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헌이 추억을 소중히 여기듯,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쌓아온 시간에는 그 너머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간의 경계에서, 지헌의 스무 살은 어쩐지 더 특별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치른 이후로 어떻게 지냈나요? 

백지헌: 수능 끝나고도 연습과 스케줄이 계속 있었는데, 원래는 짬짬이 공부하는 걸로 시간을 채웠다 보니 쉬는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작년 한 해 동안 제 생활엔 공부, 연습, 활동 스케줄밖에 없었거든요. 갑자기 뭔가가 빈 느낌이에요. 그래서 이제 성인도 됐으니까 지금까지 못해본 것들, ‘운전면허 따기’ 같은 목표들을 하나씩 잡고 도장 깨기 하면서 살아볼까 생각 중이에요.(웃음)

 

수능을 끝내서 그런지 얼굴이 더욱 환해진 느낌이에요.(웃음)

백지헌: (웃음) 고생한 만큼 결과도 나쁘진 않아서 마음이 홀가분해진 것 같아요. 수능 한 달 전에 스케줄이 몰아치다 보니 부담이 심해졌었거든요. ‘이렇게 스케줄이 많은데 내가 마지막 한 달 동안 잘 준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봐 걱정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또 사람들이 결과에 집중을 많이 할 테니 그 기대에 부응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힘들어서 눈물이 나는데도 다음 날 촬영을 위해 눈찜질을 해가며 공부했다고요.

백지헌: ‘Talk & Talk’ 활동 때 좀 많이 그랬어요. 첫 방송 끝나고 집에 와서 공부를 하는데 너무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일단 첫 무대 화면 속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웠고, 당장 공부는 해야 하고, 그 와중에 잠은 오고, 스트레스 받아서 살이 찌니까 다이어트도 마음대로 안 되고. 공부를 하면서도 ‘이게 맞나?’ 하면서 자괴감이 드는 거예요. 다음 날 무대에서 눈이 팅팅 부었더라고요.(웃음)

 

그런데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 때문에 끝까지 버텼다고 한 게 놀라웠어요. 

백지헌: 사실 도중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거든요. 활동과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긴 하니까. 근데 제가 수능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너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있는데 굳이 해야 될 필요가 있냐.”는 말을 진짜 많이 들었어요. ‘내 선택을 끝까지 포기 안 하고, 잘 마무리하는 것까지 보여줄게.’라는 마인드가 생기면서, 오히려 그분들의 말이 저한테는 더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HoneY_log’의 ‘스터디윗미' 영상이 그에 대한 하나의 증명 같기도 해요. 어쩌다 공부하는 모습을 공유하게 됐어요?

백지헌: ‘스터디윗미'를 찍어달라는 플로버들이 많기도 했고, ‘그냥 콘셉트 아닐까?’라는 글을 봤거든요. ‘그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5시간 동안 화장실도 안 가면서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계속 공부를 해온 게 아니면 쉽지 않은 거거든요. 약간의 오기였죠. ‘나 진짜 열심히 했다!’(웃음)라는 생각으로. 그래서 저는 여러 부담 속에서 공부하는 제 모습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져서 그 영상을 아직도 제대로 못봐요. 그래도 후회 없이 열심히 했다는 것 하나로 충분해서 지금 이렇게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데뷔 후에도 자신의 모습을 유지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백지헌: 어릴 때부터 “네 본분은 학생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만큼 열심히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데뷔 이후에도 쉽게 놓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늘 꾸준히 잘 나왔던 성적이 한 번 떨어지니까 너무 충격을 받았었거든요. 그래서 잠을 줄여서라도 학업과 스케줄을 병행하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공부를 쭉 한 거예요. 입시가 정말 힘들지라도 이런 추억이 없으면 나중에 너무 후회될 것 같았어요. 

 

추억이 지헌 씨에게 큰 의미를 가지나 봐요.

백지헌: 저는 추억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드라마 속 장면들을 볼 때마다 ‘저런 기억이 나한테도 있었으면.’ 이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근데 만약 제가 이 직업이 아니었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을 못 겪는다고 생각하니 나중에 너무 슬플 것 같았어요. 어렸을 때 TV에서 연예인들이 “나는 수학여행을 안 가봤어요. 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가 없었어요.” 이런 얘기들을 하는 걸 봤었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은 거예요. 저는 그런 추억을 싹 다 가지고 성인이 되고 싶었어요.

