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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오민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MHTL
사진 출처. KOZ 엔터테인먼트

시속 158.7km의 직구

강명석: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면, 소년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어느 옷을 고를까” 고민하던 그들은 “돌고 돌아 처음 입은 걸로 pick”한 뒤 자신의 모습을 점검한다. “향수 칙하고 이 한 번 확인 it’s perfect”. 신인 그룹 BOYNEXTDOOR가 데뷔 앨범 ‘WHO!’의 곡 ‘One and Only’의 가사와 퍼포먼스로 자신들을 소개하는 방법이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Better than any other brand 부티나는 발걸음”이라며 으쓱하는 자신만만한 소년들. 그러나 이 화려한 외출은 앞의 곡 ‘돌아버리겠다’에서 “날 보고 씩 웃네 뭐 이리 예뻐”라며 반해버린 누군가에게 고백하러 가는 길이다. “아 진짜 긴장돼 죽겠네”. 다음 곡 ‘Serenade’의 시작처럼, 고백 앞에서 자신감은 날아가버린다. 당연하다. ‘One and Only’의 가사처럼 “방금 출시”된 신인 그룹이니 말이다. 이어 그들은 호기롭게 “자랑질 좀”  하겠다고 나서지만, 미래의 팬들을 향한 ‘Serenade’가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Serenade’의 가사처럼 “실수할라나 몰라”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이 신인 그룹은 이 곡의 후렴구처럼 노래한다. “I love you baby baby baby 외쳐대느라 내 진심을 동네방네 다 알아”.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앞뒤 재지 않고 고백한다. 경쾌한 멜로디는 고백이 가진 무거움을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하되, “I love you baby”를 노래할 때만큼은 강하게 힘을 담는다. 앨범 제목 그대로, BOYNEXTDOOR는 그들이 누구인지 ‘!’처럼 힘차게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세 곡 모두 단단한 드럼 비트를 중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에너지 가득한 ‘기세’를 몰아간다. 짧은 도입부에 이어 곧바로 ‘돌아버리겠다’로 시작하는 후렴구로 이어지는 ‘돌아버리겠다’는 BOYNEXTDOOR가 신인 그룹으로서 갖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순식간에 생긴 호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소년의 모습은 타인의 시선에서는 그저 유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년의 마음은 진지하다. 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지닌 풋풋함과 시종일관 경쾌한 에너지를 담은 곡들 안에 가사와 목소리를 통해 직설적으로 담긴 진심이 역동적인 에너지를 부여한다. ‘WHO!’의 곡들이 록과 힙합을 전면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이 장르 음악들이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유다. 록처럼 거침없는 소년의 진심이, 그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갖는 힙합 같은 자신감이 이 앨범에 담겼다. 신인 그룹이 가질 수 있는 기분 좋은 청량함과 고백하는 사람의 에너지가 동시에 담겼다. 스스로를 ‘옆집 소년’이라 소개하면서도 ‘One and Only’일 수 있는 자신감의 결합이 낳은 결과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멤버인 명재현, 태산, 운학이 ‘돌아버리겠다’와 ‘Serenade’의 작곡과 작사에 참여하면서 생긴 진정성, ‘Serenade’의 “Hi 날씨도 좋은데 잠깐 좀 걸을까?”처럼 유쾌하게 넘어가는 순간의 퍼포먼스도 정확하게 리듬을 타고, 동시에 여유 있는 분위기를 잃지 않는 연습량에서 오는 결과일 것이다. 그들은 ‘WHO!’의 모든 곡들을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는 퍼포먼스도 함께 준비했다. 그래서 ‘WHO!’의 곡과 퍼포먼스를 모두 감상한 뒤 ‘One and Only’를 다시 듣게 되면 새로운 감상이 시작된다. ‘One and Only’에서 이 신인 그룹이 하는 “자랑질”은 그렇게 자신감으로 무장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다하는 신인 그룹의 주문과도 같다. 지금은 주변에 있는 옆집 소년 같을지라도, ‘One and Only’가 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아는 신인 그룹의 마음. 이 소년들은 이 마음을 온 힘을 다해 “동네방네” 알 수 있도록 외쳤다. 이 세레나데를 듣고 누군가 자신의 문을 열어주게 될까.

