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SB Projects
  • © The Kid LAROI Youtube

2003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사운드 엔지니어 아버지와 아티스트 매니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찰턴 케네스 제프리 하워드(Charlton Kenneth Jeffery Howard)였다. 하워드의 유년기는 순탄치 않았다. 네 살 때 별거한 부모님은 일곱 살 때 완전히 이혼했다. 2015년에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던 삼촌이 허무하게 살해당했다. 길거리에서 마약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어머니의 고향 뉴사우스웨일스주 브로큰힐로 이주하고 나서는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소년은 좌절 대신 음악의 꿈을 잡았다. 어머니가 자주 듣던 푸지스, 에미넴, 에리카 바두, 릴 웨인 등 힙합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호주 예술 중고등학교(Australian Performing Arts Grammar School)를 중퇴하고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도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랩을 녹음해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랩을 업로드했다. 

 

간절한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2017년 소년은 호주 소니뮤직과 정식 계약을 맺고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오스트레일리아 신예 아티스트들의 등용문 트리플 제이 언어스드(triple j Unearthed) 결승 무대에 오르며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자신의 멘토 래퍼 주스 월드(Juice WRLD)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발표한 첫 믹스테이프 ‘F*CK LOVE’는 베니 블랑코, 마시멜로, 캐시미어 캣 등 정상급 프로듀서들이 참여했으며, 마일리 사이러스, 머신 건 켈리 등 팝 스타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스무한 살 되기 전 슈퍼스타가 되고 싶어요.” 2021년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야망을 밝힌 소년은 마침내 그 꿈을 이뤘다. 2021년 최고의 히트 곡으로 거론되는 ‘STAY’를 통해 마침내 촉망받는 신예에서 현재 팝 시장을 주도하는 슈퍼스타로 거듭난 것이다. 

 

소년의 랩 네임은 더 키드 라로이(The Kid LAROI)다. 10월 6일 KBS 아레나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치는 더 키드 라로이의 노래 다섯 곡을 소개한다. 

‘STAY’

빌보드 HOT 100 차트 4주 연속 1위, 최단 기간 스포티파이 글로벌 10억 스트리밍, 호주 출신 아티스트가 40년 만에 내놓은 빌보드 넘버원 싱글 히트 곡... 2020년대 초를 화려하게 수놓은 히트 곡 ‘STAY’의 기록은 경이롭다. 캐시미어 캣(Cashmere Cat), 찰리 푸스(Charlie Puth), 오메르 페디(Omer Fedi) 등 자타 공인 히트메이커들이 참여한 노래는 2분 21초의 간결한 러닝타임과 Z세대의 분노를 담은 거친 싱잉 랩, 명품 조연을 자처하는 슈퍼스타 저스틴 비버의 참여로 글로벌 시장을 강타했다. 이 노래로 더 키드 라로이는 2022년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뉴 아티스트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까지 안았다. 

놀랍게도 이 노래는 더 키드 라로이의 첫 메이저 싱글이다. 작곡가들과 함께 교류하며 영감을 받던 그는 프로 툴스(Pro Tools) 키보드에 무심코 연주한 멜로디로부터 노래의 아이디어를 쌓아나갔다. 저스틴 비버가 흔쾌히 더 키드 라로이의 요청을 받아들여 노래가 완성됐고, 2021년 5월 31일 둘의 협업 소식이 전해지며 발매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6월 2일 디스코드에 노래 전체가 유출되는 사고가 벌어졌지만, 노래의 거대한 흥행에 걸림돌이 될 일은 아니었다. 

‘STAY’는 더 키드 라로이의 모국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해 22개국 음악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의 인기가 대단했다. 2021년 해외 아티스트의 노래로는 처음으로 가온차트 디지털, 스트리밍 차트 부문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주간 차트에서는 7주 동안 정상에 올랐다. 한국에도 인지도가 높은 저스틴 비버와 과격하고도 절절한 이별의 정서를 노래하는 신예의 조합이 한국 음악 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Diva (Feat. Lil Tecca)’

1996년생 뮤직비디오 감독 콜 베넷(Cole Bennett)은 2013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힙합 음악 관련 커뮤니티를 꾸리고자 한 야심가였다. 베넷은 그가 거주하던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뛰어난 래퍼들을 알리고자 자신의 플랫폼 리리컬 레모네이드(Lyrical Lemonade)에 자신이 촬영한 뮤직비디오와 아티스트 인터뷰, 라이브 영상 등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2018년 5월 주스 월드의 ‘Lucid Dreams’가 빌보드 HOT 100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일리노이의 무명 제작자 콜 베넷은 단숨에 에미넴, 제이콜, 카니예 웨스트 등 슈퍼스타들에게 주목받는 신예 아티스트로 알려졌다. 