 

서공예 친구들과 함께한 ‘WE GO’, ‘Talk & Talk’ 챌린지 영상도 특별한 추억 중 하나겠네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백지헌: 제 학창 시절이 너무 소중했고, 마지막 열아홉 살을 뜻깊게 보내고 싶었고, 플로버도 좋아해줄 것 같았고,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에 하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부탁해봤는데 흔쾌히 ‘당연하지!’ 해줘서 찍게 됐어요. 전날 밤에 물어본 건데 다음 날 바로 안무를 따서 왔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어요. 사실 회사에서는 스케줄이 많으니 제 몸을 생각해서 안 찍는 쪽으로 의견을 주셨는데, 제 욕심이 좀 컸죠. 그날 새벽 녹화 끝나고 중간에 학교에 가서 찍은 다음 다시 스케줄하러 간 기억이 있어요.

 

‘HoneY_log’의 영상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할 만큼 애정을 갖고 있는데, 어떤 순간들을 남기고 싶은가요?

백지헌: 아이돌로서의 제 모습은 프로미스나인의 콘텐츠로 보여드리니까, 여기선 오로지 저라는 사람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모범적인 모습과 동시에 어쨌든 저도 똑같은 사람이다 보니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는 부분도 같이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제 일상을 많이 담는 거예요. 이걸 직업병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웃음) 요즘은 다른 콘텐츠들을 보면서 ‘HoneY_log’에서는 어떻게 변형시키고 녹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자막 다는 법, 컷 편집, 단축키 등등 하나하나 검색해가며 독학한 거라 초반엔 영상 하나 완성시키는 데 1~2주나 걸렸다면 지금은 3일 정도면 되는 것 같아요. 많이 늘었죠.(웃음)

성인이 된 후 학창 시절을 다시 돌아보니 어떻게 느껴지던가요?

백지헌: 제 학창 시절이지만 너무 귀엽고 예쁘게,(웃음)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해요. 하지 말라는 것 안 했고, 해야 할 것들은 다 했고. 공부 열심히 해서 성적도 잘 받아봤고, 학생 임원도 해보고, 10대 때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본 것 같아요.

 

반장, 부반장, 부회장, 전교회장까지 했었다고요.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매번 임원을 맡아 학급을 이끌었다는 게 신기해요.

백지헌: 사실 제가 원래는 낯을 잘 안 가렸거든요. 데뷔 이후부터 변한 것 같아요. 아마 데뷔 전에는 제 MBTI가 ‘E’이지 않았을까(웃음) 싶을 정도로 친구들 앞에서 나서고 이끌어주는 걸 좋아했어요. 복도에서 지나다니는 친구들이랑 한 명도 빠짐없이 인사할 정도로 친구들도 많았고요.

 

중간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백지헌: 전에는 학생으로서도 충실히 살았고, 부모님께도 사랑을 많이 받아서 자존감이 되게 높았었어요. 근데 데뷔를 하고부터 저에게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점점 소극적이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데뷔 초기를 저의 암흑기라고 말하거든요.(웃음) 멤버들도 데뷔 초에는 제가 정말 힘들어 보였대요. 부모님과도 떨어져 살고, 자존감도 낮아진 상태에 완벽주의 성향은 여전하고, 그러다 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그랬던 데뷔 초기를 지금 활동할 때와 비교하면 어떤 부분이 달라진 것 같아요?

백지헌: 전에는 제가 조금이라도 안 예쁘게 나오거나, 제 계획에서 틀어지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뭐든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너무 컸고요. 근데 이제는 내가 모든 걸 잘할 수는 없고, 모든 게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돼서 제 자신한테 많이 너그러워진 편이에요. 그래서 지금 와서 예전 무대들을 보면, ‘이렇게 해야 돼.'라는 생각에 갇혀서 힘들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대에서 늘 밝게 웃어서 잘 몰랐는데, 지헌 씨의 마음 상태가 무대에 반영되는 게 스스로 느껴지나 봐요.

백지헌: 저는 제 직캠을 볼 때 ‘이 무대는 신나게 했네.’ ‘이 무대는 조금 힘들었나 보네.’ 판단이 될 정도로 진짜 신나서 웃는 부분이랑 예쁘게 웃으려고 노력한 부분이 다 보여요. 특히 예전에는 ‘표정을 이렇게 해야지.' 하는 저만의 틀이 명확했어요. 근데 ‘WE GO’ 준비할 때부터 ‘내가 즐기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생각을 비우고 노래에만 집중하면서 마음 가는 대로 했는데, 그걸 플로버들이 오히려 더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이번 앨범의 ‘새벽 탈출’ 키워드가 묘하게 지헌 씨의 상황과 어우러지는 느낌이에요. 특히 콘셉트 포토 ‘After Midnight’ 버전에서 보여준 일탈하는 듯한 모습이요.

