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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원영(대중음악 평론가)

아이돌 유닛이라는 부분집합 같은 단위로는 팀 자체의 음악적 특성을 부분집합으로 꾸릴 수도 있다. 아이돌 팝 관습에 따라 트랙이나 앨범 양쪽에 주로 담기는 과잉되거나 종합적인 특징은, 때때로 이런 유닛들을 도구 삼아 가요나 팝적으로 미니멀하게 다듬어진 콘셉트를 고정하곤 한다. 그렇게 필연적인 선택의 과정으로 파생적인 소우주를 제작하는 과정은 해당 유닛이 속한 팀의 구성 요소들이 돋보이게 핵심만을 추출하거나, 아예 전체 성향을 최소주의적으로 재편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을 내세울 수 있고, 능란하게 사용한다면 때때로 팀의 단위로는 담을 수 없었던 다양한 스타일을 명민하게 분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에이핑크의 경우는 어떨까. 현역 팀 중에서 연차가 이만큼 쌓였음에도 두드러지는 공백기 없이 활동해왔으며, 이른바 ‘PINK’ 시기에서 그 이후로의 이행기에도 급격히 덜컹거리는 낙차 없이 연속성을 지속했고, 심지어 고전적인 인용을 바탕으로 완성도를 고집하며 수려한 청순 콘셉트의 표본이 된 옛 시기와 자연스러운 ‘현대화’로 (블랙아이드필승의 타이틀 곡이 언제나 훌륭히 선사하는) 전자적인 청승의 쾌감을 파고든 동시기 양쪽에서 꾸준한 히트 곡을 내왔으니 말이다. 어느 때든, 에이핑크의 안정적인 지속력은 기본적으론 뚜렷한 개성의 음색들과 이에 구석구석 대응되는 멜로디 라인을 일치시키며 생성된 가요적인 통속성이, 담기는 스타일이야 어떻든 늘 알맞게 유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머나먼 ‘PINK’ 시절에 결성된 보미와 남주의 유닛인 BnN이 R&B 발라드 보컬을 기조로 삼아 단발성 트랙을 내던 중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H(현승민)의 ‘잊었니’를 2000년대풍의 가요 랩으로 어려움 없게 능숙히 리메이크한 장면은, 유닛이라는 부분으로 파생되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을 에이핑크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예비했을 테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2020년대 들어 에이핑크의 유닛들이 꽤나 다종다양하게 갈라진다는 점은 이들의 새로운 시기가 분명하게 정립되어 좀 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걸 알려주기도 한다. ‘LOOK’에서 본격적으로 구체화되어 올해의 10주년 기념 음반인 ‘Horn’으로도 이어진 주지롱(남주, 은지, 초롱), YOS(보미, 하영, 나은)의 트랙들이 그러하다. 동시기 스타일에 따라 펑키함을 일정량 갖추고 있고, 그럼에도 의외로 부족함 없이 일렉트로닉하기도 한 댄스 팝의 기본 공식을 절제 있게 풀어낸 음악에 따라 각 음색들은 에이핑크 멤버들로만 만든 미니 에이핑크처럼 묶인다. 동시에 ‘Nothing’이나 ‘Love Is Blind’의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볼 수 있듯, 그렇게 규모가 작아진 덕에 이 유닛들은 팀이 오래간 헌정 대상이자 참조점으로 삼은 1990년대 후반의 소인원 여성 그룹들, 대표적으로는 “핑클과 S.E.S., 파파야 같은 거인들 (정구원)”과 닮아 있기도 한데, 그러한 정취는 단지 복사되기보다 현 시점에 맞춰 유려하게 복각되어 음반에 풍부함을 더한다. 이런 경로를 따라 (우연적이고 공교롭게도 BnN도 그러하듯) 양쪽 유닛에서 음색상의 격차가 제법 있는 둘로 결성된 초봄의 싱글 ‘Copycat’을, 유닛의 추출/재편/분배 기능에 세 쌍으로 대응해볼 수 있겠다.

