERROR]는 주제 의식에 맞춰 AKMU의 음악과 비교해 언어와 선율 모두 절제된 모습을 보이는데 그 와중에도 비범한 재능이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여기저기 불쑥 튀어나온다.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마지막 인사’의 유려한 소프트 록과 차분한 발라드 곡 ‘뭐가’에서 변진섭, 신승훈, 윤상, 김현철, 신해철 등 대중음악계 빛나는 음악 작가들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5분에 달하는 곡 길이가 체감되지 않는 ‘부재중 전화’와 아마추어 시절의 그를 떠올리게 하는 ‘내 꿈의 성’에서는 2010년대 선명한 족적을 남긴 AKMU의 스타일이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마지막 곡 ‘장례희망’을 짚어야 한다. 재치 있는 제목 아래 앨범의 문을 닫는 이 가스펠 곡은 자신의 장례식을 내려다보는 맑은 영혼의 시선을 통해 후회 없는 삶을 다짐하는 노래다. 선교사 부모님 아래서 성장한 이찬혁의 유년기와 커다란 성공을 거둔 20대를 압축하여 기록하고 미지의 다음 단계로 힘차게 발을 내딛는 곡이다. [ERROR]의 죽음 이야기를 아름답게 매듭짓는 결말의 감동이 크다. 비록 세상이 요구하는 바를 거부하고 반항하는 오류라 할지라도, 미련 없이 본인의 모습을 진실하게 드러내고 또 욕망하기에 마지막 순간 “꿈의 왕국에 입성”하며 구원받는 결말이 완성된다.
[ERROR]는 단독자(單獨者)로의 증명이다. 이 흥미로운 솔로 데뷔 앨범은 끝없이 자신을 가상의 극한상황에 몰아넣으며 진화와 성장을 꿈꾸는 청년 예술가의 치열한 경쟁의식으로 이글거린다.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나로만 존재하기 위해 이찬혁은 자신이 쌓아 올린 안전한 길 대신 살해 구조와 파격 행동을 선택한다. 물론 이 선택의 바탕에 현재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음악 작가로의 견고한 자산과 그 경력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앨범을 먼저 들어본 찬혁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축복한 대로, 많은 이들이 성가대처럼 입을 모아 할렐루야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처럼, 이 답답하고 어두운 세상에서는 제발 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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