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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신인 배우에게 ‘헤드윅’은 매우 어렵고 도전적인 작품일 가능성이 큽니다. “헤드윅은 복잡한 사연을 가진 트랜스젠더다.” 같은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헤드윅의 인생에서 극적인 부분을 깊이 있게 연기하면서도, 사이사이 일상 대화의 언어를 끼워 넣어 그가 우리 곁에 가까이 있고, 주변에서 만날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동시에 드러내기 위해 상반된 두 가지 언어를 오가며 물 흐르듯 연기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 ‘이질감과 친근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라.’는 일견 모순된 목표를 갖고 이를 무대에서 구현하는 것, 헤드윅을 굉장히 독특한 개인으로 인정하면서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게 어렵습니다. 이 극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달해야 하는 대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헤드윅을 연기하는 배우는 반드시 대사들을 모두 체화해 자신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표현해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와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헤드윅과 자신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헤드윅 양쪽으로부터 하나의 통합된 헤드윅을 만날 수 있게 해야 하죠. 신인의 패기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해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러기엔 대사의 분량이 너무나 많고, 극 안에서 배우가 시도하는 변형은 절대로 극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기본적인 골격 안에서 극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 스스로 상황에 따라 대사를 바꾸거나 또는 필요에 따라 상황을 만들어내야 하는 극이라 배우의 내공이 많이 요구되는 배역이고 그래서 많은 배우들이 탐내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사이의 공백은 배우 본인의 캐릭터로 채워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달은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완성도 역시 종종 시험대에 오르죠.

 

물론 ‘헤드윅’이 이렇다는 사실을 관객들은 대부분 쉽게 알게 되기 때문에, 보통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헤드윅’이라는 파격적인 극이 크게 흥행한 까닭 중 하나는 배우들이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고 관객들과의 소통을 아끼지 않아 왔고 그것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헤드윅’은 그렇게 주인공인 헤드윅과 그의 앵그리인치밴드,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가는 극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인공에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여기에 현역 아이돌이 헤드윅을 연기한다는 것은 이러한 연기 역량 자체의 어려움 외에도, 앞에서 제쳐 두었던 부차적인 문제가 다시 중요하게 따라옵니다. 소재가 가진 금기성에서, 아이돌에게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죠. 헤드윅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약간의 검열 삭제가 필요할 수도 있는) 적나라한 장면 묘사와 노골적인 이질감, 주인공의 말끝마다 붙는 욕설과 불친절한 태도 등 그 모든 것이 생존한 소수자가 스스로 자기 존재를 지우지 않고 드러내려는 저항적 행위임을 감안하더라도 말 그대로 ‘숭배의 대상’인 아이돌에게는 본인이 유지해야 하는 이미지의 대척점을 연기하는 일이 될 수 있어 어려움이 생깁니다. 아이돌로서 정체성을 끌고 가고자 한다면 배역에 몰입하지 않은 실패한 배우가 될 위험이 있고 배우로서 캐릭터를 완전히 끌어안고자 하면 아이돌로서의 이미지가 손상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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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헤드윅’에서 헤드윅 역을 맡은 뉴이스트의 렌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렌은 세상에 대한 탐색을 멈추지 않고, 사랑받을 것에 대한 기대를 절대로 놓지 않는, 어린아이의 영혼을 계속해 담아내는 헤드윅입니다. ‘길바닥’이라는 제목의 시를 온전히 자신의 말로 진솔하게 내뱉는 모습을 보고 이 헤드윅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궁금해하는 동안 관객들은 어느새 오븐 안에 머리를 집어넣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그 작은 세계의 완전함을 누리고 있는 어린 한셀을 만나게 됩니다. 한셀은 스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그의 영혼의 반쪽이 음악이고, 음악과 하나가 된 그곳에서 그가 이미 완전했다는 것을, 관객은 극의 초반부터 확신할 수 있게 되죠. 

