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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사진 출처.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한국에서는 로잘리아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 그는 히스패닉이지만 라티나는 아니다. 히스패닉은 스페인어권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라티나는 어원과는 상관없이 지금은 주로 라틴아메리카 계통 여성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남성은 라티노라고 부르며, 성에 구분 없이 라티넥스라는 표현도 쓴다.). 로잘리아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출신이라서, 라틴 팝을 부르지만, 라티나는 아니다. 그가 한국과 같은 먼 나라에서 라티나로 오인받는다는 건 라틴 팝과 라틴아메리카의 지역성이 그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인식되고 있단 뜻이고, 유럽 본토에서 라틴아메리카를 거쳐 미국 시장에서 진입할 만큼 현재 미국 팝 시장에서 라티넥스들이 만들어놓은 라틴 팝의 위상이 커졌다는 말도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스페인 남부 민속음악인 플라멩코에 빠졌다고 한다. 대학 때는 플라멩코 보컬을 전공하고 굴지의 플라멩코 뮤지션에게 사사받기도 했다. 2017년 대학 재학 중에 내놓은 플라멩코 리메이크 앨범 ‘Los Ángeles’가 전 세계 평단으로부터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콜롬비아의 록 스타 후아네스는 스페인에 갔을 때 로잘리아의 공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섹시함, 재능, 비주얼 콘셉트, 그 모든 걸 갖췄다. 그는 음악을 바꾸러 온 여자다.” 후아네스가 자신의 매니지먼트 회사와 로잘리아를 연결해주며 그의 2집은 프로모션에 날개를 달게 되었다. 그의 출세작이 된 2018년 발매작 ‘El Mal Querer’는 로잘리아의 석사 논문 주제였던 비극적인 플라멩코 문학에 기반을 둔 콘셉트 앨범이다. 플라멩코와 투우 등 스페인의 문화 그리고 트레이닝복과 화려한 네일, 모터사이클이나 자동차 등 미국 트랩 힙합 문화의 애스테틱이 절묘하게 결합된 싱글 ‘Malamente’의 뮤직비디오는 현재까지 유튜브 조회 수 1.5억 회 이상을 끌어모으며 그를 명실상부 세계급 라이징 스타로 만들었다. 

 

플라멩코는 역사가 오랜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음악이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출발했지만, 로잘리아가 인터뷰에서도 언급하듯 라틴아메리카 음악에 영향을 받아 분화하기도 했고, 미국의 뉴멕시코주에서는 아예 지역의 문화로 자부심을 갖고 보존하고 있기도 하다. 안달루시안 케이던스라 해서 플라멩코 음악에 주로 쓰이던 ‘라-솔-파-미’ 하고 한 음씩 내려가는 마이너 코드 진행은 미국으로 건너와 블루스와 결합되어 전 세계의 팝으로 퍼졌다. 이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할 만한 강렬함을 가진 장르이지만, 고루한 민속음악이라는 인상 역시 존재했다. 플라멩코의 열정, 갈망과 비극성 등의 요소를 지금의 젊은 대중이 환호할 만한 힙합 사운드로 녹여낸 것은 로잘리아만의 독특한 시도였다.

2019년 그는 ‘El Mal Querer’로 라틴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앨범 오브 더 이어 상을 포함해 총 네 개 부문을 수상했다. 같은 해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도 제이 발빈과 함께 부른 레게톤 곡 ‘Con Altura’에 넣은 플라멩코 스타일의 안무로 수상했다. 미국 내에서도 라틴 팝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던 때라 특히 많은 사람들이 로잘리아를 주목했다. 라티나가 아닌 유럽인이 라틴 그래미 어워드를 휩쓸어도 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스페인 본국에서도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안달루시아와 카탈루냐의 관계를 들어 안달루시아 출신도 아닌 그가 플라멩코를 전유해도 되냐는 물음이 터져나왔다. 스페인 출신 가수가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종현이 부른 ‘혜야’의 원곡자 알레한드로 산스 등이 유명하고, 19​​90년대 리키 마틴의 초대박 이후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같은 스페인 가수가 인기를 끌며 2010년대까지 꽤나 롱런했다. 좀 더 최근으로는 파블로 알보란 같은 미남 가수도 있다. 이 가수들이 히트를 칠 때 그들 음악이 라틴 팝이라 라벨링되는 것에 이의를 두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2022년 현재, 로잘리아의 인기는 기존의 장르와 국경의 구분을 맹렬하게 흔들며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그 기세가 엄청나기에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2020년 미국 그래미 어워드에서 역시 로잘리아는 베스트 라틴 록, 어반 또는 얼터너티브 앨범 부문에서 수상했다.

  • © ROSALÍA Youtube

2022년 로잘리아는 3집 ‘Motomami’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집과 3집 사이에는 오즈나, 제이 발빈이나 배드 버니 등 라틴아메리카 출신 라틴 팝 스타들과 라틴 팝의 대표 장르 레게톤 곡들을 선보였고, 빌리 아일리시 그리고 트래비스 스콧과 컬래버레이션 곡을 내기도 했다. 몇 년 사이 로잘리아는 이미 ‘라틴 팝 흥행 보증수표’가 되었다. 라틴 팝에 관심 있는 수많은 빅네임 아티스트들이 그와의 협업을 탐내고 있다. ‘Motomami’의 첫 싱글이었던 ‘La Fama’는 로잘리아가 작사한 스페인어 가사를 더 위켄드가 함께 부른다. 내가 동아시아 출신으로서 ‘Motomami’에서 보다 눈에 띈다고 느낀 점은 일본 서브컬처, 일명 ‘오타쿠’ 레퍼런스다. 그는 인터넷 문화에 빠삭한 20대 청년으로 웹 전반에 퍼져 있는 ‘오타쿠’ 문화를 잘 알고 있다. 이것을 때로는 유머로, 때로는 동시대성을 가미하는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 그라임스나 빌리 아일리시와 비슷하다 볼 수도 있겠다. 스페인어와 미묘하게 잘 어울리는 일본어를 찾아 장난스럽게 병치한 ‘Chicken Teriyaki’ 같은 곡은 아시아의 몇몇 걸그룹이 보여주곤 했던 고양이 흉내를 내는 안무를 넣었다. 사랑을 나누는 남자에게 “너를 헨타이(일본어로 ‘변태’라는 뜻으로 서양에서는 주로 아니메로 만들어진 포르노를 지칭한다.)로 만들고 싶어”라고 고백하는 곡 ‘Hentai’는 서양권 사람들에게는 이국적이어서 재밌게 들릴 법한 그러나 동아시아권 여성에게는 살짝 기묘하게 들리는 곡이다.

 

로잘리아의 진정 무서운 점은 앨범의 음악과 가사, 앨범 서사, 안무, 비주얼 작업 등 모든 곳에 그의 손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탁월한 퍼포머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잘 아는 기획자이고 프로듀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며 마돈나나 레이디 가가, 비욘세 같은 전천후 팝 스타를 연상한다. 그런 기대가 과하지 않을 만큼 재능 있는 뮤지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