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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해인
사진 출처.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찰리 푸스 틱톡

“콘텐츠를 제작할 때 유저들은 다른 콘텐츠를 참고하게 되는데, 그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지금은 틱톡이다.” 댄서 아이키와 크리에이터 땡깡, 원정맨 등 틱톡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들이 다수 소속된 순이엔티(SOON-ENT) 박관용 본부장 의 말은 지금 틱톡의 위상을 설명한다. 모든 콘텐츠가 퍼져 나가는 출발지. 밈이든, 춤이든, 음악이든, 틱톡에서 유행하면 그 바깥으로 인기가 증폭된다. 미국 음악 산업은 이미 틱톡의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틱톡은 게일(GAYLE)과 타이 베르데스(Tai Verdes) 같은 뮤지션들을 발굴했고, 릴 나스 엑스와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스타덤에 올렸다. 틱톡 코리아 박주영 뮤직 콘텐츠 매니저에 따르면 “최근 연구에 따르면 75%의 틱톡 미국 유저가 틱톡을 통해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마이스페이스와 사운드 클라우드, 유튜브를 지나 틱톡에서 혜성 같은 신인이 등장한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정국과 컬래버레이션을 한 찰리 푸스는 틱톡의 영향력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지난 6월 24일 발표 이후 9주 연속(9월 2일 기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오르고 있는 그의 ‘Left and Right (feat. Jung Kook of BTS)’는 발매 4개월 전 틱톡을 통해 사운드가 좌우로 번갈아 들리는 곡의 핵심적인 파트를 공개한 바 있다. 발매 일주일 전에는 찰리 푸스와 정국이 통화하며 후렴구를 녹음하는 듯 연출한 영상도 업로드했다. 두 영상의 조회 수는 2022년 9월 기준 각각 약 3,700만 뷰, 3,500만 뷰에 달한다. 2022년 1월 발표 후 15주간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오른 ‘Light Switch’ 또한 발매 5개월 전부터 곡의 아이디어, 작업 중 발생하는 고민과 해결 과정을 모두 틱톡에서 공개했다. 음원을 몇 개월 전부터 미리 공개하는 건 몇 년 전만 해도 기대감을 떨어뜨린다는 우려를 일으켰다. 하지만 틱톡이 자리 잡은 시대에는 음악이 각종 ‘댄스 챌린지’처럼 춤 같은 요소와 결합해 끊임없이 퍼지도록 만든다. “예전에는 그런 게 없었지만, 이제는 주위 사람들과도 ‘틱톡에서 들어봤다.’, ‘이거 틱톡 음악이다.’라는 말이 은연중에 생겨난 것 같다.”는 박관용 본부장의 말은 틱톡의 현재 영향력을 체감케 한다.  틱톡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틱톡의 유행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으로 퍼져 나가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코의 ‘아무노래’가 틱톡에서 ‘아무노래 챌린지’로 붐을 일으킨 것도 벌써 2년 전이다. 아이돌 그룹을 비롯해 댄스 음악을 하는 K-팝 아티스트들이 신곡을 발표할 때 틱톡을 통해 하는 ‘댄스 챌린지’는 K-팝 프로모션의 필수 요소가 됐다. ENHYPEN이 소속된 레이블 빌리프랩 마케팅팀 박정은 팀장은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 단계에서 ‘숏폼’ 콘텐츠 포맷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관용 본부장이 “췄을 때는 멋이 나고 민망하지 않아야 되지만, 배울 때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외워질 정도”라고 말하듯 틱톡의 댄스 챌린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식도 생겼다. 최근 KBS2 음악 순위 프로그램 ‘뮤직뱅크’의 순위 집계 기준에는 유튜브와 함께 틱톡에서의 반응이 추가됐다. 

