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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민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각 프로그램 배급사

“음악을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 하거든요. 그런데 모여서 이렇게 하면 할 수 있어. 음악 만드는 게 이렇게나 재밌는데.” 방탄소년단 슈가가 첫 단독 다큐멘터리 ‘SUGA: Road to D-DAY’에서 음악의 즐거움과 고통이라는 양면성에 대해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제이홉 또한 다큐멘터리 ‘j-hope IN THE BOX’에서 편곡과 안무 창작에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종국엔 “준비가 확실히 됐어. 불안한 건 없어. 하던 대로만 하면 잘할 것 같은데.”라며 ‘또 다른 멋진 제이홉’을 보여줬다. 두 다큐멘터리는 하이브가 제작하는 아티스트 다큐멘터리의 특징을 보여준다. ‘j-hope IN THE BOX’에서 소파에 앉아 아버지와 통화하며 음악 작업 때문에 만날 수 없다고 말하는 제이홉과 모니터를 바라보며 작업을 계속하는 제이홉이 한 프레임에 잡힌 건 사실적인 연출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음악으로 인해 다른 시간을 내기 어려운 아티스트의 고뇌라는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 ‘Bring The Soul’에서도 방탄소년단이 UN 연설을 할 때, 영상은 UN 회의장에 선 방탄소년단이 아닌 평화로운 공원의 일상을 보여준다. 해당 장면에 대해 오리지널콘텐츠제작실 박준수 SP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그게 현실이에요. UN 연설은 어떻게 보면 무대 위의 모습이잖아요. 슈퍼스타인 방탄소년단도 무대 뒤에서는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20대의 한 청춘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음악, 춤 또는 공연은 생업이자 너무나 바랐던 꿈이다. 하지만 전 세계 팬들이 기다리는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삶은 또래들이 갖는 어떤 일상과는 전혀 다르다. 방탄소년단 멤버 개인의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팀 다큐멘터리인 ‘Burn The Stage’, ‘Bring The Soul’, ‘Break The Silence’와 ‘j-hope IN THE BOX’와 ‘SUGA : Road to D-DAY’, 르세라핌의 ‘The World Is My Oyster’, 세븐틴의 ‘SEVENTEEN : HIT THE ROAD’ 등 하이브 아티스트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는 음악과 인생 또는 인생에서의 음악이 갖는 의미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들이 일관적으로 흐른다. 박준수 SP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이 투어를 한 번 갔다오면 (촬영 분량이) 120~150테라 정도의 용량으로 기록”되고, 이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과정은 “제작 기간도 1년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다. 따라서 다큐멘터리는 이 방대한 촬영 분량에서 그 시기의 팀과 멤버에게 가장 중요했던 물음과 답을 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컨대 박준수 SP와 방우정 CSL(Creative Studios Leader)은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Burn The Stage’는 “(방탄소년단이) 계단식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데 이걸 짧은 비하인드 영상으로만 다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에” ‘성장’을 주제로 했고, ‘Bring The Soul’은 “방탄소년단이 워낙에 팬들과 모든 걸 공유하려고 하니까 어떤 과정과 고민들로 ‘Love Yourself’를 외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팬분들이 알게끔 알려주고자” 당시 앨범 콘셉트인 ‘나 자신을 사랑하자’를 주제로 삼았다. ‘Break The Silence’는 명실상부한 슈퍼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이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을 담았다. 그리고 공개 예정인 ‘Beyond The Star’는 이 모든 길을 걸어온 방탄소년단의 “그들의 과거부터 10년을 훑는” 내용이 될 예정이다. 방우정 CSL은 “멤버들은 무대를 너무 좋아하지만 팬들이 많아지고 무대가 커질수록 공연이 끝난 후에 대비되는 공허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몸에 무리가 올 때도 있고,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그래도 무대하는 게 너무 즐거운 거죠.”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아티스트의 활동 과정을 따라가면서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는 사이 그들의 고뇌와 고민, 즐거움과 행복을 복합적으로 담아낸다.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 제목의  앞 글자가 ‘BTS’, 즉  방탄소년단 그 자체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다큐멘터리는 그들의 영광과 개인으로서의 인생을 모두 보여주며 방탄소년단으로서의 삶을 총체적으로 담아낸다.  

