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만난 희승은 변화의 기운으로 채워져 있었다. 친절함, 유쾌함,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애정. 그 모든 에너지는 자신의 일에 대한 치열함 그리고 엔진을 향한 마음으로 환원되는 중이다.

인터뷰 전에 화보 촬영을 했어요.

희승: 이번 앨범과 약간 무드를 맞춘 것도 같고, 분위기가 다크하고 콘셉추얼하더라고요. 오늘 염색을 하고 와서 신선한 마음으로 찍었어요.(웃음) 요즘 중요한 스케줄이 많은데 계속 이 헤어스타일로 하게 될 것 같아요.(인터뷰는 5월 8일 진행) 제가 쟁취한 머리거든요. 원래 이렇게 욕심을 내는 편은 아닌데, 회사와 엄청 논의했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앨범에 대해 생각하다 막연히 무대 위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 머리를 꼭 해야 될 것 같았어요. 멋있지 않을까 싶어서요.(웃음)

 

미국 투어 때 공연마다 스타일에 신경 쓴다는 얘기를 위버스 라이브에서 했는데, 그 연장선일까요?

희승: 확실히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 요즘 그런 부분을 엄청 신경 쓰는 것 같아요. 데뷔 초에는 실력적인 부분에서 노력이 더 필요한 시기였다면, 지금은 제 모습을 가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마음속에 새기고 있어요. ‘나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지 생각하고 멋있게 포장하는 것도 중요한 영역이구나.’(웃음) 요즘 많이 노력 중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DARK BLOOD’의 비주얼적인 결과물들은 어땠어요? 엔진들의 반응이 엄청나더라고요.

희승: 최근 ‘HALF’ 버전 콘셉트 포토가 공개됐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응큼해가지고.(웃음)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은 좀 가리라고도 하시고.(웃음) 마지막 콘셉트까지 잘 공개되고 좋아해주신다면, 엔진분들이 활동에도 잘 몰입해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트레일러는 대사나 상황이 주어진 게 아니라 표정만으로 깜짝 놀라는 걸 표현해야 되는 거라 어려웠어요. 저는 다른 멤버들이 찍은 걸 못 봤는데 싸우는 장면도 있고, 말 타는 장면도 있고, 열심히 찍었구나 애들이.(웃음) 확실히 신선하고 잘 이해할 수 있게 구현된 것 같아 다행이에요. 저희 모습 자체를 봤을 때 놀라실 만한 것들을 이번 앨범에서 많이 준비했고,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더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요.

이번 타이틀 곡 ‘Bite Me’의 보컬 어레인지로 크레딧에 오르기도 했죠?

희승: 이번에 제가 앨범에 더 깊게 참여했기 때문에 더 즐거웠어요. 곡의 디렉팅에서도 관여를 많이 하면서 멤버들에게 도움을 줬던 것 같고요. 생각을 조금 더 창의적으로 하고, 좋은 퀄리티를 낼 수 있는 방향이 어딜지 조금 깨달아서 재밌었어요.

 

‘Bite Me’는 주로 보컬 디렉팅을 했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희승: 맞아요. 보컬적인 부분도 있고 랩도 있었고, 경계는 딱히 없었어요. 저는 이 곡은 이렇게 해야 되고 저 곡은 저렇게 해야 되고, 이런 게 노래를 들었을 때 한 번에 느낌이 바로 오는 편이라 그 방향대로 가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타이틀 곡 ‘Bite Me’는 바이브나 뉘앙스, 리듬이 중요한 것 같아 그런 점을 많이 디렉팅했어요. ‘Bite Me’가 저한테는 고민이 많았거든요. 활동도 생각해야 하고, 엔진분들의 귀도 생각해야 하고. 무조건 잘하는 걸로 채워보려고 했어요.

 

앨범의 다른 곡에도 참여한 부분이 있었나요?

희승: 앨범의 ‘Bills’, ‘Karma’ 같은 곡에도 관여를 많이 했어요. 보컬 선생님이 녹음을 함께 봐주시긴 했지만, 제 주도 하에 녹음을 했거든요. ‘Karma’는 그냥 질렀고,(웃음) ‘Bills’는 곡 자체가 요즘 사람들의 시대나 생활을 잘 보여주는 노래라 생각해서, 트렌디하게 부르려고 노력했어요. ‘Bills’가 시혁님에게 극찬을 받았거든요. 녹음을 너무 잘했다며 활동 곡으로 해야겠다고 말하실 정도로 좋아하셔서(웃음) 뿌듯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저의 개인적인 작업물도 누군가가 들으면 좋을 수 있고 그래서 그게 앨범에 들어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가능성을 봐서 좋았어요. 지금은 활동을 너무 하고 싶어요. 빨리 하고 싶은데 시간이 안 가요, 요즘.(웃음)

무대를 향한 희승 씨의 의지에는 지난 월드 투어의 경험도 영향을 줬을까요?

