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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현준 (오디오 평론가, 유튜브 하피TV 운영)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최근 압도적인 사운드로 귀를 사로잡은 두 장의 앨범이 있다. 먼저 콜드플레이의 ‘Music of the Spheres’, 방탄소년단과 협업한 ‘My Universe’로 잘 알려진 앨범이다. 이 음반의 사운드를 주재한 인물은 믹싱의 세르반 게니아(Serban Ghenea), 마스터링의 랜디 머릴(Randy Merrill)이다. 세르반 게니아는 마크 론슨의 ‘Uptown Funk’, 실크 소닉의 ‘Leave The Door Open’ 등 차트 1위만 200곡이 넘는 정상의 엔지니어다. 2019년 빌보드 Top 14 중 9곡을 그가 작업했을 정도다. 랜디 머릴은 사운드의 명가 스털링 사운드(Sterling Sound) 소속으로 아델의 ‘25’로 명성을 떨쳤고 세르반 게니아와 함께 ‘Uptown Funk’를 완성했다. 이 듀오가 재회한 ‘Music of the Spheres’는 우수한 해상력은 물론 탁월한 공간감을 들려준다.

 

또 하나의 앨범은 위켄드(Weeknd)의 ‘Dawn FM’이다. 콜드플레이 앨범과 공통점은 맥스 마틴(Max Martin)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콜드플레이는 맥스 마틴과 단 한 장만 작업했을 뿐이지만 위켄드와는 ‘Can’t feel my face’(2015) 이래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맥스 마틴은 세르반 게니아와 즐겨 일하는데 이 앨범 또한 그가 믹싱했다. 마스터링은 국내 아티스트와도 종종 작업하는 데이브 커치(Dave Kutch)가 맡았다. 돌비 애트모스 믹싱이 아쉬운 점을 제외하면 2022년 발매된 앨범 가운데 단연 빼어난 사운드를 들려주는 앨범이다.

 

열거한 엔지니어들은 모두 세계 최정상의 거장으로 꼽히며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함께 작업하기를 꿈꾼다. 이들은 흥미롭게도 방탄소년단과도 인연이 있다. 랜디 머릴은 ‘LOVE YOURSELF 結 Answer’ 앨범 마스터링을 담당했고 세르반 게니아는 ‘Dynamite’, ‘Butter’의 믹싱을 담당했다. 돌이켜보면 방탄소년단은 이들과 작업하며 사운드의 수준이 급격하게 향상, 글로벌 수준의 사운드를 갖추었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1위에는 이들의 지분도 있다 생각한다.

 

현재 음반업계의 문제로 ‘라우드니스 워’가 꼽힌다. 음반들이 서로 높은 볼륨을 경쟁해 리스너에게 좀 더 잘 들리기 위한 전쟁을 일컫는다. 보컬만 또렷하게 들리고 드럼과 같은 악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악 역사상 최악의 음질로 치닫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은 최근 ‘브라보 마이 라이프’ 발매 20주년 기념 LP를 제작하며 마스터링을 버니 그룬드먼에게 맡겼다. LP 테스트반 감상 후 초반의 연주가 작은 레벨로 마스터링되었다고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다. 알고 보니 중반 이후 죽비처럼 내리치는 고(故) 전태관의 드럼 연주를 위한 헤드룸을 확보하기 위해 레벨이 작은 부분을 그대로 두었을 뿐이었다. 어느덧 라우드니스 워에 익숙해져 장인의 음이 어색하게 들리는 아이러니. 직접 감상해보니 전설의 엔지니어가 매만진 LP의 음은 기가 막혔고 전태관의 드럼 연주는 실제로 눈앞에서 연주하는 듯 생생하게 쏟아져 내렸다. 라우드니스 워는 당장 일소되어야 할 적폐다.

 

방탄소년단의 ‘Dynamite’, ‘Butter’를 감상하며 인상적인 부분도 라우드니스 워 없이 공간감과 다이내믹스를 잘 살려냈다는 점이다. 도입부의 보컬은 또렷하지만 뒤로 물러서 있다. 다른 K-팝과 비교하면 다소 생경하게 들릴지 모른다. 곡이 고조되며 악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보컬을 에워싸며 입체감 넘치는 사운드 스테이지를 그려낸다. 이 사운드는 두 곡의 마스터링을 담당한 크리스 게린저(Chris Gehringer)의 시그니처다. 그의 사운드는 광활한 사운드 스테이지, 역동적인 다이내믹 레인지로 대표된다. K-팝을 오래 작업해온 그는 레드벨벳의 ‘Dumb Dumb’, ‘피카부 (Peek-A-Boo)’를 통해 인상적인 사운드를 들려준 바 있다. 이후 방탄소년단의 세련된 음으로 빌보드 1위에 랭크한 그는 르세라핌의 ‘FEARLESS’를 통해 한 단계 진보한 음의 세계를 펼쳐내는 데 성공했다.

 

르세라핌은 한국의 하이브 스튜디오에서 레코딩, Sour Grapes를 제외한 모든 트랙을 해외의 제프 스완(Geoff Swan), 매니 마로퀸(Manny Marroquin), 조시 고드윈(Josh Godwin)이 믹싱, 크리스 게린저가 최종 마스터링을 담당했다. 수년간 방탄소년단을 통해 쌓아온 하이브의 사운드 노하우를 르세라핌에게 적극 투입했다. 타이틀 곡인 FEARLESS, ‘Blue Flame’ 모두 완성도 높은 음을 들려주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트랙은 The World Is My Oyster’다. 난 K-팝에서 이렇게 넓은 사운드 스테이지, 또렷하게 정위하는 보컬, 강렬하면서 단단하게 내리꽂는 베이스를 만나보지 못했다.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으로 리스닝 룸 전체를 가득 채우는 넓은 스테이지, 강력한 저역 어택을 표현하며 이어폰, 헤드폰으로도 찌그러짐 없이 매끈하게 표현한다. 근사한 마스터링 솜씨다. 기기를 가리지 않고 매력적인 음을 뿜어내지만 대형기일수록 더욱 진득한 매력을 선사한다. 오디오 애호가가 이 트랙을 감상하면 자신의 오디오 시스템을 점점 업그레이드하게 될 것이다.

 

해외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한 하이브 사운드의 서사를 이야기했지만 결국 이 사운드를 완성한 주체는 프로듀서, 하이브다. 국내 레코딩, 해외 믹싱, 마스터링이라는 악조건 아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켜켜이 쌓아온 하이브 사운드는 보다 견고하고 명징해졌을 것이다. 오랜 시간 음악을 들으며 언제쯤이면 K-팝 씬에서 글로벌 톱 클래스 수준의 사운드를 만날 수 있을까 고대해왔다. 이번 르세라핌 앨범을 감상하고 나니 하이브가 이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하이브 사운드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