내 옆집에 있을 것 같지만 없는 소년들 

오민지: ‘문’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 의미다. 입구이자 출구이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나아가는 통로이자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경계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내부를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의미를, 반대로 ‘문’을 연다는 것은 외부에 대한 내부 사람들의 초대 혹은 환영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인 ‘스즈메’와 ‘소타’가 폐허가 된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문’을 닫아 재난으로부터 세상을 보호했고, 영화는 ‘문’이 닫힐 때 들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문’을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로 표현하며 문을 나선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던 과거의 슬픔을 드러냈다.

 

신인 그룹 BOYNEXTDOOR의 데뷔 앨범 ‘WHO!’는 그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팀명이 공개된 ‘Official Logo Motion’에서는 표지판, 버스, 이웃집과 같은 평범한 공간을 지나 도달한 집의 문이 열리고 이 ‘옆집 소년(BOYNEXTDOOR)’들이 튀어나왔다. ‘One and Only’의 안무에서 명재현이 문을 열자 다른 멤버들이 한 명씩 따라 나오기도 하고, 문을 열거나 문을 흔들 때도 멤버들이 등장한다. ‘Crunch’ 버전의 콘셉트 포토는 도어 스코프로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멤버들을 내다보는 장면과 문이 열리고 들어온 집에서 음악, 젤리, 화분, 과자, 킥보드 등을 가지고 노는 멤버들의 모습을 함께 담는다. 이때 멤버들은 ‘문’을 스스로 열어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그들이 있는 공간의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허물며 모든 곳을 일상적인 공간으로 표현한다. 이들에게 ‘문’은 어떠한 경계도, 구분도, 상징(Symbolism)도 아니다. 물론 팀명에서 알 수 있듯 이들에게 ‘문(DOOR)’이 중요한 오브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평소에도 수없이 마주하는 문처럼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이미지를 가져와 팀의 방향성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처음 사랑에 빠져 친구들과 고민을 상담하며 할 법한 “야 내가 미친 건지 함 들어봐”, “너 걔랑 팔짱 끼더라”, “내 모습 비웃지 마 나 진지하단 말이야”(‘돌아버리겠다’)와 같은 대화체의 가사나 스스로에게도 낯간지럽게 들리는 말투(“낯간지런 내 말투는 just for you”)이지만 “밤새며 수다 떨고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Serenade’) 고백하는 것처럼 그 나이대의 청춘들에게 일어날 것 같은 현실을 담아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소년들은 그 수많은 이웃집을 지나쳐 열린 단 하나의 문에서만 튀어나온다. 문은 현실 어디에나 있지만, 이 소년들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그 순간, BOYNEXTDOOR의 문은 역설적으로 상징이 된다. 현실 어디에나 있지만, 사실은 어디에도 없을지도 모를 존재를 만날 수 있는 통로. 옆집 소년의 현실과 아이돌의 판타지가 만나는.

발랄 상큼한 옆집 소년들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BOYNEXTDOOR를 만난 모두가 청춘물 작가가 된다. 성호, 리우, 명재현, 태산, 이한, 운학의 간질간질하고 기분 좋은 첫사랑 이야기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기운으로 두근거린다. 거칠 것 없는 기세, 이 꽉 문 독기, 세상에 이름을 새기려는 비장한 각오는 없다. 소설 속 주인공도 아니고 동화나 판타지를 넘나드는 가상의 누군가는 더더욱 아니다. 지코의 레이블 KOZ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그룹은 해맑은 표정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는 친근한 이웃집 소년들이며, 첫눈에 반한 여자아이와 마주할 때마다 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잡고 혼자 몰래 사랑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사춘기를 겪는 중이다. 빙빙 돌려 말할 필요도, 상황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묘사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BOYNEXTDOOR에게는 보고 배울 이웃들이 많다. 익살스럽고 귀여운 사랑의 악동으로 분했던 ‘HER’와 ‘Yesterday’에서의 블락비, ‘만세’와 ‘예쁘다’, ‘아주 NICE’의 틴에이지 뮤지컬을 기획한 세븐틴, 이국의 공간에서 모두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 뉴진스 선배님 말이다.

