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ENHYPEN의 ‘Polaroid Love’를 즐겨 듣는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일상 어디에 틀어놔도 두루두루 어울린다. 얌전하고 무난한 표정의 옆자리 학생 같다. 노래가 구현하는 장면 역시 그렇다. 열정적이거나 짜릿한 한순간이 아니라, 설렘을 부정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서툰 마음을 짧게 그렸다. ‘퍼피 러브’로부터 느끼는 감정을 즉석 사진에 비유한, 2022년식 틴에이지 러브 송이다. 어느 팬의 틱톡 안무가 바이럴을 타는 덕에 지금은 챌린지도 한창이다. 

 

메이저 곡조지만 어딘지 마이너처럼 멜랑콜리한 뉘앙스가 있다. 곡을 구성하는 코드 진행을 보면 Cm7 - F7 - Bbmaj7 - Gm7 (ii - V - I - vi)이 반복된다. 재즈에서 가장 흔히 쓰는 ii - V - I 진행에 마지막 한마디에는 마이너인 vi를 보탠 구조다. 건반의 왼손 오른손이 쿵짝 쿵짝 리듬을 주고 받는 느낌이 장난스러우면서도, 사랑을 ‘촌스러운 감정’이라고 치부하고픈 나이 어린 화자의 마음속 가시가 표현돼 있다.

 

도입부(노래의 후렴이기도 하다)는 단 네 마디로 곡의 주제를 달콤 쌉쌀하게 그려낸다. 제이크 특유의 발음 조형도 귀를 집중시키는 데에 한몫한다. ㅊ이나 ㄱ, ㅈ 같은 뒷잇몸소리 자음은 여리게, 모음은 보다 열리게 표현해 ‘사랑 촌스러운 그 감정’ 같은 도발적인 가사를 거슬리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킬링 파트로 만들었다.

1절은 끌림을 부정하는, 이른바 ‘츤데레’ 같은 화자를 그린다. 첫 버스(verse)를 퉁명스러운 느낌으로 시크하게 풀어낸 제이와 좀 더 스위트하게 표현한 성훈의 보컬 시퀀스가 대비를 이룬다. 화자는 사랑은 촌스럽고 뻔한 것, 다 아는 것이라 여긴다. 여기서 다 안다는 건 설렘 자체에 대한 지식이라기보다 그 뒤에 따라오는 실패 시의 감당해야 할 짐을 생각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청소년 세대뿐만 아니라 무한 경쟁 시대를 사는 대부분이 처한 상황이겠지만, 나이 어린 사람들까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회가 얼마나 팍팍한지를 비추는 거울상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끝이 나는 감정 교류나 연애 후의 씁쓸함, 혹은 할 일을 다 하지 못해 뒤처지는 결과를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사실이 설렘 자체를 주저하게 하거나, 이 곡의 화자처럼 애써 과소평가하며 회피하게 만든다.

 

그러나 화자는 프리코러스에서 상대방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심장이 뛰는 걸 경험한다. 이 낯선 환희는 단조로이 돌아가던 ii - V - I - vi의 마이너 코드(vi, Gm)가 잠시 메이저(VI, G)로 바뀌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희승이 부드러운 팝 보컬로 부르는 ‘When you call my name’의 ‘name’ 부분이 바로 피카르디 3도라고도 불리는 그 화음이다. 이렇게 벅찬 느낌은 선우가 흉성에서 가성을 교차시키며 ‘가슴 아프게’라는 가사로 받는다. 노래는 장난스럽고 달달할 것 같다가 이런 쌉싸래함을 가미해 나간다. 버스와 프리코러스 동안 쭈욱 단조로이 이어지던 리듬은 ‘내 심장이 쿵, 쿵’ 파트에서 모든 악기가 멈추었다가 팝 드럼이 들어오는 구성으로 바뀌는데, 과하지 않다. 조금 더 흥이 나는 정도다. 흔하고 단순한 구조가 옛날 노래처럼 편안함을 준다. 리패키지 앨범에 추가로 들어간 소품 같은 곡이다. 복잡하고 자극적인 K-팝 씬에서는 외려 그 이유 때문에 더 돋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청소년 청자들은 이 노래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노래에서 느꼈다는 감정은 ‘귀엽다’, ‘달달하다’, ‘공감 간다’, ‘몽롱하다(dreamy)’ 등이었다. 이 중에 ‘몽롱하다’란 표현에 눈길이 갔다. 무슨 뜻일까 하고 좀 더 파악해보니, 노래를 레트로 콘셉트로 들리게 하는 장치들, 그러니까 로파이 효과나 예스러운 E. 피아노에서 꿈과 같은 느낌을 받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고음질에 고화질이니 말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저음질, 저화질에서 향수를 느끼지만,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은 같은 것에서 대상이 있는 그리움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모든 것이 선명해서 정보값이 너무 많은 현실과는 조금 유리된, 꿈 같은 세계로 느끼는 것 같다.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처음 출시된 것은 1948년이었다(폴라로이드는 즉석 사진기를 처음 내놓은 회사의 이름이지만, 즉석 사진의 대명사로 불리는 만큼 이 글에서는 계속해서 폴라로이드라 표기하겠다.). 당연한 소리지만, 처음 나온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었다. 사진을 찍은 뒤 필름을 암실로 가져가서 현상해야 하는 보통 필름 카메라와는 달리 사진을 찍은 뒤 바로 볼 수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이었다. 20세기 후반 한창 인기를 누리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21세기에 들어서며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점차 설자리를 잃었다. 디지털 카메라는 촬영 즉시 사진을 미리 볼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원하는 이미지만 골라서 인쇄할 수 있었다. 소모품인 필름을 노상 사서 쓸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원하는 것만 선택할 수 있게 한 디지털 기술은 인화지의 물성을 거추장스러운 과거의 유물로 만들었다. 폴라로이드는 2000년대 후반 즉석 카메라 사업을 접기도 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같은 즉석 사진 기술을 보유한 후지필름은 조약돌처럼 동그란 ‘인스탁스 카메라’를 내놓으며 제품 홍보의 방향을 이전과는 다른 팬시 제품 쪽으로 잡았다. ‘디지털’의 시대에 반하는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감성 아이템으로 어필하기로 한 것이다.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사장되어 가던 즉석 카메라는 탄탄한 마니아층을 가진 패셔너블한 물건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패션, 음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20세기 리바이벌이 팝컬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2022년 현재, 폴라로이드는 촌스럽지만 특별한 레트로 감성의 대표적인 매체다.

