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오민지
디자인. 엄지(instagram @andeomji)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방탄소년단이 당신을 위해 한 모든 것을 나타내는 한 단어를 알려주세요. 그것은 무엇이든 간에.” 방탄소년단의 한 LGBTQ+ 팬덤이 올린 이 트윗에 달린 댓글은 방탄소년단이 LGBTQ+ 아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한 예시이기도 하다. 이때 LGBTQ+ 아미의 LGBTQ+는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등이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은 성적 지향(동성애, 범성애, 무성애 등)과 성 정체성(트랜스젠더, 시스젠더, 젠더퀴어) 등으로 세분화된 각 커뮤니티의 소속임과 동시에 방탄소년단의 팬인 아미라는 정체성을 가진다. LGBTQ+아미이자 젠더플루이드 양성로맨틱 무성애자(Biromantic Asexual)인 대니에게 방탄소년단이 가진 의미는 다음과 같다. “방탄소년단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생활, 꿈, 휴식, 음악, 예술 등 다른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다.”

 

유튜버이자 게이인 호세에게 방탄소년단은 “인생의 많은 시간 동안 숨어 있었고, 학교에서 게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면서 내 주위에 단단한 막을 만들었”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였다.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메시지 그리고 그들 자체에 빠져든 순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불가결적으로 ‘되어가던’ 모습에서 벗어나 천천히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 주위에 두껍게 쌓인 “그 막을 조금씩 깨고, 매일 조금씩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게 아미는 “배경이 무엇이든, 사랑하고 싶은 사람, 식별 방식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삶의 일부인 정체성과 남자친구를 밝히며 다른 아미와 연대를 쌓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이들이 처음 K-팝(혹은 이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빠져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성장의 아픔’이나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와 같이 누구에게나 와닿을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들에 대한 이입뿐 아니라 그러한 주제를 일관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퀴어 친화적’으로 여겨지는 콘셉트 등이었다. 대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순간 “내가 한 일과 내가 느꼈던 일이 모두 옳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퀴어가 된다는 것은 성별에 따른 기대치를 따르며 고정관념에 갇혀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단계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사는 캐럿이자 논바이너리인 에코(echo)는 세븐틴의 노래가 상대의 성별을 특별히 지정하지 않았기에 “성 중립적이고 다양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행복하다. 세븐틴의 ‘ROCKET’처럼 어떤 성별의 파트너도 연상할 수 있고, ‘어른 아이’는 “힘들더라도 괜찮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느껴진다. 예컨대 ‘_WORLD’의 ‘_’에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세븐틴의 곡 같은 특징을 가진 K-팝은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을 노래에 이입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수만 가지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저의 퀴어함은 제 왕관이고, 자랑스럽게 쓰고 싶습니다.” 인도네시아 LGBTQ+ 모아이자 범성애 FTM(트랜스 남성)인 브라이언에게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CROWN)’의 ‘뿔’은 자신의 ‘퀴어함(Queerness)’이다. 이 노래의 ‘뿔’은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마침내 받아들이거나 원하는 모든 것이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괴물을 살려두면 안 되는 걸까?’ 역시 반퀴어 사회의 퀴어 아이로서 “나이가 들면 삶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에 시간이 멈춰서 크고 나쁜 괴물과 맞서는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그가 듣는 K-팝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둔 채 청자가 각자의 상황이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었다. 

브라이언은 모아로 활동하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겼던, 혹은 숨겨야만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과 같은 ‘뿔’이나 ‘날개’를 가진 LGBTQ+ 모아들과 연대하기 위해 무지개색의 프라이드 플래그(Pride Flag)와 트랜스 플래그로 자신을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K-팝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대니는 다른 LGBTQ+ 아미에게서 “항상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제한 없이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허용되고 격려받는” 기분을 느낀다. 에코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에 사람들과 내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 항상 안전하지 않고, 퀴어가 되는 것이 때론 눈쌀을 찌푸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평소 정체성을 모두에게 알릴 순 없었을지라도 그의 트위터 계정만큼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어 안전하다.”고 인식된다. 

