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밤 10시 10분, 위버스, 유튜브, 브이라이브 등을 통해 업데이트되는 보이 그룹 세븐틴의 자체 콘텐츠 <고잉 세븐틴>(GOING SEVENTEEN)에는 아직 깨지지 않은 룰 아닌 룰이 있다. 제작진이 멤버들을 조기 퇴근시킬 수는 있어도, 추가 근무는 시키지 않는다. 지난 8월 24일부터 2주간 방영된 ‘8월의 크리스마스’ 편에서 세븐틴의 멤버들은 각자 정해진 PC 게임을 깨면 조기 퇴근이었지만, 못해도 정해진 시간에 퇴근할 수 있었다. 지난 9월 7일부터 3주간 방영된 ‘마우스 버스터즈’ 편은 두 시간 동안 추격전을 하면 촬영이 끝나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세븐틴을 쫓는 멤버와 쫓기는 멤버로 나눈 ‘마우스 버스터즈’에서 쫓기는 입장에 있던 멤버 원우는 게임 설정상 갖게 된 능력으로 자신을 쫓던 멤버들을 10분 동안 특정 장소에서 이동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자 뛰어다니느라 지쳐 있던 멤버들은 쉴 명분이 생겼다며 즐거워 한다. 제작진도 출연자들에게 열심히 뛰라고 재촉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 ‘S.B.S(세븐틴 브레인 서바이벌)’ 편에서 멤버 버논, 우지, 준, 승관이 결성한 팀 이름은 <고잉 세븐틴>에 깔린 정서이기도 하다. ‘굳이’. 굳이 퇴근 시간을 넘겨 촬영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되 굳이 몸을 다칠 만큼 무리한 걸 제작진이 요구하지도, 세븐틴이 하지도 않는다.

추리 게임(‘BAD CLUE’), 먹방과 토크(‘딜리버리 푸드 파이터’), 상황극(‘드립: 세븐틴 갓 탤런트’), 납량 특집(‘술래잡기’) 등 다양한 형식의 예능 콘텐츠를 소화한다는 점에서, 올해의 <고잉 세븐틴>은 과거 MBC <무한도전>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무한도전>을 비롯한 많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들은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열심히 하나)'의 정서로 이 포맷들을 소화했다. 게임이라면 무엇이든 진지하게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작은 게임에도 ‘일이 커졌다’며 온갖 조건과 보상이 붙곤 했다. 반면 <고잉 세븐틴>은 ‘이게 뭐라고’ 굳이 다칠 만큼 무리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여러 포맷의 예능 콘텐츠들을 테마파크의 놀이기구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즐길 뿐이다. 지난 2월 24일부터 3주간 방영된 ‘부승관의 전생연분’ 편에서 멤버 정한은 진행을 맡은 승관에게 “잠깐만 근데 이거 이기면 뭐가 좋은 거죠? 상품이 뭐가 있는 건가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승관은 “그걸 이제 아시면 어떡해요. 제가 처음에 얘기했어요. 이거 막 잘해 봤자 그렇게 좋은 거 아니라고.”라며 받아친다. <고잉 세븐틴>에서는 게임에 이긴다고 의미 있는 보상을 주지 않는다. 애초에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상반기 동안 일본에서 돔 투어 공연을 돌았을 팀이다. 지난 6월에 발표한 앨범 <헹가래>는 선주문이 아니라 실제 1주일 동안 팔린 앨범이 100만 장을 넘겼다. 보상은 ‘본업’에서 이미 받고 있다. <고잉 세븐틴>에서 쉬지 않고 추가 근무를 하거나 무리를 하다 다치는 것은 오히려 팬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눈 뜨면 출근이고 눈 감아야 퇴근이나 다름없는 이 인기 그룹에게 <고잉 세븐틴>은 그나마 유일하게 정시 퇴근을 보장하고, 재밌는 게임이라도 하게 만드는 평화 지대다.

