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강명석, 김수연, 김민경
디자인. 전유림

나는 世界に STAND

 

강명석: ENHYPEN의 새 앨범 ‘MANIFESTO : DAY 1’의 타이틀 곡 ‘Future Perfect (Pass the MIC)’의 퍼포먼스에서 “Walk the line”으로 시작해 “You stay?”로 끝나는 훅은 도입부, 2절 앞 그리고 마지막까지 세 번 반복된다. 그사이 무대 뒤편 가운데에 모여 퍼포먼스를 시작하던 멤버들은 두 번째 반복될 때는 둘, 셋, 둘로 나뉘어 좌우 무대를 보다 넓게 쓰고, 곡이 끝날 때는 가로로 긴 대형을 이뤄 앞으로 달려 나온다. 다른 파트 또한 같은 멜로디나 랩 플로우가 반복되는 구간에서도 1절보다 2절이 좌우, 앞뒤로 무대를 넓게 쓰며 보다 크고 힘찬 동작을 보여준다. 곡을 시작하는 정원의 파트에서 멤버들은 제자리에 서서 팔을 반으로 접고 발을 붙인 채 춤을 춘다. 반면 곧 이은 성훈의 파트에서는 각각 좌우로 나뉘어 이동하며 팔을 쭉 뻗는다. 

 

프리코러스 역할을 하는 “나의 발로 서길 원해”부터 “너와 나, 너와 나는 우리가 된 거야”까지의 구간처럼, ‘Future Perfect (Pass the MIC)’는 멜로디와 비트가 거의 그대로 반복되는 부분에서도 뒤로 갈수록 목소리와 사운드에 힘을 불어넣는다. 반복적인 비트에 베이스가 곡의 흐름을 조금씩 바꿔 나가면서 미세하지만 뚜렷하게 곡에 상승과 확장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Future Perfect (Pass the MIC)’의 퍼포먼스는 그에 맞춰 몸짓 하나하나를 끊어가며 치밀하게 곡의 변화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시각화한다. ‘Future Perfect (Pass the MIC)’의 퍼포먼스에 육성으로 경탄하게 되는 순간들은 멤버들이 똑같은 호흡으로 앉아서 작은 원을 그리거나, 제자리에 서서 천천히 팔과 다리를 당기는 것처럼 작고 느린 동작들로 곡의 흐름에 변화를 일으킬 때다. ‘Future Perfect (Pass the MIC)’는 드릴 비트의 긴장감을 미세한 조율을 통해 무대 위의 카타르시스로 치환한다. K-‘POP’이 앞으로 가게 될 ‘Future’의 한 방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느리게, 무겁게 그러나 점점 더 앞으로, 넓게 공간을 넓혀 나가던 ‘Future Perfect (Pass the MIC)’는 후렴구에서 가장 큰 변화를 시도한다. 곡 전반에 불길한 분위기를 부여하던 리프 대신 마치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를 연상시키는 리프가 들어온다. “난 깨달았어 함께 달렸어”, “다들 손을 들어” 같은 가사는 변화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각성의 순간. 큰 변화를 일으키는 각성은 그 전까지 느리지만 촘촘했던 변화의 과정으로 인해 더 격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후렴구 전까지 스스로를 ‘떠밀려’ 왔다고, 그들의 곡인 ‘Given-Taken’과 ‘Tamed-Dashed’를 묶어 ‘Given & Tamed’가 꼬리표이자 ‘수동태’라 정의하던 ENHYPEN이 처음으로 능동태가 되려는 순간의 에너지. ‘Future Perfect (Pass the MIC)’에서 ENHYPEN의 ‘MANIFESTO’는 선언의 내용보다 선언을 위해 그들이 밟아온 과정 그 자체다. 느릿한 것 같지만, 끊임없이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자각의 과정을 거치던 그들은 드이어 능동태를 쓸 수 있는 순간에 도달한다. 