에이핑크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Copycat’에서 즉각 두드러지는 건 특출하게 톤을 잡은 신스음과 유구하게 가요적인 멜로디를 접착해 발생시킨 은근한 ‘뽕끼’를 내장한 타이틀 곡들( 때문에 ‘1도 없어’, ‘%%’, ‘덤더럼(Dumhdurum)’, ‘Dilemma’는 레시피의 근간을 유지하되 답습의 느낌을 강하게 내지 않으면서 꽤나 유래 없는 4연타가 되기도 한다.)에 내리 참여했던 블랙아이드필승의 부재다. ‘따라쟁이’라는 뜻의 제목이 꽤나 오묘하게 느껴지는 건 2020년대 초반 내내 아이돌 팝 스타일에 영향력을 끼치던 누-디스코 성향이 가요나 아이돌 팝의 그것보다도 무척이나 ‘팝’에 맞춰 강조되기 때문이다. 2018년 이래의 타이틀 곡들이 디스코와 하우스의 교차점을 오가는 펑키한 베이스 라인을 리듬적인 주축으로 삼았더라도, (이제는 STAYC의 트랙에서도 벅차게 들을 수 있을) 블랙아이드필승의 전자적인 사운드와 그에 얽힌 멜로디가 전면적으로 드러났던 걸 생각해보자면, ‘Copycat’은 에이핑크의 현대적인 타이틀 곡들을 전자적인 음색과 통속적인 선율의 조합 쌍으로 강조하기보다, 그 밑바닥에 든든하게 깔려 있던 디스코적인 베이스 리프를 내세우는 방향으로 재편한 것과도 같다. 

 

물론 이러한 특징을 따라 동시기 빌보드 차트 팝의 여러 이름들을 암묵적인 레퍼런스로서 불러올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순명쾌하게 반복되는 이 그루브가 “내가 널 Copy  해도 숨 가삐 빠져든 건 널 거라고”라는 의미심장한 노랫말 직후 잠깐 사라지며 꽤나 뜬금 없게 속도가 느려지는 브리지 구간에 주목하고 싶다. 이러한 급전환 또한 아이돌 팝에 오래 잠재되어 있다 작년 들어 ‘Next Level’로 보편화된 방법론을 타고 급부상해 ‘트렌드’가 되어버린 구간 충돌 기술의 영향력이 무분별하게 뻗친 결과라 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여기서는 그만큼의 충격파가 주목적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는 듯 들린다. 한 트랙 안에서 먼저 등장했기에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세계에서 파트 간의 과잉된 충돌이 발생할 때에는 확 올라간 정보 값이 청자를 낯선 시공으로 훌쩍 데려다주는 것과 달리, ‘Copycat’에서 리듬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보다 안전 수치의 한도에서 되풀이하는 편이었던 디스코 그루브가 슬며시 거둬질 때, 초봄의 톱 라인은 적어도 에이핑크에게는 낯선 편이었던 디스코 팝에서부터 가요의 세계로 잠시간 방향을 틀어 익숙하게 느껴지는 몇 멜로디들을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말하자면, ‘Copycat’은 두꺼운 전자음과 은은한 그루브 그리고 가요적 멜로디라는 세 개의 요소로 결합된 에이핑크 트랙의 구조를 한 층씩 파고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풍성하게 편성된 일렉트로닉한 댄스 팝의 겹에서, 먼저 두툼한 전자음을 걷어내니 디스코/하우스 리듬의 펑키한 뼈대가 나타나고, 다시 그런 그루브까지 잠시 빼내자 지극히 가요적인 멜로디와 목소리가 나타나도록, 엑스레이를 찍듯 그 구조를 재편하는 것이다. 

 

