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닝카이는 기도하듯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매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질문의 마지막 음절까지 들은 후에야 답변을 시작하고는 했다. 그는 잘 듣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안다. 휴닝카이는 그렇게 한결같이 기다려왔고 또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가 더 깊게 뿌리 내리기를, 우리의 밑동이 더 단단해지기를.

화보 촬영은 좋았나요?

휴닝카이: ‘위버스 매거진’은 찍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어 되게 신선해서 좋아요. 지난번에 멤버들끼리 손으로 연결된 것도 그렇고, 이번에는 몽환적이면서도 네버랜드를 표현하려고 한 것 같아서 좋았어요.

 

가장 좋아하는 계절, 겨울이에요. 이번 겨울은 어떻게 보내고 있어요?

휴닝카이: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가족들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누나랑 동생이랑은 미니 케이크를 만들기도 했고요. 새해에는 떡국 먹고 한 살 잘 먹었습니다.(웃음) 평소에는 오전 7~8시 정도에 일어나서 아침 조깅을 해요. 겨울 아침의 공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제가 추위를 많이 안 타기도 해서요. 아침형 인간이라 스케줄이 늦게 끝나도 들어가자마자 바로 씻고 자는 편이거든요. 

 

멤버들과는 홀리데이 기념 위버스 라이브를 했어요. 랜덤 선물로 반려돌을 준비했었죠?

휴닝카이: 저도 반려돌이 있다 보니 다른 멤버도 같이 키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준비하게 됐는데 범규 형이 당첨됐어요. 사실 제 반려돌도 선물 받은 거예요. 표정도 그릴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예쁘고 귀엽더라고요. 아직 잘 키우고 있어요, 리오넬 음바페. 지금은 잠시 촬영을 맡겨둬서 연예인이 되기 직전입니다.(웃음)

 

소소하게 즐거운 일들이 많았네요.(웃음) 연말 시상식 무대를 준비하느라 많이 바빴을 것 같은데.

휴닝카이: 중간에 휴가가 있긴 했는데 다 같이 휴가를 반납하고 무대 연습을 했어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서 그렇게나마 연습 횟수를 늘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면 긴장될 수밖에 없어요. 불안하거든요. 편안한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가고 싶어서 연습을 더 하기로 결정했죠. 결과적으로는 퀄리티 높은 무대가 나와서 만족스러워요. 특히 ‘MMA(멜론뮤직어워드)’는 5분가량의 댄스 브레이크에 그동안 우리의 서사를 모두 담았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MMA’에서 ‘이름의 장’ 막이 열렸죠.

휴닝카이: 이번 앨범에서 정말 컨셉추얼의 정점을 찍은 것 같아요. 네버랜드라는 소재를 불러와서 피터팬이랑 연관을 짓기도 했고요. 저는 네버랜드가 콘셉트 포토 ‘Nightmare’ 버전 같은 느낌의 공간일 것 같아요. 처음에 좋은 곳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무언가 꺼림칙한 게 있는 곳이요. 게임 같기도 하고요. 제가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고, 게임 속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재밌게 놀고 편하게 쉬다 보면 여기서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하지만 그 세계는 가상이고 진짜가 아니잖아요. 현실에서 해야 될 것들이 있으니까 즐길 것만 즐기고 돌아와서 다시 이제 일에 집중하려고 하죠. 사실 ‘Nightmare’ 버전을 촬영할 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귀여운 인형들에게 둘러싸여서 폭신한 바닥에 누우니까 좋더라고요.(웃음) 

 

그런 콘셉트 속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이해했나요?

휴닝카이: 악마의 유혹에 흔들리지만 그래도 벗어나겠다는 마음을 먹고 네버랜드를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겼잖아요. ‘Devil by the Window’부터 그 유혹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우리의 길을 제대로 한 번 걸어보자.’ 그러니까 결국 ‘성장’인 것 같아요. 표면적으로는 어른이 됐더라도 한 번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유혹을 마주하고는 하죠. 저도 가끔 어떤 벽을 맞닥뜨렸을 때 ‘편하게 놀고 집에 와서 밥 먹고 공부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저는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그날 잠시 꽁해 있다 자고 일어나면 바로 괜찮아지는 성격이거든요.(웃음) 멤버들도 그게 제 장점이라고 얘기해주고, 제 생각에도 아이돌 하기 좋은 성격인 것 같아요.(웃음)

 

‘Devil by the Window’에서 유혹에 빠진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어요?

휴닝카이: 최대한 호흡이 많이 빠져나오게 악마가 속삭이는 느낌을 살려서 불렀어요. 아티스트로 따지면 빌리 아일리시 같은 느낌. 이 콘셉트에 노래랑 안무가 딱 들어맞는 느낌이라 춤출 때 너무 행복하고 재밌기도 하고요.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표정을 지어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무대에 서면 그윽한 눈빛으로 모아분들을 바라보려고요.

 

‘Sugar Rush Ride’에서도 유혹이라는 콘셉트가 이어지죠.

