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원하지 않는 이유로 인류의 역사에 오랫동안 기록에 남을 한 해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갔고,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12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이어지는 여섯 팀의 어떤 무대들에 대한 각각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2020.12.6. Mnet ‘2020 MAMA’ : ‘Into the I-LAND (Piano Ver), ‘Intro : Walk the Line’, ‘Given-Taken’

‘2020 MAMA’에서 신인 보이 그룹 ENHYPEN은 그들을 탄생시킨 Mnet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I-LAND’의 주제곡 ‘Into the I-LAND (Piano Ver)’, 데뷔 앨범 ‘BORDER : DAY ONE’의 첫 번째 트랙 ‘Intro : Walk the Line’, 그리고 앨범의 타이틀 곡 ‘Given-Taken’, 세 곡을 연결한다. 이는 ENHYPEN이 ‘2020 MAMA’에 서기까지의 과정이기도 하다. ‘Into the I-LAND (Piano Ver.)’와 ‘Intro : Walk the Line’의 무대는 ENHYPEN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고다.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성훈이 피아노 선율에 맞춰 피겨스케이팅을 연상시키는 스텝과 턴을 활용하여 미지의 공간을 활주하는 독무는 멤버들이 꿈을 찾아 ‘I-LAND’로부터 이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거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가스의 소용돌이 안에서 성훈이 들어 올린 ‘알’은 ‘I-LAND’의 상징이고, 이것이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여 팽창하다 폭발을 일으키는 것은 ‘알’을 깨고 나온 ENHYPEN의 탄생에 대한 은유다. 그리고 천둥과 번개, 격한 진동이 뒤섞이며 나오는 데뷔 앨범의 첫 곡 ‘Intro : Walk the Line’은 컬러풀한 네온사인이 서서히 떠오르는 신비로운 배경 속, ‘첫날의 태양 아래 고통이 환희로 변하는’ 데뷔의 순간을 그린다.

ENHYPEN의 데뷔 타이틀 곡 ‘Given-Taken’이 펼쳐지는 무대는 붉은색으로 물든 황혼의 하늘에 떠다니는 암석들, 숲에 둘러싸인 웅장한 중세 시대의 유럽식 건축물과 고전적인 문양이 새겨진 무대 바닥으로 꾸며져 있다. 판타지적인 분위기의 무대는 ENHYPEN이 완전히 새로운 시공간의 세계에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곡과 퍼포먼스에 담긴 서사는 자전적이다. 댄스브레이크에서 니키는 자신을 붙잡고 방해하는 멤버들 사이로 헤쳐 나가고, 제이는 기괴하게 움직이는 팔들 앞에 홀로 선다. 그리고 비장한 효과음과 함께 ENHYPEN의 리더인 정원을 중심으로 대형을 이뤄 그룹의 시그니처 동작 ‘Connect’가 나오기까지, 그들은 데뷔에 이르기까지의 쉽지 않았던 여정과 한 팀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꿈을 좇아온 지난 시간들을 집약적으로 압축한 춤은 ENHYPEN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정의이기도 하다. ‘I-LAND’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작은 사회와 같던 연습생 집단 사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해야 했던 그들은 그 과정에서 복잡한 마음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ENHYPEN은 세상이 보지 않았던, 알아주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과거로부터 불러내어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다. 서바이벌 오디션으로부터 살아남아, 스스로 서사를 쓰기 시작하게 될 팀의 첫 장이 그렇게 끝났다.
글. 이예진
디자인. 페이퍼프레스
사진 출처. 빌리프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