 

‘Future Perfect (Pass the MIC)’의 다음 곡 ‘ParadoXXX Invasion’은 마치 방탄소년단이 ‘진격의 방탄’이나 ‘흥탄소년단’ 같은 곡을 부르던 초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갖다버려 라떼”라며 기성세대에 야유를 보내거나, “자유로운 우린 비논리가 논리”라며 세상에 치기 또는 호기 같은 태도를 보인다. ‘FEVER’, ‘모 아니면 도(Go Big or Go Home)’ 등 ENHYPEN의 기존 댄스 곡들이 묘하게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나 사랑에 대한 불안을 담고 있었다면, ‘ParadoXXX Invasion’은 거침없이 달린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ENHYPEN은 앨범의 첫 곡 ‘WALK THE LINE’에서 어느새 그 선은 나를 쫓아와 묶어버리고 주저앉힌 후 그저 쳇바퀴 맴돌 듯 선 위를 따라 걷게 만들었다”며 자각 전의 자신에 대해 인정하고, ‘Future Perfect (Pass the MIC)’의 선언을 거쳐야 했다. ‘MANIFESTO : DAY 1’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DIMENSION : DILEMMA’의 대성공 이후 멤버들의 생각과 감정을 토대로 제작을 시작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고, 지속적인 앨범 판매량 상승으로 자신들의 인기를 증명해 나간 팀은 역설적으로 다섯 번째 앨범을 낼 즈음 자신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알게 됐다. 나와 세계의 관계가 바뀌는 순간이다. ‘TFW (That Feeling When)’는 공간 한가운데서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으로 시작해 점점 사운드가 추가되면서 목소리는 뒤로 들어가는 동시에 점점 흐릿하게 퍼진다. 내가 세계에 갖는 태도를 자각하자 나를 둘러싼 세계가 주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ENHYPEN은 ‘Polaroid Love’처럼 감미로운 러브 송에서도 사랑에 너무 빠지면 안 된다는 경계심을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TFW (That Feeling When)’에서 그들은 “아련한 여름 바다”와 “노을 물든 바람”을 느끼고, “이 떨림을 주고 싶은 거야 난”이라며 상대방에게 갖는 마음을 고민 없이 받아들인다. 그 다음 곡 ‘SHOUT OUT’ 또한 무겁거나 어둡거나 복잡하지 않고 명쾌하게 세상을 향해 ‘Shout out’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정해진 선을 따르는 것이 주던 경쟁의 불안과 세상에 대한 냉소를 넘어, 타인과 세계를 자신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는 것. 음악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든가 하는 것은 거창한 선언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다만, 새로운 첫날이 시작됐다. 세상을 따르기 전에, 세상에 말할 수 있게 된 ‘DAY 1’이. 경쟁과 불안은 지속될지라도. 

청춘의 경계선


김수연: 끝은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자, 변화를 일으키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END HYPHEN’. 2022 로고 트레일러의 엔딩을 강렬하게 장식하는 두 단어는, ENHYPEN이 혼란과 방황으로 가득했던 ‘하이픈(-)’의 시대를 끝맺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갈 것임을 직설적으로 예고한다. 데뷔 초 ‘BORDER’ 시리즈부터 직전 작 ‘DIMENSION : ANSWER’에 이르기까지, ENHYPEN은 선을 넘나들며 정답을 찾아 헤매는 딜레마에 놓여 있었다. 언제나 타이틀 곡에 배치되었으며(‘Given-Taken’ / ‘Drunk-Dazed’ / ‘Tamed-Dashed’ / ‘Blessed-Cursed’), 그룹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했던 ‘하이픈(-)은, 이번 앨범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MANIFESTO : DAY 1’, 앨범의 제목이 가리키듯, 세상이 정해놓은 경계선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선을 직접 그려나가겠다는 선언의 서막이다.