그러나 많은 LGBTQ+ 팬들은 “나는 나이지만 나여서는 안 되고,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봐주지 않는” 사회와 “단지 퀴어라는 단어를 붙였을 뿐인데 사람들은 우리에게 존재를 숨겨라.”고 하는 일부 팬덤의 배제와 부딪히곤 한다. 한 K-팝 LGBTQ+ 커뮤니티의 운영자이자 레즈비언인 로비가 그럼에도 자신을 ‘퀴어’이자 ‘K-팝 팬’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K-팝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퀴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겐 용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목표 중 하나는 “우리가 용기내는 걸 보고 누군가도 용기를 내 벽장에서 나오는, K-팝을 사랑하는 퀴어 팬덤이 더 많이 늘어나는 것”이다. 호세 역시 누군가가 자신의 삶의 일부인 정체성을 숨기라고 할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숨는 것은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처럼 아미인 게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데도 가지 않습니다.”

LGBTQ+ 팬덤이 각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프라이드 플래그의 모양이나 상징색을 아티스트의 사진에 삽입하는 것은 그들이 K-팝 팬으로 활동하며 겪은 일들과도 관계가 있다. 에코는 “아티스트가 어떤 식으로든 이를 확인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쁘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내가 사진을 편집하고 있는 것이라도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티스트들이 우리를 지지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며  자신의 존재를 아티스트가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위로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아티스트가 자신들의 존재를 인식함을 넘어 직간접적인 메시지를 통해 지지를 표명하는 경우,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나의 정체성을 지지한다는 사실과 퀴어가 되는 것이 괜찮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아는 것은 항상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빌드 시리즈(BUILD Series)’ 인터뷰에서 한 캐럿의 “많은 캐럿들이 LGBTQ+ 커뮤니티에 속해 있습니다. 저는 많은 LGBTQ+ 캐럿들이 세븐틴의 무대와 음악으로 그들이 지지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하고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혹시 그들을 위해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실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버논이 “저는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더 나은 세상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들에게 더 큰 의미로 와닿을 수 있었다. 호세 역시 방탄소년단이 2018년 UN총회 연설에서 “여러분이 누구이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 정체성이 어떻든 여러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라고 연설하는 것을 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으로 있어도” 된다고 듣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티스트의 이런 발언들은 “LGBTQ+ 아미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아티스트가 모두를 수용하는 것에 더욱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러한 직간접적인 지지는 많은 LGBTQ+ 팬덤이 겪었던(혹은 겪고 있을)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하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경험에서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을 긍정해주는 일이기에 더욱 상징적일 수 있다. 아티스트가 다양한 팬층의 존재를 인지한다고 느낄 때마다 이들은 아티스트와 더 깊은 유대 관계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왜 너네 시대에는 퀴어가 많아?’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지금 세대는 우리(기성) 세대와 다르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그 시대에 계신 퀴어분들은 숨어 있어야 했던 거고, 지금은 존재를 알리니까 더 많아진 것처럼 보일 뿐인 거죠.” 로비는 LGBTQ+ 팬덤에 대한 외부의 시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K-팝 팬덤 속에서, LGBTQ+ 또한 K-팝 문화를 이루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다. 전 세계 많은 LGBTQ+는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하지 못하기도 하고, 정체성으로 인해 가족이나 사회에 속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 문제들 중 어떤 것도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반면 K-팝 팬덤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 혹은 자신이 가까이하거나 차단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공간만큼은 안전할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에게 K-팝 팬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항상 안전하지 않았던 삶에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심사의 혹은 가장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타인을 만나는 기회이기도 하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덜 외로웠어요.”라는 브라이언의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LGBTQ+ 중 누군가 K-팝을 듣는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벽장처럼 갇혀 지내야만 했던 곳에서 나오기 위해 또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느끼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K-팝을 듣는다. 그래서 대니의 말처럼, K-팝과 K-팝 팬덤이 지금까지 견뎌온 일상에 대한 위로이자 ‘선택’한 가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누구를 사랑하는지 때문에 소외감을 경험했으며, 결국 우리 모두는 우리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응원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우리가 가진 전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