박주영 매니저에 따르면 틱톡에서 유행하는 트렌드는 “아티스트가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하이라이트 구간이 아닌 부분의 음원을 활용한 영상이 오히려 화제가 되기도 한다.” 틱톡에서 K-팝은 아티스트가 아닌 틱톡 유저가 퍼뜨리는 경우가 많고, 동시에 “크리에이터마다 최대 10~20%에 달하는 참여율이 나오기도 한다.”는 박관용 본부장의 설명처럼 타 플랫폼에 비해 유독 참여율이 높기도 하다. 빌리프랩 최윤혁 VP가 틱톡을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별이 없는 채널”이라고 정의한 것은 그 이유를 짐작케 한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자신들의 노래에 관한 챌린지에 참여한 이용자들을 보고 리액션하는 멤버의 모습을 ‘듀엣’ 기능을 활용해 업로드하거나, 팬이 만든 리믹스 음원을 사용해 멤버들이 영상을 올렸다. ENHYPEN은 ‘Polaroid Love’ 챌린지가 화제가 되었을 때 팬이 만든 챌린지 안무를 멤버들이 찍어 업로드했고, 트레저는 팬이 창작한 ‘다라리’ 챌린지의 안무가 들어간 퍼포먼스 영상을 제작했다. 팬들이 참여한 틱톡 챌린지 영상을 레이블에서 직접 컴필레이션 형태의 뮤직비디오로 제작하는 건 K-팝에서 익숙한 프로모션이 되기도 했다. K-팝은 아티스트와 소속사가 콘텐츠를 만들면 팬덤에서 이를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장르이자 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플랫폼에서 아티스트가 팬덤 또는 플랫폼 이용자에게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면, 틱톡에서는 아티스트의 콘텐츠로 서로 뒤섞여 노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파급력이 생겼을 때 아티스트도 그 화제성을 가져갈 수 있고, 틱톡에서도 마찬가지로 아티스트의 영향력에 힘입어 트렌드가 더 확산될 수 있다.”는 박주영 매니저의 설명처럼 아티스트는 틱톡의 트렌드에 영상으로 반영하면서 자신과 관련된 트렌드를 더 멀리 퍼뜨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트렌딩 영상의 원작자도 ‘내가 만든 걸 아티스트가 해줬다.’면서 ‘꿈을 꾸는 거 같다’, ‘믿을 수 없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는 빅히트뮤직 마케팅팀 인정진 담당자의 말처럼, 틱톡은 팬이 아티스트의 반응을 확인하는 플랫폼이 되기도 한다. 빅히트뮤직과 빌리프랩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틱톡을 “아티스트와 팬덤의 소통 채널”이라고 말한다. 틱톡이 아티스트와 팬의 구분을 없애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 모두가 지금 틱톡에서 일어나고 있는 트렌드에 섞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ENHYPEN이 업로드한 ‘우영우 인사법 챌린지’는 업로드 15시간 만에 약 800만 뷰를 기록했고, 업로드 당시 틱톡에서 글로벌하게 트렌딩되어 다수의 K-팝 아티스트가 올린 ‘Jiggle Jiggle’ 영상은 현재 약 2,600만 뷰로 높은 조회 수를 자랑한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연준은 인기 K-팝 아티스트인 동시에 틱톡에서는 인기 틱톡 크리에이터나 다름 없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연준이 올린 틱톡 댄스 챌린지 영상이나, 안무를 만들어 댄스 크레딧(dc)를 붙인 영상 중 대다수는 1,000만 뷰를 상회한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틱톡 팔로워는 2022년 9월 기준 약 1,800만명으로 K-팝 보이그룹 중 두 번째로 많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앨범 활동 기간이 끝나면 “이제 ‘틱톡킹의 시대’가 돌아왔다고 표현할 정도”라는 반응이 올라올 만큼, 투모로우바이투게더만의 틱톡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처럼 틱톡내에서의 콘텐츠로도 인기를 얻는 아티스트에 대해 박관용 본부장은 “그들 자체가 ‘틱토커’이고 콘텐츠에 진심”인 점을 이유로 분석했다. “본인들이 즐기는 게 보이는데, 그 차이가 굉장히 크다.”는 설명이다. 빅히트뮤직과 빌리프랩의 관계자들이 틱톡 콘텐츠를 만들면서 “아티스트의 의견을 가장 존중”한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트렌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며 함께 즐기는 모습을 자연스레 노출하는 게, 틱톡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틱톡에서는 2011년 발매된 씨스타19의 ‘Ma Boy (마보이)’가 2022년 여름에 갑자기 주목받는다. ‘Anti-Romantic’, ‘Polaroid Love’, ‘다라리’ 등은 모두 틱톡 크리에이터의 창작 안무를 통해 퍼졌다. 세 곡은 앨범의 타이틀 곡이 아닌 수록 곡이기도 하다. 블랙핑크 멤버 리사의 ‘MONEY’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틱톡 영상에서 마치 OST처럼 사용되며 9개월간 인기를 지속하기도 했다. 