 

‘선’은 이중적이다. 선을 그리는 순간 나와 타자를 구분짓는 경계가 생성되지만, 동시에 같은 영역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결속되기도 한다. 이전까지 ENHYPEN에게 ‘선’은, 혼란과 충돌을 야기하는 경계이자, 자신들을 쫓는 ‘악몽’이었다. 하지만 ‘하이픈’을 악으로 인식하던 소년들은, 이러한 경계선 속에서 고민하고 성장하여, 선을 우리를 가두는 테두리가 아닌, 우리를 연결하는 존재로서 의미를 확장시킨다. 데뷔 앨범에 등장했던 동명의 곡에 취소선을 긋고 다시 써내려가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성명서, ‘WALK THE LINE’에서 ENHYPEN은, “날 가두는 선들을 지우고”, “새로운 선, 내 길을 그릴 것”임을 선언한다. “세상이 만들어둔 line을 엎을래”, “부딪히고 또 부딪혀”라는 도전적인 의지를 다지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결의를 표현하고(‘ParadoXXX Invasion’), “누군가 그어 놓은 border line”을 넘어 “함께 세상을 흔들어놓자”고 소리치며 변화를 열망하는 진취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SHOUT OUT’). 스스로의 의지와 열정을 내적 동기로 행동하게 되는 전환점을 맞이하며 한층 성장한 ENHYPEN은, 이내 “선을 따라 걷던 내가, 선을 그리는 내가 되어”, “새로운 세계 안에서 우리가 연결될 것”이라며, 연대의 이야기를 펼친다. 타이틀 곡, ‘Future Perfect (Pass the MIC)’에서는, “진짜 내 목소리를 꺼내” 또래들의 동반자로서, 주체적으로 그려낼 청춘의 미래를 앞장서서 제시한다. 앨범 후반부에서는 모든 감정의 순간들을 공유하자는 소망을 내비치기도 하고(‘TFW (That Feeling When)’), 함께할 미래를 확신하며, 우리의 세계로 “내 발길 따라서 너도 날 따라와” 달라고 손을 내민다(‘Foreshadow’). 너와 내가, ‘우리’로서 함께할 여정의 시작이다. 

 

고통과 환희, 욕망과 갈등, 축복과 저주. 지금까지 ENHYPEN은 생각과 생각이 엇갈리고 충돌하는 무수한 경계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며 새로운 답을 찾아냈다. ENHYPEN의 과도기는 막을 내렸고, 이들의 불안했던 시간은 스스로를 재정립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부터 ENHYPEN은 직선으로 전개되던 삶의 반경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들의 의지와 확신만으로 가득찬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경계를 뛰어넘어 연결되는 또 다른 방식의 연대를 그리며, 혼자가 아닌 ‘우리’로서 같이 가보자고 말한다. 소년들을 결속하는 테두리(border)이자 모순된 차원(dimension)이었던 하이픈(-)이, 더 이상 경계선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사다리가 된 순간이다. 세상에 외쳐 울려퍼지는 이들의 목소리는, 자신만의 선을 그려내야 하는 동세대의 존재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해답이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응원이 된다. ENHYPEN은 이제, 불안한 경계선에 선 또래의 청춘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들의 여정에 함께할 텐가, 아니면 그대로 안주할 텐가? “You stay still?”

무법의 시공간으로


김민경: ENHYPEN의 새 앨범 ‘MANIFESTO : DAY 1’의 비주얼 콘셉트 티저 사진 ‘D’-‘J’-‘M’은 자신만의 언어로 나아가는 소년들을 비춘다. 어떤 세상이 기다릴지 모르는 채 깨어난 낮과 밤이 뒤엉킨 새벽,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던 해 질 녘, 오직 나의 힘으로 ‘Day 2’를 맞이해야 했던 밤. 번뇌의 시간을 거쳐온 일곱 소년은 눈부시게 빛나는 색으로 우주를 가득 채우며, 비로소 그들을 옥죄었던 흑백의 패러다임을 끊어냈다(‘END HYPHEN’). 지금까지 ENHYPEN의 티징 콘텐츠에는 호화스러운 만찬과 금빛 샹들리에로 화려하게 치장된 공간, 일몰의 바닷가에서 뛰어다니거나 드넓은 초원에서 하늘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짙은 안개 속 아득한 꿈처럼 허상의 이미지들이 그려졌다. 그러나 ‘MANIFESTO : DAY 1’에서는 일순간 드리워질 그림자처럼 마냥 행복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내 스스로(‘M’) 삶을 쟁취해(‘D’) 세상과 맞서겠다(‘J’)는 ENHYPEN의 의지가 담겨 있다.