한편, ‘Oscar’는 두 사람의 복수극이라는 콘셉트로 픽션적인 시공을 구현해, 에이핑크의 주된 색채보다는 사뭇 다른 몫을 초봄에게 분배한다. 와이퍼가 빗방울을 훑어대는 소리와 함께 점멸하며 솟아오르는 신스음이 앞뒤로 배치된 것도 모자라, 배경에서 코러스로 오르내리는 목소리를 초반부에 갑작스럽게 끊거나 주문같이 중얼거리는 후렴구에 이펙트를 걸고, 다음 구간으로 넘어갈 때 미세하게라도 급박한 전환이 이뤄지는 등의 세부는 아이돌 팝스러운 양식에 좀 더 가깝게 인공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Copycat’을 타고 내려온 그루브감이 여전히 이런 특징과 줄다리기를 하지만, 신경질적인 기타 리프와 짙은 신스음이 더하는 스산한 질감과 이에 맞춰 밝고 기묘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오가는 멜로디가 주도권을 채간다. 마지막 후렴이 끝난 이후 영화의 크레딧이 천천히 올라가듯 불안하게 끓어 넘치는 신스음과 끔뻑이는 가로등 같은 전자음이 남은 여백을 집어삼키는가 싶더니, 처음의 기계적인 와이퍼 소리가 다시 비치면서 장면이 마침내 끝나고, 이때의 긴장감은 특히 와이퍼 소리와 신스음이 교차될 때 이중 반전처럼 역이용된다. 이런 순간적인 서늘함이 제법 곳곳에 박힌 풍경은 중간만 잘라놓고 듣자면 “뻔하게 펼쳐지는 너의 Universe”로 느껴질 ‘Oscar’의 앞뒤로 의외의 맥락을 부여하면서도, 트랙은 “It's my oscar(그게 나의 오스카상)”이라고 하듯 여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트렌디한 디스코 성향의 곡인 양 자신만의 “아닌 척 Versus 모른 척”을 뻔뻔하게 이어간다. 에이핑크의 세계에서도 ‘콕콕’, ‘느낌적인 느낌’, ‘I Like That Kiss’, ‘Single Rider’ 등 합성적인 전자음이 충돌하는 면면을 톡톡히 강조한 트랙들이 든든히 있었던 만큼, ‘Oscar’는 ‘Copycat’이 추구하는 미니멀한 그루브감에 자신만의 독특한 역할을 분배받는다. 

이렇게 초봄이라는 유닛으로 ‘Copycat’이 에이핑크의 구조를 단순명쾌하게 재편하고, ‘Oscar’가 꽤나 색다르게 픽션적인 배역을 분배하니, 기어이 에이핑크의 특징을 추출해온 것 같은 트랙으로는 ‘Feel Something’을 대응할 수밖에는 없겠다. 그러나 이는 꽤나 짧은 길이의 트랙 자체에 신스음이 충만하게 들어가 일정한 박자를 강조하며 진행되기 때문보다, 강렬한 킬링 파트를 날렵하게 조준해 쪼는 보미와 그 부드러움으로 랩 구간도 섬세히 다루는 초롱 양쪽의 목소리가 듀오로 발휘하는 힘 때문이다. 에이핑크의 유닛들이 상이한 음색을 강제로 통일시키거나 차이를 과장하지 않으면서 전체로서의 팀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간소해진 멤버 조합으로 들려줄 때, 초봄은 각자와 일정 간격을 두면서도 바로 그 거리 덕에 서로를 충실히 바라보고 닮아볼 수 있을 ‘카피캣’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미 남주와의 공식적인 듀엣 경력이 있을) 보미가 “닮아가는 서롤 더 / 벗어날 수 없는 일부가 되어가”라거나 “애초에 하나같이 움직이는 너와 나”라고 부르듯, 듀엣의 묘미는 언제나 분명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두 목소리가 음색 간의 필연적인 불화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기어이 하나의 단위로 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으니까. 그렇게, ‘Feel Something’은 마치 두 사람으로만 이뤄진 합창단을 짜듯 후렴구에서 코러스들을 빼곡하게 쌓아올려 다성적인 음색을 통째로 만들어버린다. ‘Copycat’의 밀고 당기는 사랑담과 ‘Oscar’의 당기고 미는 복수극 모두가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개별적인 힘의 격차를 필요로 할 때, ‘Feel Something’은 ‘우리’라는 복수보다 ‘나’라는 단수로 이뤄진 두 목소리를 상상하며, 그렇게 모인 목소리들은 듀오이자 유닛이며 팀의 부분으로서 한 단위인 그룹, 말하자면 ‘우리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니까 고전적인 뉴 잭 스윙 양식의 리듬감을 따온 비트에 현악 편성을 더해 그 미려함을 뽐내거나, 멜로디가 가진 보편적인 힘을 대중가요의 전통적인 파토스와 접목시키거나, 에이핑크는 그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목소리 간의 평행을 엮어내는 균형감만큼은 완고하게 유지해온 팀이었으니까. 전례 없는 일관성과 내구성을 뽐내는 경력을 이제는 자그마치 11년을 이어오고, 마치 아무 힘도 들이지 않았다는 듯 스타일 변화를 감행할 수 있었던 그들만의 힘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때문에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궤적에서 당연하게 어긋남과 평행선이 나타나더라도, ‘초봄’으로는 이를 충분히 둘이자 하나로 담아낼 수 있다: “모난 선이면 어때 / 나만 좋으면 Okay / One and only real of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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