 

그래서 이 헤드윅은 마치 누구에게도 타자였던 적이 없는 사람 같습니다. 선배 헤드윅들이 거쳐야 했던 세상의 편견이나 이질감에 대한 냉혹한 혐오 같은 건 그냥 훌쩍 뛰어넘어 스스로 존재하기를 갈망하고 그냥 존재해버리죠. “너는 내가 불편하지? 그렇다고 나를 지울 순 없어.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해줄게.” 같은 투지나 생존자로서의 자기 연민은 거의 느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든지 말든지 헤드윅.”이라는 소개말로 불려 나와서는 그래도 결국 나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그렇게 스스로 사랑받으리라는 확신으로 가득합니다. 혐오자들이 없기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들에 대해 특별한 관대함을 갖고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이 헤드윅은 결코 희생자가 될 생각이 없고, 자신이 받고 있는 사랑에 집중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헤드윅의 노래를 듣고,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린 토미는 아담과 이브, 선악과 이야기를 하며, 헤드윅에게 선악과를 청합니다. “나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선과 악을 모두 알려주세요. 나는 모두 다 알고 싶어요.” ‘헤드윅’에서의 렌은 마치 선악과를 청하는 토미와 같아 보입니다. 헤드윅의 공연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저 멀리 다른 공연장에서 들려오는 토미의 목소리는 배우 본연의 태도나 목소리인 것처럼 장난스럽지만 익숙하고 자연스럽습니다. 헤드윅에게 토미는 너무나 ‘나쁜 새끼’지만, 헤드윅이 진정 갈망했던, 그래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존재이기도 하죠. 이미 그 자리에서 렌은 헤드윅을 받아들이고 배우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헤드윅에게는 ‘Wicked Little Town (Reprise)’를 들려주는 토미가 필요했습니다. 렌은 처음부터 헤드윅을 완전하다고 믿고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그의 ‘헤드윅’은 렌이 토미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는, 결국 헤드윅의 귀에 가 닿은 토미의 목소리입니다. 

 

대중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보는 타인과 타자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본인이 적극적으로 타자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도 하는 직업입니다. 연기자가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배역이라는 가면을 쓴 모습은 종종 의도된 오해와 함께 배우 본인이 그 배역과 같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진짜 너는 누구냐?”, “어떤 모습에 가깝냐?” 같은 우문을 듣게 되기도 하죠. 헤드윅은 자기 인생의 전반을 가로지르는 타자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이지만, 그 타자성으로 인해 조각난 스스로를 통합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인물로, 디스포리아란 무엇인지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본질이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인되고, 내가 속한 곳이 어디인 지 알 수 없고, 이도 저도 아닌 존재로서 부유하는 헤드윅의 괴로움을 비슷한 과정 속에 놓여 있는 대중예술가는 어떤 방식으로 느끼고 표현할까요? 렌은 여기에 무리해서 비극을 담아내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접근과 장기로 통합된 자아를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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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을 좋아한다는 렌에게 ‘헤드윅’은 과연 어떤 작품이 될지 궁금합니다. 헤드윅이 자신의 입으로 말하듯, 그의 가발과 메이크업은 능동적으로든 수동적으로든 여러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는 상징입니다. 오늘 공연의 이야기는 오늘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앞으로 남은 공연 기간 동안 ‘헤드윅’을 통해 렌은 스스로를 확장하게 될 것이며, 이 헤드윅을 연기하는 렌을 통해 역시 그간 발견되지 않았던 헤드윅의 이야기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젊은 헤드윅은 그렇게 더 앞으로 나아가겠죠. 렌은 자신을 보러온 관객들에게 ‘헤드윅’을 얼마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또 관객들은 ‘헤드윅’을 얼마나 만나고 돌아가게 될까요. 관객들은 자신이 ‘헤드윅’이 되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을까요? 헤드윅의 ‘이질감’은 어떻게 일상성을 획득하게 될까요. 배우로서의 성취는, 관객이 그가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실제론 배우가 쓰고 있는 가면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데에서, 그가 어딘가에 실재하고 있을 거라고 느끼게 하는 감각으로부터 옵니다. 아마도 그에게 뮤지컬의 세계는 K-팝의 세계와는 또 다른 ‘삭막하고 차가운 도시’일지도 모릅니다. ‘헤드윅’이라는 길을 걸으며 렌이 어떤 목소리를 따라가게 될지. 자신의 목소리를 완전히 갖게 될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합니다. 

 

조금은 낯선 감각으로 그의 헤드윅을 한참 보다가, 토미가 된 그의 모습을 또 한참 보다가, 대단원의 막이 내려간 후, 다시 커튼콜로 여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렌드윅의 3단 변신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커튼콜 무대에 다시 나타나 헤드윅도 토미도 아닌, 그렇다고 아이돌 본연의 모습도 아닌 갓 태어난 신인 배우의 말간 얼굴로 부르는 렌의 ‘Wig In A Box’는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글. 문주연(공연칼럼니스트)
사진 출처. 쇼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