백지헌: 맞아요.(웃음) 그걸 찍는 날이 딱 수능 3일 전이었다 보니 ‘나 이제 곧 끝난다!’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엄청 설레는 느낌을 줬던 것 같아요. 이제 성인이 됐으니 이번 활동을 통해 색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싶고, 지난번 ‘Talk & Talk’ 활동은 제대로 못 즐긴 것 같아서 이번에는 편하게 무대를 즐길 생각이에요. 스무 살의 첫 시작이니까, 제대로 해보려고요.

 

살랑살랑한 느낌의 춤선이 돋보이는 스타일인데, 타이틀 곡 ‘DM’의 힘 조절이 중요했던 안무가 몸에 잘 맞았나요?

백지헌: 와, 안 그래도 제가 이번에 힘을 아무리 빡빡 줘도 자꾸 살랑살랑 추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땀 흘리면서 힘 있게 춰보려고 하는데, 그사이에서도 저의 춤을 완전히 변형시키진 않고, 힘이 있되 제 춤선을 잃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노래를 부를 땐 어땠어요?

백지헌: 전체적으로는 곡의 분위기에 맞게 목소리 톤을 맞추려고 했고, 후렴구의 마지막 ‘좋아해 널 내맘은 I want you’를 부를 땐 앞에서 멤버들이 쏟았던 에너지를 이어서 받쳐주는 데 신경을 썼어요. 저는 왠지 모르게 ‘DM’을 들으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DM’의 정확한 가사 내용은 ‘내가 너에게로 고백하러 간다.’이지만, 저는 프로미스나인이 대중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라고도 생각해요. 잘 들어보면 ‘난 이제 시작이야. 너에게 갈 테니 나를 봐줘.’ 이런 내용으로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이제 5년 차가 됐지만 저희는 아직도 보여줄 게 많은데, 그 마음이 노래에 너무 잘 담겨 있어서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년에 음악 방송 첫 1위를 경험하면서 프로미스나인이 차근차근 걸어온 시간들이 떠올랐다고요. 그 시간을 함께한 플로버에겐 어떤 마음이에요?

백지헌: 예전에는 무대에서의 예쁜 모습으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거든요. 근데 긴 공백기 동안에도 플로버들이 계속 응원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그 자리를 지켜주시는 거예요. ‘무대가 다가 아니구나. 이렇게 서로 감정을 공유해야 되는구나.’라는 걸 그때부터 깨닫고 플로버와 편한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생각이 커졌어요. 이젠 서로 정말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이번에 ‘2022 Weverse Con’을 하면서 플로버 얼굴을 보고 너무 벅차고 울컥하더라고요. 플로버랑 우리만의 단독 콘서트를 꼭 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자신의 캐릭터를 살려 ‘문명특급’에 출연하고, ‘INK’ 콘서트 MC를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과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될 텐데, 기대되는 게 있나요?

백지헌: 저는 프로미스나인으로서도, 그냥 백지헌으로서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콘서트는 물론이고, MC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고, 제가 드라마를 좋아하다 보니 연기도 해보고 싶고. 기회가 되는 것들은 솔직히 다 해보고 싶어요. 수능이라는 큰 목표를 하나 마무리지었으니 새로운 목표들을 찾아서 도전장을 내미는 느낌인 것 같아요.(웃음)


성인이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하는 지헌 씨의 설렘이 느껴져요.(웃음)

백지헌: 스무 살이 돼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웃음)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맨날 해요. 원래는 성인이 돼서 제가 저를 온전히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대가 돼요.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고, 이제 시작이잖아요.

글. 이예진
인터뷰. 이예진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김리은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유인영, 조민아(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사진. 이규원 / Assist. 이다정, 김재경, 김재언
헤어. 김꽃비, 박은지, 하린(위위아뜰리에)
메이크업. 예미진, 강다윤(위위아뜰리에)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 Assist. 김나영, 이가은(뉴오더콥)
아티스트 의전팀. 안소량, 심연진, 강진성, 안은비, 우지현, 이동영
아티스트 매니지먼트팀. 김낙현, 곽상환, 신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