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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소년은 죽었다. 순수한 사랑과 아름다운 우정의 낭만을 꿈꾸던 아이들은 차가운 현실 앞에 얼어붙었다가 탈출을 꿈꾸는 낭만의 루저가 되며 어른의 세계를 맛보았다. 목소리조차 원하는 대로 낼 수 없는 세상에 당황하면서도 있는 힘껏 힘을 모아보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달리며 엉망진창이라 아름다운 자유를 조심스레 꿈꿔보았다. 그러나 날카로운 칼날처럼 시린 사랑의 상처는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심장 깊은 곳의 구멍으로부터 그동안 억눌러온 감정이 검게 흘러나와 온몸을 감싼다. ‘Gone Bad’의 시간이 왔다. 그러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록의 힘이 필요하다. 

 

‘Good Boy Gone Bad’는 어둡고 도발적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새 모습이다. 과격한 노랫말을 내뱉는 멤버들은 처절한 구원과 미약한 희망에 더는 관심이 없다. 치기 어리게 들릴지라도 스스로를 살해한 후 그 껍데기 속 새로운 자아를 끄집어내는 과정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냉정하고 폭력적이며 우아한 투쟁이다. 강렬한 기타 리프가 곡 전반을 지배하는 가운데 숨 가쁜 힙합 비트를 더한 이 곡은 2000년대 뉴 메탈의 정서를 짙게 가져가지만, 조금 더 들어보면 의외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K-팝 창세기부터 시작된, 록과 K-팝의 결합 과정이다. 

 

K-팝과 록의 동행이 화제로 떠오르는 최근 많은 이들이 1990년대를 떠올린다. 이 시기는 최후의 록 전성기였다. 너바나를 위시한 시애틀 그런지 밴드들의 얼터너티브 록 혁명이 1990년대 초 침울한 젊은 세대의 정서를 대변하며 순식간에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극도로 상업화된 메인스트림 록 시장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이 시기 밴드들은 혼란과 공황, 분노를 포효하며 주류에 저항하고 어두운 청춘의 감정을 포획했다. 이 언더그라운드 광풍은 포스트 그런지와 뉴 메탈로 이어지며 1990년대 전반을 지배했다. 그리고 이 세계적인 유행은 곧 K-팝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 메탈 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서태지의 3인조 그룹, 대한민국 대중문화를 영원히 바꿔놓은 전설적인 팀,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 깊은 곳에는 록이 있다. 힙합 댄스 곡 ‘난 알아요’의 전주는 스트링 샘플을 촘촘하게 배치하여 기타 스트로크를 의도하였고 스트링 샘플은 기타를 연주하듯 잘게 쪼개져 있고 랩 파트 이후에는 서태지가 직접 연주한 메탈 기타 리프가 등장한다. ‘환상 속의 그대’의 브리지에도 강렬한 기타 연주가 등장하며 ‘Rock’N Roll Dance’는 신대철이 연주하는 AC/DC의 ‘Back In Black’을 힙합풍으로 편곡하고 가사를 붙인 곡이다. 이후 서태지의 록 지향은 점점 선명해졌다. 두 번째 정규 앨범 타이틀 곡 ‘하여가’에서 헤비메탈과 힙합, 국악의 기념비적인 크로스오버를 이룬 다음, 서태지는 1994년의 ‘서태지와 아이들 3집’과 이듬해 마지막 앨범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을 발표하며 K-팝과 록이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서태지를 문화 대통령으로 이끈 중요한 앨범으로 선명한 사회 비판 메시지와 기성 사회에 대한 저항 의식을 담고 있다. 남북통일과 평화의 메시지를 노래한 ‘발해를 꿈꾸며’가 아이돌 그룹에 성숙한 사회의식과 뮤지션으로의 자아를 심었고, 1990년대 당대 교육 제도와 학원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한 ‘교실 이데아’가 학원 문제에 대한 갑론을박을 불렀다. 살인적인 입시 제도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 목소리를 낼 수 없던 10대들은 주입식 교육에 대해 비판하는 슈퍼스타에 열광하며 세상을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 갔다. 메탈 밴드 크래쉬의 보컬 안흥찬의 참여로 완성된 강렬한 록이었음에도 젊은 세대의 지지는 굳건했다. 4집의 타이틀 곡이자 갱스터 랩, 하드코어 힙합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Come Back Home’의 흥행 또한 10대들에게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가출 청소년들은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성숙한 저항을 꿈꿨고, 서태지의 절대적인 팬덤은 기성세대를 조롱하고 체제를 뒤엎고자 하는 노래 ‘시대유감’이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가사 삭제 요청을 받아 반주만 수록되자 조직적인 저항과 항의를 통해 음반 사전심의제도 개정을 끌어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아이돌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 트레이닝을 거친 연습생들의 그룹 조직, 회사 단위의 운영, 활동 시기와 컴백 시기의 구분 등 기존 가수들과 차별화되는 그룹의 등장은 음악 시장의 주 소비층을 10대로 결정지었다. 형식뿐 아니라 음악 스타일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잔향으로부터 출발했다. SM엔터테인먼트 보이 그룹 H.O.T.의 데뷔 곡은 ‘Come Back Home’의 영향이 느껴지는 학교 폭력 비판 곡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였고, 그들의 대항마 젝스키스 역시 1997년 입시 제도와 공교육을 비판한 ‘학원별곡’을 통해 가요계에 등장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록은 아이돌 음악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댄스와 힙합, 일렉트로닉과의 교배를 이루며 아래 틴에이저들의 지지와 저항을 이끌어낸 핵심 정서로 자리한다. 