희승: 데뷔 초에는 팬에 대한 감사함을 열심히 배우고자 했다면, 이제는 더 느껴지고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투어에서 엔진분들이 모여 저희 곡을 ‘떼창’해주시는 게 너무 감동이에요. ‘이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기다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더 들어와서 나태해진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녹음할 때도 한 번 더 엔진분들을 생각하며, 그 공연장을 생각하며 불러야겠다는 감정이 들고요. 실제로 그렇게 많은 엔진분들 앞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무대 위에서의 모습도 더 자연스러워지고, 더 멋있어진 것 같아요.

 

투어를 통해 무대라는 공간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2022 ENniversary MAGAZINE’에서 공연을 하면 “감정과 이성이 분리돼서” 느껴진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였어요?

희승: 무대 위에서 흥분하고 이런 게 멋있는 그림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걸 조금 경계하는 편이어서요. 무대에서 흥분한다는 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린다는 거잖아요. 무대에서 다 쏟아내고 “이번에 진짜 잘했다. 대박인데?” 하고 모니터를 봤는데, “이게 뭐야. 내가 이렇게 했다고?” 이런 적도 있거든요. 생각했던 것과 실제가 다른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멋있고 잘하는 걸 잊은 채 무대를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그걸 경계하고 일부러 분리해서 보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고, 그 사이를 구분 짓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제대로 보여주는 게 프로라고 생각해요.

 

‘2022 ENniversary MAGAZINE’에서 스스로를 “아직은 반짝거린다는 표현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서 투어를 통해 경험치를 쌓고 싶다.”고 했어요. 투어를 끝낸 지금의 생각은 변화가 있나요?

희승: ‘반짝거린다’, ‘아니다’는 제 스스로 판단한 거고, 그게 제 자신을 투영하는 모습이었다 생각해요. 그래서 당시에는 준비가 안 되었다고 볼 수도 있죠. 그렇다고 지금 “준비가 완전히 됐다. 이제 할 수 있어!” 이건 아니지만.(웃음) 아이돌이라는 존재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언제나 빛나는 사람이잖아요. 마찬가지로 무대 아래에서도 그런 사람이 되면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빛난다’, ‘아니다’ 이런 잣대보다는 그냥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내가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여야 되는 것도, 빛나야 되는 것도 당연한 거니까. 그걸 일부러라도 받아들이고, 고민하고, 나아가야죠.

전에는 희승 씨에게 때로 고민이 많은 모습도 엿보였는데, 요즘은 일종의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희승: 제가 고민이 많은 성격이라 하셨잖아요. 최근에 깨달은 건데 고민은 안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더라고요. 머리로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별로 없어요. 직접 움직여야 생기도 띄고 삶도 즐거워지는데 “내가 이렇게 되고 싶은데, 왜 안 될까?”보다는 “내가 이렇게 되고 싶은데, 그 방법이 뭐가 있을까?”로 바뀐 거죠. 채소를 사와서 “이걸 더 신선하게 만들 방법이 뭐가 있지?” 하고 째려보기만 하면 그냥 상하잖아요. 새로운 걸 사와야 하는 거죠.

 

일상에서 느끼는 성격 변화도 있겠어요.

희승: 옛날에는 혼자 방에 있는 걸 즐겼는데, 요즘은 혼자 있는 게 조금 싫더라고요?(웃음) 괜히 영화라도 한 편 더 보고 새로 나온 노래는 없나 들어보고, 친구한테 전화도 해봐요. 그럴 때 딱 느꼈어요. ‘나는 사람 만나는 걸 필요로 하네?’ 친구들도 많이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과 길거리 농구를 하는 희승 씨를 볼 수 있었을까요?

희승: 길거리 농구를 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과도 게임을 해서 그런지 주로 외향적이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가서 말을 걸면 그냥 친해지는 거예요. 그 시기에 농구를 하고 싶었어요.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하 ‘슬램덩크’) 개봉하기 직전에 “왜 요즘 농구가 하고 싶지?” 했는데, 딱 영화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농구까지 하고, 유튜브를 찍으면 엔진분들이 엄청 좋아하시겠는데?’ 싶었어요. 앞으로 촬영도 더 해보려고요. 농구는 요즘도 계속 하고 있어요. 어린이날에는 친형이랑 형 친구들이랑 12명이 3시간을 했어요.(웃음)

 

브이로그를 보니 농구화도 구매하시고, 꽤나 본격적인 것 같아요.

