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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방탄소년단 앨범 ‘MAP OF THE SOUL : 7’에 수록된 솔로 곡 ‘Outro : Ego’ 뮤직비디오에서 제이홉은 병상에 누워 바이탈 사인을 검사받는다. 제이홉이 지난 15일 발표한 솔로 앨범 ‘Jack In The Box’의 첫 번째 타이틀 곡 ‘MORE’ 뮤직비디오 또한 잭이 바이탈 사인을 검사받는다. 잭은 제이홉이 ‘Jack In The Box’에서 보여주는 페르소나다. 제이홉은 ‘Outro : Ego’ 뮤직비디오에서 ‘love’와 ‘joy’를 통해 바이탈 사인을 회복한다. 반면 ‘MORE’ 뮤직비디오에서 잭에게 ‘love’와 ‘joy’를 띄워줄 바이탈 사인 모니터는 ‘Outro : Ego’ 뮤직비디오와 반대편 위치에 있다. 원래 자리에는 잭의 해골을 보여주는 엑스레이 모니터가 있다. 

 

‘Outro: Ego’에서 제이홉이 “매일 ask me, guess it, 채찍, repeat”로 묘사한 노력은 “이젠 I don’t care 전부 내 운명의 선택”으로 긍정된다. 그것은 “the way is shinin’”으로 묘사한 그의 현재를 가능케 한 힘이다. 반면 ‘MORE’에서 그는 지금도 “부딪히고 넘어지며 나오는 작품”을 위해 “11년째 독학 중”이다. 그는 지금도 더 많은 “stadium with ma fans”와 “모든 트로피”를 원하기 때문이다. ‘Outro: Ego’에서 현재와 미래가 빛나는 길이었다면, ‘MORE’에서는 더 많은 것을 쟁취하고픈 욕망의 대상이다. ‘Outro: Ego’와 ‘MORE’ 사이에는 팬데믹이 있다. 지난 16일 브이라이브에서 진행한 ‘Check out what’s in Jack In The Box’에서 제이홉은 ‘MORE’를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된 후 만들었다고 밝혔다. ‘MORE’처럼 팬데믹 동안 작업한 방탄소년단의 앨범 ‘BE’에서, 제이홉은 자신이 만든 ‘병’을 통해 팬데믹 이후 일이 없어진 상황에 대한 불안과 “성과에 목매”는 자신에 대해 묘사했다. ‘MORE’의 “stadium with ma fans”와 “모든 트로피” 또한 아티스트가 얻는 성과라 한다면, 이 가사는 그의 더 많은 욕심이기보다 불안이 낳은 집착의 대상일 수 있다. 팬데믹으로 불안을 갖게 된 아티스트가 미래를 긍정적으로 상상하기란 어렵다. ‘Outro : Ego’의 제이홉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완성해 빛나는 길이 펼쳐진 미래로 가고자 했다면, ‘MORE’의 제이홉에게 팬데믹 동안 겪은 현재는 미래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할 수 있는 건 무언가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뿐이다. ‘MORE’는 제이홉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반대의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Outro : Ego’가 제이홉의 삶을 되짚으며 “채찍”과도 같았던 노력을 통해 빛나는 자리에 오른 아티스트의 성공 서사로 그려냈다. 반면 ‘MORE’에서는 완성된 삶은 없다.

‘MORE’ 앞의 곡 ‘Pandora’s Box’는 제이홉이라는 이름의 탄생 과정을 설명한다. ‘hope’, 희망은 “판도라의 history”에서 가져왔고, “방탄의 희망이 되라는 frame”을 담았다. 그런데 ‘MORE’는 방탄소년단의 ‘희망’의 탄생을 팬데믹 이후 한 개인이 겪은 어두운 내면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이 관점에서 잭은 ‘Jack In The Box’에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잭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 대신 나온 정체불명의 존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잭은 ‘MORE’ 뮤직비디오에서 제이홉이 상자를 연 뒤에 등장한다. 즉, 그는 ‘희망’이 상자를 연 결과다. 이것은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제시한다.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을 꺼낼 수 있을까? 또는 제이홉이 방탄소년단의 ‘희망’이라면, ‘희망’의 ‘희망’은 무엇인가?