휴닝카이: 처음엔 소화하기 쉽지 않았어요. 유혹적이긴 한데 ‘Devil by the Window’와는 다른 결이라 과하게 호흡을 빼지 않고 어느 정도는 강렬하게 부르려고 했어요. 안무도 명확하게 끊는 포인트가 없이 흘러가는 느낌이라 합을 맞추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고민이 많지만 어떻게든 되게 만들 거예요. 이 곡으로 저희가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음악적인 성장을 바라는 것도 ‘우리를 증명’하고 싶어서일까요? 올해도 ‘작사와 작곡 지분율 높이기’를 한 해 목표로 세웠어요.

휴닝카이: 10년이 지나든, 20년이 지나든 제 지분을 높이고 싶다는 마음은 쭉 유지될 것 같아요. 물론 작업할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죠. 하지만 우리가 노래하고 춤추는 만큼 앨범에 우리의 이야기를 더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작년 목표를 모두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중요했던 ‘모아 만나기’만큼은 제대로 이뤄냈네요.

휴닝카이: 팬데믹 때문에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죠. 저희가 더 빨리 찾아갔어야 했는데 3년 동안 어떻게 버티신 건지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쉽고 미안하다는 마음도 컸어요. 저희도 모아분들을 만나고 그 에너지를 받는 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만나고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하면서 ‘진짜 가수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2020년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모아를 만난다면 쩌렁쩌렁하게 큰소리로 팀 인사를 하고, 몸이 부서져라 춤도 추고, ‘;(땀)’을 앙코르로 부르고 싶다고 했었죠.

휴닝카이: 완벽하네요! 잘 이루어진 것 같아요. 저는 콘서트에서 앙코르 무대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때쯤이면 체력이 많이 고갈되는데도 그 순간이 너무 신나고 재밌었어요. 모아분들과 가까이서 마주 볼 수 있기도 하고요. 사실 투어 초반에는 무대 마지막까지 하는 게 분명 힘들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다 익숙해지더라고요. 유산소 운동을 할 때 처음에는 너무 힘든데, 체력이 늘면 나중에는 속도를 더 올리거나 더 뛸 수 있는 것처럼요. 무대도 비슷해요. 그렇게 끝까지 달려서 진짜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인 ‘;(땀)’을 부를 때는 늘 그냥 뭉클해요. 모아분들이 준비해주시는 것들도 있으니까 볼 때마다 새롭고요.

 

투어 마지막 공연이었던 마닐라에서는 ‘앵앵콜’로 ‘Our Summer’를 불렀어요.

휴닝카이: 여름 내내 투어를 했는데 ‘Our Summer’가 세트리스트에 없는 게 아쉬워서, 즉석에서 마지막 선물로 남겼습니다.(웃음) 투어 덕분에 이것저것 많이 경험하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한 해였어요. 봄에 다시 투어를 시작하는데, 약속대로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고요! 모아분들 보고 싶어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요. 엄청난 세트리스트가 기다리고 있으니 많이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동안 모아와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휴닝카이: 팬데믹 기간을 보내면서 오히려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서로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으니까요. 투어를 하면서는 모아분들 덕분에 자존감도 올랐고, 매번 볼 때마다 설레고 반가웠어요. 음, 역시! 모아분들 앞에서 무대에 서고 춤추는 게 제일 행복하네요.(웃음)

요즘 또 크고 작은 행복을 주는 것들이 있다면요?

휴닝카이: 요거트 아이스크림? 요즘은 새벽에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야식으로 단것 먹을 때요. 디저트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제가 밥보다는 디저트파라.(웃음) 

 

예전에 “매일을 만족하며 살아서 오늘 하루는 5점 만점에 5점이고, 살짝 아쉬운 게 있으면 거기서 조금 깎인다.”고 했던 게 생각나네요.

휴닝카이: 조금 아쉬워도 단것을 먹으면 다시 원상 복구되더라고요! 힘든 일이 있어도 하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는 편이라, 큰 어려움 없이 ‘5점짜리 하루’를 지킬 수 있어요. 묵묵하게 그냥, 최대한 아무 생각 없이 평온하고 긍정적으로.(웃음)

 

후드티나 인형,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은 여전히 휴닝카이 씨를 행복하게 하나요?

휴닝카이: 그렇죠. 요즘도 변함없이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뭐예요?

휴닝카이: 그냥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저는 하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걸 오랫동안 쭉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음이 잘 식지도 않고요. 애초에 그 대상에 향하는 애정이 크다고 해야 할까요.

 

첫인상과 달리 새롭게 좋아지는 경우도 있나요?

휴닝카이: 노래로 따지면 ‘Good Boy Gone Bad’를 고를 것 같네요. 저는 수록 곡도 되게 좋지만, 매번 좋은 타이틀 곡을 가져오는 게 저희의 자랑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Good Boy Gone Bad’를 처음 들었을 때 갑자기 뭔가 달라진 느낌이고 취향에 맞지 않아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무대를 해보니까 신나고 재밌더라고요. 좋아하는 사람은 더 좋아할 수 있는 곡인 것 같아서 애정이 가게 됐어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에 대해서만큼은 취향까지 뛰어넘는 건데, 그 애정의 기반은 어디에 있나요?