이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로 돌아와보자. 많은 이들이 ‘Good Boy Gone Bad’에서 과거 K-팝과 록의 협업을 떠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2021년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과 ‘LO$ER=LO♡ER’로 K-팝과 록의 활발한 화학작용을 미리 선보이며 유행을 앞선 바 있다. 결정적인 지점은 장르 그 자체가 아니라, 장르를 통해 추출하고자 하는 정서다. ‘혼돈의 장’ 시리즈에서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처음 마주한 현실 앞에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는 연약한 청춘을 노래한다. 자신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Z세대의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록의 메시지가 필요했고, 유사한 감정을 공유하는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과 하드코어, 팝 펑크, 이모(EMO)의 요소가 대거 삽입되었다. 2020년대 들어 팬데믹과 함께 전 세계 Z세대들을 중심으로 록이 부흥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이들이 사랑하는 ‘록 사운드’가 완전한 밴드 사운드가 아닌, 적절히 다듬어지고 타 장르가 결합한 형태라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반면 ‘Good Boy Gone Bad’를 듣고 떠오르는 팀은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 동방신기, 가깝게는 최근의 방탄소년단이다. 1990년대 힙합 댄스 곡과 닮은 전개, 우아한 멜로디, 캐치한 코러스가 먼저 다가온다. 재미있는 점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록과 과거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슈트와 가죽 재킷을 입은 멤버들은 2000년대 이모 밴드의 비주얼과 ‘흑화’한 감성을 강조하는데, 노래는 1990년대 힙합 패션이 어울리는 댄스 팝이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K-팝 록 스타일이다. 보컬 표현도 달라졌다. 강렬한 록 스타일로 호쾌하게 노래하던 멤버들은 애절한 정서에 맞춰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강조하고 연약한 자아가 꿈꿀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을 자신감 있게 노래한다. 감정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연준의 랩, 유연한 수빈과 범규의 보컬, 하이라이트 지점에 방점을 찍는 태현과 휴닝카이의 퍼포먼스가 조화롭다.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불안과 각성의 공존 지대를 구축한다. 그리고 이 캐릭터가 확실한 주제 의식을 갖추게 되면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록을 통해 한층 더 진화한 성장 서사를 완성하고 있다. 

최근 K-팝과 록의 결합 과정에서 해외 록 밴드와 트렌드를 넘어 1990년대 K-팝 초창기까지 소환되는 모습은 분명 흥미롭다. ‘혼돈의 장’ 시리즈에서 록을 통해 울분을 삼키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Good Boy Gone Bad’의 록으로 세상에 조소를 날리며 과감히 달라졌음을 선언한다. 이들의 결과물을 듣다 보면 머신 건 켈리, 올리비아 로드리고, 윌로우, 영블러드 이전에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 신화, 동방신기를 떠올리게 된다. 록의 부활이 초창기 K-팝이 록을 활용하던 정서를 다시금 일깨우고 있는 셈이다. ‘Good Boy Gone Bad’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그룹의 팬들 그리고 음악 마니아들에게 많은 의미와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 의미 있는 ‘흑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