희승: 농구는 확실히 멋이라는 걸 중요하게 다루는 스포츠라 좋아해요. 농구화는 많이 모은 건 아닌데 ‘르브론’도 있고 ‘커리’도 최근에 하나 샀어요. 좋아하는 선수들의 신발을 모아서 “오늘은 이 선수가 되고 싶은데?” 하면 그 농구화를 신는 거죠. 농구하는 사람들은 폼만 봐도 누구 좋아하는지 알아요. 조던 좋아하는 사람은 조던처럼, 커리 좋아하는 사람들은 3점만 쏘거든요.(웃음) 저는 케빈 듀란트를 좋아해요. 파워 포워드에 키가 큰 선수인데요. ‘슬램덩크’에서 채치수처럼 큰 사람 옆에서 살짝 비슷한 키에 리바운드 도와주고, 2점 슛 많이 쏘고, 포스트 업 하다가 페이크 주고, 페이드 어웨이….(웃음)

농구도 좋아하시고 ‘슬램덩크’도 재밌게 보셨으니 여쭤보는 건데, 혹시 전부는 어렵겠지만 ‘슬램덩크’에 엔하이픈 멤버들을 비유한다면요?

희승: 일단 영화 스토리로만 봤을 때는 저는 송태섭인 것 같아요. 상황은 다르지만 저도 형이랑 농구를 같이 했던 추억이 있어서 너무 슬펐는데, 옆에 제이크가 있어서 울진 못했어요.(웃음) 서태웅은 약간 니키 같아요. 요즘 멋을 중요시하는 게 비슷해서.(웃음) 그리고 채치수는 중심을 잘 잡아주는 사람이죠? 정원이라 할 수 있겠는데, 정원이도 사실은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서 그 책임감으로 버티는 편 같거든요. 그래도 비슷하다면 채치수일 것 같네요.

 

짧은 비유 속에도 멤버들을 향한 애정이 있어요.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멤버들에게 “맏형으로서는 이야기를 안 한다.”고 했는데, 그 기조는 여전한가요?

희승: 요즘 들어 멤버들이 정말 믿음직해요. 이렇게 잘하고 좋은 친구들이 잘 뭉쳐서 하는게 다행인 것 같아서요. 그냥 멤버들을 믿으면서 가고 있어요. 사실 제가 뭘 해준다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인 것 같기도 하고요. 스스로 너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잖아요. 그런 걸 고치고 성장하는 시간도 부족해서.(웃음)

 

‘ENHYPEN ‘1년 뒤 나에게 from.2021’’에서는 “아직 어린 것 같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때요?

희승: 저는 성숙해진다고 하면 그게 막 어른스러워졌으면 하는 건 아니고, 불편한 것들이 없어졌으면 해요. 생활하면서나 인간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제가 조금만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생각하는 것, 주장하고 싶은 것, 제가 내고 싶은 색깔, 제가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모습. 이런 것들을 더 강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도 갖고 싶고요. 지금도 이미 가지고 있지만, 더 강하게 소리를 내고 싶어요.

 

이미 어느 정도는 그 자신감이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희승: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존감이 낮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데뷔 초에는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제 모습을 펼치지 못한 게 있었고요. 그러다 반년에서 1년 전부터 자신감이 좋아진 정도가 아니라, 좀 줄여야 될 정도로 올라갔는데.(웃음) 예전에는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이 너무 작았다면 요즘은 괜찮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하이브프린스’라는 위버스 닉네임을….(웃음)

희승: 넘어가 주시죠.(웃음)

엔진들과 닉네임 정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희승: 맞아요, 재밌어요. 엔진분들이 되게 좋아하셔서 투표도 일부러 하는 것도 있고. ‘하이브프린스’는 트위터 ‘실트(실시간 트렌드)’였잖아요. ‘이렇게 좋아하시나? 진짜 왕자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웃음) 제가 사진 올리는 것도 옛날에는 엄청 잘나온 것만 올리고 싶었는데 최근에 어린이날에 올린 사진 같은 것도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아 나를 엄격한 잣대로 보고 있지 않구나. 내가 장난을 쳐도 되겠구나.’ 그래서 엔진분들과 이렇게 놀고 있어요.

 

햄스터파와 사슴파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도 그 일환이겠죠?(웃음)

희승: 아, 이거 인터뷰 마지막에 적어주세요. 꼭 해주세요. “사슴파여, 일어나라.”

 

희승 씨가 엔진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희승: 이제 그냥 장난쳐도 받아주시고, 멋있는 모습도 좋아해주시고, 앨범도 사랑해주시고. 엔진분들은 제가 하는 모든 활동들을 엄청 좋아해주시니까 그것만으로 너무 재밌는 것 같아요. 엔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요. 앞으로 자연스러운 제 모습이 많이 드러나면 좋겠어요.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엔진분들한테 보여드리면, 더 좋아해주시지 않을까 싶어서요.(웃음)

Credit
글. 윤해인
인터뷰. 윤해인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김지은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허세련, 이건희, 차민수, 이지훈 (빌리프랩)
사진. 니콜라이 안 / Assist. 조승한, 이해지
헤어. 안치현 (fleek)
메이크업. 권소정
스타일리스트. 지세윤 / Assist. 최한별
세트 디자인. 최서윤, 손예희, 김아영 (da;rak)
아티스트 매니지먼트팀. 박성진, 이신동, 홍유키, 김한길, 강병욱, 우수현, 박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