 

첫 번째로 공개된 ‘D’ 버전은 ‘WALK THE LINE’ 리릭 비디오에서 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새처럼 ‘나의 발로 설’ 세계를 열게 된 ENHYPEN의 새로운 출발을 보여준다. 이전의 “쫓기던 날들”과는 대비되게 콘셉트 필름 속 ENHYPEN은 어두운 공간에서 거침없이 달리며 발자국을 남기고, 진짜(REAL)라고 믿어왔던 현실을 스프레이로 과감하게 그어버린다. 동시에 낯설기만 했던 뒤집힌 세계의 모습마저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듯, 콘셉트 포토에서 보석이 박힌 ‘송곳니’를 보여주는 행동은 ‘모 아니면 도’인 선택지만 존재했던 질문의 답을 찾으며 얻어낸 자기 확신을 표상한다. ‘D’ 버전에서 연기를 피워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했던 ENHYPEN은 ‘M’ 버전에서 그 영역을 현실 세계로 확장시킨다. 검은 군중 사이를 농구공을 튕기며 뚫고 지나가거나, 유유히 그들의 반대에 서서 기성세대의 “낡아빠진 logic”을 부순다. “널 닥치게 만들 나의 new thang”, “너의 현실보다 멋져”. ‘ParadoXXX Invasion’의 가사 속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당찬 애티튜드를 그대로 반영하듯, ENHYPEN은 여유롭게 관망하는 시선으로 “역사를 난 making”(‘Blessed-Cursed’) 하겠다고 외쳤던 결의를 다시 한 번 드러낸다. ‘D’와 ‘M’ 버전이 두 세계의 경계에서 혼돈을 겪던 소년들이 깨달음을 얻고 자기를 입증하는 과정에 집중했다면, ‘J’ 버전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이들을 대표해 발언자가 된 ENHYPEN을 비추고 있다. 멤버들은 또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편의점, 헬스장 등 일상적인 장소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다가도,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왔던 처음처럼 다시 한 번 밖으로 나와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선다. ‘BORDER’, ‘DIMENSION’ 두 개의 챕터를 통해 ENHYPEN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같은 동세대가 경험할 변화를 보여줬다면, 이제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우리의 세계로”(‘Foreshadow’) 함께 가자고 외친다.

 

경계선에 발을 내딛던 순간(‘BORDER’)부터 더 넓은 세계와의 조우(‘DIMENSION’) 그리고 빛나는 내일을 향한 또 한 번의 도약(‘MANIFESTO’)에 이르기까지, 데뷔 후 ENHYPEN은 세상이 던진 시험에 끊임없이 마주했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변하는 격동의 시기에 나를 가두는 규율을 견뎌내야 했던 앨범 속 화자로서의 ENHYPEN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했던 현실의 ENHYPEN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청춘에게 사회가 요구한 것은 치열한 경쟁과 결과로써의 증명이었다. 반면 앨범에서 ENHYPEN은 시작부터 “Kill the past / 그냥 꺼져”라고 뉴 키즈만의 톡 쏘는 문법으로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며, 파란을 일으키기 위해 마이크를 넘길 것이라고(“I’ll pass the mic”) 조금의 주저도 없이 말한다. 그렇게 ‘DAY 1’을 마무리할 때가 되면 불확신의 질문들로 끝맺었던 날들은 사라지고, 질주를 앞둔 자의 믿음만 남아 있을 뿐이다. 퍼즐이 맞춰지는 변동의 순간이 버거울지라도, 우리가 가는 곳이 칠흑 같은 어둠일지라도. 결국 새로운 빛을 펼쳐낼 것이라는 믿음. 어렴풋한 미래를 좇아 항해하던 ENHYPEN의 여정은, 그들이 목소리를 내뱉는 순간 마침내 제 방향을 찾아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