 

ENHYPEN의 ‘Polaroid Love’ 역시 이 감성을 공유한다. 폴라로이드의 즉시성은 디지털 카메라 시대를 지나 1인 1스마트폰에 가까운 현시대에는 더 이상 장점이 아니다. 대신 인쇄 전 필터를 적용하거나 보정할 수 없다는 제한이 오히려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는 보장이 된다. 액정 위를 무한하게 스쳐가는 정보값으로서의 사진, 무한히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로서의 사진과는 달리 한 폴라로이드 사진은 최초로 뽑은 단 한 장의 물성에만 존재한다(물론 그 사진을 스캔하거나 찍어서 디지털로 복제할 수는 있지만, 그건 오리지널이 아니니까.). ‘널 향한 내 맘을 여기 보정 없이 새기는 거야 / 점점 또렷해져 가지 이 맘은 세상 단 한 장뿐야’ 니키와 정원이 앳된 목소리로 사이좋게 나누어 부르는 2절에 폴라로이드의 매체적 속성이 집약돼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기에는 불편함으로 인식됐던 성질이 지금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 특별함이 되었다. 촌스럽지만 맘에 드는 모순적인 존재로 말이다.

‘Polariod Love’ 속 사랑은 마냥 달달하고 환상적이만은 않다. 전제가 현실에 대한 염려이기 때문에, 달콤함 뒤에 반드시 쌉쌀함이 따라온다. ENHYPEN의 다른 러브 송들에도 ‘Polaroid Love’와 비슷한 시각이 담겨 있다. 같은 앨범의 ‘몰랐어 (Just A Little Bit)’는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한 ‘나’가 사랑에 빠지면서 변화하는 순간을 노래한다. 사랑 노래지만 상대방에게 던지는 뜨거운 고백이라기보다는 사랑으로 변하는 ‘나’의 깨달음을 일기처럼 그린 성장 서사다. 두 번째 미니앨범 속 ‘Not For Sale’ 역시 속물적인 세상을 비웃었던 ‘나’가 ‘너’를 만나며 처음으로 설렘을 느끼고 세상의 법칙과는 다른 관계의 소중함을 배워 나간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Fever’나 ‘Let Me In (20 CUBE)’처럼 좀 더 저돌적인 자세의 노래도 있지만 이 곡들은 모두 판타지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ENHYPEN의 현실 사랑 노래는 대체로 세상에 냉소적이며 조심스럽다는 공통점이 있다.

 

ENHYPEN 팬덤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도 이 같은 ‘ENHYPEN표 현실 사랑 노래’에 쉽게 공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냉소와 조심스러움은 단순히 일상 속 연애 관계를 떠나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의 파라소셜 관계(매체 이용자가 매체와 대인적인 몰입 관계를 갖는 것)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에 깊은 감정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 첫째다. 더군다나 지금 세대 여성 청소년 팬들은 어린 시절 1세대, 2세대의 남성 아이돌 중 일부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모습, 또 어떤 팬들은 그들을 비호하며 도덕적 공범이 되기도 했던 모습을 모두 보고 자란 사람들이다. SNS로 청소년 팬들을 관찰해보면,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아이돌을 좋아는 하되 인간은 인간을 언제든 실망시킬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아두고 열정을 차갑게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물론 마음처럼 안 되는 것이 사랑 혹은 ‘덕심’이라서, ‘Polaroid Love’처럼 가시를 세웠다가도 불가항력에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입덕’을 하고서도 부정하기도 하고,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 ‘덕질’ 대상에게 모진 말을 하는 등 말이다. 파라소셜 관계에서조차 마음 놓고 사랑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은 이런 비판적으로 ‘덕질’하기 담론을 공적 영역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 올해 안에 개봉도 한다니 이런 대화가 사회로 좀 더 확장될지도 모르겠다.

어느 때보다 사랑 노래를 만들기 쉽지 않은 시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청소년들 역시 세상 곳곳에서 끌림을 경험하고 그런 감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곱씹으며 자라난다. 자기 마음을 대변해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도 그중 하나다. ‘It’s like a Polaroid love 사랑 촌스러운 그 감정.’ 주문처럼 되뇌기 좋은 가사다. 어쩌면 폴라로이드 같은 저화질 옛날 매체에는 이 모순을 잠재워줄 몽롱한 마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퍼피 러브: 청소년기 교제 발달 과정 중 하나로, 이성 혹은 로맨틱한 대상과의 접촉이 낯설기 때문에 어색하고 불안정한 것이 특징

글.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사진 출처. 빌리프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