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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효진(대중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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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그저 움직임을 단순하게 보기 위한 것이에요.” 비욘세는 시간을 이렇게 정의했다. ‘시간’이라는 키워드는 영화 ‘르네상스 필름 바이 비욘세’ 안에서 비욘세의 목소리와 함께 꾸준히 등장한다. 시간이 우리의 무의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골몰히 생각하고, “시간은 우리를 현재의 수감자로 만든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면에서 시간은 닳고 마는 배터리 전원과 같다고. 비욘세는 ‘시간과 나’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다.

 

영화 ‘르네상스 필름 바이 비욘세’는 ‘르네상스 월드 투어’의 준비 과정과 공연 실황을 함께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9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비욘세의 홈커밍’과 유사하다. 공연 실황과 준비 과정이 교차하며 등장한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형형색색의 무대 연출이 등장하는 공연 실황 장면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홀린 후, 공연의 A부터 Z까지 디렉팅하는 비욘세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임무를 출중히 수행하는 스태프들의 모습을 비춘다. 비욘세의 삶과 가치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터뷰성 내레이션을 더해 비욘세가 비단 공연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삶에까지 진정성을 가지고 임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19년 ‘비욘세의 홈커밍’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욘세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공연 연출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일례로 ‘비욘세의 홈커밍’에서는 영화의 시작부터 댄서들이 대거 등장하여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가장 먼저 선보인다. 그러나 르네상스 월드 투어에서는 비욘세 홀로 등장하여 “Dangerously In Love”를 부르며 공연을 시작한다. 댄스 퍼포먼스 없이 스탠딩 마이크와 목소리만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르네상스 월드 투어 전 발 부상 때문에 춤동작을 최대한 줄였다는 점이 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연달아 등장하는 비욘세의 내레이션이 이 추측을 뒤집었다. 이제는 활동하는 데에 있어 시간을 다르게 느끼고 있으며, 과거엔 위대함을 향해 나아가려고 했다고 담백하게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욘세가 르네상스 월드 투어를 통해 가장 이루고 싶었던 목적은 아마도 시간을 벗어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던 걸로 보인다.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않고,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내가 ‘나’이기 때문에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공간. 투어 전 발매한 ‘RENAISSANCE’ 앨범 공식 소개문에도 이와 같이 적혀 있다. “제게 이 앨범의 제작 과정은 세상이 불안한 시기에, 현실에서 벗어나 꿈꿀 수 있는 안식처와도 같았습니다. (중략) 제 목표는 타인에게 평가받지 않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완벽주의와 복잡한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맘껏 소리 지르고, 해방되며,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요.” 비욘세는 우리를 재촉하는 ‘시간’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나’의 모습으로 새로이 탄생할 수 있는 ‘르네상스’의 ‘공간’을 건축하고자 한 것이다.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그렇다. 르네상스 월드 투어는 직무와 관계없이 여성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여성이라고 해서 사회적 통념상 여성이 할 법한 일만 하지 않는다. 무거운 무대장치를 들고 나르며 비욘세의 공간을 구축하는 데에 역할한다. 그렇게 완성된 무대와 대형 스크린 안에서 재생되는 영상은 잉태와 탄생,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포함돼 있다. 해가 뜨고 지고, 빛이 공전한다. 비욘세가 양수 안의 태아처럼 물속에서 몸을 웅크리다 사이보그 인간, 즉 새로운 창조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그 재탄생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의상에 있다. 화려한 코스튬이 공연 내에서 구간을 나누는 역할을 하고, 노래와 무대가 가진 콘셉트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댄서들의 패션도 마찬가지다. 독특하고 다채로운 복장을 하고 곡과 어우러진다. 그 패션의 기반에는 볼룸 문화(Ball Culture,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 아메리카인 청년의 언더그라운드 LGBTQ+ 하위문화)가 자리한다. 비하인드 장면에서 그들은 흑인의 볼룸 문화를 언급하며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조니 삼촌’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성소수자였던 그는 비욘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비욘세의 독창적인 의상을 제작했다. 그는 에이즈로 2022년 사망했다.(비욘세는 ‘RENAISSANCE’ 앨범을 조니 삼촌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웅장한 무대 연출, 상징적인 요소를 내포한 VCR, 형형색색의 코스튬 등 르네상스 월드 투어를 즐겁게 만드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그 모든 것을 소화하여 하나의 유기체로 선보이는 것은 단연 비욘세다. ‘Dangerously In Love’와 ‘Flaws and All’처럼 가창만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곡뿐 아니라, 새 앨범 ‘RENAISSANCE’에 수록된 ‘CUFF IT’, ‘ENERGY’, ‘BREAK MY SOUL’ 등을 통해 컨셉추얼하고 장엄한 무대를 선사한다. ‘Run the World (Girls)’, ‘Love On Top’과 같은 솔로 히트 곡과 남편 제이지와 함께한 ‘Crazy In Love’까지 비욘세는 27년이라는 시간을 벽돌 삼아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비단 27년의 커리어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흑인 여성 아티스트로서 선도적으로 길을 개척한 다이애나 로스가 1976년에 발매한 ‘Love Hangover’를 부르며 비욘세의 생일을 축하하고, 첫째 딸 블루 아이비가 비욘세와 함께 ‘The Lion King: The Gift’ 수록 곡 ‘MY POWER’ 무대에 선다. 비욘세가 아티스트의 꿈을 꾸게 했던 과거와 매일 성장하며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함께 만들어 갈 미래가 공존한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비욘세는 편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이야기한다. “해방된 느낌이야. 새로운 동물로 변한 느낌.” 위대함을 좇았던 30대를 지나 40대를 맞이한 비욘세는 안정감과 즐거움을 얻은 듯 “인생 최고의 시기”라며 “매일 좋아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결국 비욘세가 구축하고자 했던 ‘공간’은 단순히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장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를 인정하고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마음, 그 어디에도 절대적으로 틀린 방식은 없다는 것을 아는 마음. 사회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생생히 살아 있고, 호흡하고, 주변인들과 공명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시작과 부활이며, 그가 구축하고자 했던 ‘르네상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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