 

‘병’에서 제이홉은 팬데믹의 불안을 견디는 방법으로 “커피 한 모금”을 선택한다. 어떤 괴로움도 “커피 한 모금” 정도로 삼켜 넘길 수 있을 만큼 긍정적인 사람. ‘Outro : Ego’ 뮤직비디오 도입부에는 데뷔 초부터 뮤직비디오 발표 시점까지 방탄소년단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Outro : Ego’는 제이홉의 솔로 곡인 동시에 ‘MAP OF THE SOUL : 7’의 마지막 곡으로서, 제이홉을 통해 방탄소년단의 빛나는 성공사를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이 ‘희망’인 제이홉은 정작 그의 불안에 힘을 줄 ‘희망’을 찾을 상자가 없다. 제이홉은 방탄소년단의 ‘희망’이 아닌 솔로로서의 잭이 돼 ‘희망’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져 있던 자신의 내면을 탐구한다. 제이홉은 앨범들을 세 곡씩 하나의 챕터처럼 묶고, 각각의 챕터마다 다른 종류의 고민을 꺼낸다. ‘Intro’, ‘Pandora’s Box’, ‘MORE’가 이름의 기원으로부터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잭의 시점에서 재구성한다면, ‘STOP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 (Equal Sign)’은 자신이 바라보는 사람과 세상에 대해 “나부터 깨우쳐 차별 아닌 차이인 것”이라는 생각을 정립한다. 그리고 앨범의 전환점 역할을 하는 인스트루멘탈 ‘Music Box : Reflection’ 이후에 등장하는 ‘What if…’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고 희망을 가지라는 거 저 모든 게 박탈이 되고 밑바닥이어도 말할 수 있을까 넌?”이라며 스스로가 세상을 향해 무언가 발언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는다. 자신의 기원에 대한 재구성이 타인 또는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이는 세상과 나 사이의 관계에서 생기는 나의 딜레마를 들여다보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What if…’의 다음 곡 ‘Safety Zone’의 이 가사는 제이홉이 앨범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짐작케 한다. “잠시 돌이켜보기 위한 내 그루터기는 어딨나?” ‘Jack In The Box’는 스스로를 돌이켜보기 위한 정신적인 그루터기처럼 보인다. 그는 ‘Jack In The Box’라는 자신의 ‘Safety Zone’에서 안전하게 내면의 잭을 꺼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잭은 제이홉의 어두운 자아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제이홉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안내자처럼 보인다. 

 

제이홉이 자신의 삶을 관찰하며 인정하고, 내면의 고민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은 그를 놀라운 도약의 순간으로 이끈다. ‘Safety Zone’ 다음 곡 ‘Future’에서 그는 “멍투성이”가 된 마음을 가진 채 “영원한 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음을 인정한다. 미래는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 “다가올수록 무섭기도 홀로 버티기도 버거운 것”을 안다. 그는 이 현실을 부정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 가장 적절하고 나”다운 모습으로 “스스로 주체가 되어” 싸우고자 한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될 수 없단 걸” 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해 보여 나에게도 용기와 믿음으로 희망에 건” 미래를 원한다. 이 곡에 사용된 아기들의 목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코러스는 그 이유를 직감하게 만든다. 제이홉이 어떻게 살아가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존재한다. ‘What if…’에서 방탄소년단의 멤버이기 때문에 갖는 힘을, ‘Safety Zone’에서 방탄소년단의 멤버이기 때문에 갖는 약함을 고민하던 그는 ‘Future’에서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켜야 할 책임을 받아들인다. 희망은 그 책임감을 지탱하는 내면의 힘이다. 이 순간 제이홉의 희망은 하나의 단어 또는 제이홉을 대표하는 상징, 방탄소년단의 매력 중 하나를 담고 있는 캐릭터를 넘어 성찰을 통해 얻어낸 한 사람의 근본적인 정체성이자 삶의 방향이 된다. 희망이 판도라의 상자를 끝끝내 떠나지 않았듯, 제이홉은 수많은 경험과 생각들을 거쳐 자신의 인생에 ‘희망’을 남겼다. 그것은 ‘Jack In The Box’의 시작에서 판도라의 상자 신화 속 존재로 남아 있던 희망을 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현실의 신념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Music Box : Reflection’은 오르골 소리에 제이홉이 직접 녹음해 샘플링한 숨소리를 더했다. 처음에는 좌우를 오가던 이 숨소리는 어느새 뒤쪽에서도 희미하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어린아이의 편안한 잠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던 오르골 소리가 악몽의 전주곡이 되는 순간이다. 이 숨소리의 주인공을 잭으로 가정한다면, 잭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Music Box : Reflection’ 이후 ‘What if…’,  ‘Safety Zone’, ‘Future’의 사운드는 점차 가벼운 리듬과 밝은 분위기를 더한다. 다만 제이홉의 랩은 가장 밝은 분위기의 ‘Future’에서도 조금은 멀리서 들리거나 나직하게 깔리며 이어진다. ‘Jack In The Box’가 제이홉이 자신의 문제와 고민들을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그가 희망에 대해 전하는 노래 또한 밝고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현대미술 작가 카우스(KAWS)가 작업한 ‘Jack In The Box’의 커버는 제이홉의 음악이 구현한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도록 만든다. 카우스의 작품은 밝은 색깔과 포즈와 상황에 따라 귀여울 수도 있는 캐릭터를 활용해 얼핏 밝아 보일 수도 있지만, 복잡한 감상을 이끌어낸다. ‘Jack In The Box’의 커버도 마찬가지다. 밝은 색깔로 그려진 손 위에 흰색과 검은색이 체스판처럼 맞물리는 슈트를 입은 제이홉이 앉아 있다. 전체적인 색감과 팝아트적인 스타일은 제이홉의 믹스테이프 ‘Hope World’의 커버와 유사하지만, 그것이 전달하는 정서는 ‘Hope World’처럼 밝고 긍정적이지 않다. 제이홉은 자신을 표현하던 요소들을 통해 어둡고, 복잡하고 그러나 결국 자신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제이홉이 잭을 창조한 것은 ‘Jack In The Box’의 경탄스러운 부분 중 하나다.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복잡한 과정을 담은 이 앨범을, 제이홉은 잭의 강렬한 캐릭터를 통해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바꾼다. 그런데 잭의 역할은 오히려 ‘Jack In The Box’를 듣기 시작하면서 더욱 중요해진다. 오르골 소리가 흘러나오는 공간을 어둠과 공포의 현장으로 만들 수 있는 잭은, 이 앨범에서 제이홉이 가진 어두운 면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희망’으로 태어난 제이홉에게 어둠이 더해지자 그의 생각과 표현은 보다 밝은 분위기의 음악이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더라도 ‘= (Equal Sign)’, ‘Future’처럼 보다 복잡한, 그만큼 그의 삶의 더 많은 요소들을 담을 수 있도록 한다. 잭은 ‘Jack In The Box’의 상징인 동시에 ‘Jack In The Box’의 소리 안에서도 활약하며 앨범의 복합적인 요소를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드는 미로 속의 토끼다. 