“르세라핌은 정말 치열하게 준비했습니다.” 쏘스뮤직 마케팅팀 정지혜 담당자의 말처럼, 르세라핌의 다큐멘터리 ‘The World Is My Oyster’는 데뷔 전 르세라핌의 현실을 다룬다. 멤버들은 연습하다가 피드백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과거의 평가나 다른 멤버들의 경력에 위축되기도 한다. 슈퍼스타로 도약하던 시기부터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방탄소년단과 달리, 데뷔 때부터 다큐멘터리에 자신들의 모습을 담은 르세라핌은 아이돌 그룹에게 데뷔의 현실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쏘스뮤직 마케팅팀 구미경 팀장은 르세라핌 멤버들에 대해 “더 잘하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다는 걸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성향”이라고 설명했다. ‘The World Is My Oyster’에 데뷔를 앞둔 멤버들의 의지가 다큐멘터리에 고스란히 담기면서 멤버들이 이 팀을 선택한 이유, 성공에 대한 열망 등이 그대로 표현됐고, 이는 많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보컬과 댄스 연습, 심리 상담, 매니지먼트, 콘셉트 및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투입되어 데뷔 전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데뷔란 무엇인가를 날것으로 보여주”는 것을 통해 하나의 ‘일’로서 아이돌 그룹의 데뷔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는 것인지 담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르세라핌에게 데뷔 그 자체가 그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것인지 일깨운다. 구미경 팀장의 말은 하이브 아티스트 다큐멘터리가 갖는 의미 중 하나다. “세 번째 데뷔, 두 번째 데뷔, 미국에서 대학을 가려고 했는데 포기하고 온 사람, 발레를 그만두고 온 사람, 유일하게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 기간을 거쳐서 합류한 사람. 이렇게 다양한 서사를 통해서 한 그룹이 만들어지는 걸 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실제 삶이 팀 활동과 하나로 결합한다.   

