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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리은, 임수연(‘씨네21’ 기자),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미노이의 요리조리 유튜브

‘미노이의 요리조리’

김리은: 이것은 2022년의 부조리극일까. 미디어의 본질이 쇼 비즈니스로서의 성격을 감추고 진실을 연출하는 데에 있다면, ‘미노이의 요리조리’는 그런 미디어에 대한 사실상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진행자 미노이는 게스트를 방으로 보낸 채 사실상 그들에게 들리는 ‘앞담화'를 하면서 요리 메뉴를 정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소시오패스’ 콘셉트를 자처한다는 명분 아래 게스트들에게 반말로 직언을 쏟아내며, PPL의 존재나 홍보를 위한 게스트들의 출연 목적을 노골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사실상 욕설이 적혀 있는) 프롬프터의 존재와 편집되지 않은 제작진들의 웃음소리 역시 그대로 노출된다. 모든 것이 연출임을 분명히 하는 이 토크 쇼의 전제는 역설적으로 의외의 유머를 낳는다. 올해 42세가 된 이동욱에게 미노이가 (동안이라는 의미로) “왜 이렇게 늙었어?”라고 말하거나, 좀처럼 예능용 멘트를 말하지 못하는 이정재에게 “입에 거미줄 쳤어?”라고 물어보는 순간에 웃음이 터질 수 있는 건 이 모든 것이 연출이라는 전제가 깔아주는 안도감 그리고 20대 중반의 여성인 미노이가 언행과 관계없이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무해함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미노이가 실제로는 무례하지 않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리고 그가 게스트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기에 웃을 수 있다.

 

20대 여성이 토크 쇼에서 진행자로서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게스트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적 변화라 할 수 있다. 동시에 게스트의 연령과 상관없이 상대방을 놀리거나 위로하면서 재미를 이끌어내는 미노이의 모습은 진행자로서 그의 능력이다. 그러나 대중은 미노이의 친근하거나 귀여운 비주얼에 주목하고, 그가 실제로 뛰어난 뮤지션이자 보컬리스트라는 점은 의외의 면모로 소비된다. 2년 전, 미노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자작랩 쇼미더머니9 지원 영상’을 업로드했다.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가 살쪘고, 집에 ‘츄르’가 많아서 버릴 정도라는 내용의 가사를 담은 이 영상은 현재 조회 수 약 600만 회를 돌파한 상태다. 사실 힙합 씬에 대한 비판을 의도했던 이 노래는 인기를 얻으며 정식 음원으로 발매됐다. ‘미노이의 요리조리’를 보면 그때 미노이의 등장이 생각난다.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애티튜드를 드러내는 미노이는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걸까? ‘미노이의 요리조리’를 보며 실컷 웃고 미노이의 매력에 푹 빠지면서도 문득 드는 의문이다.

‘공조2: 인터내셔날’

임수연(‘씨네21’ 기자): 상업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 어떤 영화인지 바로 인지할 수 있는 한 줄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전편 ‘공조’가 남북 형사의 공조를 그렸다면, ‘공조2: 인터내셔날’은 남북미 형사의 협동 수사가 펼쳐진다. 남한의 진태(유해진), 북한의 철령(현빈) 그리고 미 FBI 소속 잭(다니엘 헤니)이 함께 잡아야 할 대상은 북한에서 뉴욕, 남한으로 건너온 마약 유통의 큰손 장명준(진선규)이다. 전편의 무게감을 던 철령의 캐릭터가 코미디에 합류하면서 전반적으로 자잘한 유머가 늘었다. 국내에서 세트로 구현한 뉴욕 소호의 추격전, 파리채 등 일상적인 소품을 활용한 맨몸 액션, 고층 빌딩 곤돌라를 배경으로 한 클라이맥스 액션 등 이 영화에 관객이 기대할 만한 시퀀스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몇 가지 단점은 있지만 ‘공조2: 인터내셔날’은 추석 연휴 개봉을 결정한 유일한 오락 영화에 기대하는 방향성과 적당한 만족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만족스러운 공산품이다.

‘Hold The Girl’- Rina Sawayama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어떤 아티스트를 볼 때 지금의 그에게서 ‘물 들어올 때’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다. 리나 사와야마의 때는 지금인 것 같다. 일본 출신의 1세대 이민자 영국인, 음악 작업과 모델 일을 함께하는 멀티테이너, 레이디 가가나 우타다 히카루 등 21세기 팝의 여성 아이콘들을 동경하며 자란 팝 음악의 아이.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자기 메시지 송신에 온 힘을 쏟는 열정적인 싱어송라이터. 2022년의 리나 사와야마는 시대의 팝 스타 그 자체다. 신곡 ‘Hold The Girl’은 자기 보살핌의 지난함과 해방을 향한 몸부림을 아주 적당한, 충분한 팝으로 번역해내고 있다. 황야 한복판에 고립된 여자의 싸움을 그린 뮤직비디오와 함께 들을 때에 감동이 배가된다. 전작 ‘SAWAYAMA’는 호평 일색이었으나 유달리 상복이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새 앨범은 다를 것이다. 달라야 한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팝 스타의 등극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묘사하는 마음’ - 김혜리

김겨울(작가): 어떤 글은 읽는 사람의 등을 가볍게 밀어 움직이게 한다. 김혜리 기자의 글은 특히나 읽는 사람이 영화를 보도록, 글을 쓰도록 밀어주는 부드러운 미풍 같다. 오랫동안 주간지 기자로 일하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온 김혜리 기자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를 비롯한 여러 글을 모아 책으로 냈다. 영화를, 또 그의 조용하고도 섬세한 말과 글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목을 빼고 기다렸을 법하다. 영화 앞에서 ‘해석’이라는 말보다는 ‘묘사’라는 말을 사용하는 그에게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영화로 글 쓰는 자의 겸손함과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을 배려하는 주간지 기자로서의 성실함이다. 동시에 그에게는 영화에 대한 존중의 짝패와도 같은 비전이 있다. 그러한 이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뿐. 혹자는 김혜리 기자의 글이 지나치게 조심스럽다고 평하기도 하나 글을 꼼꼼히 읽다 보면 그러한 평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니 믿을 만한 가이드를 따라 천천히 영화의 산책길을 걸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