 

그리고 제이홉은 잭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자신과 다른 새로운 결과물을 낸다. 올드스쿨 힙합을 연상시키는 비트가 앨범 전체의 기반을 다지되, 연주가 아닌 효과에 가까운 베이스가 노래에 불길한 분위기를 만드는 동시에 스피커로 들을 경우 듣는 사람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 공간에서 잭 또는 제이홉의 목소리 다양한 효과음이 듣는 사람의 앞, 옆, 뒤를 계속 자극하면서 잭, 제이홉 그리고 정호석인 한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점에서 ‘Jack In The Box’는 올드스쿨 힙합의 영향력 하에 있는 랩 앨범으로 포장된 가상의 영화와도 같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단지 랩이 아닌 사운드로 만든 세계를 통해 전달하고, 제이홉은 래퍼인 동시에 공간 속의 배우 또는 스토리텔러가 된다. 곡의 순서에 따라 치밀한 논리를 가진 사운드의 변화는 이 세계를 선명하게 구현한다. ’Pandora’s Box’와 ‘MORE’는 스피커로 크게 들으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를 만큼 무거운 저음을 공유하되, ‘Pandora’s Box’에서 배경으로 등장한 거친 파열음은 ‘MORE’에서 록 기타 사운드를 통해 곡의 핵심적인 이미지로 부각된다. 그리고 효과음으로 쓰이는 저음은 곡의 분위기가 밝아질수록, 제이홉의 메시지가 세상을 보는 시선과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는 과정으로 나아갈수록 줄어든다. 제이홉이 밝힌 대로, 그는 ‘What if…’에서 올 더티 바스타드의 ‘Shimmy Shimmy Ya’를 샘플링했다. 그는 자신이 연습생 시절 들었던 그 음악들을 뼈대로, 정교한 사운드 디자인과 뛰어난 녹음을 통해 하이파이적인 앨범을 완성시켰다. 11년 전 올드스쿨 힙합들을 들으며 랩 실력을 키워가던 한국의 연습생이 전 세계의 슈퍼스타가 되어 자신의 과거로부터 현재를 바라보며 성찰하는 복잡한 야심을 이 사운드를 통해 완성시킨다. 

