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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수연 (‘씨네21’ 기자),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강명석,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헌트’

임수연 (‘씨네21’ 기자): ‘헌트’는 이정재의 첫 연출 도전 그리고 ‘청담 부부’라 불리는 정우성과 함께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재회하는 작품. 이 작품은 톱스타의 유명세에 힘입어 연출 데뷔도 주연 캐스팅도 쉽게 갔다는 오해를 보란 듯이 뒤엎는다. 영화 현장 경험만 만 28년에 이르는 이정재는 상업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아는 전문가다. 1983년 안기부에 잠입한 간첩 ‘동림’을 색출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벼랑 끝 치킨 게임을 시작한다. ‘헌트’는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만 실화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을 과감하게 발휘한다. 덕분에 관객이 역사 재현에 요구하는 윤리적 부담을 덜고 시대상에서 냉전, 정보기관, 의심과 배신의 정서를 극대화한 후 스파이 액션 장르물의 무대로 삼는다. 더불어 다양한 집단에서 벌어지는 딜레마, 결과를 위해 과정의 흠결을 정당화하는 모순을 포착해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시대 한국에 던지는 주석으로도 읽을 수 있는, 감독 이정재의 놀라운 데뷔작이다.

‘MORE’ - 제이홉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7월 한 달 내내 ‘홉월드(Hope World)’였다. 방탄소년단의 솔로 활동기, ‘챕터 2’의 첫 주자 제이홉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잘 짜인 셀프 프로듀싱 음반으로 세상과 두 번째 인사를 했다. 선공개 곡 ‘MORE’는 작정하고 준비한 그의 첫 정식 앨범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대표 무기라 할 만한 댄스를 수납한 것도 놀라웠지만, 코러스에 그런지한 록 밴드 사운드로 승부수를 던진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방탄소년단 초기에도 샤우팅 스타일 랩으로 자기 자리를 견고히 했던 그는 새로운 솔로 커리어의 시작 역시 이렇게 ‘외침’으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가 앨범 발매 전 예고했던 어두운 욕망의 내러티브는 흔한 남성 가수들이 커리어를 전환할 때 들고 나오는 ‘어두운(이라 쓰고 ‘지저분한’이라 읽는) 욕망’식 접근법과는 다른 모습이다. 극도의 향상심과 그 이면에 소진되는 영혼을 모두 관찰한 이 앨범은, 바로 나를 위한 일들이 자기 파괴로 이어지기도 하는 인간사의 단순하지만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담았다. 그 운을 띄우기에 ‘MORE’는 더없이 효과적인 시작이었다.

'GOING SEVENTEEN’ 중 ‘전원우 일기’ + ‘8월의 크리스마스’

강명석 : 세븐틴의 자체 예능 콘텐츠 ‘GOING SEVENTEEN’의 ‘전원우 일기’는 전원우에 따르면(위버스를 통해 밝혔다.) 멤버들에게 대략적인 상황만 주어진 채 애드리브로 펼친 상황극이었다. 아이돌이 두 개의 에피소드에서 한 시간여 동안 상황극을 할 수 있는 것도 희한한데, 내용은 더 이상하다. 비디오로 농촌 마을 ‘세봉2리’의 일상을 찍는 학생 전원우의 시선을 따라가는 상황극은 ‘전원일기’를 패러디한 농촌 드라마에 ‘전국노래자랑’이 끼어들더니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를 거쳐 ‘X 파일’과 ‘기묘한 이야기’를 합친 미스터리에 ‘트윈픽스’까지 언뜻 생각나는 분위기로 끝나버린다(더 이상 묘사하면 심각한 스포일러가 될 만큼 자세한 스토리다.). 이 모든 걸 절묘하게 웃음이 터져야 할 타이밍보다 3분의 1 박자 늦게 맞추면서 웃음과 동시에 뒤로 갈수록 기묘한 어색함을 만들어내는 멤버들의 신기한 예능감은 저 팀이 가수로서 올해 정규 앨범과 리패키지 앨범으로 첫 주 판매량만 318만 장 이상을 판 그 팀인지 화면을 확대해서 보게 만든다. 

 

기막히게 웃기다가 이상하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긴 ‘결말’은 캐럿들의 다양한 상상을 낳았고, ‘GOING SEVENTEEN’은 마치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그 다음 주에 납량 특집 격인 ‘8월의 크리스마스 II’를 내놓았다. 멤버들은 셋 또는 네 명으로 유닛을 만들어 컴컴한 방에서 PC로 공포 게임을 플레이한다. 멤버들이 게임을 하며 놀라는 모습을 기대하겠지만, 게임한다고 놀랄 세븐틴은 아니다. 대신 전원우는 게임을 잘하고, 에스쿱스는 이미 해본 게임이어서 금세 깨고 퇴근을 할 수도 있지만 다른 멤버들도 게임을 해보도록 양보한다. 그 와중에 오프닝에서 지치지 않고 뛰어다니는 막내 디노(aka 피철인)도 있다. 에피소드 썸네일에 ‘어두운 방에서 홀로 시청하지 마시오’라는 문구로 겁부터 주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 II’는 공포 게임을 통해 나타나는 멤버들의 캐릭터와 한 명이 게임을 하면 나머지 멤버들이 오디오가 비지 않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진행을 하는 팀워크를 보여준다. 그리고 ‘8월의 크리스마스 II’로 멤버들의 평소 모습을 알고 ‘전원우 일기’를 다시 보면 웃다 지치다 못해 의문이 생긴다. 저 팀은 왜 이렇게 생겨서 저런 것까지 하는데 심지어 그렇게 웃기나. 그런데 하반기에 가수로서 일본 돔 투어를 포함한 월드 투어를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어둠의 속도’ - 엘리자베스 문

김겨울(작가): 당신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재미있게 봤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의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소설은 2002년 출간되자마자 문학계에 충격을 주며 아서 클라크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고 네뷸러상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자폐가 어린 시절 발견되면 의학 기술로 완치할 수 있는 근미래 세계, 마지막 자폐인 세대에 속하는 루 애런데일은 매일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고 매주 펜싱 동호회에 나가며 자신만의 삶을 영위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정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는 분명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곧 그의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그는 ‘비정상’인가? 자폐인들에 대한 혜택을 없애고 그들을 강제로 치료하려 드는 상사 크렌쇼와 펜싱 동호회에서 루를 질투하는 ‘정상인’ 던이 루를 주시하고 있다.

 

소설을 쓴 엘리자베스 문에게는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다. 이 소설의 출발점부터가 아들의 말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루나 우영우처럼 전형적인 ‘자폐를 가진 천재’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은 다르고, 그것은 자폐인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그사이에서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설은 자연스럽게 독자가 이 질문에 잠기도록 만든다. 독자는 읽으면서 루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심지어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자폐인의 머릿속에 들어가보는 경험이지만 또 동시에 모든 자폐인의 경험이 같을 수는 없다. 이 사실을 뼈아프게 기억하는 것, 이입과 거리 두기 사이의 다채로운 경험이 이 소설이 주는 가장 귀한 선물일 것이다. 물론 소설 자체가 재미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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