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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수연 (‘씨네21’ 기자), 최지은 (작가),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쇼박스

‘비상선언’

임수연 (‘씨네21’ 기자): ‘비상선언’은 할리우드의 하이재킹 영화보다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닮고자 하는 영화다. 공항 출국 체크인 시점으로 출발해 사람들이 많이 타는 노선을 물색하는 테러범 진석(임시완)을 지체 없이 노출하는 플롯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재난 영화 문법을 비튼다.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재난이 촉발한 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인간 본성과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상공과 지상의 소통을 전제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의 우선순위를 묻는 정치 갈등을 보다 극적으로 이끌어내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비상선언’의 이견 없을 장점은 프로덕션의 기술적인 완성도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비행기 세트와 아비규환의 현장을 실감나게 담아낸 핸드헬드 촬영은 대규모 상업 영화에 기대하는 스펙터클을 충족한다. 다만 3분의 2 지점을 넘어가면서부터 영화가 선택한 길은 상이한 반응이 예상된다. 9·11 테러와 세월호 이후 재난 영화를 현실과 분리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외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천만 관객을 꿈꾸는 상업 영화의 신파 역시 단점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공동체의 생존을 놓고 보다 흥미롭게 전개될 수 있던 질문들이 개인의 희생을 넘치는 감성과 연결짓는 구도, 위기의 반복적이고 납작한 묘사로 인해 흐릿해지는 점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앞서 서술한 분명한 장점과 송강호, 이병헌, 특히 임시완의 호연만으로도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

‘남의연애’(웨이브)

최지은 (작가):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면 일단 합숙부터 해야 한다. 서로의 나이와 직업을 모르는 채 첫인상과 짧은 대화만으로 호감 가는 상대를 정한 다음 데이트한다. 정해진 시간에만 단 한 명의 상대에게 30초 동안 전화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규칙은 출연자 간의 긴장과 흥분을 은근하게 끌어올린다. 한 침대를 쓰는 룸메이트에게 걸려온 전화에 분위기는 어색해지고, 아무에게도 전화를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에게 매력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아기자기한 소품 함께 만들기, 심장을 빨리 뛰게 하는 패러글라이딩 체험 등 전통적 데이팅 프로그램 구성을 충실히 따르는 ‘남의연애’의 차별점은 출연자 전원이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서로 탐색하고 넘겨짚고 오해하고 설레하는 남자들을 관찰하는 신선한 재미는 익숙한 몰입으로 이어진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 같은지, 누구와 누가 잘 어울리는지 분석하다 보면 누가 최종 커플이 될지 점점 궁금해진다는 얘기다. 

‘오늘 같은 농담’ - 김제형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 김제형의 격월 싱글 발매 프로젝트 ‘띄움’의 네 번째 노래다. 심신, 황규영 등 1990년대 스타의 바이닐 커버를 수놓던 복고적인 폰트와 선명한 햇빛의 해변 풍경이 바로 직전 싱글 ‘후라보노’의 흐름을 잇는 복고 지향을 드러낸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경쾌한 브라스 세션과 기타 리듬으로 꾸민 후렴을 제시하는데 그만큼 멜로디 라인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김현철, 윤상, 양수경, 윤종신, 이한철의 이름이 스쳐 가는 기분 좋은 그루브를 듣다 보면 한여름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를 거니는 남자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김제형의 노래에는 종결어미 ‘-지’로 끝나는 가사가 많다. ‘의심이 많아진 사람의 마음이 있었지’, ‘넌 진실인 것처럼 굴었지’ 같은 노래도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시제를 좀 더 넓히며 노래가 나의 현재에만 머물지 않게 하고 싶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 같은 농담’은 다르다. 노래 속 남자는 기약 없는 이별을 마주하면서도 어제와 내일 대신 오늘을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약속도 미래도 하나 남겨진 건 없지만 여기 분명한 감정들이 존재하니까” 소중한 지금이다. 오래 기다리더라도, 설령 작별하더라도, 오늘 같은 농담에 웃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