 

제이홉은 방탄소년단의 멤버다. 세계에서 7명만이 가질 수 있는 이 문장을, 제이홉은 즐기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타인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자신의 일반적이지 않은 삶에서 해야 할 일을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성찰하고, 세상에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하며, 그것이 자신의 특수한 상황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까지 자각한다. 그리고 카우스와 협업을 하고, 사운드에 매우 공을 들인 앨범으로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 그 과정에서 그가 쓴 랩에는 올 더티 바스타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리고 아마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Pandora’s Box’의 가사 “욕심 시기 원한 질투”는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의 “전쟁, 마약, 살인, 테러”의 글자 수뿐만 아니라 랩 플로우까지 매우 비슷하다. 방탄소년단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더였던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한 바 있다.), ‘일체유심조’와 같은 불교의 사상 등 그가 살면서 경험한 취향과 영향받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담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남길 잊혀지지 않을 캐릭터를 만들고 그와 관련된 기념 상품도 냈다! 제이홉은 ‘Jack In The Box’를 통해 자신을 구성해온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종합해 방탄소년단의 멤버만이 담을 수 있는 내용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놓았다. 이것은 이 앨범에 쏟아졌던 그리고 앞으로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에게 쏟아질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기도 하다. 바로 그 방탄소년단의 멤버는 솔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 제이홉은 현대예술을 했다. 

다시 ‘Outro : Ego’의 뮤직비디오로 돌아가보자. 이 작품에서 병상에 누워 있던 제이홉은 바이탈 사인을 회복하고 나서 빨간 자동차를 탄다. 그는 이 차로 끝없이 펼쳐진 것 같은 “shinin’ way”를 달린다. ‘MORE’ 뮤직비디오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제이홉은 바이탈 사인을 체크한 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건물 안을 이동한다. 자동차는 ‘Jack In The Box’의 마지막 곡, ‘방화 (Arson)’ 뮤직비디오에서 나온다. 불에 타 까맣게 불에 탄 채로 늘어선 자동차들. 제이홉은 그 자동차 사이를 걷는다. 그의 뒤에는 집, 정확히는 큰 그림으로 그린 집이 불에 타 사라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Outro : Ego’의 뮤직비디오에서 제이홉은 사진으로 만든 2차원적인 배경을 뒤로한 채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방화 (Arson)’는 이 구도를 반복하면서, 제이홉을 3차원의 현실로 데려온다. 모든 것이 타버려 기능을 멈춰버린 현실. 제이홉이 ‘MORE’ 뮤직비디오부터 입었던 흰색 옷은 불에 타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색깔로 변해버렸다. ‘Future’까지 비중이 줄어들던 효과음으로서의 저음이 다시 공간을 압박하고, 칼로 예리하게 깎아낸 것처럼 선명하고 날카롭게 녹음된 드럼 비트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제이홉이 Jack In The Box’에서 좀처럼 들려주지 않았던, 방탄소년단의 멤버로서 했던 격렬하고 거친 랩을 통해 고백한다. 그는 모두 불태웠고(Burn), 끝났다(Done). “내 스스로가 과열이 될 수밖에 없었던 뭣도 모른 무식한 내 야망의 원동력”이 불타버렸고,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곧, 멋”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내 할 몫도 done”해버렸다. 끝없이 펼쳐진 빛나는 길을 가던 ‘Outro : Ego’ 뮤직비디오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반전. 제이홉은 길을 걷다 쓰러져 버리고,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그러나 ‘Jack In The Box’는 이 뮤직비디오가 끝나는 순간 비로소 완전해진다. ‘화양연화’ 시리즈를 기점으로, 팀으로서 방탄소년단의 역사는 ‘Outro : Ego’의 뮤직비디오와도 같았다. 그들은 모든 고난을 극복하며 끝없이 빛나는 길로, 더 높은 곳으로 솟아올랐다. 그런데 솔로로서의 제이홉은 ‘방화 (Arson)’를 통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길을 끝내버렸다. ‘Jack In The Box’에서 내면의 성찰을 통해 미래와 희망까지 제시하던 제이홉은 결국 타버린 마음은 인간의 어떤 숭고한 사고로도 회복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길을 걷던 여정은 끝났지만, 오히려 질문과 성찰과 답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딜레마는 계속된다. 예술가가 자신의 이야기에 자아도취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을 직시하며, 그것을 새로운 창작으로 완성했다. 그것이야말로 제이홉의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오래된 희망일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희망처럼, 모든 것이 불에 타고 소진되어도 없어지지 않는 예술가의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