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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임수연(‘씨네21’ 기자),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오늘의 주우재 유튜브

‘우재, 이런일이’ (유튜브)

이예진: ‘MZ(세대)’, ‘핫플’, ‘인스타 맛집’, ‘인싸’는 주우재가 세상에서 없어지길 바라는 단어들이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고 호들갑과 유난은 절대 사절이다. 주우재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전국적인 호들갑”이 싫다는 이유로 마라탕을 먹지 않았던 사람이다. ‘우재, 이런일이’는 주우재의 세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일단 시키고 보는 ‘주우재 개선 프로젝트’다. 자신과 상극인 ENFP들과의 술 파티, SNS 유명 맛집 오픈런, 이상한 플러팅이 난무하는 소개팅, ‘탑꾸’와 함께 좋아하는 아이돌의 안무 카피하기. 요즘 세대의 정서나 최근 가장 핫하고 유행하는 것들은 역설적으로 트렌드 따르기를 강력하게 거부하는 주우재를 통해 웬만큼은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을 열받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주우재는 툭하면 눈을 뒤집어까고 10초에 한 번씩 ‘현타’를 느끼지만, 그걸 보는 시청자는 즐거움을 넘어 은은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나 이 콘텐츠의 본질은 주우재가 결국에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있다. 그는 사람들이 탑로드의 뜻도 모르면서 ‘탑꾸’가 유행하는 행태에 일침을 가하다가도 반려견 주드로의 ‘포카’를 30분간 정성스럽게 꾸미고, 남들에게만 ‘요즘 핫한 아이돌’인 뉴진스의 춤을 심드렁한 얼굴을 하면서 꽤 본격적으로 춘다. “죽기 전에는 절대 안 하려고 했던” 릴스를 찍고 나선 “왜 하는지는 알 것 같다.”고, 인스타 맛집 웨이팅을 경험하고선 “일단 왜 그렇게 하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겠다.”고 말한다. 영혼이 담기진 않은 반쪽짜리 공감일 뿐이지만, 딱 그 정도로 좁혀진 심리적 거리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인정은커녕 이해해보려는 노력조차 사치가 된 각자도생의 시대에 현실적으로 필요한 접근이 아닐까.

‘성덕’

임수연(‘씨네21’ 기자): 좋아했던 일을 ‘쪽팔리게 하는’ 덕질을 해본 적이 있는가.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면서 이전에 은폐됐던 폭력이 하나씩 가시화되는 수순은 마땅하건만, 숭배했던 우상 역시 가해자 중 하나였다는 진실이 폭로된다. 현실 부정과 분노와 울분 끝에 남는 것은 그 연예인이 부와 명예를 쌓을 수 있게 도왔던 팬 역시 무결하지 않다는 자기의심이다. 영화 ‘성덕’은 가수 정준영의 ‘성공한 덕후’였던 감독이 하루아침에 ‘실패한 덕후’가 된 후 자신처럼 범죄자가 된 ‘오빠’들을 둔 팬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왜 우리는 연예인에 빠졌는지, 그의 범죄가 이후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팬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심리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는지 팬덤의 솔직한 고백이 유쾌한 성토 속에 채록된다. 팬 활동을 했던 연예인이 범죄자가 됐던 경험이 없더라도 영화 ‘성덕’은 타고난 DNA에 ‘덕질’이 있는 자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다. ‘미투’ 시대 이후 여성이 남성 연예인을 사랑하는 게 가능할지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거나, 새로운 덕질을 시작할 때마다 “이 사람도 혹시?”라고 의심하게 되는 트라우마는 여성 팬덤 보편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성덕’의 끝은 소모적인 자기혐오가 아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사랑하게 되는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 끌어안으면서 건강한 덕질의 미래를 함께 모색한다.

‘Sagwa Remix’ - 소울렛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영혼(Soul)’이란 단어에 아티스트의 체구처럼 ‘작은’을 뜻하는 프랑스 접미사 ‘-ette’이 더해진 소울렛(Soullette). 그는 채식주의자에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정신과 건강의 조화를 중시한다. 그리고 네오 소울과 프로그레시브 소울의 상징적 존재, 에리카 바두(Erykah Badu)로부터 그동안 구축해온 음악 세계를 완전히 해체당했다. 소울렛의 보컬은 확실히 에리카 바두와 닮았다. 그러나 모방 이상의 짜릿한 창의가 엿보인다. 기술적으론 탄탄하나 무색무취의 보컬리스트가 많은 판에서 이처럼 색깔이 확실한 음색의 보컬은 더할 나위 없는 무기다. 뿐만 아니라 곡을 만드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과감하고 실험적이다. 지난 2월 발매한 그의 첫 EP ‘생일’에서 가장 돋보인 곡을 새롭게 리믹스한 ‘Sagwa Remix’를 들어보시라. 어감과 단어의 양에 신경 쓴 듯한 가사와 이를 자연스럽게 전개하는 개성 있는 보컬 그리고 내내 사각거리는 건조한 질감의 네오 소울 프로덕션까지, R&B/소울 음악 좀 들어본 리스너들의 까칠한 시선을 걷어내고, 팔짱을 풀어버리기에 충분하다.

반짝이는 어떤 것 - 김지연

김겨울(작가): 욕망은 물건과 환경으로 구체화된다. 현대인의 욕망이 가장 큰 스케일로 구체화된 물건은 뭘까? 쇼핑몰 그러니까 백화점과 마트를 포함하는 ‘몰’이다. 인공적인 산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곳, 새롭고 예쁘고 반짝거리는 것이 모여 있는 곳, 창문 없이 밖과 단절된 곳, 돈이라는 도구가 없다면 환상뿐인 곳. 우리는 ‘몰링(malling)’을 하면서 쇼핑을 할 뿐만 아니라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한다. 건물 밖을 나가지 않은 채로 날씨의 방해 없이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몰은 완벽한 공간인 동시에 허무한 공간이다. 몰이 지향하는 곳에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은 없기 때문이며, 또한 돈이 아닌 것은 쉽게 가치를 잃어버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몰을 드나들고 사랑한다. 핫하다는 몰을 찾아다니고 싶어 하고 대형 쇼핑몰이 있는 곳 근처에 살고 싶어 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삶과 몰의 의미를 돌아보고,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몰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소비에 대한 환상을 짚어본다.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지 않는 에세이이지만 저자의 경험만으로도 생각거리는 충분하다.