 

돌아버리겠다’, ‘One and Only’, ‘Serenade’. 총 러닝타임 8분 13초의 ‘WHO!’는 세 곡이 담긴 앨범이라기보다 한 편의 러브스토리 음악극 혹은 단편 영화처럼 다가온다. BOYNEXTDOOR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를 담는데 3분은 너무 짧고 10분은 너무 길다. 뮤지컬 한 편을 하나의 노래에 담았던 소녀시대의 ‘I Got A Boy’, 소나무의 ‘넘나 좋은 것’, 세븐틴의 노래나 급격한 브레이크다운으로 완전히 다른 두 장르를 이어 붙였던 에스파와 엔믹스의 사례가 떠오른다. 선배들이 노래 하나에 다이내믹한 구성을 가져가는 장편을 선호했다면 BOYNEXTDOOR는 비슷한 결의 에피소드 3편으로 나눠놓은 시리즈물을 택했다. 2분 30초부터 3분 30초 내의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세 노래는 청량한 트레일러 영상처럼 구름 위를 걷는 듯 산뜻한 발걸음의 팝을 지향하며 이는 원디렉션의 초기 커리어와 뉴 호프 클럽, 와이돈위 등 서구권 보이 밴드들의 음악을 연상케 한다. 일정한 스타일 아래 멤버들은 합창 없이 개별 가창을 통해 서사를 이어가고, 프로듀서들은 곡의 도입부와 마무리를 통해 다음 챕터로 넘어가거나 한 장을 마무리하는 등의 구성을 완성했다.

 

간지러운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댄스홀 리듬을 만들어 가는 ‘돌아버리겠다’부터 보자. 곡을 시작하는 태산이 “야 내가 미친 건지 함 들어봐”라 운을 띄우면 이한이 “자 이제 여기부터 문제야”라 궁금증을 유발하고, 멤버들이 각자 뛰어나와 자기 주장을 펼친다. “아냐?”라는 질문 후 곧바로 이어지는 ‘One and Only’는 본격적인 매력 발산의 시간이다. KOZ 시그니처 소리, 들뜨지 않는 편안한 일렉트로팝, 각 벌스를 시작하는 태산과 명재현의 랩과 후렴부 운학의 “키키키키 keep ballin’” 등 재치 있는 가사에서 프로듀서 지코의 색과 함께 이사온 집 문을 열고 낯선 거리를 즐겁게 뛰어다니며 이웃에 인사를 건네는 청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즐거운 하루를 보낸 끝 도착한 파티장,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백을 연습하는 ‘Serenade’가 청춘 로맨틱 에피소드 1막을 마무리한다. 성긴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직선적인 비트, 개구진 칩튠과 우아한 스트링 세션이 묘한 감정을 만드는 이 노래에서 BOYNEXTDOOR는 티 없이 쾌활하고 밝게 소리높여 세상에 크게 외친다. 너무 크게 외쳐서 동네 사람들 다 알 정도로, 이웃들 잠도 못 잘 정도로.

 

과거 많이 보였던 발랄 상큼 보이 그룹은 최근 강렬한 카리스마와 묵직한 메시지를 장착한 캐릭터가 대세로 떠오르며 팬 서비스 격 콘셉트로 격하되었다. 세계를 구원하고, 더 나은 어른이 되고, 넘볼 수 없는 초인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시 쉬어가는 단계로 여겨졌다. BOYNEXTDOOR는 그런 것들을 잘 모른다. 활기차고 꿈 많은 10대는 짝사랑하는 상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간다. 성공과 구원에 목마른 기획 사이, 빛나는 청춘의 이상 세계에서 웃고 떠드는 옆집 소년들의 등장에 숨통이 트인다.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