틱톡에서는 아티스트나 소속사가 추진하는 프로모션보다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통해 트렌드가 형성되는 경우가 훨씬 많고, 그만큼 어떤 곡이 어떤 식으로 화제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 방탄소년단의 ‘Dynamite’ 안무는 국내 틱톡 크리에이터에 의해 2022년 발매된 주시크의 ‘아무래도 난’을 배속한 버전의 음원과 합쳐졌고, 유명 틱톡 크리에이터들이 따라 하는 챌린지가 됐다 . 이런 틱톡의 세계에서 아티스트가 곡의 반응을 위해 계획된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자신도 이용자의 입장에서 틱톡의 흐름에 들어가 즐겨야 틱톡에 어울리는 또는 이용자가 원하는 무언가가 나온다. 틱톡은 시간이 갈수록 음악 산업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지만, 그 영향력을 키우는 힘은 역설적으로 산업적인 논리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 


이 명확하고도 복합적인 영향력 속에서 K-팝 아티스트의 챌린지에도 변화가 나타난 건 당연한 결과다. ENHYPEN은 ‘Future Perfect (Pass the MIC)’가 발매되기 전, 안무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만 짧게 압축해 틱톡에서 트렌딩되었던 챌린지와 섞은 스포일러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짧은 영상은 당시 화제가 되는 트렌드를 아티스트가 보여주는 동시에 신곡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면서도 음악과 안무를 자유롭게 믹스하는 틱톡 고유의 특성이 겹쳐진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Valley of Lies’ 스토리텔링 챌린지처럼 댄스가 아니라 자신들의 감정에 대해 텍스트 형태로 이야기하는 챌린지를 만들어, 틱톡의 ‘커뮤니티’적인 특성을 적극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실제로 틱톡에서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Z세대들의 해시태그인 ‘Break Up Glow Up’이 ‘Thursday’s Child Has Far To Go’에 반영되었다.”는 인정진 담당자의 설명처럼, 틱톡에서 공유되는 세대적인 메시지가 K-팝 아티스트의 가사 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여기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데뷔 직후부터 틱톡을 능숙하게 활용하고, 자신들의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는 맥락이 더해진다. 틱톡만이 지니고 있던 특성은 다시 사전 기획의 영역으로 흡수되어 K-팝만의 새로운 활용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틱톡은 K-팝 아티스트든 팬이든 또는 유행하는 ‘챌린지’라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든 모두 ‘틱토커’로 받아들여지는 공간이 됐다. 그 결과, K-팝처럼 팬덤이 뚜렷한 곡 또한 팬덤 바깥의 틱톡 이용자에게도 인기를 얻는 ‘틱톡송’이 될 수 있다. 곡을 원작자의 의도나 원래 가졌던 맥락과 상관없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틱톡에서는 역설적으로 곡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쉽게 그 곡을 접하고 새로운 매력을 찾을 수 있다. K-팝 아티스트들은 이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지역적인 경계는 물론, 기존 K-팝 소비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곡을 알릴 수 있다. 틱톡에서는 전 세계적인 밈이 만들어지고, 음악과 댄스를 넘어 정보가 제공되며, 나의 감정을 설명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영상 속에서 무엇이 트렌드가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며, 이 플랫폼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어디에서 만들어낼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박주영 매니저의 말처럼 틱톡에서 K-팝은 “K-팝과 상관없이 그냥 ‘좋은 노래와 댄스’라고 인식되면” 예상할 수 없는 지역, 세대, 취향까지 곡이 확산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틱톡은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기회”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일반 이용자에게도, 스타를 꿈꾸는 틱톡 크리에이터에게도, K-팝 아티스트에게도 모두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