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벽에 새긴 낙서 

강명석 :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정규 앨범 ‘혼돈의 장 : FREEZE’ 타이틀 곡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 뮤직비디오에서 그들은 멤버 연준 부모의 차를 훔쳐 달아났었다. 리패키지 앨범 타이틀 곡 ‘LO$ER=LO♡ER’에서는 ‘회색빛 차를 타고 달아나고 있어’라고 노래한다. 리패키지 앨범 발표 전 공개된 콘셉트 클립 ‘ESCAPE’처럼, 그들은 차를 타고 도망치다 수배자(‘WANTED’)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LO$ER=LO♡ER’ 가사처럼 ‘두 손엔 돈다발(hunnit bands)’을 쥐고 ‘Run’한다.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에서 ‘제로의 세계 속’에서 ‘세계의 유1한 법칙’이라며 자신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던 소년의 이야기는 ‘LO$ER=LO♡ER’에서 ‘넌 나의 구원이었어’라는 표현처럼 과거가 됐다. 도망치고, 돈이 필요해졌고, 쫓기는 신세가 된 그들은 ‘이젠 지쳤어’라고 털어놓는다. 

 

‘I’m a LO$ER I’m a LO$ER Lover with a $ dollar sign’.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그들의 탈주가 ‘이길 수 없던 fighiting’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탈주가 이어질수록 역설적으로 현실을 상징하는 돈은 더욱 필요해진다. 루저든 러버든 ‘$’가 마음에 낙인처럼 새겨진다. 이 자각은 그들을 ‘LO$ER’로 선언하게 만든다.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는 현실과 격렬하게 부딪히며 구원을 꿈꾸는 순간의 에너지를 상승하는 후렴구의 멜로디로 표현했다. 반면 아무리 달려도 자신이 ‘a $ dollar sign’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LO$ER=LO♡ER’의 후렴구는 하강하는 멜로디 속에서 관조적으로도 느껴지는 분위기를 통해 스스로를 ‘LO$ER’로 받아들인다. 도망치든 싸우든 ‘내 어설픈 비행’은 쉬이 끝나지 않고, ‘fighting’하고 ‘losing’하는 삶은 지친다. 하지만 여기서 벗어날 수도 없다. 세계는 좀처럼 환상을 가질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을 용납하지 않는다. 세상은 10대가 되기 전부터 돈에 대해 배울 것을 권장하고, 10대가 되면 이 세계로부터 ‘ESCAPE’하려면 역설적으로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이것은 지금 전 세계 10~20대 사이의 어떤 세대를 의미하는 ‘Z세대’와 한국 아이돌 산업 내에서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인 ‘4세대’가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LO$ER=LO♡ER’처럼 트랩 비트 바탕의 랩과 메탈 사운드와 결합하지만 그것을 장르로 인식하기보다 추구하는 스타일의 한 가지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은 Z세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곡의 퍼포먼스에 군무와 스탠드 마이크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결합하는 것은 그동안 모든 장르의 퍼포먼스를 안무의 형식으로 결합해온 한국 아이돌 그룹의 퍼포먼스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전 세대가 이뤄놓은 수많은 것들은 그들이 원래의 장르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갖고 놀 소재가 된다. 대신 음악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완전히 새로운 것, 그들만의 것을 갖기는 어렵다. 그래서 모든 것을 멋진 스타일로 결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고, 그만큼 빌리 아일리시, 올리비아 로드리고, 더 키드 라로이(THE Kid LAROI)처럼 모호하지만 결과물을 접할 때마다 와닿는 ‘Z세대 감각’이라는 동세대의 감각과 스타일이 중요해졌다. 한국의 음악 산업 안에서 ‘4세대 아이돌’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또한 그들이 이전 세대에게 받은 것을 기반으로 이 세대의 무언가를 전달한다. 그들과 같은 4세대 아이돌은 레드오션이라는 말조차 부족해 보이는 현재의 아이돌 산업에 이제야 발을 디뎠다. 이것은 ‘이길 수 없던 fighting’이고, 그들은 스스로를 ‘LO$ER’로 선언한 채 ‘내 어설픈 비행’이 언젠가 끝나길 바란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LO$ER=LO♡ER’의 후반부에 연준이 길게 쏟아내버리는 랩처럼 그들의 감정을 멋지게 전달할 한순간을 향해 달려간다. 반항도, 저항도, 혁명도 못할 것 같은 세상에 태어난 세대가 스스로를 기억에 남기는 방법이다. 그것이 그들의 싸움법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날 비웃어도 ‘I don’t care’라는 태도로 살아가다 ‘그저 서로를 안아줬으면 해’라고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2021년, 4세대 아이돌이 제시하는 동시대 음악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혼돈의 장: FREEZE’는 올 상반기 가장 흥미로운 앨범 중 하나였다. 이제껏 K-팝 아이돌 4세대를 주장하는 그룹은 많았지만, 이것이 4세대다 싶을 만한 음악적 특징을 집어내기 쉽지 않았다. 3세대와 4세대가 모두 현재진행형 상태로 K-팝 씬에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4세대의 돌파구가 무엇일지 아직까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혼돈의 장: FREEZE’와 ‘혼돈의 장: FIGHT OR ESCAPE’로 ‘이모(Emo) 록’ 혹은 ‘팝 펑크’풍의 K-팝이라는 한 가지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이모 록과 K-팝 아이돌이라니 영 상관없을 것만 같지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백스트리트보이즈-엔싱크와 저스틴 비버-원 디렉션 사이 남성 팝 아이돌 소강기를 이모 록 밴드들이 메꿨다. 주류 문화가 입맛에 맞지 않았던 청소년들이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나 패닉 앳 더 디스코(Panic! at the Disco) 같은 밴드를 지금의 아이돌처럼 사랑했다. 아니메나 K-팝 같은 서브컬처로 유행이 옮겨가던 중에도 이모나 그런지 스피릿은 매니악한 드라마나 이걸(E-girl) 패션 등에 살아남아 그 명맥을 이어갔고, 2021년 보란 듯 되살아나는 중이다. 더 키드 라로이의 앨범이 발매된 지 1년여 만에 빌보드 200 1위를 하고 있는 요즘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이 신호를 읽고 기민하게 반응했다. 앨범의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동시대적이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리패키지 앨범의 타이틀 곡 ‘LO$ER=LO♡ER’는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의 이모 록 인플루언스를 그대로 이어간다. 차이점이 있다면 ‘LO$ER=LO♡ER’에서는 2010년대 초반의 향수가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진다. 2011년 발매되어 이 시기 큰 인기를 누린 제시 제이(Jessie J)의 ‘Price Tag’나 투애니원의 ‘Lonely’가 이 곡과 비슷한 코드 진행이었다. 단, 앞선 두 곡은 I-iii-vi-IV 네 개의 코드가 돌아가는 구조라면, ‘LO$ER=LO♡ER’은 I-iii-vi 세 개의 코드가 돌아가며 메이저인 듯 마이너인 듯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물론 이런 코드가 2010년대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최근의 K-팝은 컨템포러리 R&B 같은 꾸밈 코드를 적극적으로 쓰는 곡이 많았기에 이 곡의 투박함이나 단순함이 좀 더 도드라진다. 디즈니식 아이돌 팝 펑크보다는 멜랑콜리하고, 본격적인 이모 록보다는 담백하게 다듬어져 있다. 4세대의 새로운 사운드는 이 스펙트럼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낯선 언어로 만든 ‘우리’의 세상