 

더 키드 라로이도 2019년 콜 베넷이 감독한 ‘Let Her Go’를 통해 리리컬 레모네이드에 발을 들이며 힙합 팬들 사이에서 주스 월드의 후계자로 빠르게 인정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싱글은 래퍼 릴 테카(Lil Tecca)와 함께한 ‘Diva’다. 투박하고 간결한 기타 리프 기반의 힙합 싱글은 더 키드 라로이가 믹스테이프를 발표하기 전 음악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는 데 튼튼한 가교 구실을 했다. 2022년 9월 25일 기준 7,200만 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곡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에서 골드 판매량을 인증받았다. 2020년 많은 힙합 팬들이 ‘Diva’로 더 키드 라로이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GO’

2020년 더 키드 라로이의 첫 번째 믹스테이프 ‘F*CK LOVE’에서 주목받은 곡으로 빌보드 HOT 100 차트 52위까지 올랐다. ‘GO’는 더 키드 라로이에게 각별한 노래다. 그의 멘토이자 인기 래퍼였던 주스 월드와 함께한 곡이자, 그가 2019년 12월 8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후 추모의 의미를 담아 앨범에 수록한 노래다. 

주스 월드와 더 키드 라로이의 만남은 주스 월드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순회 공연을 펼칠 때였다. 호주의 힙합 신예로 이름을 알려가고 있던 더 키드 라로이의 잠재력을 알아본 주스 월드는 로스앤젤레스의 스튜디오로 어린 소년을 데려가 1년 동안 음악, 랩, 제작 등 아티스트로의 성장을 도왔다. 마이애미와 뉴욕에서 열린 롤링 라우드(Rolling Loud) 페스티벌 무대에 더 키드 라로이를 추천한 이도, 멀티미디어 채널 리리컬 레모네이드(Lyrical Lemonade)에 라로이의 ‘Let Her Go’ 뮤직비디오를 업로드할 수 있게 도운 이도 주스 월드였다. 더 키드 라로이는 주스 월드로부터 이모(EMO)의 감성과 멜랑콜리한 멜로디를 배웠다. 

더 키드 라로이는 ‘GO’의 뮤직비디오에서 자신의 파트를 녹음하는 주스 월드와 어린 시절의 자신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인생의 멘토를 향한 추모의 메시지를 전했다. 더 키드 라로이는 이후 2020년에도 주스 월드의 죽음을 추모하며 생전 그의 가사를 더한 노래 ‘Reminds Me of You’를 발표했다. 

‘WITHOUT YOU’

미국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더 키드 라로이의 첫 빌보드 HOT 100 톱 텐 히트곡이다. 포스트 말론(Post Malone) 스타일의 거친 싱잉 랩을 연약한 소년의 정서로 다듬어 마이너 코드의 어쿠스틱 기타 반주를 더한 ‘WITHOUT YOU’는 서정적인 감정으로 Z세대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데뷔 믹스테이프 ‘F*CK LOVE’의 디럭스 ‘새비지(Savage)’ 패키지에 수록된 싱글로, 전체 작품에서 다섯 번째로 싱글 커트된 곡이다. 

더 키드 라로이는 이스라엘 출신 음악 프로듀서 오메르 페디와 함께 많은 곡을 작업한다. 오메르 페디는 샘 훅(Sam Hook), 엘라 마이(Ella Mai), 24k골든(24kGoldn), 이안 디올(iann dior), 릴 나스 엑스(Lil Nas X)의 주요작을 함께한 2000년생 신예 뮤지션이다. 오메르 페디가 더 키드 라로이에게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슈퍼스타 시아(Sia) 스타일의 곡을 써보겠냐는 제안을 받아 기타 코드를 만들었고, 보컬 녹음은 하루 만에 끝났다. 

무엇을 더하거나 덜어낼 필요 없이 일사천리로 제작된 노래의 반향은 대단했다. 2020년 말부터 틱톡에서 바이럴되며 심상치 않은 인기 조짐을 보이더니 2021년 3월 팝 스타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와 함께 리믹스 싱글을 공개하며 빌보드 차트 최종 8위까지 오르는 쾌거를 기록한다. 영국에서는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의 ‘drivers license’에 이어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다. 더 키드 라로이의 이모 힙합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Thousand Miles’

‘STAY’의 대성공 이후 2022년 4월 22일 컬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공개한 싱글이다. 2021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프로듀서 부문을 수상한 기타리스트 앤드루 와트(Andrew Watt)와 포스트 말론, 카니예 웨스트의 파트너 루이스 벨(Louis Bell)이 의기투합했다. 마스터링에 참여한 엔지니어 매니 마로퀸(Manny Marroquin)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Minisode 2: Thursdays Child’ 마스터링에도 참여한 베테랑 믹싱 엔지니어다. 

‘Thousand Miles’는 더 키드 라로이가 현재 교제 중인 틱토커 카트리나 뎀메(Katarina Deme)에게 첫눈에 반한 경험을 옮긴 곡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자기 삶의 태도를 함께하고자 말하기 전의 두려움을 재치 있게 노래하고 있다. 카트리나 뎀메는 ‘Thousand Miles’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해 더 키드 라로이와 연기 합을 맞췄다. 성공을 만끽한 후 한결 여유로워진 더 키드 라로이의 틴에이지 러브 송으로, 차트에서도 빌보드 HOT 100 차트 15위 및 영국 싱글 차트 21위에 오르며 인기를 증명했다. 

더 키드 라로이는 이제 슬프지 않다.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많은 것을 가르쳐준 스승이자 동료와의 작별은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되어 신예 래퍼의 정체성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주스 월드의 영과 함께 록과 힙합을 혼합한 거친 스타일로 젊음의 감정을 진솔히 고백하는 더 키드 라로이의 음악 세계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10월 6일, 혜성처럼 등장한 틴에이지 팝 스타의 한국 공연에 기대가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