‘SEVENTEEN : HIT THE ROAD’는 더 나아가 세븐틴 멤버들에게 팀이 그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갖는지 보여준다. ‘SEVENTEEN : HIT THE ROAD’는 세븐틴의 팀 이야기로 시작과 끝을 맺고, 그 사이에 13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멤버 개개인의 이야기를 담으며 13명의 같지만 다른 색을 가진 멤버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세븐틴이라는 팀과 멤버 각자의 인생의 관계를 드러낸다. “굳이 세븐틴의 팀으로서의 그림을 만들어야지가 아니라 정말 붙어 있는 시간이 워낙 많은 팀이라서요.” 플레디스 마케팅1파트 이윤주 파트장의 말처럼, 멤버들은 세븐틴을 통해 일을 하면서 우정을 쌓고, 자신에게 필요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다. “심심하면 와서 보고 놀리는 게 일상이고, 각방을 쓰더라도 ‘야식팟’, ‘저녁팟’, ‘식사팟’ 이렇게 6~7명씩이라도 한 방에 모여서 같이 식사”하는 영상이 연이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서로에 대한 이 강한 애착을 바탕으로 ‘SEVENTEEN : HIT THE ROAD’는 “13명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힘듦을 겪었지만 빠진 친구들의 몫을 나머지 멤버들이 해내야 된다는 사명감이 생겼고, 마지막엔 13명이 다시 무대에 같이 설 수 있다는 서사”를 만들어간다. 다큐멘터리에서 “우지의 경우 세븐틴 뮤직 프로듀서라는 포지션이 있기 때문에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에스쿱스는 큰 공연장을 바라보는 객석에서 인터뷰하며 총괄 리더로서의 포지션을 드러내는 장소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대, 작업실과 같은 장소를 단순한 공간이 아닌 의미가 부여된 연출을 통해 장소만으로도 멤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신의 일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각자의 관점으로 팀을 생각하고, 그것이 모여 작은 연습실에서 노래와 춤을 자체 제작하며 데뷔해 지금의 슈퍼스타가 된 세븐틴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된다. 영상 말미에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모습이 흑백으로, 연습생인 멤버들의 모습과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화려한 세븐틴의 모습이 배치된 것은 이들이 아이돌이자 아티스트로서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그리고 세븐틴의 성장과 청춘이 아직도 ‘-ing’라는 의미임과 동시에 화려한 현재를 만들어낸 흑백의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잘 보여주자. 그런데 있는 그대로가 자신 있어서요. 거짓말 안 해도 되니까.”라는 방우정 CSL의 말은 아티스트의 사실과 현실을 넘어 음악과 인생에 관한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하이브 아티스트 다큐멘터리의 제작 철학을 보여준다. 아티스트의 동의 하에 모든 순간들을 촬영한다는 점에서 촬영 자체는 의도적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의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서트 컷을 찍기 위해 “창밖을 한 번 바라봐주세요.”라고 말하고 나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찍는 몽타주 신 정도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의도적인 연출 없이 촬영이 진행된다. 이는 “점점 더 커지는 공연장 사이즈가 보여주는 것처럼 방탄소년단은 정말 많이 성장했지만 근본적으로 무대에 열정적이거나 최선을 다하는 것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변하지 않아 오히려 뒤로 갈수록 반복된 게 많아서 고민”스러울 정도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르세라핌 또한 그들의 노래 ‘FEARLESS’ 가사처럼 “겸손한 연기 같은 건 더 이상 안” 한다는 다짐으로 있는 그대로를 촬영했다고 정지혜 담당자는 말한다. “연기보다 있는 그 자체로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됐거든요.” 르세라핌의 멤버들이 “잘할 거예요.”, “잘하고 싶어요.”, “어떻게든 세상을 가질 거예요.”라고 포부를 드러낼 때 팀의 막내 은채가 카프리썬을 같이 마시기 위해 챙기는 귀여운 성격을 보여준 것도 “그냥 그 멤버가 그런 캐릭터라 그대로 보여준” 장면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SUGA: Road to D-DAY’의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는 현재일 뿐. 미래는 미래일 뿐.”을 인용하자면, 다큐멘터리가 아무리 현재 시점을 담아낸다 해도 그 장면은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과거일 뿐이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에 담긴 과거가 화려한 인기와 무대 위에서의 영광만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고뇌와 노력이 담기는 것은 아티스트와 팬들 사이에 생길 수도 있는 거리감을 해소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윤주 파트장에 따르면 ‘SEVENTEEN : HIT THE ROAD’는 “무대 뒤, 무대 아래의 진짜 세븐틴의 모습을 캐럿분들에게 꾸밈 없이, 가감 없이 보여주고자 했던 아티스트의 의지”를 반영하여 팬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격차를 줄이고자 했다. 박준수 SP에 따르면 방탄소년단 또한 “점점 슈퍼스타가 되어갈수록, 방탄소년단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궁극적으로 그 사이의 벽을 최대한 얇게 만들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통해 또래들과 같은 고민을 하는 20대로서의 방탄소년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요컨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아티스트로서 특별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민을 진실되게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도 팬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일상에서의 행복을 찾고 있다는 동질감을 함께 준다. 

 

‘나는 무언가를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이뤄낸 적이 있었나?’, ‘도전, 시련, 성장통이 있었고 미처 알지 못한 청춘들이 있었다.’, ‘나태해지는 게 싫다는 부분에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다큐를 보면 열심히 살고 싶어져.’ 하이브 아티스트의 다큐멘터리에 대해 아티스트의 치열한 삶에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반응들이 많은 것은 이 아티스트의, 더 나아가 삶의 진실이 보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르세라핌 데뷔 당시)는 모두가 눈앞의 챌린지를 넘어서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발랄한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다시 무언가를 도전할 때의 두려움 혹은 불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다큐멘터리에서 귀엽고, 해맑고, 항상 꽃밭에 있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그것 역시 아이러니하지 않을까요?” 구미경 팀장의 말은 하이브 아티스트 다큐멘터리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의 일과 인생을 함께 전달하는 것. 그래서 팬이 아이돌을 한 사람으로서 깊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 거대한 산업이 움직이는 그 과정은 그렇게 피할 수 없는 누군가의 진심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