임현경 : ‘혼돈의 장: FIGHT OR ESCAPE’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익숙한 S 대신 $를 놓아둔 ‘LO$ER=LO♡ER’와 같이 낯선 문장을 제시한다. 승리자 아니면 패배자, ‘believer or saver’처럼 이분된 단어 사이에서 정체성을 선택하기를 요구받는 소년들은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은(‘밸런스 게임’) 스스로를 위해 보기 바깥의 새로운 단어들을 만든다. ‘LOVE’는 ‘hunnit bands(돈다발)’만큼 큰 지출이 필요한 탕진을 가리키는 ‘LO$E’이며, ‘영원’은 공허와 결여, ‘함께’에 대한 소망을 담은 ‘0X1’이다. 낯설고 외로운 감정을 ‘뿔'이라는 익숙한 어휘로 나타낸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CROWN)’, 유명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의 고유명사를 인용한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Run Away)' 등 앞서 스스로를 말하기 위해 기존 세계에 빗대기도 하고 만인의 판타지 속 단어를 빌리기도 했던 소년들은 ‘혼돈의 장’에 이르러 자신의 현실을 ‘우리만의 code’(‘교환일기 (두밧두 와리와리)’)로 표현한다.

 

당연한 말을 당연하지 않게 바꿔놓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언어는 지금껏 당연히 여겨왔던 현실의 빈 곳을 가리킨다. 콘셉트 클립 ‘ESCAPE’에서 멤버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상점 가득 전시된 물건들을 쓸어담는다.. 이러한 일탈은 사회가 규정한 비행(非行)이지만, 그들에게는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탈주의 비행(飛行)이다. 이는 ‘성장과 발전’, ‘노력이 보장하는 밝은 미래’와 같은 말들에 가려진, 청춘들이 내면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삶의 모습이다. 즉,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혼돈’은 단지 청춘이 흔히 겪는 방황이 아니라 자신을 규정하는 기성 문법과 어휘가 그들의 실제 자아를 담지 못하면서 생기는 충돌의 시간을 함축한다. 

 

‘혼돈의 장: FREEZE’에 수록된 ‘Anti-Romantic’은 10~20대 이용자들이 주를 이루는 소셜 미디어 ‘틱톡’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Lover’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계산서 속 ‘red line’을 떠올리며 망설이는 ‘Anti-Romantic’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는 틱톡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비슷한 연령대 세대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언어가 됐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그들뿐만 아니라 음악을 듣는 동세대에게 ‘너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우리만의 code’를 주었고, 이 ‘code’는 소셜 미디어를 퍼져 나가면서 ‘우리’가 될 수 있는 이들에게 언어를 제공한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그들의 ‘우리’를 위한 언어가 부재한 세상이, 당연한 것이냐고. 

글. 강명석,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임현경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