휴닝카이: 멤버들이죠. 매 무대 시작 전에 멤버들끼리 다짐을 하고 들어가면, 무대의 느낌이 달라지는 게 체감될 정도예요. 같이 “파이팅, 파이팅!”을 하고 들어가야 의욕이 생겨요. 멤버들이 열정과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라 저도 같이 나아가고 도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계속 도피만 하다가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잖아요.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어느 정도 견디는 것도 필요하고, 제가 능동적으로 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태현이가 “이 직업을 골랐으면 그래도 정점까지 가봐야 하지 않냐.”고 했을 때, 듣고 “와, 이거 맞는 말이다.” 싶었어요. 끝까지 한 번 달려봐야죠. 

 

MBTI가 ‘ENFP’에서 ‘ISTP’로 바뀌게 된 것도 태현 씨의 영향이 있었다고요.

휴닝카이: 룸메이트 태현이의 생각을 많이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태현이를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같이 ‘T’가 되었나 봐요.(웃음) 이성적으로 보는 게 좋은 상황이 있기도 하고, 제가 예전에는 ‘F’였다 보니 양쪽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저도 ‘ENFP’에서 너무 확 바뀌어서 신기하긴 해요. 연습생 때만 해도 많이 감정적이었거든요. 그때는 많이 울기도 했는데 데뷔 이후로 좀 이성적으로 변했죠.

 

성격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휴닝카이: 연습생 때도 그렇고 데뷔 후에도 바쁘게 지내다 보니 감정 표현이 점점 무뎌진 것 같아요. 연습생 초반에는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몇 년이 지나면서 그냥 받아들이게 됐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요즘은 멤버들에게 힘들 때가 있을 때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미안할 때도 있더라고요. 다 같은 일을 하고 있고 다들 힘든 일들이 있을 텐데 괜히 나까지 힘든 걸 늘리고 싶지 않아서요.

 

멤버들에게 “든든한 막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걸까요?

휴닝카이: 연습생 때는 철이 들기 전이라 워낙 어리광을 많이 부렸다 보니(웃음) 멤버들에게 신뢰를 많이 못 준 것 같아요. 데뷔하고서라도 믿음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이제는 계속 한집에서 살다 보니까 그냥 완전 가족이에요. 연습생 때부터 자고 일어나면 항상 앞에 연준이 형 얼굴이 보이는 게 일상이고.(웃음) 누군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 하더라도 이제 나머지 네 명이 끌어주고 서로 도와줄 수 있어요.

 

매번 우리가 ‘함께’ 성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휴닝카이: 저희는 팀이니까 다 같이 잘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진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보여줄 수 있어요. 저는 한 명이라도 대충하면 그건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함께한 미래에서는 방탄소년단 선배님들처럼 정점을 찍고 싶다는 상상도 해요. 그리고 그 이후로는 멤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멤버들의 행복이 제일 우선이기도 해요. 우리 멤버들이 고생한 걸 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위버스 라이브 중에 태현 씨가 “우리 봄에 나무나 하나 심을래?” 하고 물어보니까 “나무가 자랄 때마다 슬플 것 같다. 20년 지나고 나무가 커지는 걸 보면 뿌듯하면서 아련할 것 같다.”고 하던데, 왜 그런 기분이 들었나요? 

휴닝카이: 세월이 흐르는 게 느껴질 것 같아서요. 아직도 신인 같은데 나무가 자라는 걸 보면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구나.’ 싶을 것 같아요.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네요.

 

‘포켓몬스터’의 지우가 챔피언이 되는 걸 보면서도 슬펐다고요.

휴닝카이: 저는 떡잎부터 좀 달라서(웃음)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 보는 걸 좋아했는데, 오랜 시간 함께한 그 친구가 은퇴한다는 걸 들으니까 슬펐어요. 제가 찾아보니까 지우가 코난이랑 같이 주인공으로서 가장 장수한 캐릭터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포켓몬스터’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지우였던 거죠. 사실 스토리상으로는 챔피언이 되면 어떻게든 은퇴할 운명이긴 해요.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이게 참 슬프더라고요. 우리가 심은 나무가 자라는 걸 보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아련하고 뭉클하고.

 

그래도 지우는 행복할 거예요.(웃음)

휴닝카이: 정상을 찍었으니까요. 저희도 이제 지우처럼 정상을 찍으면 되겠네요.

Credit
글. 송후령
인터뷰. 송후령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윤해인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정수정, 허지인, 최윤석(빅히트뮤직)
사진. 박성배 / Assist. 최미진, 양준형, 구혜경
헤어. 김승원
메이크업. 노슬기
스타일리스트. 이아란
세트 디자인. 하이이화
아티스트 의전팀. 김대영, 김지수, 신승찬, 유제경, 고영욱, 구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