애초에 <고잉 세븐틴> 자체가 활동 기간 동안 공개되지 않은 자료를 보여주는 팬 서비스 콘텐츠로 출발했다. 그러니 게임을 해야 할 남은 이유는 순간의 즐거움과 팬을 향한 서비스뿐이다. 정한은 승관의 말을 듣고도 이어진 림보 게임에서 한 팀을 이룬 멤버 조슈아와 어떻게든 림보를 통과하려 노력한다. ‘몸개그’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두 사람은 ‘부승관의 전생연분’이 패러디한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의 출연자들처럼 림보 게임 같은 것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 <강호동의 천생연분> 출연자들이 커플을 만들기 위해, 그 과정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한 승부로 게임을 했다면, 세븐틴은 아무 보상도 없는 ‘부승관의 전생연분’에서 승부를 핑계로 게임을 한다. 이 세븐틴의 예능 콘텐츠에서 림보를 정확한 방법으로 통과하느냐는 아무런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정한과 조슈아가 림보를 통과하기 위해 웃지 않을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 그 자체다.
올해 <고잉 세븐틴 2020>의 첫 회 ‘2020 : MYSTERY MYSTERY’ 편에서 버논은 정해진 시간 안에 일정 수준 이하의 소음을 내며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게임을 했다. 하지만 그는 성급하지 않게 천천히, 자신이 먹고 싶은 반찬을 먹는다. 게임에는 이기지 못했다. 대신 그의 식습관과 성격이 드러난다. ‘본업’에서 잘 나가는 이 팀은 게임에 몰입하는 대신, 자신이 게임을 즐겁게 하는 법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의 캐릭터가 <고잉 세븐틴>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은 그의 게임을 방해하지 않는다. ‘2020 : MYSTERY MYSTERY’에서 멤버들은 무작위로 주어진 도구 또는 시간과 소음의 크기에 제한을 둔 상태에서 음식을 먹었다. 멤버들은 일부러 소리를 내며 방해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게임을 하는 멤버가 음식 먹기에 성공하도록 최대한 침묵을 유지한다. 김치전에 무작위로 뽑힌 재료를 넣어 먹는 게임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재료를 뽑은 멤버에게 누구도 다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모두가 서로 즐거운 게임을 하도록 돕고, 그 과정에서 게임을 하는 멤버들의 캐릭터가 점점 더 재밌게 다듬어진다. <고잉 세븐틴>은 기존 예능 콘텐츠와 비슷한 포맷을, 과거의 그 예능 프로그램들과 정반대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 지점에서 <고잉 세븐틴>만의 판타지가 생겨난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PC 게임에 지친 멤버들 중 일부는 촬영장으로 쓰인 방 한구석에 눕는다. 게임은 체력을 회복했거나 좀 더 게임을 잘하는 멤버가 맡는다. 그사이 다른 방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온도를 높인 방에 있어야 한다는 룰을 어기고 창문을 살짝 열어 놓는다. 안 지킨다 해도 큰 문제가 없을 만큼 느슨하고, 별다른 보상도 없는 룰 안에서 멤버들은 룰의 허점을 파고든다. 하지만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눈치를 주거나 룰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다투는 설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알아서 필요한 순간에 게임의 경쟁 상대이기도 한 다른 멤버들을 챙긴다. ‘불면제로’ 편에서 멤버 호시는 소원권을 사용해 조기 퇴근 중이었던 버논을 소환한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남아 있는 멤버들은 버논을 놀리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라면 하나만 끓여 주고 퇴근해 달라고 부탁한다. 예능적인 설정인 소원권을 쓸 타이밍이니 그나마 숙소로 돌아가지 않는 멤버를 부른다. 그리고 일 하나를 부탁하고 돌려보낸다. 승리가 아닌 각자 ‘즐겜’만 하면 충분한 멤버들은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는다. 오히려 이른 퇴근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같은 팀에 같은 숙소를 쓰며 <고잉 세븐틴> 외에도 수많은 스케줄이 있는 걸 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들은 게임을 하며 반칙을 할지라도 상대방을 가학적으로 몰아붙이지 않는다. 특정 출연자를 따돌리는 설정도 없다. 반대로 서로가 게임을 잘할 수 있도록 돕거나, 웃기려는 멤버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웃어주거나, 특정 게임에서 활약할 수 없는 멤버를 배려한다.
2018년, 세븐틴이 MT를 간 과정을 보여준 ‘TTT’ 편에서 멤버들이 족구 게임을 할 때, 준은 족구에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멤버들은 준에게 공이 갈 때마다 잘한다며 격려를 하거나, 실수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제작진도 준의 족구 실력과 멤버들의 반응에 대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강조하지 않는다. 게임 같은 것을 못해도 누구도 타박하지 않는 동료 또는 친구들의 공동체. 여기에 게임 방송이나 방탈출 게임, 또는 ASMR 같은 요즘의 엔터테인먼트가 입혀지면서 <고잉 세븐틴> 속의 세븐틴은 현실에 있을 것 같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의 판타지를 만들어 낸다. 마음 맞는 친구들이 PC방이나 방탈출 카페에서 또는 MT를 가며 즐겁게 논다. 그들 사이에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나 볼 법한 이상적인 공동체를 세븐틴은 그들의 예능 콘텐츠를 통해 매주 보여 준다. 그것도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마우스 버스터즈’ 편의 인적이 없는 창고에서 멤버들이 신나게 게임을 하는 모습은 지금 현실에서 다시 재현할 수 있을지 몰라 불안한 그 순간이다.

준은 ‘세븐틴 갓 탤런트’ 편에서 모든 대화를 뮤지컬처럼 노래하는 사람을 연기했다. 한국어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외국인인 그가 어느새 한국어로 하는 뮤지컬의 뉘앙스를 파악해 코미디를 한다. 옆에서는 또 다른 외국인 멤버 디에잇이 그런 준을 흉내 내며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두 사람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해질 동안, 다른 멤버들은 그들과 어떤 대화와 일상을 나누었을까. <고잉 세븐틴>을 꾸준히 본 이들은 멤버들의 성격, 취향, 성장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멤버 간의 관계가 어떨지 상상할 수 있다. ‘굳이’ 이기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원하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게임의 승패에 상관없는 행동을 ‘굳이’ 열심히 하곤 하는 이 예능 콘텐츠를 보고 웃다 보면, 어느새 세븐틴을 주변의 친구나 좋은 사람들처럼 느끼게 된다. 세븐틴은 데뷔 때부터 ‘모두 데뷔하거나 떨어지거나’의 조건을 건 리얼리티 쇼로 시작했고, 데뷔 전에 함께 맞췄던 반지를 점점 더 좋은 반지로 바꾸고 있다. 그들이 만든 앨범, 퍼포먼스, <고잉 세븐틴>의 로고송에는 모두 그들이 자체 제작한 결과물이 들어 있다. 세븐틴에게 자체 제작을 통한 성장의 역사는 그들이 자체 제작한 세계관이나 다름없고, <고잉 세븐틴>은 예능 콘텐츠를 통해 세계관의 범위를 확장하고 캐릭터와 케미스트리를 다듬도록 만든다. 아이돌이 그렇게 자신의 공동체가 가진 정서를 관철시키며 유튜브 예능으로 ‘고잉’했다. 지금 세븐틴의 유튜브 채널에 가면 확인할 수 있는 구독자 수와 <고잉 세븐틴>의 조회 수는 그들이 그 험한 세계에서 승리했음을 보여 준다. 싸우지 않고 즐기면서 얻어낸 승리다.

글. 강명석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